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감독 남기일의 축구는 이제 시작이다

기사작성 : 2017-08-22 22:58

-4년 동안 광주를 이끌었던 남기일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약팀을 이끌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그를 만났다
-그가 자신을 51점짜리 감독이라고 말한 이유는?

본문


[포포투=정다워(광주)]

꿈 같았던 4년이었다. 2013년 8월 광주FC 감독대행에 올랐던 남기일 감독은 만 4년 만인 올해 8월 14일 자리에서 내려왔다. 우려와 불신 속에 취임했던 그는 팀이 강등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물러났다.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지도자에게 늘상 향하던 비판과 야유 대신 격려와 위로, 그리고 박수가 이어졌다. 그만큼 그가 팀을 잘 이끌었다는 의미다. 남 감독은 ’박수 칠 때’ 떠났다.

남 감독이 광주에 남긴 발자국은 크고 깊다. 2014년 팀을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에서 1부 리그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시켰다. 다음 행보도 대단했다. 승격팀 최초로 잔류에 성공했다. 그것도 2년 연속 강등을 피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광주는 연봉 순위에서 11위(2015년), 12위(2016년)로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하는 열악한 팀이다. 스쿼드의 한계가 가장 뚜렷한 팀이었던 광주는 지난 두 시즌 리그에서10위, 8위에 올랐다. 지난 시즌에는 정조국의 부활을 도왔다. 광주에서 득점왕과 시즌 MVP를 탄생시켰다.

성공적인 출발이었다. 남 감독은 1974년생으로 만 43세다. 30대에 감독이 된 그는 4년 동안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대우 받는 한국 축구계에서 상대적으로 ‘덜 유명했던’ 그는 당당하게 실력으로 인정 받으며 지도자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포포투>가 광주 사령탑에서 물러난 그의 지난 4년, 그리고 미래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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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T: 광주 감독에서 물러난지 딱 일주일 됐습니다. 4년 만의 휴식이네요. 일주일 동안 뭐 하셨어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푹 쉬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위로를 받았어요. 주변에서 우신 분들도 계시고 격려도 받았어요. 술도 한 잔 했고요. 고생 많이 했다는 이야기, 앞으로 잘 될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와이프, 애들도 슬퍼하기는 하는데 아빠의 결정을 이해해주고 있어요. 와이프의 경우 그동안 저보다 힘들었을 거예요. 이제 저도, 와이프도 마음이 조금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FFT: 일상이 완벽하게 달라지는 거잖아요. 감독은 개인의 삶과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구별이 안 되는 일 아닌가요? 쉴 때도 축구 생각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만두신 지금은 완벽한 자유를 얻은 느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엄청 자유롭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대신 축구 꿈을 안 꿔요. 원래 꿈을 굉장히 많이 꿨어요. 악몽도 많이 꾸고, 상대팀, 우리 선수에 대한 꿈을 많이 꿨죠. 축구, 광주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게 꿈으로 이어진 거겠죠. 일주일 동안 가족들 꿈을 주로 꿨어요. 그렇다고 마음이 막 편하지는 않아요. 아직 마음의 정리가 다 된 것 같지는 않아요. 저와 함께 나온 코치들도 제가 책임져야 할 것 같고요. 그만뒀다고 하루 아침에 편해지거나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네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광주 생각이 나요. ‘오늘은 뭐 해야 하지’ 속으로 생각하고 ‘아, 그만뒀구나’ 하는 거죠.”

FFT: 한편으로는 공허함도 느껴질 것 같아요. 삶의 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축구가 전부인 삶을 사셨을 테니까요. 고용 불안(?) 문제도 있을 거고요.
“공허함이라기보다는 후회 같은 게 좀 있어요.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뭐 이런 거죠. 하지만 해서 뭐 하겠어요. 어차피 이렇게 됐으니까요. (웃음) 그만둘 때에도 가족들과 상의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고요. 감독은 퇴직금이 없어요, 하하. 그래도 광주 구단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셨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FFT: 광주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올해의 광주는 지난 2년과 뭐가 달랐나요? 늘 강등 후보로 지목됐지만 살아남았던 광주인데 올해엔 너무 부진했으니까요.
“베테랑 선수가 없었다는 게 가장 아쉽죠. 특히 수비 라인에 경험 있는 선수가 너무 부족했어요. 작년에는 이종민이나 이으뜸 같은 선수들이 수비에서 중심을 잡아줬어요. 올해엔 수비수들이 다 너무 어렸어요. 시즌은 길잖아요. 어린 선수들이 한 두 경기는 잘할 수 있는데 한 시즌 내내 잘하려면 경험이 필요해요. 그 점이 가장 아쉬워요. 센터백 쪽에 부상자들도 계속 나왔고요. 제 부족함도 많았어요. 이기고 있을 때 승리를 지키거나 비기고 있을 때 승점 1점을 얻는 경기를 하지 못했어요. 전적으로 감독인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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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T: 감독 데뷔 후 줄곧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을 유지하셨어요. 그만두신 이후 ‘결과를 위해 타협할 걸 그랬다’라고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여전히 그 철학은 꺾을 생각이 없으신가요?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실제로 잠그고 결과를 얻기 위해 경기를 수비적으로 운영한 적도 있죠. 하지만 우리가 잠근다고 실점을 100% 방지할 수 있는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그럴거면 차라리 좋은 경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우리만의 색을 갖고 광주만의 축구를 해서 살아남아 보자는 생각이었죠. 실제로 우리는 그런 식으로 지난 두 시즌 동안 클래식에 살아남았잖아요. 하지만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팀이 강등 위기에 놓였고, 그건 결국 제 부족함 때문인 거에요.”

FFT: 올해에도 경기력이 대단히 나쁘지는 않았잖아요. 결국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었나 싶어요.
“두 시즌 동안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다 했어요. 1년 차에는 2부에서 1부로 올라온 선수들이 의욕이 넘쳤어요. 하나의 팀으로 싸웠고요 늘. 작년에는 정조국, 김민혁 두 선수가 너무 잘해줬어요. 상상 이상의 활약을 했죠. 앞에서 골 넣고 뒤에서 지켜주니까 정말 잘했죠. 하지만 올 시즌 많이 빠져나갔어요. 정조국, 여름, 이찬동 등이 팀을 떠났죠. 조성준의 공백도 컸죠. 대학교 졸업하고 온 선수들이 많아요.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죠. 교체 카드로 변화를 주는 것도 어려웠어요. 선수들은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후반에 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무너지는 경기가 많았어요. 그게 앞의 두 시즌과의 차이였던 것 같아요.”

FFT: 오히려 광주라는 팀의 환경이 감독 남기일을 성장시킨 요소가 된 것 같기도 해요. 작년 인터뷰에서 “가난이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고요.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선수들에게 제가 많은 걸 주고 싶었고,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실전에서, 훈련에서 실제로 많은 걸 가르쳤고요. 그런데 감독을 하면서 느낀 건 내가 배우고 있다는 거였죠. 가르치려고 공부하고 연구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거예요. 광주는 무명, 전 팀에서 잘 안 돼서 온 선수들이 많다 보니 감독의 역할이 더 중요해요. 가라앉아 있는 선수들을 띄워야 하는 거니까요. 그러다 보니 저도 감독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난이 저를 더 좋은 감독으로 만든 건 확실합니다.”

FFT: 그래도 부임 당시 남기일 감독대행의 인지도, 입지, 평가와 지금의 그것들은 천지차이죠. 이제는 한국에서 인정받는 젊은 지도자 반열에 올랐으니까요. 생각했던 대로인가요?
“그땐 아무 것도 몰랐죠.(웃음) 코치 한 명도 없이 저랑 피지컬 코치 한 명, 둘이 했어요. 전 밤을 새 가면서 공부했어요. 팀을 만들기 위해서요. 지금은 많이 절 좋아해주세요. 무엇보다 광주의 색깔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어요. 화끈하고 공격적인 축구를 했다고 평가해주시잖아요. 축구 팬들도 그걸 인정해주시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칭찬할 수도 있고요. 승격도 했고, 두 번이나 잔류했죠. 정조국 선수가 득점왕에 MVP까지 하면서 광주를 알렸어요. 돌이켜보니 좋은 순간이 많았네요. 축구 감독 하길 잘한 건가요? (웃음)”

FFT: 사실 굳이 그만두지 않아도 쭉 갈 수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여론 분위기가 감독님을 압박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과감한 결단을 내린 이유가 뭔가요?
“올 시즌까지는 끝까지 하고 싶었어요. 잔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어느 순간에 더 이상 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가 골을 못 넣고, 실수를 해서 실점하고 힘들어 하는데 제가 도움을 주지 못했어요. 훈련이나 위로, 격려만으로 안 되는 게 있더라고요.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아 한계가 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클래식 3년차면 더 좋아져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환경도 나아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죠.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어요. 마침 구단에서도 저와 생각이 비슷했어요. 그래서 대화를 나눴고 공감대를 형성했죠. 자연스럽게 의견이 일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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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T: 광주에서 5시즌 동안 감독으로 157경기를 치렀습니다. 약체 팀을 이끌고 50승 46무 61패를 기록했어요. 나쁘지 않은 성적 같네요.
“생각보다 많은 경기를 했고, 많이 이겼네요. 못한다 못한다 했는데 괜찮은데요? (웃음) 올해에는 한 번도 못 이겼던 전북을 잡았어요. 서울을 이기기도 했고, 작년엔 인천 원정에서도 승리했어요.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는 했어요. 저보다는 선수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감독 시작하면서 팬들을 즐겁게 해주려면 선수들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즐겁게 뛰면 보는 사람들도 즐겁게 볼 수 있죠. 실제로 그렇게 축구를 해와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것 같아요. 코칭스태프들에게도 공을 돌리고 싶어요. 정말 열심히 노력했거든요. 서로 연구하고, 고민하고 치열하게 준비했어요. 제가 감독으로 챙긴 저 성적은 저와 코칭스태프, 선수들 모두의 공이에요.”

FFT: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무래도 승격하던 때인가요? 아니면 클래식에서의 잔류가 더 기뻤을까요?
“다 기억에 남죠. 승격과 잔류, MVP의 탄생 등 모든 순간이 소중해요.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승격이에요.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죠. 4위에서 시작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는 게 지금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축구 인생에서 정말 절대 잊지 못할 기억이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감독대행이 팀을 맡아 거기까지 간 게 대단하긴 하죠. 승격하는 날 정말 추웠어요. 골도 먹어서 힘든 상황이었는데 결국 우리가 승리를 지켰죠. 어제처럼 선명한 기억이에요. 긴장도 많이 했고, 전 날 잠을 아예 못 자기도 했고요. 팀뿐 아니라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은 계기예요.”

FFT: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셨어요. 최근 감독들 수명이 짧은데 오래 버티셨어요.
“축구도 재미있어야 하고, 성적도 내야 하는 게 감독의 숙명이에요. 성적에 따라 자리가 바뀌기도 하고요. 저는 그 와중에 감독을 이렇게 길게 할 수 있었어요.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선수들이 저를 만들어준 거죠. 늘 고마워요. 그래서 늘 뭔가 주고 싶었어요. 그만둔 지금은 많이 미안하고요. 운도 좋았어요. 아까 말한 대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저를 만들었어요.”

FFT: 최근 몇 년 사이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들이 득세해 감독님의 존재가 더 돋보였던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셨잖아요. 그래서 더 냉정하게 실력으로 평가받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선수로서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어요. 다른 분들에 비해 스타도 아니었고요. 지금 감독님들도 다 공부 열심히 하시고 능력도 좋아요. 그 분들이 이름값만으로 감독을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스타 출신의 경험을 선수들에게 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죠. 전 그런 감독이 아니어서 오히려 소외되거나 팀의 중심에 있지 않은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알아요. 팀에선 경기에 잘 못 나가는 선수들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제가 대단한 스타 출신이 아니었는데 이 자리까지 온 건 운도 좋았죠. 일단 감독대행 된 것 자체가 행운이었으니까요. 그 이후엔 내가 좋은 평가를 받아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팀을 열심히 이끌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죠. 어쨌든 실력으로 인정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FFT: 감독 남기일은 선수 남기일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선수 때도 열심히 했는데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더 과감하게 했으면 더 좋은 선수가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고요. 선수 시절에 100% 만족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광주 감독이 된 후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했어요. 가진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책도 많이 읽고 조언도 듣고,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요. 그래서 선수 남기일보다 감독 남기일이 아직까지는 만족스러워요. 언론의 관심도 훨씬 많이 받았죠. 과거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어려웠어요. 가는 팀마다 스타들도 많았고요. 지난 4년 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어요. 저와 광주가 피운 불꽃을 많은 분들이 인정해주셔서 4년 동안 행복했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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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T: 유학을 하고 싶다고 하셨죠? 프리시즌마다 유럽에 나가서 축구를 보시기도 했는데, 다녀오면 확실히 배우는 게 있나요?
“감독을 앞으로 계속 해야 한다면 공부는 멈출 수 없어요. 해외에서도 그렇고 국내에서도 경기를 많이 보면서 연구해야 하죠. 아직 배울 게 많아요. 선배들의 말씀도 많이 들어야 하고요. 팀을 맡고 있을 때도 그렇고 맡지 않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에요. 감독이 하나만 알면 안 돼요. 둘도 알고 셋도 알아야 하죠. 저와 다른 성향의 축구도 잘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죠. 감독은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든요. 곧 일본에 가서 윤정환 감독님을 만나기로 했어요. 세레소 오사카가 굉장히 잘하고 있잖아요. 뭐 때문인지 보러 가는 거예요. 저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하는 분인데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어요. 독일이든 브라질이든 유학도 생각 중이고요. 아예 팀에 들어가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싶어요.”

FFT: 구체적인 관심 분야는 뭔가요? 예를 들면 전술, 훈련, 선수 관리 등 분야가 다양하잖아요.
“지금까지는 선수들을 성장시키는 데 열을 올렸어요. 전략, 전술적으로 키웠죠. 팀이 좋아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 통했다고 보고요. 앞으로는 이기는 축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광주에서 주어진 환경에서 많이 이기기는 힘들었죠. 그 안에서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이제는 좀 더 이기는 축구를 신경쓰고 싶어요. 팀을 만드는 걸 경험했으니까 만들어서 이기는 축구까지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야죠.”

FFT: 겨울에 다른 팀들에서 영입 제안을 받으셨죠. 다음은 어떤 단계로 가야 할까요? U-23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아시죠?
“국내 팀, 중국 등 복수 구단의 관심을 받았어요. 그런데 아예 관심을 두지는 않았어요. 고맙기는 했죠. 이제 나도 좀 알려졌구나, 고맙다 뭐 이런 생각은 했죠. 중요한 건 저와 구단의 생각이 일치해야 한다는 거예요. 미래지향적인 팀을 만들 수 있느냐, 아니면 지금 당장 잔류해야 하느냐, 혹은 우승을 해야 하느냐 등의 목표가 있겠죠. 그 방향성이 맞는다면 고려해보고 싶어요. 그게 무엇이든 맞는다면 좋은 팀을 만들어보고 싶기는 해요. U-23 대표팀에 대해서는 기사도 나오고 주변에서도 이야기해주시기도 했어요. 신경을 써본 적은 없어요. 그동안 광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몰입했으니까요. 한눈 팔 시간이 없었죠. U-23 대표팀도 마찬가지예요. 제 생각과 그 팀의 목표가 일치하면 고려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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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T: 생각해보면 이렇게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감독이 박수를 받는 건 신기한 일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독님의 지도자 생활이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저도 놀랐어요. 이번에 자진사퇴하면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하고 나니까 많은 분들이 고생했다, 잘했다, 격려를 더 많이 해주셨어요. 깜짝 놀랐어요 정말.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전화도 많이 받았고요. 정말 힘들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내려놓은 건데 그런 반응이 나오니까 감사했어요. 내가 지난 4년을 헛되이 보낸 게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FFT: 지난 4년은 감독님에게 어떤 시간이었나요?
“지난 4년은 정말 대단한 경험을 쌓는 시간이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경험을 했어요. 한 40년은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그래서 어느 팀을 가도 자신은 있어요. 광주보다 어려운 팀을 없을 거라고 생각하죠. 혹 더 어려운 곳에 가도 잘할 수 있을 거에요.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많이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시작이에요. 아직 젊으니까요 저는. (FFT: 점수를 준다면 몇 점 정도일까요?) 전 51점짜리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만들어준 점수죠. 앞으로는 제 능력으로 49점을 채워야죠.”

FFT: 아직 젊은 지도자입니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처음부터 색깔 있는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발전하고 싶었죠. 그래서 수비적인 축구를 하지 않았어요. 공격적인 팀을 만들려고 노력했죠. 매 경기 그럴 수는 없지만 그래도 70% 이상은 우리가 준비한 대로 공격적으로 하자는 철학이었죠. 수비수들이 공을 잡아도 공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훈련을 많이 했어요. 물론 선수들에게 맞게 뛰는 것도 중요해요. 결국 뛰는 건 선수들이잖아요. 제 고집만을 추구하고 싶지는 않아요. 외골수가 되면 안 돼요. 제가 4년 동안 감독을 하면서 느낀 건 축구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는 거예요.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아요. 축구는 정말 복합적이거든요. 때론 감독이 틀리기도 해요. 그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철학을 유지하겠지만 선수의 의견도 듣고, 주변의 말도 경청할 수 있어야 하죠. 기본적으로 제가 가져가야 할 부분은 있지만 무조건 제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철학을 지키면서도 융통성 있게 바뀔 수 있어야 해요. 그런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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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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