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구덕] 부산, 세 번 죽다 살아났다

기사작성 : 2017-10-26 04:32

- 2017 하나은행 FA컵 준결승전: 부산 1-1(4-2/PEN) 수원
- 세 번의 위기를 모두 극복한 부산의 의지
- 불운과 맞서야 했던 수원의 모든 이

본문


[포포투=홍재민(부산)]

불씨가 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살아났다. 이번에는 힘들겠다 싶었다. 다시 살아났다. 마지막 좌절이 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웃었다. 아니, 울었다.

25일 수요일 저녁 FA컵 준결승전에서 부산아이파크가 수원삼성블루윙즈를 제치고 울산현대호랑이의 결승전 상대가 되었다. 정규시간 90분에 1-1로 맞섰고,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이날 경기는 축구의 인생살이를 모두 담았다. 부산의 간절함, 현실의 실력 차이, 규정의 한계, 팬들의 희비 교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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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간절함

구덕운동장 앞에 작은 캐노피가 설치되었다. 작은 공간 안에서 故 조진호 감독이 웃고 있었다. 입구에 놓인 디스플레이 위로 부산 선수들의 친필 메시지가 흐른다. 살아생전 전했으면 더 좋았을 말들이다. 언제나 우리는 떠나 보낸 후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경기 전, 부산의 이승엽 감독대행은 “조 감독님과 함께 수원을 분석하고 있었다”라고 덤덤히 말한다. 몸을 풀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서는 표정이 비장하다.

부산은 K리그 챌린지 2위를 이미 확정했다. 잔여 경기의 결과와 상관없이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그런 상태로 FA컵 준결승전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그런 배경은 무의미하다. 어느 날 갑자기 ‘보스’가 세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리그든 컵대회든 상관없다. 상대가 K리그의 ‘윗물’이란 사실도 크지 않다. 부산 선수들에게는 무조건 이겨야 할 한판승부일 뿐이다.

# 수원의 실력

객관적 전력에서는 당연히 원정팀 수원이 앞섰다. 슈퍼매치의 후유증, 향후 리그 잔여 일정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의 우위는 상수(常數)다. 박기동은 몸으로 상대를 압도했고, 산토스는 패스로 길을 찾았다. 염기훈과 김민우의 왼쪽 라인은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전반 12분 부산의 주장 임상협이 발목을 다쳐 나간 탓에 양쪽의 기울기는 더 심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후반 12분 수원의 최성근이 퇴장당했다. 홈팀 부산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부산의 공격은 활기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7분 후 선제골은 수원의 몫이었다. 박기동의 과감한 돌파를 막던 베테랑 수비수 임유환의 핸드볼 반칙으로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임유환의 표정과 VAR 판독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염기훈이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수원이 1-0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원정 팬들이 환호했다. 수원의 ‘객관적’ 우위가 현실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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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간절함이 부른 행운

부산의 이승엽 감독대행은 호물루를 넣었다. 故 조진호 감독이 ‘그렇게’ 우겨서 데려온 외국인은 들어가자마자 분위기를 바꿨다. 그 흐름을 타던 후반 32분 페널티박스 안에서 이정협의 오른발이 깔끔하게 돌아갔다. 양형모의 손끝과 오른쪽 골대 사이를 정확히 꿰뚫은 볼이 수원의 골네트에 꽂혔다.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수원FC를 상대로 골을 터트린 뒤에 눈물을 흘렸던 이정협이 이번에도 희망을 되살렸다.

연장전에서 부산은 두 번째로 죽을 위기를 맞았다. 양쪽 선수들이 힘에 부친 상황에서 순식간에 조나탄이 환상적인 골을 터트렸다. 김건희와 부딪힌 차영환이 바닥에 쓰러져있는 동안 수원의 선수와 팬 들은 승리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주심은 골을 선언하지 않고 있었다. 2분이 흐른 뒤에 VAR은 조나탄의 슛 직전 상황에서 김건희의 반칙을 선언했다. 공정한 판정을 위해 도입된 VAR이 양쪽의 희비를 갈랐다. 수원에 너무 잔인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인지했지만, VAR 판독은 기계적 판단만 내릴 뿐이었다. 부산이 기사회생했다.

# 이정협의 실축, 그런데 김은선까지

승부차기조차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정협이 양형모에게 막혔다. 염기훈의 선제골, 조나탄의 득점 취소에 이어 부산은 세 번째 위기와 맞닥뜨렸다. 모든 상황이 부산의 패배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원의 조성진이 거짓말처럼 페널티킥을 골대 바깥으로 날리면서 부산을 살렸다. 여기에서, 또, 하필이면 김은선이 두 번째 실축의 장본인이 되었다. 광주FC 시절 옛 스승 최만희 현 부산 대표가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120분 동안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던 부산의 고경민이 다섯 번째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승부를 끝냈다. 부산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수원은 상대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세 번이나 잡고도 결국 패배의 운명을 안아야 했다. 이정협에게 순간적인 슛 기회를 허용했고, VAR 판독에 당한 데다 승부차기까지 놓쳤다. 한날한시에 세 번의 불운(자의든 타의든)이 수원의 뺨만 집중적으로 때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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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멈추기에는 부산의 할 말이 아직 남았기에

승장 이승엽 감독대행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진호) 감독님 생각이 많이 났다. 감정이 복받쳤지만 겨우 자제했다”라고 말한 이 대행은 일부러 먼 곳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애써 참았다.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질문을 하자 이 대행은 못다 한 이야기를 풀었다.

“감독님께서는 친형님 같은 존재였다. 우스갯소리이지만 감독님 유품을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우연히 (클럽하우스 방에서)감독님의 속옷이 하나 나오더라. 오늘 그걸 입고 나왔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감독님께서 선수들과 함께 뛰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축구는 우리 삶과 가장 닮았다고 한다.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엔 유치하거나 과대포장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면 그렇게 동화된다. 일상에서 흔한 일에 목숨을 걸거나 감정을 터트린다. 별일 아닌 인생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한쪽 귀로 흘릴 만한 억울함에 분통을 터트린다. 부산과 수원의 2017년 FA컵 준결승전이 그랬다. 축구의 매력이자 운명이라고 하자.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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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_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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