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유현의 축구 인생은 4막 중 2막일 뿐이다

기사작성 : 2016-10-28 07:20

태그 FC서울  골키퍼  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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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정재은]

개천에서 용났다.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이들을 지칭한다. 축구로 범위를 좁히면 실업 무대를 거쳐 프로에 입단한 선수를 뜻한다. 실업축구연맹 자료에 따르면 이런 케이스는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K리그 클래식에 그 열손가락에 꼽히는 선수가 있다. FC서울의 수문장, 유현이다.

유현의 축구인생 10년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성장물’과 ‘성공기’ 사이 그 어디쯤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실업팀에서 시민구단, 그리고 K리그 최고의 팀으로 오기까지 그의 인고와 노력은 시청자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굴곡이 있어 더 빛나는, 유현의 축구 인생 제2막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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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프로로 뛰기 전 울산현대미포조선(2007~2008)에 몸담았다,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마했던 건가. 
A. 드래프트 신청서를 아예 안 냈다. 바로 미포조선으로 갔다. 당시 최순호 감독님이 우리 부모님을 만나 “미포조선은 1년 후 프로로 바뀐다”고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역시 “같이 1년 있다가 프로로 가자”고 하셨다. 드래프트 신청 마지막 날까지 고민하다 미포조선을 택했다. 

Q. 최순호 감독의 말이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다. 본인 의지는 어땠나?
A. 사실 당시 집안이 좀 힘들었다. 내가 책임져야 한다, 내가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했다. 드래프트에 뽑힌다는 보장도 없으니 안정적이게 실업팀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1년 고생하다 프로가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Q. 신인 드래프트를 준비하다 실업팀으로 갔다. 이상향이 높았다는 건데, 실업팀에서 출발해 조금은 실망스럽지 않았나?
A. 진짜 절망이었다. 게다가 1년 후 미포조선은 프로팀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소주드시고 계시더라. “선택이 잘못됐다”고 말씀하시면서. 나 또한 실망이 컸다. ‘내가 축구를 꼭 해야 하나?’ 생각까지 들었다.

Q. 힘든 와중에도 2008년 미포조선에서 MVP를 수상했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약이 된 셈이다.
A. 내 실력에 자신감은 있었다. 친구들이 다 프로에서 뛰는데, 적어도 그들에겐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업팀이라 자존심이 상했을 뿐이다. 당시 유진해 코치님이 나를 잘 챙겨줬다. 그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기에 만족하면 절대 못 벗어난다. 너 스스로를 프로 선수라고 생각하고 관리해라”라고. 그분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도 고민 있으면 자주 통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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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은사를 만난 것 같다. 무너지지 않은 덕분에 강원 입단 기회까지 잡았다.
A. 나에게 도움 준 분들이 많다. 최순호 감독님은 나를 강원FC로 데려가셨다. 꾸준히 출전하며 부족한 점을 많이 보완할 수 있었다. 이번에 복귀하셨더라. (웃음)

Q. 미포조선에서 목표는 프로였다. 강원에 입단하며 또 다른 목표를 세웠을 텐데.
A. 당시 강원에 정산, 김근배 등 좋은 골키퍼가 많았다. 일단 게임에 출전하는 게 목표였다. 국가대표 생각도 했고. 후회없이 운동하면서 노력했다. 그때 서동명 코치를 만났는데 지금도 가끔 조언해주신다. (442: 주변인의 지지가 정말 중요하다) 맞다. 내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주위의 힘도 필요하다. 은사님들 잘 만나서 조언을 많이 구했다.

Q. K리그와 내셔널리그, 어떤 차이점을 느꼈나?
A. 사실 미포에서 진 적이 거의 없다. 근데 (K리그에서) 용병 차이가 너무 났다. 강원에서 확실히 느꼈다. 늘 내 예상을 빗나간 타이밍에 슈팅을 때렸다. 내가 두 가지 생각하면 그들은 세 가지를 생각한다. 경기 한번 뛰고 나면 머리가 빠졌다. 골을 너무 많이 먹으니까. 남한테 지기는 싫어하지, 골은 자꾸 먹지. 스트레스 엄청 받았다. 게다가 강원이 워낙 약한팀이었으니 부담도 컸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런 시간 보내면서 많이 발전도 했고. (442: 힘든 순간을 강점으로 승화해낸 것 같다) 그렇다. 악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Q. 부담감을 이겨내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게 있나? 
A. 일부러 운동을 많이 한 편이다. 선수마다 운동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그냥 쉬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운동을 더 하는 선수도 있다. 나는 후자였다. 운동을 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보니 자신감이 생기더라. 이런 게 습관이 되었다. 정말 누구보다도 지독하게 운동했다.

Q. 강원에서 뛰었을 당시 가장 기억 남는 경기가 있다면?
A. FC서울과 했던 경기다. 그때 강원이 1-2로 졌다. 경기 기록지 보니까 유효슈팅이 26번 날라왔더라. 몰리나, (최)태욱이, (정)조국이 다 있을 때다. 전반전 끝나고 내 유니폼을 봤는데 옷이 너덜너덜하더라. 근데 상대팀 선수는 옷이 너무 깨끗했다. 그날은 킥을 너무 많이 해서 다리에 쥐가 났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골키퍼가 쥐난다는 건 진짜 힘든거다.(웃음) 너무 밀려서 힘들었던 경기로 기억에 남아있다. 

Q. 그 강원이 지금 승격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클래식에서 만나면 반갑겠다.
A. 잘됐으면 좋겠다. 내가 뛰었던 팀들은 정말 다 잘됐으면 좋겠다. 그 팀들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거니까. 인천유나이티드도 마찬가지다. 강등 안 당했으면 좋겠다. 항상 애들한테 연락한다. /'/야, 버텨야 된다. 버텨야 된다/'/ 하면서. 요즘 좀 잘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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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 K리그 최고의 구단에 있다. 쟁쟁한 선수가 가득하다. 적응은 금방 했나?
A. 처음에 왔을 땐 내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유현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켜야 된다는 압박감, 의욕이 넘쳤다. 근데 내가 인천에서 했던 플레이를 하려니까 안 맞더라. 실수가 나오고 수비수들과 위치 선정도 잘 안 맞고. 또 좋은 선수가 많으니 교체로도 많이 뛰었는데 그게 적응이 안 됐다. 인천에서 대장 노릇하다가 왔으니. (웃음) 이제는 많이 내려놨다.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자고 결심했다. 그제야 다시 안정감을 찾았다. 

Q. 이제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힘든 시절을 담담하게 풀어놓는 걸 보면.
A. 이젠 적은 나이가 아니니까. (웃음) 그래도 축구 인생 4막 중에 이제서야 2막 왔다고 생각한다. 

Q. ‘절망’적이었던 실업팀에서 시작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A. 대견하다. 워낙 힘들게 운동을 했다.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늘 금전적인 걸 고려했다.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데, 금전적인 면에 흔들려서 더 좋은 선택을 못 했다. 그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냥, 대견하다 내가. 서른 넘어서 이런 팀으로 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한다. ‘어이구, 촌놈이 여기까지 왔네.’  

사진=FAphotos

*<포포투> 11월호에서 유현을 비롯한 더 많은 선수들의 인터뷰, 그리고 특집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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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은

축구를 좋아합니다. 축구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더 좋습니다. @jaeun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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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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