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의 좌충우돌 어드벤처

기사작성 : 2017-08-03 20:23

-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강 공격 조합은 눈부시게 단명했다
- 불가리아 '짐승' 스토이치코프와 브라질 '난봉꾼' 호마리우
- 두 축구 천재가 활활 타 올랐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보자

본문


[포포투=Simon Talbot]

1994년 11월 2일이었다. 캄프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0-4로 완패했다. 외국인 출전 제한 규정으로 피터 슈마이켈이 나서지 못했다는 원망따위는 없었다. 불운이나 판정을 탓하는 선수도 없었다. 그 자리에는 오직 수용만 있었다. 강한 팀이 이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완패 인정’이다. 경기 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철저하게 박살이 났다. 겸손함을 일깨워줬다”라고 말했다.

완패의 충격은 폴 파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날 이후 파커는 지금까지 캄프누를 다시 찾지 않고 있다. 개리 팔리스터는 “경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우리가 상대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던 유일한 경험이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라고 회상한다. 스페인 미디어 <라반구아르디아>는 그 경기를 바르셀로나의 “연주회”라고 정의했다.

Responsive image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는 두 명이었다. 시즌 개막 전 미국에서 있었던 FIFA월드컵을 제패했던 호마리우, 그리고 환상적인 퍼포먼스로 불가리아를 4강으로 이끌었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였다. 맨유전 4-0 대승으로부터 한 달 뒤, 스토이치코프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는 바르셀로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격 파트너로 손꼽힌다.

맨유전에서 호마리우는 한 골을 터트렸고, 스토이치코프는 두 골을 넣어 바르셀로나 입단 후 개인 100골 고지에 올라섰다. 퍼거슨 감독은 “스토치코프와 호마리우의 스피드를 당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데,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라고 감탄했다. 영국 축구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레이시는 “팔리스터와 브루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배역에 오디션을 보러온 것 같았다. ‘오, 로미오, 지금 어디 있나요?’라면서 허공을 쳐다보는 식이었다”라고 썼다.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로보 카라스코는 “바르셀로나가 제대로 뛰는 경기에서 그들은 상대에게 모멸감을 선사했다. 오늘밤, 바르셀로나는 아테네에서 당했던 치욕을 제대로 갚아줬다”라고 말했다. 6개월 전, 아테네에서 바르셀로나는 AC밀란에 0-4로 완패해 유러피언컵을 놓쳤다. 역사적 공격 투톱을 갖춘 바르셀로나는 맨유를 제물로 최강의 부활을 알리며 세상 정복에 나섰다.

마지막 춤

아쉽게도 맨유전은 최강 공격 조합의 마지막 공연이 되고 말았다. 두 달 뒤, 호마리우가 떠났고, 6개월 뒤에는 스토이치코프마저 바르셀로나에서 떠나갔다. 안도니 수비사레타와 미카엘 라우드룹까지 그 뒤를 따랐으니 요한 크루이프 감독이 같은 운명을 맞이한 것이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다. 아, 물론, 트로피도 훨훨 날아갔다. 아테네의 결과는 교훈이 아니라 ‘드림팀' 해체의 시작이었다.

호마리우-스토이치코프의 최강 파트너십은 고작 1년반 정도밖에 지속하지 못했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시간은 1993-14시즌부터 1994-95시즌 초반까지로 대단히 짧았다. 그러나 이 시간은 정말 엄청난 일들이 많았다. 납치, 주먹다짐, 불화, 눈물, 언쟁, 자랑스러운 아버지와 더 자랑스러운 대부, 스캔들, 과부, 파파라치, 배신, 퇴장까지.

1993-94시즌 바르셀로나의 투톱은 50골을 넘게 넣었다. 호마리우는 리그 33경기에서 30골을 터트렸다. 해트트릭은 다섯 차례나 기록했다. 개중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 해트트릭은 두 골이 반칙으로 무효 처리된 와중에서 작성되었다. 호마리우의 바르셀로나 기록은 83경기 53골이었다.

Responsive image

‘짐승’ 스토이치코프가 팬심을 사로잡다

1995년 3월, 스페인 라디오에 출연한 스토이치코프는 “크루이프와 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선언했다. 불화가 극에 달해 곪아 터진 것이다. 방송을 들은 레알 마드리드의 골키퍼 파코 부요는 “크루이프 감독이 스토이치코프를 원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이면, 정신나간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당장 그를 데려올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겠다”라고 말했다. 레알의 당시 단장이었던 호르헤 발다노는 “스토이치코프는 사냥감의 고깃덩어리를 씹어야만 만족하는 야수”라고 표현했다.

크루이프 감독도 스토이치코프의 불같은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스토이치코프에 관해서라면 온종일 떠들 수 있을 만큼 이야깃거리가 많다. 우리는 그를 절실히 원했다. 스피드와 골 결정력, 개성이 충만했다. 게다가 선수단에 착한 선수들뿐이었다. 스토이치코프처럼 ‘성깔’을 가진 캐릭터도 필요했다”라고 회상한다.

스토이치코프는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데뷔전이었던 엘클라시코에서 그는 주심을 발로 밟아 퇴장당했다. 처음 내려졌던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는 사후 2개월로 줄었다. 그에게 발을 밟혔던 주심은 “경기장 바깥에서는 천사인데 안에서는 악마로 변한다”라고 회상한다.

다음에 받은 퇴장은 킥오프 6분만에 옐로우카드를 두 번 받으면서 나왔다. 어느 친선전에서는 주심이 크루이프 감독에게 다가가 “저 짐승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내가 도살장으로 보내버릴 거야”라고 경고했다. 크루이프 감독은 “내가 어떻게 말리겠어?”라고 대답했다. 카탈루냐의 한 기자는 “영화배우로 전업해도 될 것 같다. <매드맥스>에서 멜 깁슨 역을 하거나 <블레이드러너>에 나오는 해리슨 포드 같은 역할이 잘 어울린다”라고 쓰기도 했다.

팬들은 그런 스토이치코프를 사랑했다. 매 경기를 미친듯한 열정으로 대하는 스토이치코프의 모습은 레알 마드리드와 대적해야 하는 바르셀로나 팬들에게는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갔다. 한번은 바르셀로나 훈련을 구경하러 왔던 일곱살짜리 꼬마의 엉덩이를 걷어찬 일도 있었다. 아이가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이치코프는 “레알 마드리드와 맞붙는 모든 경기가 내게는 생사의 문제이다”라고 말해 팬들을 매료했다.

직설화법의 맞대결

호마리우의 매력포인트는 달랐다. 작은 키와 탄탄한 하체를 지닌 체구부터 독특했고, 전기가 흐르는 듯한 플레이스타일은 압권이었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그런 공격수를 본 적이 없었다. 아주 좁은 공간에서도 호마리우를 막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힐패스, 플릭(볼을 상대 머리 위로 넘기는 기술), 정교한 로빙슛 등으로 바르셀로나 팬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레알의 발다노 회장은 “만화에나 나오는 선수”라고 극찬했고, 카탈루냐 신문인 <스포르트>는 “마법사이자 문전 아티스트이자 거장”이라고 찬양했다.

바르셀로나를 지지했던 스페인 문호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은 호마리우를 이렇게 묘사했다. “호마리우의 발은 달리의 시계처럼 섬세하며 부드럽다. 그의 골 결정력은 골키퍼들의 마음 안에 증오를 심겠지만, 동시에 신앙심 같은 느낌을 준다. 호마리우에게 골을 먹을 때마다 골키퍼들이 그에게 달려가 사인을 해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시공간을 마음대로 구부린다.”

하지만 스토이치코프의 반응은 처음부터 냉담했다. 바르셀로나는 외국인 보유 상한선인 3명(스토이치코프, 쿠만, 라우드룹)을 보유한 상태에서 브라질인인 호마리우를 PSV에인트호번에서 영입했다. 스토이치코프는 “네 명째 외국인 영입은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구단의 결정을 비난했다. “만약 어떻게든 구단이 외국인을 한 명 더 사야 한다면, 나는 루보 페네프(불가리아)를 사야 한다고 말할 거다. 호마리우가 얼마라고? 6억 페세타? 내 사비 2억 페세타를 쓰더라도 나는 페네프를 영입할 거다.”

스토이치코프의 캐릭터를 그대로 보여주는 발언이다. 감정이 듬뿍 담긴 그의 직설화법은 호마리우와 직접 충돌을 피할 수가 없었다. 호마리우는 “사람들 면전에서 말하는 것,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것, 개성이 강한 것, 남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 논란을 일으킨다면, 맞다, 나는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만나기 전부터 둘이 한솥밥을 먹는 것은 재앙처럼 보였다. 크루이프 감독도 “둘이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스토이치코프와 호마리우는 똑같이 ‘팀이 나를 위해서 돌아가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둘의 에이전트였던 호셉 마리아 밍겔라는 “경기에서 누가 골을 많이 넣는지 항상 경쟁했다”라고 밝혔다.

Responsive image

선발에서 빠지는 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한 팀 동료는 “한번은 스토이치코프가 벤치에 앉았는데, 자기 그림자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처럼 보였다. 화가 난 흐리스토는 정말 위험했다”라고 회상한다. 밍겔라는 “흐리스토는 정말 독특했다”라고 말했고, “약간 멍청했다”라고 묘사한 동료도 있었다.

호마리우에 대한 스토이치코프의 기억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호마리우가 선발에서 밀렸던 경기가 있었는데, 정말 말도 못 걸겠더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규정상 둘이 항상 동시에 뛸 수가 없었다. 외국인 4명(심지어 엄청난 외국인들)을 보유한 크루이프 감독은 그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가 없는 규정에 적응해야 했다.

둘도 없는 친구가 되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토이치코프와 호마리우가 ‘절친’이 된 것이다. 한 팀 동료는 “호마리우는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혼자 자기 할 일만 자기 방식대로 할 뿐이었다”라고 말한다. 호마리우는 오직 스토이치코프에게만 말을 걸었다. 스토이치코프는 “진짜 웃긴 일 아닌가.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그 친구는 내성적이었고 나는 정반대였다. 그는 잠자기를 좋아했고, 나는 항상 에너지가 넘쳤다. 그 친구는 밤, 나는 낮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사이가 좋았고, 항상 붙어 다녔다.”

둘의 자녀들은 같은 학교를 다녔고, 아내(모니카와 마리아나)끼리도 친구가 되었다. 호마리우가 디에고 시메오네의 얼굴를 가격해 퇴장을 당하자 스토이치코프는 “마이크 타이슨 같았어!”라며 동료를 보호했다. 호마리우가 브라질 국가대표팀 소집차 리오데자네이루에 있는 동안, 그의 아내가 출산했다. 사진기자들이 병원에 몰려들었는데, 그곳에는 이미 동료의 가족을 보호하러 온 스토이치코프가 있었다. 접근 금지 경고를 무시한 한 사진기자에게 스토이치코프는 라이트훅을 날렸다. 리우에서 돌아온 호마리우를 공항에서 픽업한 사람도 스토이치코프였다.

호마리우의 부친이 납치당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스토이치코프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부친의 석방 소식이 전해지자 스토이치코프는 호마리우에게 안도의 키스를 보냈다. 호마리우 2세의 대부 역시 스토이치코프의 몫이었다. 둘의 우정은 그라운드 위에서 더욱 빛났다. 밍겔라는 “흐리스토는 호마리우와 함께 뛴 시간을 진심으로 즐겼다”라고 말한다. 둘이 합작한 골들이 그 증거였다. 라리가 우승 트로피와 엘클라시코 5-0 대승(호마리우의 해트트릭)도 마찬가지였다.

호마리우는 볼이 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엘클라시코 5-0 승리의 첫 골이 그랬다. 호마리우는 오른발 기술 하나로 수비수를 바보로 만들었다. 스토이치코프는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라고 칭찬했다. 그날 이후 바르셀로나는 리그에서 남은 승점 30점 중 28점을 쓸어담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스토이치코프는 “드림팀이 죽었다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라고 호언했다.

Responsive image

호마리우의 몰락

하지만 세간의 목소리는 틀리지 않았다. 구단에서, 다이나믹듀오에서 모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테네 결승전 패배는 그 부작용이었다. 외국인 출전 제한에 따른 로테이션 운영이 결국 문제였다. 스토이치코프는 UEFA챔피언스리그 4경기를 뛰지 못했고, 리그 30경기 중 15경기에서 교체되었다. 라우드룹은 아테네 결승전에서 제외되어야 했다.

스토이치코프는 “우리가 이기면 크루이프 감독 덕분이고, 패하면 선수들 탓이다”라고 불평을 숨기지 않았다. 수비사레타는 클럽에서 떠나야 했고, 라우드룹은 제 발로 떠났다. 스토이치코프는 호마리우의 사생활에 우려를 표했다. 자기 옆집으로 옮기라는 스토이치코프의 조언을 무시한 채 호마리우는 호텔 스위트룸에서 계속 지냈다. 이후 다른 호텔로 옮겼지만, 이전 사용했던 스위트룸을 빼지 않아 설화를 일으켰다. 애인을 위한 조처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부인끼리는 친분을 유지했지만, 스토이치코프와 호마리우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사후 스토이치코프는 “호마리우는 사생활이 복잡해서 자기 부인에게까지 상처를 줬다. 관심사가 딱 두 개밖에 없다. 축구와 여자다”라고 회상한다. 그런 평가에 대해서 호마리우는 “밤에 놀지 않으면 골을 넣지 못하니까”라고 자신을 변호했다. 호마리우는 점점 축구 자체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한 동료는 호마리우가 “연습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하거나 실제로 졸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밤늦게까지 파티를 즐긴 탓이다. 보다 못한 크루이프 감독이 그를 귀가시켰는데, 다음날에는 늦잠을 자는 바람에 팀미팅에 한 시간이나 지각했다.

시간이 지난 뒤에 크루이프 감독은 “규율 개념이 없다”라고 말했다. 어느날 성인잡지 <인터뷰>의 표지에 다른 여성과 어울리는 호마리우의 사진이 실렸다. 친절한 호텔 직원이 잡지를 문앞에 뒀고, 호마리우의 아내가 제일 먼저 발견했다. 레알의 발다노 회장은 “그라운드에서 선보이는 호마리우의 기술은 그의 몸에서 나온다. 경기장 바깥에서도 그런 것 같다. 자기 회장에게 거짓말을 하고는 금발 미녀 두 명과 함께 놀아났다더라”라고 말했다.

Responsive image

최강 투톱의 해체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바르셀로나의 두 공격수는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대회가 끝나고도 호마리우는 클럽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캄프누 라커룸 안에서 선수들은 스토이치코프에게 “너 정말 끝내주는 친구를 뒀다!”라며 놀렸다. 둘의 우정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스토이치코프는 간절한 마음으로 호마리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음성 메시지도 허사였다.

호마리우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스토이치코프의 가족은 브라질에서 있을 호마리우 2세의 세례식에 참석하기로 되어있었다. 비행기 편과 숙소 예약까지 마쳤다. 그러나 불가리아의 옐레이 옐레프 대통령이 월드컵 영웅들을 치하하기 위해 대표팀을 불렀다. 스토치이코프는 브라질로 가지 못했고, 호마리우는 이에 크게 실망했다.

2주가 지나서야 호마리우가 바르셀로나에 나타났다. 모든 게 변해있었다. 스토이치코프는 “훈련도 혼자 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호마리우의 친구를 놓고 우리는 언쟁을 벌였다. 나는 그런 자들에게서 호마리우를 떼내려고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우리 둘의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라고 회상한다.

1994-95시즌 도중 바르셀로나를 떠날 때까지 호마리우는 네 골밖에 넣지 못했다. 스토이치코프도 9골에 그친 끝에 바르셀로나는 리그 4위로 내려앉았다. 스토이치코프는 “월드컵이 끝나고 호마리우의 몸만 돌아왔을 뿐, 정신은 여태 리우에 있었다. 누군가 호마리우와 닮은 녀석이 온 거라고 농담했다. 경기력이 정말 최악이었다”라고 말한다. 바르셀로나 역사에 길이 남을 공격 조합은 아주 짧게 찬란하게 빛났다가 끝나고 말았다.

사진=Gettyimages
writer

by 편집팀

남들보다 442배 '열일'합니다 @fourfourtwokorea
트렌드
포포투 트렌드

[영상] 조지 웨아 아들, U17월드컵에서 해트트릭 달성

포포투 트렌드

[twitter] 첼시가 만들었던 크리스털팰리스전 프리뷰

Responsive image

2017년 10월호


[FEATURE] 2017-18 UEFA챔피언스리그 - 시즌프리뷰 & 역대 최고 명승부 25경기
[BIG SIGNING] 프리미어리그 빅사이닝 스타 - 라카제트, B.실바, 살라, 모라타, 클라센 etc
[HABIT TO WIN] 전북현대가 절대 1인자가 되기까지
[RUSSIAN.ROAD] 신태용호의 숨막혔던 러시아월드컵 본선행
[ONE-ON-ONE] 루이스 가르시아

[브로마이드(40X57cm)] 리오넬 메시, 폴 포그바, 백승호, 이승우
주식회사 볕
03175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7 한글회관 302호
구독문의 : 02-302-1442    카톡 : fourfourtwokr
대표이사 홍재민,임진성 사업자등록번호 : 758-88-00295 통신판매신고번호 : 제2017-서울종로-0716호
Copyright © BYUTT.COM All rights reserved.
포포투코리아 웹사이트 제작 디자인 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