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수원] 빅버드 관중석은 지금도 한겨울

기사작성 : 2018-04-04 03:15

- AFC챔피언스리그 H조 5차전: 수원 1-4 시드니
- 10분의 1도 차지 않는 홈경기장에서 완패하다

본문


[포포투=홍재민(수원)]

봄이다. 낮에는 반팔 차림이 눈에 띈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서 로이킴의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그런데 빅버드는 춥다. 한겨울이다.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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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주중 경기의 흥행은 어렵다. OECD 최장 시간 노동국답게 평일 저녁이 빠듯하다. 퇴근 시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늦어진다. 저녁 7~8시의 프로축구 킥오프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칼퇴근’이 만든 여유를 놓고 각종 여가가 치열하게 경쟁한다. 사회생활(회식과 모임)도 해야 하고, 사랑과 우정도 챙겨야 한다. TV에 재미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넘친다. <블랙팬서>가 떠나니 <퍼시픽림2>가 돌아왔다. 맙소사, 축구장 갈 시간이 없다.

그래도 3일 저녁 수원월드컵경기장에 갔다. 직업인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 갔다. 팬들은 수원을 지지하러 갔다. 그들은 이곳을 ‘빅버드’라고 부른다. 다른 월드컵경기장처럼 빅버드에도 축구 추억이 많다. 2002년 월드컵 직전 열린 마지막 평가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상대로 박지성이 터트렸던 골이 기억난다. 프렌테 트리콜로의 기억은 훨씬 다채로울 것이다. 승리, 우승, 환호, 열창 등이다. 푸른 팬들이 연출하는 압도적 서포팅은 원정팀에 큰 부담감을 안긴다. 푸른 서포터즈가 있어 이곳은 더 특별하다.

AFC챔피언스리그 H조 5차전이 열린 빅버드는 을씨년스러웠다. 보는 이를 무안하게 할 정도로 공석이 많았다. 남측에는 한 줌의 원정 팬들이 모여 있었다. TV카메라의 배경 역할을 하는 동측스탠드의 가동률은 처량할 정도였다. 큰 목소리를 내는 북측스탠드에서도 의자가 사람보다 많았다. 경기 전 분위기를 띄우려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와 각종 배경음악은 평소처럼 엄청난 음량을 뽐냈다. 텅텅 빈 경기장 안에서 쩌렁쩌렁 울릴수록 더 애잔하게 들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소리로 표현하면 이렇게 되겠다 싶었다.

알다시피 경기 내용은 더 슬펐다. 이기면 16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 수원은 와르르 무너졌다. 전반 선제 실점을 허용한 지 1분 만에 데얀이 동점골을 터트렸을 때만 해도 홈 팬들은 평일 저녁을 보상받는 줄 알았을 것이다. 전반 31분 알렉스 브로스크에게 또 한 골을 허용해 1-2로 끌려갔다. 빅버드가 순간적으로 정적에 빠지자 그라운드에서 시드니 선수들이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자석과 그라운드까지는 꽤 먼 거리인데 그 육성이 들렸다. 남측스탠드에 있는 열 명 남짓 원정 팬들의 응원 소리도 들렸다. 아시아 최정상 대회의 경기에서 이런 경험을 하다니 참 신기했다.

수원의 날개는 후반 45분을 통해 완전히 부러졌다. 공세를 펴면서도 소득이 없었다. 함께 갔던 후배의 경기 전 느낌(“오늘 왠지 느낌이 쎄해요”)은 후반 32분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헐거워진 수원의 수비를 통과한 아드리안이 세 번째 골을 터트렸다. 희망이 깨졌다. 후반 추가시간 보보가 스코어를 4-1로 만들었다. 자존심이 깨졌다. 경기 후, 시드니의 그래엄 아놀드 감독은 “수원은 제주 원정을 다녀와서 힘들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 전에 있었던 A매치 2주일 휴식을 언급하지 않는 친절함이 더 고마웠다.

주장 염기훈은 선수들을 이끌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북측 서포터즈석에서 야유와 박수가 섞여 나왔다. 평일 저녁을 응원으로 쓴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취할 수 있는 감정 표현이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니 수용인원의 10%도 차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차갑게 다가왔다. 올 시즌 이곳에서 열린 AFC챔피언스리그 4경기(플레이오프 포함)의 평균관중은 4,330명이다. 평일 저녁에도 1만 명을 넘기던 빅버드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썰렁한 관중석과 선수들로 굳어진 K리그의 흔한 이미지로 수렴되는 경기장만 있을 뿐이었다.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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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_편집장

축구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하든 보든 쓰든 읽든 뭐든 @jaemin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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