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형이 왜 거기서..?' 깜짝 등장한 슈퍼서브 9인

기사작성 : 2018-03-09 15:09

-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 깜짝 등장해 팀에 승리를 선물한 슈퍼서브 9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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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Jon Spurling]

난세에 영웅이 등장한다. 위기의 순간에 불현듯 세상을 구하는 이가 나타난다. 축구에도 적용된다.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교체로 나와 팀에 승리를 선물한다. 흔히 '슈퍼 서브'라고 불리는 선수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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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레보 프란시스 (노팅엄 포레스트, 1979)

"프란시스는 유러피언컵(UEFA챔피언스리그의 전신)에서 뛸만한 선수가 아니었다" 노팅엄 포레스트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고집스러운 클러프 감독이 베스트XI을 꾸리는 데에 프란시스는 고려할 가치가 없는 선수였다.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1978-79 유러피언컵 결승이었다. 주전 미드필더 아치 겜멜과 마틴 오닐의 부상으로 프란시스가 유러피언컵에 데뷔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반 추가시간, 윙어 존 로버트슨의 크로스를 프란시스가 머리로 밀어 넣었다. 그의 결승골에 힘입어 노팅엄 포레스트는 스웨덴 클럽 말뫼를 꺾고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언컵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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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리스토퍼 레 (아스널, 1998)

전설적인 공격수이자 현 라이베리아 대통령(!) 조지 웨아의 사촌이라는 점 외에 축구선수로서 레를 주목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적어도 1997-98시즌 중반까진 그랬다.

시즌 끝 무렵에 다다르자 레의 발끝이 불을 뿜었다. 30라운드 볼턴전이었다. 이안 라이트와 데니스 베르캄프가 부상으로 결장한 아스널을 구했다. 후반 시작과 함께 결승골을 넣어 팀에 승점 3점을 선물했다. 울버햄턴을 만난 FA컵 준결승에서도 골망을 갈랐다. 레의 활약으로 아스널은 더블(리그, FA컵)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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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스 실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0)

알렉스 퍼거슨 부임 이후 맨유의 No.1 골키퍼는 짐 레이턴이었다. 스코틀랜드 클럽 에버딘에서부터 한솥밥을 먹었기에 퍼거슨 감독의 총애를 받는 건 당연했다.

1989-90시즌 FA컵 결승전을 기점으로 둘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서 레이턴은 크리스털 팰리스에 3실점 했다. 브라이언 롭슨과 마크 휴즈의 연속골로 무승부를 거두긴 했지만 퍼거슨 감독은 레이턴의 활약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5일 후 열린 결승전 재경기에선 실리가 골키퍼 장갑을 꼈다. 눈부신 선방으로 단 한 번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았고, 맨유는 FA컵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퍼거슨 감독이 맨유에서 수집한 첫 번째 트로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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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라이언 버틀랜드 (첼시, 2012)

첼시는 2011-12 UEFA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에 취할 수 없었다. 결승전에 존 테리와 이바노비치, 라울 메이렐레스, 하미레스가 경고 누적 등의 사유로 출전이 불가했기 때문이다. 디 마테오 감독의 선택은 버틀랜드였다. 예상치 못한 결정이었다. 당시 버틀랜드는 UEFA챔피언스리그 출전 경험이 없었다. 바이에른 뮌헨을 만난 결승 무대가 데뷔전이었다. 뜻밖의 활약을 선보였다. 후반 28분, 말루다와 교체되기 전까지 아르옌 로번과 필립 람의 공격을 틀어막았다. 버틀랜드의 활약 덕분에 첼시는 창단 후 처음으로 빅이어를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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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로저 밀러 (카메룬, 1990)

38세 밀러가 다시 한번 월드컵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이었다. 당시 밀러는 프랑수아 오맘비크와 시릴 마카나키에 밀려 선발 기회를 얻는 것조차 어려웠다. 주로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겐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밀러는 조별리그 2차전 루마니아와 맞대결에서 후반 11분에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윽고 공격 본능을 뽐냈다. 멀티골을 몰아쳐 카메룬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콜롬비아를 만난 16강전도 마찬가지였다. 교체 투입된 그는 연장전에만 두 골을 쏟아부으며 8강 진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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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이젤 스핑크 (애스턴 빌라, 1982)

애스턴 빌라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밟기까지 5년이나 걸렸다. 오래 기다린 만큼 극적인 데뷔전이었다. 1981-82 유러피언컵 결승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였다. 경기 시작 10분 만에 주전 골키퍼 지미 리머가 부상을 당해 스핑크가 투입됐다. 맹활약한 스핑크는 무실점으로 애스턴 빌라의 첫 번째 유러피언컵 우승에 일조했다. 이를 계기로 No.1 골키퍼가 된 그는 1996년까지 애스턴 빌라 골문을 든든히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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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필 네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2)

2002년 12월, 맨유가 안방에서 아스널을 만나 2-0으로 이겼다. 수비수 네빌을 미드필더로 기용한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이 빛났다. 중원에서 패트릭 비에이라를 압도했다. 수비적인 능력을 발휘해 티에리 앙리도 꽁꽁 묶었다. 이후에도 미드필더로 출전한 네빌은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왕좌에 오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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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폴 워허스트 (셰필드 웬즈데이, 1992-93)

워허스트는 1991-92시즌 셰필드 웬즈데이에 수비수로 합류했다. 하지만 이듬해 공격수로 재능을 만개했다. 데이비드 허스트와 마크 브라이트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자 트레버 프란시스 감독은 워허스트를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기용했다. 1992-93시즌 워허스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17번이나 골문을 열었다. 그의 맹활약으로 셰필드 웬즈데이는 프리미어리그 7위라는 호성적은 물론 리그컵 준우승에 올랐다. 더욱 놀라운 건 워허스트가 셰필드 웬즈데이를 떠나 수많은 구단을 거쳤는데, 그 팀들에선 미드필더로 뛰었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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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프 허스트 (잉글랜드, 1966)

1966년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뜻깊은 해라고 할 수 있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골잡이 지미 그리브스의 발끝에 기대를 걸었지만 정작 잉글랜드에 월드컵을 선물한 건 허스트였다.

8강전. 아르헨티나를 만난 잉글랜드는 조별리그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한 그리브스 대신 허스트를 선발로 내세웠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넣어 잉글랜드를 4강에 올렸다. 결승전이 백미였다. 서독과 맞대결에서 허스트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승부의 종지부를 찍었다.

에디트=박찬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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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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