[FFT인터뷰] 금메달·월드컵·마인츠…박주호의 사계절

기사작성 : 2014-11-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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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박주호(마인츠)에게 지난 1년은 그 어느 때보다 극적인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세계 최고 무대 중 하나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인정받는 수비수가 되고도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낙마했고, 막판 극적으로 브라질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팀과 함께 좌절을 경험했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도 요동이었다. 와일드카드 합류 여부로 마지막까지 저울질의 대상이었다가 곡절 끝에 참가했다. 대회에서 기어이 금메달을 걸고 나서야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병역의 고민을 땀의 결실로 치환했다.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시한부 유럽인생’은 이제 그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연장될 수 있는 전기를 맞았다.
 
<포포투>가 박주호를 만났다. 반전과 반전의 연속이었던 그의 시간을 사계절로 재구성했다. 역시, 결실의 계절 ‘가을’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1 박주호 메인.jpg

가을| 마음을 비우니 금메달이 오더라
지난 가을은 박주호의 축구 인생에서 축제 같은 시간이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에 와일드카드로 참가해 후배들과 함께 금메달을 일궜다. 유럽 생활 연장에 큰 걸림돌이었던 군 문제도 해결했다. 하늘의 뜻에 운명을 맡기되 최선을 다한 결과다.
 
“결과적으로 좋은 상황이 됐지만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내내 병역 면제에 대한 마음은 비워놓고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군에 가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경찰청 입단도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순리를 거스르기 싫어하는 성격 덕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왕 뛰는 거 죽기살기로 뛰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어차피 가야 할 곳(군)에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했어요.”
 
절박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유럽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군소리그 스위스에서 정상을 경험한 후 독일 마인츠05로 이적해 분데스리가에서 안정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 아쉬움이 있긴 했어요. 갈 팀이 없거나 못 뛰어서 돌아오는 게 아니었으니까…다 그만두고 돌아오면 좀 허무해질 것 같긴 했죠.”
 
실은 그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안타까워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결승까지 오르고 보니 오히려 더 조바심이 생기는 분위기였다. 자칫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제일 억울한(?) 처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승전 전날 후배들한테 편하게 경기하자고 말했어요. 지금까지 해왔던대로 하자고, 정신무장만 제대로 갖추면 된다고 얘기했죠. 그래놓고 정작 저는 한숨도 못잤어요.(웃음) 이상하게 잠이 안오더라고요.”
 
그 상태로 결승전을 뛰었다. 4강전을 전후해 이틀 간격으로 뛰었던 데다 결승전도 연장전까지 120분을 소화하는 강행군이었다. “이상한 건 결승전을 뛰면서 힘들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는 거예요. 끝난 뒤에야 ‘아, 근육이 다 맛이 갔구나’ 싶었죠.(웃음) 다른 선수들도 비슷한 상태였을 거예요. 능력 이상의 무언가가 나왔던 경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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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우여곡절 월드컵 참가기
북한과의 결승전은 치열했다. 90분이 모자라 연장전 30분을 모두 쓰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추가시간에야 임창우의 결승골이 터졌다.
 
기적 같은 순간은 여름에도 있었다. 브라질월드컵에 극적으로 참가했다. 그 과정은 익히 알려진대로다. 최종엔트리 발표 현장에서는 호명되지 않았지만, 먼저 선발된 김진수(호펜하임)가 발목 부상으로 하차하면서 대체 자원으로 발탁됐다. 그사이 박주호는 모교인 숭실대에서 몸을 만들고 있었다. ‘월드컵의 꿈’이 사라진 순간에도 다음 시즌을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무리 없이 브라질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월드컵대표팀에 합류했다고 해서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박주호에겐 기회였지만 김진수에게는 불운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한 자리라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묵묵히 몸을 만드는 것밖에 없었다. 대표팀 관계자에 따르면 박주호는 이과수 베이스캠프에서 매일 새벽 훈련을 자청했다. 홀로 운동하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뛰고 싶다는 무언의 표현?
 
“두 가지 마음이었어요. 뛰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언제라도 뛸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언제 어떻게 뛰더라도 평균 이상은 해야 했죠. 그러려면 남들보다 운동을 더해야 팀에 맞출 수 있는 상태였어요. 당시 굉장히 피곤했기 때문에 하루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생각에 지기 싫었어요. 다른 선수들이 한번 운동하면 나는 두 번, 두 번 운동하면 나는 세 번… 그렇게 준비했어요.”
 
박주호의 말에서 그가 거쳐 온 팀의 지도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곧 유럽 무대에서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이다. “운동장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생활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평소 생활이나 훈련에서의 자세가 좋다면, 일시적으로 경기력이 안좋아도 감독이 ‘저놈, 그래도 밉지는 않네’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의사소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 선수인지 증명할 방법은 경기장에서의 모습과 생활태도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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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영표 조언, 유럽 생활 원동력
해외 진출 선수들의 필수 덕목 중 하나는 성실성이다. 박주호도 아시아 출신 선수들의 경쟁력으로 이를 꼽았다. 체험적으로 확신하게 된 계기가 있다. 박주호가 유럽 생활에서 위기를 느꼈던 시절이다. 바젤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할 무렵이었다. 데뷔 시즌부터 주전으로 맹활약하던 그가 감독이 교체되면서 벤치로 밀려나는 처지가 됐다. 처음에는 두세 경기 쉬어가는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3개월 가까이 결장으로 이어졌다.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팀을 떠날 생각이었다. 실제 K리그로 이적이 성사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때 상황을 환기시켜준 이가 있었다. 이영표다.
 
“국내에서 뛰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였어요. 영표 형한테 조언을 들었죠. 지금 당장 뛰지 못하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하셨어요. 유럽에서 그런 경우는 흔하다면서요. 중요한 건 버티고 있으면 반드시 다시 한 번 기회가 오는데, 그때 제가 준비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하셨어요.”

마음을 고쳐먹고 겨울 캠프에 참가했다. 여전히 새 감독(무라트 야킨)으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꾸준히 몸을 만들면서 준비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경쟁에 대한 압박감이 모두에게 있었어요. 경기를 일주일 남겨둔 시점에 제 포지션에서 뛰던 애가 자꾸 실수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출전 기회가 저한테 돌아왔어요. 아마 감독은 첫 경기에만 저를 쓸 생각이었을 거예요.”  
 
결과는 놀라웠다. 경기를 끝낸 뒤 감독이 “이 멤버로 쭉 가겠다”고 선언했다. 준비에 따른 결과는 그렇게 달라졌다. “만약 그때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면 유럽 생활을 더 못했을 거예요.”
 
마인츠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훈련장에 가장 먼저 나가 가장 늦게 나오는 선수다. “최대한 팀에 붙으있으려고 해요. 운동 준비하면서 스트레칭하거나 다른 선수들이랑 얘기 나누고 놀거나 장난치거나, 뭘 하든 최대한 팀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죠.”
 
마인츠 생활이 더 즐거운 이유는 친숙한 동료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구자철과 오카자키 신지다. 유럽 생활에선 아시아 출신 선수가 한 명만 있어도 의지가 된다. 말이 통하는 이들이 둘이나 더 있으니 든든하다. 특히 경기에 패했을 때 부정적인 감정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나로부터 시작해 실점한 정면이 있다고 쳐요. 결과적으로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해도 혼자 있으면 괜히 위축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둘이 있으면 ‘야, 내가 잘못한 거냐?’라고 얘기하고 털어버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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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더 높은 무대를 꿈꾸며
마인츠는 박주호에게 도약대가 되어준 팀이다. 지난 시즌 레프트백과 중앙 미드필더를 겸업하며 멀티플레이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전임 감독이었던 토마스 투헬의 권유가 아니었다면 레프트백을 고집했을 것이다. “내심 사이드에서만 뛰고 싶었죠. 월드컵을 앞두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감독이 두 포지션을 다 뛰어보라고 했을 때 따랐던 게 결과적으로 아시안게임 참가로 이어졌어요. 잘 된 거죠.” 미드필더로 뛴 경험도 나쁘지 않았는지 “아예 바꿀까 봐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다른 포지션에서 뛰니까 원래 포지션에서 필요한 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협업이 돼요. 이번에도 (김)진수가 (공격진영으로) 올라가면 빨리 내려오는 게 힘들겠다 싶어 커버해주고, 재밌었어요.”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 이제는 소속팀에 충실해야 한다. 마인츠는 여러모로 그를 살뜰하게 살피고 배려했다. 지난 시즌 막바지 발가락 부상으로 조기 귀국을 추진했을 때도 협조했다. 아시안게임 참가로 한달 남짓 대표팀 차출 요청이 있을 때도 응해줬다. 지난 14일 코스타리카와의 A매치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했지만, 빨리 복귀해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 “제 입장과 의견을 많이 존중해준 팀이에요. 많은 기회를 준 것도 사실이고요. 팀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겁니다. 팀에 희생한다는 자세로 들어가려고요. 실제로 제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요.”
 
다시 찾아온 축구인생의 봄.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현재에 만족하진 않을 생각이다. “고비를 넘은 것 같지만, 여기서 안주하고 싶진 않아요. 이제야 더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고만 생각하고 있어요. 실패하더라도, 안된다고 할 때까지 도전하고 싶어요.”
 
다음 구상을 살짝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혼자 생각으로 지금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언젠가 좋은 팀으로 가는 거예요. 또 월드컵이요. 이번에는 참가만 했는데, 다음 월드컵에서는 뛰고 싶어요. 다시 월드컵을 준비하는 4년이 제게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더 나은 팀, 더 좋은 환경을 꿈꾸지만 지금 시점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이르고요. 상상만으로 행복한 이 시간을 좀 더 누리고 싶습니다.”
 
인터뷰=배진경, 사진=이완복, FAphotos,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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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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