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울산] ‘실패자’ 김도훈이 성공 시대를 열었다

기사작성 : 2017-12-04 07:20

- 울산현대, 2017 FA컵 우승
- 롤러코스터 지도자 인생, 김도훈 감독의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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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배진경(울산)]

부산아이파크가 2017년 마지막 주인공이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승패를 떠나 사연이 많은 팀이었다. 시즌 중 운명을 달리 한 故 조진호 감독, 그리고 남은 이들의 이야기는 한동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클래식의 문턱을 넘지 못했을 때도, FA컵 결승 1차전에서 집념의 만회골로 1-2(패) 스코어를 만들었을 때도, 부산은 나름의 스토리를 써나가는 팀이었다. 3일 오후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FA컵 결승 2차전에서도 그랬다. 심지어 ‘골대 불운’까지 더해 ‘비운의 주인공’이 될 요소는 충분했다.

“저는 실패한 감독이었습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우승 감독의 이 한 마디가 주제를 바꿔놓았다. 담담한 자기고백으로 시작한 김도훈 울산 감독의 소감은 “이런 감독을 과감하게 선택해준 구단에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선수단, 프런트, 팬, 심지어 클럽하우스의 지원 스탭들까지 두루 챙기는 인사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구단의 선택은 옳았다. 처음으로 FA컵을 들어올렸다. 전통과 역사에 비해 허전했던 트로피 진열장에 새로운 우승컵을 추가했다. 실패가 실패로 끝난 게 아니었다. 좌절을 딛고 성공 시대를 열어가는 이야기라면, 마땅히 김도훈 감독이 주인공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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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의 위로, 공피고아(功彼顧我) 다짐으로

김도훈 감독은 지난해 8월 인천유나이티드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표면적인 이유는 성적 부진이었다. 그러나 퇴진을 두고 말이 많았다. 선수 영입과 기용에 대한 외부 개입설부터 경영진과의 불화설도 흘러나왔다. 사실 그는 전년도에 같은 팀을 이끌고 ‘늑대축구’로 명성을 떨쳤다. 6강 문턱까지 넘보던 리더십과 경쟁력이 2016년의 부진과 구설로 얼룩졌다. 스스로 “실패한 감독이었다”고 고백한 이유다.

지휘봉을 내려놓은 그는 제주를 찾았다. 복잡한 일을 뒤로 하고 머리를 비울 필요가 있었다. 당시 11세, 12세이던 두 딸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다. 성판악 코스였다. 왕복 9시간이 걸리는 일종의 ‘극기훈련’이었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투정부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빠를 위해 오르는 거다’라는 말에 끝까지 참고 올라가더라.” 올 초 김도훈 감독을 만났을 때, 한라산 등정기를 들려주던 그는 이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 위로를 얻은 그는 다시 용기를 냈다. 독일 연수를 떠났다. 그사이 울산 구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새 감독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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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의 2막을 앞두고 김 감독이 떠올린 사자성어가 있다. ‘공피고아(功彼顧我)’. 상대를 공격하기 전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뜻이다. 스스로에게도, 팀에게도 썩 잘 어울리는 격문이었다. 2016년의 아픔에 관해 “돌아보니 실패를 준비했더라”며 “이제는 성공을 준비하는 법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 패배의식에서 벗어나는 법

성공을 꿈꾸던 이번 시즌에도 세 차례 정도 큰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는 AFC챔피언스리그(ACL) 진출권을 얻게 되면서다. 전북이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울산에 기회가 돌아왔다. 스페인에서 전지훈련 중이던 울산은 급히 귀국해 2월 초 ACL 플레이오프를 치러야했다. 선수 파악 및 보강도 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실전에 나섰다. 선수들도 경기 체력이나 감각이 갖춰지기 전이었다. 경기력은 기대 이하였다. 불안한 출발이었다. “팀을 만들기도 전에 아시아 무대에 참가했다”는 김 감독은 “‘내가 이러다 또 실패하는 거 아닌가’ 두려움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3월 K리그가 개막하면서 일단 ‘달라진 색깔’을 보이는 데에는 성공했다. 울산은 전통적으로 선 굵은 축구를 보이는 팀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수비에서부터 시작되는 빌드업과 패싱 게임을 추구하는 팀으로 바뀌었다. 공격에서도 활발한 스위칭과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역동성을 가미했다. 선수 교체도 공격 주도권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팬들도 호응했다. 그러나 ACL과 병행하는 일정이 이어지면서 균형이 흔들렸다. 김 감독은 “4월 전남에 0-5, 가시마에 0-4로 연달아 졌을 땐 크게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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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선수들을 믿었다. 다행히 인천전 2-1 승리를 통해 반전에 성공했다. “우리 선수들이 하나의 팀이라는 걸 느꼈다”. 이후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울산은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하기 전 순위표에서 3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미드필더 정재용은 “선수들끼리도 서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하다 보니 마음까지 공유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며 “그 시간이 빨라졌다면 더 빨리 상승곡선을 탔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마지막 위기에 맞닥뜨린 건 시즌 막바지에 이르러서다. 클래식 상위팀들끼리 붙는 스플릿A 일정을 시작한 후 4경기에서 연달아 패했다. 수원에 3위 자리를 내주고 4위로 밀려났다. 위기감이 커졌다. 4연패로 자신감이 떨어지고 위축된 상황에서 FA컵마저 놓치면 ‘빈손’으로 마감할 판이었다. 때마침 울산에서 열린 A매치 세르비아전은 좋은 자극제가 됐다. 울산 선수단은 단체로 세르비아전을 관전했다. 김 감독은 “대표팀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나가는지 직접 봤다”면서 “하고자 하는 의지와 희생하는 움직임이 갖춰졌을 때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지막까지 힘을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울산은 강원 원정에서 2-1로 승리했고, FA컵 1차전(2-1 승)에서 우승 고지에 바짝 다가섰다.

김 감독은 베테랑들의 공을 잊지 않았다. 김용대, 강민수, 김치곤 등을 고루 언급했다. 출전을 할 때는 물론이고 뛰지 못할 때도 팀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지켜줬다. “워낙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다. 내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지 아는 선수들이었다.” 이들이 적절하게 분위기를 잡아줬다면 이종호, 김인성, 김창수 등은 헌신적인 움직임으로 본을 보였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이 ‘하나된 팀’ 분위기에 흡수됐다. 김도훈 감독은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던 건 선수들의 힘이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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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당 자처한 울산의 해피엔딩

사실 결승 2차전에서 울산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부산보다 앞선 스코어에 여유있는 전력과 체력이었지만, 안정적인 운영에 무게를 뒀다. 공격 주도권은 부산에 있었다. “경기장에서 쓰러질 각오로 후회없이 뛰자”던 부산의 결의가 울산을 몰아붙였다. 전반 44분 이재권의 벼락같은 슈팅이 골대를 때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부산의 슈팅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면’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다. 김도훈 감독의 말대로 “실점하지 않고 잘 버텨낸” 울산이 1, 2차전 합산 2-1로 우승했다.

무실점에 초점을 맞춘 운영에 호불호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울산의 선택이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역사는 결국 우승팀만 기억한다. 이날 선방 활약으로 우승을 이끈 김용대는 “FA컵에서 우승 못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며 “부산도 간절했겠지만 우리는 더 간절했다”고 전했다. 정재용은 “이겨서 즐겁게 세리머니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당연히 우승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컸는데 선수들이 잘 이겨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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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를 얻기 위해 악당을 자처한 울산에 속죄의 길은 있다. 아시아 무대에서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FA컵 우승은 시작일 뿐이다. 김도훈 감독은 “본선 참가에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우승할 수 있는 선수들이 필요하다”며 “한국을 대표해 나가는 만큼 기술적으로, 전략적으로, 전술적으로 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패자’에서 기대와 희망을 논하는 지도자로, 감독 김도훈은 그렇게 성공의 장을 열었다.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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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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