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바그너: 클롭 친구? EPL 감독!

기사작성 : 2017-11-17 15:07

- 이제 그를 클롭의 친구나 결혼식 들러리라고 부르지 말라
- 허더즈필드와 함께 프리미어리그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감독님이시다!

본문


[포포투=Chris Flanagan]

선수단 식당에서 중식을 막 마친 바그너와 나란히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체력단련실 옆에 붙어 있는데 자연광이 전혀 닿지 않은 아주 작은 방이었다. 구단이 훈련장을 개축하는 중이어서 임시로 사용하고 있었다.

“20개월, 21개월 정도 됐나? 부임 당시, 강등권과 몇 점 차밖에 나지 않았다. 초반 2경기에서 패하면서 강등권으로 내려앉았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볼 겸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갔는데 반응이 꽤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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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친 클롭, 해트트릭, 맥주 두 잔

인터뷰 내내 그의 열정과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바그너는 쾌활했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녔다. 25년 지기인 위르겐 클롭 감독과 꼭 닮은 구석이다. 둘이 처음 만난 건 그가 19세 때인 1991년이었다. 바그너가 독일 2부 소속의 마인츠에 입단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결과적으로 바그너가 클롭의 전방 공격수 자리를 빼앗았지만, 둘 사이는 멀쩡했다.

“초창기에는 주전 경쟁을 했다. 둘 다 스트라이커였으니까. 내가 보기엔 클롭은 천상 공격수였다. 골을 잘 넣었고 공중볼을 곧잘 따냈다. 발도 빨랐고. 혼자 4골을 터뜨린 경기를 기억한다. 하지만 당시 감독이 클롭에게 수비수로 전향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군말 없이 다음날부터 수비수로 뛰었다. 감독이 아주 좋은 결정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하하.”

바그너는 1997년 샬케의 UEFA컵 우승 멤버다. 산시로에서 열린 인테르나치오날레(로이 호지슨)과 결승전에서도 팀의 우승을 벤치에서 지켜봤다. 그는 “많이 뛰진 못했지만 선수 경력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시기였다. 미국 대표팀에서 8경기나 뛰었으니까”라고 말한다. 바그너의 부친은 미국인, 모친은 독일인이다. 독일 U-21 대표를 거쳐 샬케 동료 토마스 둘리의 추천으로 미국 A대표로 선발되었다. 1998 프랑스월드컵의 최종명단에는 아쉽게 오르지 못했다.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던 탓에 팀에 녹아들지 못했다.

샬케를 떠난 바그너는 독일 2부 FC귀터슬로 이적했다. 1998년 10월 홈 경기에서 ‘절친’ 클롭을 상대했다. 바그너는 그 시즌을 통틀어 리그 득점 수가 3골이었는데 모두 그날 마인츠와 클롭을 상대로 꽂아 넣었다. 최종 스코어는 6-1. “완벽한 날이었다. 샬케에서 UEFA컵을 들어 올릴 때보다 더 좋았다! 프로 인생 유일한 해트트릭이었다.” 지금도 바그너는 사석에서 클롭을 놀려먹기 위해서 그날 있었던 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5년의 우정이 흐르고 있는 지금, 둘은 나란히 프리미어리그 감독으로 살아간다.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다. 허더즈필드가 승격한 올 시즌에는 대화가 더 잦아졌다. 주로 클롭이 프리미어리그의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곤 한다. 그렇다고 바그너가 절친 클롭의 결혼식 들러리를 섰던 날을 상세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날 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술에 완전히 취했거든! 원래 주량이 맥주 2잔 정도다. 그 친구는 술을 아주 잘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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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미어리그 승격보다 대학 졸업장이 더 자랑스럽다”

한때 바그너는 축구를 잊고 다름슈타트대학에서 생물학과 스포츠 과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축구에 염증이 나서 이 바닥을 진지하게 떠날까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학업에 매진하기 시작한 뒤부터 규칙에 얽매이지 않아서 좋았고, 잔소리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좋았다. 생애 처음 온전히 나만을 위한 자유시간을 누렸다. 하지만 2~3년 뒤 벽에 부딪혔다.”

“솔직히 말할까? 시작하기 전 이렇게 힘든지, 또 이토록 오래 걸릴지 미리 알았다면 절대 대학교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거다. 5년, 더럽게 긴 5년이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누군가 내게 허더즈필드의 승격에 자부심을 느끼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거다."

"이곳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는 게 좋긴 했지만, 그보다는 대학 졸업장이 훨씬 더 자랑스럽다. 금쪽같은 두 딸과 함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데뷔 초부터 성공적은 아니다. 부임 첫 시즌 허더즈필드는 챔피언십(2부)을 19위로 마쳤다. 바그너의 첫 프리시즌 훈련에서 팀은 180도 바뀌었다. 그해 여름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는 스웨덴의 한 작은 섬으로 날아가 서바이벌 캠프에 참여한 것이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야생에서 보내는 3박 4일이었다. 전자기기, 난방장치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먹을거리도 없었다. 선수들의 단결심을 빠르게 고취하려는 방법이었다. 선수들이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지켜보고 싶었다. 단순한 성공을 뛰어넘는 ‘대박’을 치고 싶었다. 물론, 그때까지 팀이 곧바로 승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캠프 효과는 확실했다. 위풍당당한 기세로 승격까지 치고 올라갔다. 허더즈필드는 주급 상한선이 1만 파운드에 불과한 소형 팀이었다. 리그를 4위로 마칠 때까지도 승격을 예상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해당 시즌, 바그너는 독일 축구계에도 충격을 안겼다. 볼프스부르크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몇몇 제안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어떻게 거절할 수가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느꼈다. 떠나기에 적당한 날이 아니었던 거다.”

8월 12일, 허더즈필드는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크리스털 팰리스를 3-0으로 완파했다. 시즌 11라운드 현재 승점 15점으로 10위에 있다. 클롭의 리버풀보다 고작 4점 모자란다.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프리미어리그에 어떻게든 잔류하기일까?

“올 시즌 잔류를 성공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스쿼드로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은 지난 시즌 승격에 견줄 정도의 업적이다. 허더즈필드는 겸손한 팀이다. 잔류가 어렵다는 사실도 안다. 재정적으로 경쟁자에 크게 뒤처진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우리 야망을 꺾을 수는 없다. 매 경기를 결승전처럼 치를 거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순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확신한다.”



사진=Jon Shard,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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