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told] 벵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기사작성 : 2017-10-13 17:16

- 아르센 벵거는 선수들에게 자율을 부여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 퀄리티 플레이어가 많았던 시절에는 최고 효과를 냈다
- 하지만 2017년 아스널 스쿼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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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Chas Newkey-Burden]

20년 전, 아르센 벵거는 아스널을 챔피언으로 바꿔 놓았다. 과학적 접근과 함께 선수단의 자율을 강조하는 지도 철학 덕분이었다. 수준 높은 선수들은 벵거가 원하는 대로 자가발전하는 능력의 소유자들이기도 했다. 지금 아스널 스쿼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월드 No.1 풋볼매거진 <포포투>의 Chas Newkey-Burden이 벵거식 자율축구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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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라이트가 라커룸 창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속옷 차림인 그는 창문 밖에서 으르렁대는 팬들과 설전을 벌였다. 멀리서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발견한 경찰이 무전기를 꺼내 들고 소리쳤다. “당장 이안 라이트를 끌고 와! 내가 할 말이 있어!”

1997년 12월 일어난 일이었다. 아르센 벵거가 아스널에서 맞이한 첫 풀시즌이었다. 개막 12경기에서 무패를 달리던 아스널은 겨울이 되자 6경기에서 4패를 당했다. 라이트와 팬들이 설전을 벌였던 그 날 아스널은 블랙번에 1-3으로 패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팬들은 스카프를 그라운드로 집어 던지며 야유를 퍼부었다. 프리미어리그 순위표에서 아스널은 5위로 미끄러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보다 승점 10점이 떨어졌다.

★ 자율 축구

선수들은 솝웰 하우스 호텔에 모여 자발적으로 대책회의를 열었다. 최종 수비진은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엠마누엘 프티에게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요구했다. 토니 아담스(중앙수비수)는 “너희가 앞에서 우리를 좀 더 보호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미드필더 2인은 비판을 수용했다. 이렇게 간단한 전술 변화가 모든 것을 바꿨다. 이후 아스널은 18경기 연속 무패를 달리며 7년 만에 1부 우승 트로피를 획득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명확한 문제점을 왜 아담스를 비롯한 수비수들이 직접 지적하고 나서야 했을까? 그 자리에 벵거는 왜 없었을까? 이 대책회의는 벵거의 약점을 드러낸 첫 자리였다. 그의 지도 철학은 자율성을 중시한다. 전술 선택과 훈련 내용도 큰 비중을 선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다.

★ 선수가 성패를 가른다

처음 아스널에 부임했을 때, 벵거는 자신의 지도자론을 설명했다.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할 뿐이라고 말했다. 벵거는 자신의 말을 실천했다. 라커룸 안에서도 벵거는 선수들에게 세세한 주문을 하지 않는다. 하프타임에 전술을 극단적으로 바꾸지 않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거의 없다. 선수들이 스스로 신념을 지켜야 승리할 수 있다는 용기를 전할 뿐이다.

다른 감독들은 대부분 전술을 신봉한다. 아래로 물러날지, 전방에서 압박할지, 역습할지, 점유율을 높일지를 상세하게 요구한다. 경기 중에도 여러 번 전술 변화를 시도한다. 조제 모리뉴와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를 체스처럼 운영한다. 벵거는 다르다. 오롯이 순수하게 축구를 대한다.

빅매치에서도 그의 철학은 바뀌지 않는다. 티에리 앙리는 자서전에서 “2006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이틀 전에도 벵거 감독은 ‘우리 코칭스태프는 하루 전까지 바르셀로나의 결승전 전술을 기다릴 생각이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역사적인 빅매치를 코앞에 두고 벵거가 평소와 다름없이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앙리는 적었다.

따라서 자기 철학에서 벵거가 벗어나는 결정을 내리는 일은 특기할 만하다. 2005년 FA컵 결승전에서 벵거는 3-4-2-1 포메이션을 선택해 중앙 수비를 최대한 단단하게 만들었다. 경기 전 미팅에서도 벵거는 눈시울을 붉혀가면서 첼시를 반드시 꺾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하지만 매우 드문 일이다. 지금도 벵거는 많은 부분을 선수들에게 맡긴다. 아스널의 성패는 결국 뛰는 선수들의 지능과 개성에 크게 좌우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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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 감독의 팀에서 뛰어서 좋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18세였다면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 내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감독일 테니까


★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감독

데니스 베르캄프, 토니 아담스, 파트리크 비에이라, 로버트 피레 같은 수준 높은 선수들이 있을 때는 벵거의 철학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솔 캠벨은 “아스널에서 뛸 때, 선수들은 스스로를 관리했다. 그렇게 자율적으로 훈련할 줄 아는 선수들이 많았다”라고 말한다.

에미레이트 시대에 들어서는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니클라스 벤트너와 올리비에 지루, 알렉시스 산체스, 그라니트 샤카는 자율 축구로 다뤄질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 자신을 속박하거나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는 타입이다.

최근 방송에서 리 딕슨(아스널 전 수비수)은 벵거의 약점을 지적했다. 아스널 레전드들은 입을 모아 벵거를 찬양한다. 왜냐면 벵거와 함께 성공을 누렸던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딕슨도 성공을 구가했던 멤버이긴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소신 있는 평가는 눈길을 끈다. 딕슨은 “벵거 감독은 선수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않는다. 훈련장에 서서 선수들이 스스로 배우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딕슨은 애슐리 콜을 예로 들었다. “처음 1군에 왔을 때 콜은 수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토니 아담스가 콜을 붙잡고 수비 요령을 전수했고, 콜은 자가발전한 끝에 위대한 레트프백으로 성장했다. 벵거 감독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훌륭해. 토니가 자기 할일을 하고 있군’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아스널 스쿼드에서 아담스처럼 벵거를 위해 자기 할일을 할 만한 선수가 있을까? 알렉스 이워비, 롭 홀딩, 리스 넬슨을 훈육할 선생님은 누구일까? 잭 윌셔와 칼럼 챔버스, 시오 월컷, 알렉스 옥슬레이드-챔벌레인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원인을 벵거의 지나친 자율 축구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벵거가 아스널에 왔을 때, 딕슨은 32세였다. 리그(2회)와 컵위너스컵 우승을 이미 경험한 베테랑이었다. 딕슨은 “벵거 감독의 팀에서 뛰어서 좋았다. 하지만 그때 내가 18세였다면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 내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감독일 테니까”라고 말한다. 딕슨의 지적은 지금 아스널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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