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챔스 타이틀을 방어했던 8개 클럽

기사작성 : 2017-06-02 19:41

- 유러피언컵과 챔피언스리그에서 연패를 달성한 위대한 팀들
-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 시대 첫 역사에 도전한다

본문


[포포투=Greg Lea]

레알 마드리드는 타이틀 방어에 성공할까? 올 시즌 UEFA챔피언스리그의 최대 관심사다. 1992년 대회명을 바꾼 이래 지금까지 대회를 연패한 클럽은 없었다. 레알은 전인미답에 도전한다.

대회 원년인 1955년부터 따지면 다행히 선례가 있다. 유러피언컵(공식명칭은 ‘유러피언 챔피언 클럽스 컵’) 시절(1955년~1992년) 총 8개 클럽이 타이틀을 방어해냈다. <포포투>가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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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알 마드리드 (1956, 1957, 1958, 1959, 1960)

올 시즌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통산 12번째 우승을 노린다. 원년 대회였던 1955-56시즌부터 레알은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다섯 번째 결승전이 너무나 유명하다. 1960년 5월 18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햄든파크에서 레알은 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7-3으로 제압했다. 관중석에는 10대 유망주 알렉스 퍼거슨이 있었다.

레알이 강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시 스타파워였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스페인)와 페렌체 푸스카스(헝가리)는 당대 최고 스타플레이어였다. 프란시스코 헨토(스페인)와 레몽 코파(프랑스), 헥토르 리알(스페인)의 화려한 경기력까지 보태져 넘어서기 힘든 대기록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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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벤피카 (1961, 1962)

레알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주인공은 포르투갈의 벤피카였다. 헝가리 출신 지도자 벨라 구트만이 이끄는 벤피카는 1961년과 1962년에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1961년 레알은 1차 라운드에서 바르셀로나에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결승전에서 벤피카는 바르셀로나를 3-2로 꺾어 우승을 차지했다.

1년 뒤, 벤피카는 다시 결승전에 올랐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결승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였다. 포르투갈 출신의 에우제비우, 마리오 콜루나, 호세 아구아스가 팀의 주축을 이룬 벤피카는 5-3으로 승리해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레알의 세 골은 모두 푸스카스의 몫이었다. 이날 경기는 유러피언컵 역사상 가장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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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테르나치오날레 (1964, 1965)

1963년 결승전에서 벤피카는 밀란의 조세 알타피니의 두 골에 패해 대회 3연패에 실패했다. 1년 뒤 밀란의 연고지 라이벌인 인테르나치오날레가 타이틀을 빼앗았고, 다음 해 방어에도 성공했다. 당시 인테르의 전술인 카테나치오는 지금까지 수비 중심 전술로 악명이 높지만, 엘레니오 에레라의 선수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들의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수비만 한 것은 아니었다. 1964년 결승전에서 인테르는 레알을 3-1로 제압했다. 레알의 최대 장점이었던 개인 기량도 인테르의 수비 전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단단히 지켰고, 역습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965년 준결승전에서 인테르는 리버풀에 역전승을 거뒀고, 결승전(밀란 산시로)에서 벤피카를 1-0으로 꺾어 2연패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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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약스 (1971, 1972, 1973)

“축구는 머리로 하고 다리는 도울 뿐이다.” 요한 크루이프의 어록 중 하나이다. 70년대 초 아약스는 지능적 축구로 전 세계 축구 팬들을 매료했다. 아약스의 ‘토탈풋볼’은 숏패스와 압박, 수비진의 전진 배치 그리고 쉼 없는 포지션체인지로 구성되었다.

1971년 결승전(잉글랜드 런던)에서 아약스는 그리스의 파나시나이코스를 2-0으로 제압하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72년과 1973년에는 세리에A의 거함 인테르와 유벤투스를 차례로 제치고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아약스의 전성시대는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 이적으로 막을 내렸다. 1973-74시즌 아약스는 2차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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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이에른 뮌헨 (1974, 1975, 1976)

아약스의 우승 해트트릭은 바이에른이 이어받았다. 1974년 결승전에서 바이에른은 아틀레티코를 1-1 무승부 후 재경기에서 4-0 승리를 거뒀다. 1975년 결승전에서는 리즈를 2-0으로, 1976년 결승전에서는 생테티엔을 1-0으로 각각 물리쳐 대회 3연패에 성공했다.

바이에른은 페널티박스 포식자 게르트 뮐러 외에도 셉 마이어의 철벽 방어,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올라운드플레이로 공수 양면에서 균형이 완벽하게 잡혀있었다. 3년 동안 유럽 내에서는 바이에른을 당해낼 적수가 없었지만, 1974-75시즌 분데스리가에서는 10위로 처지는 아이러니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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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리버풀 (1977, 1978)

1977년 결승전에서 리버풀은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를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리버풀 최고 스타는 케빈 키건이었는데, 우승 직후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로 이적했다. 밥 페이즐리 감독은 그의 대체자로 스코틀랜드 골잡이 케니 달글리시를 영입했다.

달글리시는 다음 결승전(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 리버풀을 유러피언컵 2연패에 성공한 최초의 잉글랜드 클럽으로 만들었다. 페이즐리 감독은 1981년에도 유러피언컵을 차지해 통산 3회 우승 명장으로 우뚝 섰다. 지금까지 3회 우승 감독은 페이즐리와 카를로 안첼로티 두 사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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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노팅엄 포레스트 (1979, 1980)

살아생전, 브라이언 클러프는 알렉스 퍼거슨에 관해서 “그 친구는 기사 작위도 받았고, 우승 트로피도 많고, 말(馬)도 많이 가졌지만, 내가 가진 두 개는 아직 갖지 못했지. 아, 불알 말고”라고 말했다.

2008년 모스크바에서 퍼거슨 감독은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클러프의 업적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클러프의 업적은 대회 2연패이기에 더 값지다고 평가해야 한다. 1979년 말뫼, 1980년 함부르크를 각각 1-0으로 제압하며 포레스트는 유럽 패권을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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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밀란 (1989, 1990)

유러피언컵 연패의 마지막 주인공인 밀란은 대회 역사상 ‘최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리고 사키 감독은 프랑코 바레시와 마르코 판 바스턴, 뤼트 훌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를 앞세웠고, 그 뒤에는 젊은 파올로 말디니가 있었다. 밀란이 펼치는 지역방어는 천하무적이었다. 4-4-2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했고, 유기적이고 촘촘한 압박이 최대 장점이었다.

최절정은 1988-89시즌이었다. 준결승 2차전(홈)에서 밀란은 레알 마드리드를 5-0으로 대파했다. 다음 시즌 밀란은 9경기 중에서 7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사진=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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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g Lea

Twitter @GregLeaFoot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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