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told] '특급 10대' 카쿠타는 지금 어디에

기사작성 : 2017-09-14 12:49

- 2000년대 첼시와 프랑스의 미래로 손꼽히던 특급 10대 유망주
- 수많은 임대를 거쳐 중국까지 갔다가 프랑스로 돌아왔다
- '천재였던' 가엘 카쿠타의 복잡한 행보를 정리한다

본문


[포포투=Mike Henson]

가엘 카쿠타.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 아닌가? 첼시가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와 세간의 비난을 무릅쓰고 욕심을 냈던 특급 유망주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킬리앙 음바페나 오스만 뎀벨레 정도다. 그런데, 지금 카쿠타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월드 No.1 풋볼매거진 <포포투>의 Mike Henson이 추억의 이름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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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카쿠타는 어디에 있지?

지난여름 카쿠타는 또 아팠다. 몸이 아닌 마음을 다쳤다. 이적 서류상 문제로 파리생제르맹(PSG)과 리그1 개막전에 불참했다. 슈퍼스타 네이마르와 맞대결을 손꼽아 기다렸을 텐데. 그래서 실망이 컸을 법하다. 아! 그의 현재 팀은 아미앵이다.

이날 네이마르도 같은 문제로 결장했다. 모든 언론은 경기 전 네이마르의 출전 여부에만 매달렸다. 어느 곳 하나 카쿠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차별 같지만 당연한 순리로 봐야 한다. 십 대 시절 어깨를 나란히 했을지언정 지금은 비교 자체가 어렵다.

카쿠타가 내로라하는 기대주였단 사실은 물론 변하지 않는다. 그는 프랑스 청소년 팀에서 앙투안 그리즈만, 알렉산드르 라카제트와 함께 뛰었다. 심지어 에이스였다. 2015년 마르코 아센시오가 받은 U-19 유로 최우수선수상의 2010년 대회 수상자였다. 그때 이미 첼시 소속이었다. 불행히 카쿠타는 끝내 유망주의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그렇게 올해 스물여섯을 맞이했다.

★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당시 카쿠타는 정말 눈부셨다. 같은 나잇대 수비수를 갖고 노는 플레이는 발군이었다. 가냘픈 몸매와 헐렁한 유니폼이 그의 전매특허였다. 피치 위에서 그는 누구보다 당당했다. 수비수를 쉽게 벗겨내고 뿌리치는 능력으로 상대를 위협했다. 그가 달리면 마치 잔디에 불이 붙을 것만 같았다.

수비수들이 벌떼처럼 달려든 상황에서도 공간을 찾아 동료에게 패스를 건넬 정도로 시야가 넓었다. 공격형 미드필더는 본래 래브라도와 같은 집념과 식욕을 지녀야 하는 법. 카쿠타는 볼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 볼로 배짱 두둑한 플레이를 펼쳤다.

여러모로 당시의 카쿠타는 기술과 감각을 모두 갖춘 완성형 유망주처럼 비쳤다. 2010년 U-19 유로 결승전에서 라카제트의 결승골을 이끈 크로스는 십 대 시절 카쿠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장면으로 손꼽힌다.

첼시 유스팀(2007~2009)에서 보낸 첫 시즌, 팀 내 최다득점을 올리며 베스트 플레이어로 뽑혔다. 리저브팀에선 파비오 보리니, 다니엘 스터리지와 최고의 콤비네이션을 발휘했다. 자연스레 1군 선발 데뷔전이 찾아왔다.

U-19 챔피언십이 열리기 전인 2009년 12월 2-2로 비긴 아포엘 니코시아와 UEFA챔피언스리그였다. 이렇다 할 활약을 못 했지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으로부터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해도 무방한 유일한 선수”라는 칭찬을 받았다.

2010-11시즌 카쿠타는 타이틀 방어에 어려움을 겪던 첼시 스쿼드에서 몇 안 되는 희망으로 손꼽혔다. 전반기에만 12경기에 출전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팀은 후반기에도 계속해서 휘청거렸다. 불안한 징조였다.

★ “어린이 장기밀매”..논란의 이적

첼시는 팀 상황상 카쿠타에게 출전 기회를 주지 못한 대신에 2010년 12월 4년 재계약을 선물했다. 유럽 최고의 유망주를 팀에 오래도록 묶어두려는 전통 수법이라는 일각의 시선이 존재했다.

그때만 해도 기대치가 무척이나 높았던 것이 연장 계약을 체결한 또 다른 이유로 거론됐다. 첼시가 2007년 카쿠타를 영입하기로 하기 전, 첼시의 프랑스 스카우트 가이 일리옹은 “그 세대에서 최고의 재능”이라고 구단에 영입을 추천했었다.

하지만 첼시의 업무 처리는 카쿠타의 플레이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랑스의 단장 프란시스 콜라도에 따르면, 카쿠타 영입을 밀어붙인 첼시 측이 ‘돈이나 받고 입 다물라’라고 말했다. 카쿠타는 양 구단의 합의가 있기 전 영국으로 건너가는 바람에 사태를 키웠다. 중재자인 국제축구연맹(FIFA)이 향후 두 차례 이적시장에서 선수 영입을 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중징계를 첼시 측에 내렸다.

셉 블래터(FIFA)와 미셸 플라티니(UEFA) 회장은 한목소리로 첼시를 비난했다. “어린이 노예”, “어린이 장기밀매”와 같은 표현도 사용했다. 랑스 측에서 고발을 취하하면서 논란은 예상보다 금세 가라앉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첼시에서 랑스로 위로금 260만 파운드가 건네졌다. 랑스는 “재정적, 기술적”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지만, 얼마 되지 않는 위로금으로 불의에 굴복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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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 라이프

어렵게 이적해 입단 초기 강한 인상을 남겼고, 첼시와 연장 계약을 맺었다. 여기까지가 축구 팬들이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안첼로티 감독은 아직 십 대였던 카쿠타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경기 출전이라고 진단했다. 그렇게 2011년 1월 카쿠타는 풀럼으로 단기 임대를 떠났다.

그땐 몰랐겠지만 이때부터 기나긴 임대 인생이 시작됐다. 풀럼을 시작으로 볼턴, 라치오, 디종 그리고 비테세 아른헴(첼시 피딩 클럽)을 거쳤다. 카쿠타는 계속된 환경 변화에 힘을 쓰지 못했다. 그 결과 어느 팀으로부터도 완전이적 제안을 받지 못했다.

올 2월 카쿠타는 언론 인터뷰에서 “고액 연봉자를 영입하려는 팀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적에는 합의했으나 가고 싶었던 구단이 아닌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임대 생활 동안 나는 책임감이 부족했다. 진심을 다해 뛰지 않았다. 지금의 멘털리티를 그때는 갖고 있지 않았다.”

감독 운도 따르지 않았다. 풀럼에서 임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첼시 감독은 안첼로티에서 안드레 빌라스-보아스로 바뀌었다. 로베르토 디 마테오, 라파엘 베니테스가 연달아 스탬퍼드브리지의 감독 자리에 앉았다. 세 명의 감독은 하나같이 유소년 모험보다 검증된 선수의 기용을 선호했다.

첼시에서 소외된 카쿠타는 커리어를 통틀어 6차례나 임대를 떠났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임대팀인 스페인의 라요 바예카노에서 어렵게 부활 기회를 잡았다. 연봉을 상당액 삭감하면서까지 이를 악물었던 2014-15시즌. 프리메라리가 35경기에 출전해 5골 7도움을 기록하며 경력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시즌 후 세비야가 첼시에 보상금 250만 파운드를 지급해 카쿠타를 완전 영입했다.

★ 어쩌면 마지막 기회

카쿠타에게는 두 번째로 찾아온 기회였다. 하지만 첼시에서처럼 세비야에서도 감독과 잘 지내지 못했다. 우나이 에메리 세비야 감독과 개별 몸관리 방법 및 전술상 이유로 멀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1군 훈련장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안달루시아에 둥지를 튼 지 고작 8개월이 지난 시점, 중국의 허베이가 460만 파운드에 카쿠타 영입을 제안했다. 세비야는 이 프랑스 선수가 최고의 모습을 보이길 기다리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수익을 택했다.

허베이로 가는 선택도 결과적으로 옳지 않았다.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슈퍼리그가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카쿠타는 허베이의 마우리시오 페예그리니 감독과는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감독은 기존 에제키엘 라베치, 제르비뉴, 스테판 음비아에게 우선권을 부여했다.

입지를 잃은 카쿠타는 2017년 1월, 스페인 데포르티보 라코루냐로 임대를 떠났다. 이곳에서는 페페 멜 감독과 불화가 났다. 2-6으로 대패한 레알 마드리드전에선 전반을 마치고 교체되는 굴욕을 겪었다. 그리고는 다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운명처럼, 구원의 손길을 내민 팀은 아미앵이었다. 유년 시절을 보내고 아직도 가족이 머무르고 있는 랑스와 불과 60km 떨어진 곳에 있는 클럽이었다. 3부에 머물던 아미앵은 승격을 거듭한 끝에 리그앙 승격에 성공한 이후, 전력 보강 차원에서 카쿠타를 원했다.

아미앵 입단이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아미앵은 새 시즌 초반 리그 3경기에서 7골을 내주고 한 골도 넣지 못하며 3전 전패했다. 그런데 다음 경기에서 강호 니스를 꺾더니, 5라운드에선 스트라스부르그를 잡았다. 2경기에서 모두 카쿠타가 결승골을 넣었다.

지금의 카쿠타는 술집과 관련한 루머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올드햄과 더비 유스팀에서 뛰었던 메디 아발림바가 2014년 카쿠타의 이름을 사칭해 5성급 호텔에 머무르고,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외상으로 먹는 등의 죄를 저질러 4년형을 받은 사건이다. 둘이 너무 닮았던 탓에 사람들이 깜쪽같이 속았다.

이제 카쿠타는 사기꾼 ‘아발림바’가 아니라 자신이 리얼 ‘카쿠타’이자 왕년의 네이마르급 유망주이자 아직 발끝이 살아있는 스타란 사실을 직접 증명해내야 한다. 12번째 클럽, 두 번째 조국(*프랑스 각급 청소년팀을 거친 그는 올 초 콩고 대표팀을 선택)에서 일단, 출발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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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 가엘 카쿠타
-출생: 1991년 6월 21일, 프랑스 릴
-경력: 첼시(2009~15), 풀럼(2011 임대), 볼턴(2011~12 임대), 디종(2011 임대), 비테세(2012~14 임대), 라치오(2014 임대), 라요 바예카노(2014~15 임대), 세비야(2015~16), 허베이(2016~현재), 데포르티보 라코루냐(2017 임대), 아미앵(2017~현재 임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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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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