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duos] 축구계 환상의 짝꿍- 국내편

기사작성 : 2017-03-06 20:14

-국내 축구계 최고의 단짝은?
-김호 김정남부터 손흥민 김신욱까지
-22년 관포지교! 이근호와 백종환

본문


[포포투=배진경]
우주 최고의 선수라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 월드 No.1 <포포투>가 역대 가장 성공적이고 인상적인 단짝을 찾았다. 세계편에 이어 국내편 11쌍을 소개한다.

([442.duos] 축구계 환상의 짝꿍- 세계편 보기)



1970’s


신현호-유동춘: 환상의 짝꿍

‘콤비’라는 키워드로 자료를 찾아보면 1970년대 초반 등장 빈도가 높은 이름들이다. 완성형으로 이름을 떨친 것보다 유망주 시절부터 반짝였던 활약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한양공고-한양대, 청소년대표 시절을 공유했던 단짝으로, 오늘날 ‘쌍용’의 40년 전쯤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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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김정남: 수비 콤비 대명사

올드팬들은 지금도 한국 수비 콤비의 대명사로 이들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한국이 아시아 맹주로 지위를 다지던 시절, 수비라인은 극강의 견고함을 자랑했다. 그 중심에 있던 콤비가 김호와 김정남이다. 열정과 냉정의 표본이었다. 김호는 터프한 수비수였다. 현대 수비수와 비교해도 모자람없는 체구, 상대 골게터를 확실하게 제압하는 수비력으로 실점을 최소화했다. 김정남은 이지적인 플레이가 빛났다. 스위퍼로 사실상 수비라인을 초월하는 리더십을 보였다. 냉정하고 침착한 수비력으로 김호와 합을 맞췄다. 현역 은퇴 후 서로를 이렇게 회고했다. “호흡이 잘 맞았다. 우리에게는 다른 언어가 필요없었다.” (김정남) “숨소리만 들어도 서로를 느끼는 축구를 했다. 축구의 맛을 느끼면서 공을 찼다.” (김호)


김진국-김재한: 거꾸리와 장다리

1970년대 대표팀의 최단신-최장신 공격 콤비. 김진국(165cm)이 크로스를 올리면 김재한(191cm)이 헤딩슛으로 응답했다. 김재한은 한국 축구 최초의 장신 스트라이커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장신을 활용한 파괴력으로 아시아를 압도했다. 김재한의 ‘머리’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조력자의 존재감 역시 함께 빛났음은 물론이다. 바로 레프트윙 김진국이다. 김재한이 A매치에서 기록한 38골 중 30%가 김진국의 직접적인 도움으로 완성됐을 정도. 김진국은 축구협회 인터뷰에서 둘의 콤비 플레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키가 워낙 컸다. 높이가 다른 선수들과 차이가 있으니 그에 맞춰 센터링을 해줘야 했다. 공이 포물선을 그려 재한이 형이 낙하 지점을 잘 잡고 헤딩하도록 ‘김재한용 크로스’를 따로 연습했다.”


조영증-박성화: 힘과 기술 겸비한 수비 듀오

1970년대 수비를 양분하면, 전반기는 김호-김정남 시대이고 후반기는 조영증-박성화 시대다. 조영증과 박성화는 1976년부터 5년 동안 대표팀에서 각각 스위퍼-스토퍼로 호흡을 맞췄다. 김호-김정남과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평가. 둘은 공통점이 많았다. 신장은 178cm로 똑같았고, 성격도 말수가 적고 차분한 편이었다. 힘과 기술을 겸비해 80년대 초중반 프로무대에서는 링커(미드필더)로도 뛰었다. 심지어 별명도 어딘가 비슷했다. 박성화는 ‘쌀장사’, 조영증은 ‘히프’였다. 육중한 체구로 유럽 공격수들과 붙어도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평가다. “영증이 형은 빠른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단히 영리한 수비수였다. 태클도 좋았고 특히 힘이 좋았다. 함께 중앙수비를 보면 참 편했다.” (박성화)


김강남-김성남: ‘이심전심’ 쌍둥이

한 시절을 풍미했던 축구 가문의 쌍둥이 미드필더. 축구에서의 활약상 만큼 이색적인 ‘핏줄’로도 화제를 모았다. 김정남의 12살 아래 동생인 이들은 30분 차이를 두고 태어났다. 경신중 2학년 때 함께 축구를 시작해 경신고-고려대를 졸업하고 홍콩 세미프로-유공-대우를 거치는 동안 줄곧 같은 팀에서 활약했다. 1976년부터 4년간 대표팀 링커로도 짝을 맞췄다. 탯줄부터 이어진 호흡에 대해 설명하는 건 무의미한 일일지도. 당시 이들을 두고 ‘이심전심 링커’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다섯 형제 모두 축구선수였다. 맏형 정남과 셋째인 강남-성남 형제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둘째 복남은 중앙고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막내 형남은 프로팀 포철(포항) 입단으로 프로 무대까지 노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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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s


변병주-박경훈: 총알 탄 사나이들

잉글랜드에 ‘네빌과 베컴’이 있다면 한국에는 박경훈과 변병주가 있었다. 나란히 오른쪽에 자리해 공격과 수비를 책임졌다. 스피드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선수들이었다. 변병주는 주력과 돌파력을 앞세워 상대 진영을 흔들었다. 박경훈은 ‘오버래핑의 절대자’라는 별명답게 측면을 지배했다. 변병주와 박경훈의 인연은 청구고에서 시작됐다.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전국 규모 대회 3관왕 주역으로 활약했다. 대표팀에서는 1986월드컵과 서울아시안게임,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 등 주요 대회 단짝이었다. 1986년 서울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1990년 베이징에서는 동메달을 합작했다.


1990’s


황선홍-홍명보: 전설의 H-H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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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수와 수비수로 포지션상 거리는 멀었다. 하지만 함께했던 시절 대표팀은 ‘아시아 무적’이라 할 만한 위용을 자랑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화를 추구하던 시기의 시그니처 같은 조합이다. 나란히 대학 시절 대표팀에 선발돼 한국 축구가 단계별로 진일보하던 시절을 함께 거쳤다. 2002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완성했다. 그해 대표팀에서 함께 은퇴했다. 대표팀 발탁 당시 막내들이었던 탓에 ‘밀려서’ 택한 등번호 18번과 20번은 이후 각각 공격수와 수비수를 대표하는 번호로 재정립됐다. 둘의 이니셜을 딴 ‘H-H라인’은 탈(脫) 아시아 시대를 상징했던 타이틀이다.


2000’s


박지성-이영표: 신화의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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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팬들의 염원이자 숙원을 이뤄준 콤비. 2002월드컵에서 나란히 스타덤에 올라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나란히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PSV에인트호벤에서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합작하고 ‘축구 본류’ 잉글랜드에 차례로 안착했다. 박지성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황금기를 함께했다. 이영표는 토트넘홋스퍼-도르트문트 등 빅리그를 거치며 인정받았다. 유럽에서의 경험과 경쟁력을 녹여낸 퍼포먼스로 한국 축구의 발전을 함께 이뤄냈다. 2006월드컵에서 원정 사상 첫 승을 일궜고, 2010월드컵에서 원정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주장이었던 박지성과 베테랑 이영표의 리더십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 중심축이었다.


2010’s


기성용-이청용: ‘쌍용’이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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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에서 ‘영혼의 단짝’이라 할 만한 페어를 단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단연 ‘쌍용’이다. FC서울 유스팀에서 17살에 불과한 어린 나이에 나란히 프로무대에 데뷔해 팀의 주축이 됐다. 차례로 유럽으로 진출해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경쟁력을 확보했다. 2010년대 대표팀의 중심이 이들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아직 20대 후반(기성용 28, 이청용 29)이지만 경험치로는 역대 선배들에 손색없다. 이미 두 차례의 월드컵을 경험했다. A매치 기록만 따져도 기성용은 88경기, 이청용은 75경기에 출전했다.


손흥민-김신욱: 옥신각신 ‘톰과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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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신각신하는 캐릭터로 더 유명한 콤비. 2011아시안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첫 선발돼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백업멤버’로 가까워졌다. 이제는 어엿한 대표팀의 기둥이다. 네 살의 나이차에도 막역하다. 장신의 김신욱(196cm)이 형이고, 상대적으로 작은 손흥민(183cm)이 동생이다. 하지만 둘 사이 역학은 주로 손흥민이 도발하고 김신욱이 당하는 식으로 움직인다. 귀엽고 순진하게 생긴 손흥민이 ‘진격의 거인’ 김신욱을 골탕먹이며 아웅다웅하는 모양새. 만화영화 ‘톰과 제리’를 연상케 한다 해서 별명도 그대로다. 이들의 꿈은 “월드컵에서 함께 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근호-백종환: 22년 ‘관포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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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서 우정을 논할 때 첫손에 꼽히는 듀오. 여기에 김승용과 하대성까지 ‘부평고 4인방’으로 유명하다. 이근호와 백종환은 인천만수북초등학교부터 부평중, 부평고를 거쳐 프로 무대까지 이어진 22년 절친이다. 고교 졸업 후 진로는 달랐지만 2013년 상무에 ‘동반입대’할 정도로 끈끈한 우정을 자랑한다. “은퇴 전 한 팀에서 뛰고 싶다”던 둘의 오랜 꿈은 2017년 강원에서의 재회로 이뤄졌다. 둘의 호흡에 관해 이근호는 이렇게 말했다. “종환이는 컨트롤 타워고, 나는 종환이 조종 받고 뛰는 사람이다.” 아닌 게 아니라 주장(백종환)과 부주장(이근호)이 됐다. 백종환의 부담을 이근호가 나눠 지기로 했다.

함께여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상무 시절이다. 2013년 챌린지 첫 시즌, 개막전에서 광주를 상대로 첫 골을 합작했다. 백종환의 크로스를 이근호가 발리슛으로 마무리했다. “눈빛 한 번으로 만든 골이었다. 역사적인 챌린지 1호골에 우리 이름이 나란히 올라간 것으로 충분하다.”(이근호) “강원에서 한 번 더 근호랑 첫 골-첫 어시스트를 만들고 싶다”던 백종환의 바람은 무산(?)됐지만, 함께 기대하는 해피엔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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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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