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김병지의 마지막 특강 ②독서광,히딩크,은퇴

기사작성 : 2016-09-2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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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전설 김병지가 그라운드에 작별을 고했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피치 위에서의 도전이 마흔여섯 여름에 막을 내렸다.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던 마지막까지, 김병지가 특별하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다. 언젠가부터 그의 역사는 곧 K리그와 한국축구의 역사였다.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기록의 벽을 세운 건 더이상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야기다.
<포포투>는 고민했다. 김병지는 대중에게 친숙한 축구스타다. 26년 동안 자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공개한 이 남자에게 던질 수 있는 새로운 질문이란 게 무얼까. 고민 끝에 차라리 그에게 요청하기로 했다. 26년 프로 인생을 집약한 ‘특강’을 들려달라고. 그러니까 이제 곧 펼쳐질 이야기들은 9월 18일로 예정된 공식 은퇴식 전, 김병지와 함께했던 마지막 현장 수업이다. 후배들을 향한 조언으로 시작한 이야기지만, 누구에게나 울림이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라. 

<...1편(김병지의 마지막 특강 ①재테크와 루틴)에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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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만 아는 바보’라고요?

“아니, 축구에 집중하기도 모자랄 판에?” 제 관심사가 다양한 분야로 뻗어있는 걸 두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합니다. 맞아요. 운동에 집중하는 자세는 축구선수 제1의 덕목입니다. 축구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예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이들에게 ‘장인’이라는 이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는 게 아니지요. 그런데 우리가 평생 축구선수로만 사는 건 아닙니다. 26년을 뛰어왔던 저만 해도 결국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생기잖아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인생의 깊이가 더해지는 건 시야의 넓이에 따른 것이라고요. 

사실 축구(운동)선수들은 다른 일을 하는 또래에 비해 사회적으로 성숙이 더딘 편입니다. 주로 보호받고 관리받는 입장인데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편협하게 살지 않으려면, 또 언젠가 발을 내딛게 될 사회에서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폭넓은 교제를 하는 게 좋습니다. 이때 교제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책이 될 수도 있고 뉴스가 될 수도 있겠지요. 특히 책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해주는 좋은 도구입니다. 고전부터 인문학, 문학, 자기계발서에 이르기까지, 읽어서 나쁜 책이란 거의 없습니다. 저는 <화폐전쟁>이라는 5권짜리 두꺼운 책도 정독했어요. 일반인 중에도 이 책을 끈기있게 읽는 이가 많지 않다는 얘길 듣고 내심 뿌듯했습니다. 이외수 작가의 책도 신작이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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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건 어느 시점이 되면 이 모든 감성과 지혜가 내가 하는 일과도 연결이 된다는 겁니다. 무엇이든 관심있는 분야를 섭렵하다 보면 유관 학문 혹은 그 분야로 지평이 계속 확장되는 거죠. 이런 과정에서 통섭의 기쁨도 알게 되고 통찰도 생긴다고 봅니다. 사람을 사귈 때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 방향성이 맞는 친구를 편견없이 사귀다 보면 인생이 훨씬 풍성해집니다. 저는 지금 축구에 대해 깊이 있는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브렉시트’에 대한 토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축구에 집중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세상사에 두루두루 관심을 갖는 연습도 해보세요. 나를 둘러싼 세계가 훨씬 흥미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 의미없는 시간은 없다

은퇴를 즈음해 지나온 길을 돌아봤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그간의 걸음은 정상을 향해 쭉 뻗은 직선일 것 같잖아요? 아니었습니다. 등산으로 치면 오르막내리막 능선을 몇 번이나 탔더라고요. 왼쪽 샛길로 빠지기도 했고 오른쪽으로 가다 검은 숲에 갇힌 적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002월드컵 때의 좌절을 꼽을 수 있겠죠. 흔히 슬럼프라고들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32세였어요. 주변 사람들 다 제가 충격으로 은퇴할 줄 알았을 거예요. 대표팀 수문장 경쟁에서 뒤쳐진 듯한 인상이었기 때문이죠. 많은 분들이 아시듯 월드컵대표팀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히딩크 감독님과 신경전이 있었고, 월드컵에서 결국 한 경기도 뛰지 못했으니까요. 그 사연을 풀자면 역시 지면이 모자랍니다. 일단 월드컵대표팀의 일원으로서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한국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4강이라는 현장에 함께 했고, 온 국민이 그토록 축구에 열광하고 많은 사랑을 보내준 것에 감사했던 마음이었어요. 팀원으로서도 지켜야 할 자리는 명확했기 때문에 이기심은 넣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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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번 히딩크 감독님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긴 합니다. 3/4위전에서 혹 출전 기회를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거든요. 역시나였죠. 

때때로 마지막 터키전에 출전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랬다면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을 겁니다. 저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씻어냈을 거고, 히딩크 감독님과의 갈등이 이토록 오래 회자되지도 않았을 거예요. 요즘 ‘영고’라는 말을 많이 쓰더군요. 영원한 고통을 뜻한다면서요. 해피엔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칼스버그컵(골문 비우고 드리블)과 함께 ‘영고’ 대상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당시 상처일 수도 있었던 경험을 나름대로 소화했다는 거예요. 잃는 게 생기면 얻는 것도 있는 게 인생이잖아요. 그때 깨달은 게 있어요. 그라운드 위의 시간은 매 순간 소중하다는 사실이죠. 국내에서 열린 월드컵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건 아쉽지만, K리그에서만큼은 최고의 골키퍼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많은 선수들이 좌절이나 실패를 경험하면 문제 원인을 외부로 돌립니다. 감독과 안맞는다거나 환경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식이죠. 그런데 저는 문제점을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칼스버그컵은 내 실수인 게 맞고, 감독과의 대립은 불필요한 것이었죠. 자존감이 무너지는 경험이었지만, 이후에는 그 어느 감독님과도 불협화음이 없었습니다. 지도자들과의 관계, 고참으로서의 역할, 경기력 유지 등에 대해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때의 좌절감이 골키퍼 기록, K리그 역사를 만든 셈이네요. 당시엔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나고 보면 인생의 궤적에서 의미없는 시간은 없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 소나기가 쏟아질 땐 그냥 맞는 것도 괜찮다

살다 보면 통제불가의 영역에 들어설 때도 있습니다.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일 때입니다. 축구선수에게는 부상이 그런 상황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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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부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최선입니다. 하지만 부상이 발생했다면, 가능한 빨리 긍정의 기운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상 사실이나 환경은 어찌할 수 없지만 마음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재활에 임하는 게 중요합니다. 선수라면 누구나 부상에 대한 공포와 재활의 어려움을 알고있습니다. 

재활에 관해 흔한 착각 중 하나가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인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또 경험담을 꺼내봅니다. 2008년 저는 허리디스크 수술로 심각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주치의가 척추에서 척출한 디스크 조각들을 보여주면서 ‘선수 생활은 포기하라’고 하더군요. 의학적으로는 그 진단이 맞았어요. 그런데 사람의 의지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의학적,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을 만들거든요. 당시 수술 후 병상에서 2주 동안 꿈쩍도 안했어요. 보통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고 3, 4일이면 조금씩 움직이라고 합니다. 주위 근육이 붙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예요.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근육보다 상처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운동선수니까 근육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어요. 하지만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거나 덧나면 나중에 더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본 거지요. 움직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지만 결국 참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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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TV에서 암이나 불치병을 극복한 분들의 사연이 나옵니다.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지금 생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래요. 인내로 극복해 내긴 했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늘 은퇴를 염두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때 나이가 서른여덟이었는데, 그로부터 7-8년을 더 뛰었으니 덤 치고는 꽤 오래 연장한 셈이지요.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갑자기 내 인생에 비가 쏟아지는 것 같은 날도 있어요. 비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고인물이 바짓단에 튈 수도 있고, 어깨가 젖을 수도 있습니다. 피하느라 애쓴 게 무색해지는 상황이죠. 쏟아지는 비를 그냥 맞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상황을 바꾸지 못할 땐 마음만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꿔봅시다. 비는 언젠가 그치기 마련이니까요. 

#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은퇴를 염두에 두고 살았던 저는 사실 특수한 경우겠지요. 많은 선수들이 불시에 은퇴라는 현실에 직면합니다. 스스로 축구화를 벗는 시간을 택할 수 있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여러 변수와 환경에 밀리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놓일 때, 거기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타의로 축구를 그만두게 됐다면 더더욱이요. 자신의 인생을 타인이 갉아먹게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를 보세요. 고등학교(알로이시오고) 생활, 직장 생활 모두 정상적으로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해야 했고, 직장 생활을 위해서는 자격증을 따야 했어요. 그래도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속한 환경은 타의에 가까웠지만, 거기서 최선을 다한 건 자의에 따른 선택이었죠.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든 시간들이었습니다. 당장은 하찮게 보이는 일이 의외로 직업적 성향에 맞는 천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할 확률이 높은 법입니다. 속된 말로 ‘얻어걸린다’고도 하잖아요. 호떡집으로 ‘대박’ 난 분들의 성공담을 들어보세요. 같은 맥락입니다. 축구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고,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을 다른 일에도 적용해 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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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 얘기는 이쯤에서 줄일까 합니다. 다 싣지 못한 사연들이 있지만, 26년 장수 노하우의 핵심은 모두 전한 것 같으니 아쉬운대로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못다한 이야기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풀 기회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라운드에서 함께 해준 동료들과 선후배 선수님들, 변함없는 사랑과 애정으로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구술=김병지, 정리=배진경, 사진=이연수, FAphotos


# 해설가? 비즈니스맨? 김병지의 새 인생은…

<포포투> 9월호가 나올 즈음이면 김병지도 돌아온다. 선수가 아닌 SPOTV 해설가로서다. 8월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개막하는 유럽리그 중계석에 앉는다. EPL과 라리가 주요 경기 해설을 두루 맡기로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골키퍼 출신이라는 이력이 해설가로서는 어떤 차별성을 갖게 될까? “축구는 골 상황에서 가장 많은 일과 관계성이 생깁니다. 지금까지는 슈팅하는 선수 중심의 해설이 주를 이뤘지만 저는 골키퍼와 수비수의 판단과 움직임에서 포인트를 찾겠죠. 새로운 시야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또 하나, 그의 이름을 딴 스포츠문화진흥원으로 사단법인 등록도 진행하고 있다. 축구 뿐만 아니라 체육, 문화 전반에 걸친 활동을 계획 중이다. 재활센터 오픈과 축구아카데미 설립도 그 일환이다. 수원에 세울 재활센터는 이미 공사에 들어갔다. “멀티 플레이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해설이든 사회 활동이든 다 잘하고하고 싶은 마음이고요.” 지도자 생활에는 뜻이 없을까. 골키퍼 출신 감독이 되는 일도 매력적일 텐데? “감독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전에 공부도 더하고 뭔가 좀 만들어야겠죠.”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에 오프라 윈프리처럼 이름만으로도 많은 컨텐츠를 파생하는 인물, 김병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김병지라면, 충분히 가능한 그림이다. 

김병지 올스타전, 울산 OB vs 포항 OB는 어때?

김병지는 지난 18일 울산과 포항의 153번째 동해안더비를 통해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내친김에 그에게 현역 시절 함께 뛰었던 양팀 OB멤버들을 모아 올스타전을 상상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반전은 울산에서, 후반전은 포항에서 뛴다는 단서만 달았다. 청산유수 언변을 자랑하던 김병지였지만, 선후배들의 이름을 선택하는 데는 고민이 많았다. 그가 써낸 라인업은 아래와 같다.

[울산]
-------------------김현석 ---------------------------
정종수---------------------송주석--------------김병지
------------------유상철------윤덕여-----------------
신홍기---------최영일--------박정배----------최강희
--------------------최인영(GK)-----------------------
감독: 김호

“이팀의 컬러는 상대 왼쪽에 설 하석주의 플레이를 죽이는(?) 거다. 내가 오른쪽에서 뛸 거니까! 윤덕여 선배를 미드필더로 올린 건 죄송하지만 충분히 이해해주실 거다.”

[포항]
-------------------최순호-------------------------
--------------------------황선홍--------------------
---박태하--------------------------------------고정운----
하석주----------------이민성-------------------박경훈
----------김성근--------홍명보--------산토스--------
--------------------김병지(GK)-----------------------
감독: 이회택

“이 팀은 뭐, 감독 직함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거다. 쓰고 보니 그냥 국가대표급 라인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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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by 배진경

녹색 온도, 녹색 아닌 풍경 @joy2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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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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