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디르크 카윗, “리버풀이 챔스 뛰던 시절…”

기사작성 : 2018-04-12 14:51

- 성실함의 대명사 디르크 카윗
- 카윗이 공개하는 리버풀의 그때 그 시절
- 네덜란드, 잉글랜드, 터키 중 가장 살벌한 무대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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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Arthur Renard]

꿈으로 시작해 꿈같은 마무리를 완성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디르크 카윗은 ‘흔치 않은’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특히 2016-17시즌 친정팀 페예노르트의 역전 우승을 이끌고 현역 은퇴를 선언한 마지막 장면은 영화 같았다. “내가 꿈꾸던 은퇴가 현실이 됐다”고 말하는 선수가 몇이나 될까.

현역 시절 그는 헌신의 아이콘이었다. 네덜란드에서는 득점력으로 먼저 인정받았지만, 잉글랜드에서 리버풀 레전드가 될 수 있었던 건 전방위적 헌신성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리버풀에서만 그랬던 건 아니다. 그는 어느 팀에서나 성실히 뛰었다. 쉽게 말해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였다. 리버풀이 10년 만에 유럽 4강에 복귀한 지금, 카윗 같은 선수가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포포투>는 카윗이 현역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고 있던 2017년 초, 네덜란드에서 그를 만났다. 20여 년에 가까운 선수 시절에 관해 털어놓는 그는 에너지가 넘쳤다. 자신의 커리어를 마음껏 자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리버풀 챔스 시절’ 이야기부터 ‘토레스 vs 수아레스’ 비교에도 거침없었다. 축구팬들이 보내온 질문과 함께 그의 지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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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가 되기 전, 다른 장래희망이 있었나? (Alana Clark, 트위터)
“축구는 나의 열정이었다. 다섯 살때부터 열일곱 살까지 나는 지역 아마추어 축구 클럽 ‘Quick Boys’에서 뛰었다. 그곳에서 1군에 합류하는 게 나의 꿈이었다. 그보다 높은 꿈은 없었다. 나는 도장공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그 일을 했더라. 정말 흔한 직업이었나보다. 15세부터 17세까지 나는 4일 내내 일을 하고 하루는 학교에 갔다. 1998년 FC위트레흐트에 입단한 후 그 일을 그만뒀다.”

다양한 포지션에서 뛰었다. 첫 포지션은 어디였나? (Jamie Cox, 페이스북)
“어릴 땐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위트레흐트에 입단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오른쪽 윙어로 뛰기도 했다. 페예노르트에 가서는 중앙 공격수로 뛰었지만 국가대표팀에선 우측 윙어로 기용됐다. 마르코 판 바스턴 밑에서는 거의 측면 공격수로만 뛰었던 것 같다.”

2003 더치컵 결승전에서 페예노르트에 이겼다. 이게 페예노르트가 당신을 데려간 계기였을까? (Rupert Lay, 페이스북)
“결승 전에 페예로트르에 가게 될 거라고 알았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오갔다. 경기에서 많은 압박감을 느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위트레흐트에서 모든 걸 쏟아붓고 싶었다. 그리고 선제골 넣을 기회를 잡았다. 결국 내가 골을 넣었고 우리는 4-1로 이겼다. 열정으로 가득찬 순간이었다. 위트레흐트에서의 시간은 훌륭했다. 팬들이 내게 기립박수를 쳤다. 페예노르트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부터 페예노르트 팬들과의 연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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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2006년까지 179경기를 연속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Krishnan Tvm, 페이스북)
“나의 컨디션은 늘 좋았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경기는 없다. 정말 성취하고 싶은 게 있다면, 희생이 필요하다. 종종 쓰라리고 아픈 것들을 견디는 것까지 포함해서다. 축구는 도전을 많이 요구하는 스포츠다. 경기장에서 힘들지 않은 순간은 5~10% 뿐이지만, 나는 늘 이런 문제를 통제할 수 있었다.”

2006년 리버풀에 입단했을 때 다른 팀도 관심을 보였나? (Mike Canning, 페이스북)
“리버풀 입단 1년 전에 나는 토트넘에 갈 수도 있었다. 당시 감독이었던 마르틴 욜과 다니엘 레비 회장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이적시장 막바지였고, 당시 나는 이적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리버풀이 나를 원했다. 정식 협상을 벌인 후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같은 팀들도 내게 관심을 보였다. 정말 멋진 팀이다. 그러나 리버풀이 나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내가 가고 싶은 팀은 리버풀 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리버풀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난 늘 컨디션이 좋았다. 그렇다고 힘들지 않았던 경기는 없다. 성취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희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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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베니테스가 우측 윙어로 뛰라고 했을 때 어떻게 반응했나? (Storm Simpson, 페이스북)
“리버풀에서 처음엔 공격수로 뛰었다. 정확히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였다. 첫 시즌에는 잘 뛰었다. 우리팀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다. 2007년 여름, 휴가를 받고 아루바에서 쉬고 있었다. 리버풀이 토레스와 계약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음 시즌이 됐다. 정말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경기장에서는 첫 두어 달 제대로 뛰지 못했다. 제라드가 10번 역할을 수행하면서 토레스와 제라드가 정말 좋은 호흡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는 오른쪽 측면 자리가 났다. 그리고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맞붙었다. 당시 경기력이 좋았다. 이후 골을 넣기 시작했고, 어시스트도 올렸다. 측면에 꽤 잘 적응했던 것 같다.”

스티븐 제라드가 2005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관해 얘기했나? 한 주에 평균적으로 몇 번 정도? (Tommy Harper, 트위터)
“그다지 많이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늘 야망에 차있었다. 리버풀이 그에게 전부를 의미한다는 건 분명했다. 내가 함께 뛰었던 선수 중 그가 최고였다. 그는 모든 걸 가졌다. 스피드, 놀라운 슈팅, 90분 내내 주력하는 끈기, 그리고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세까지. 타고난 리더였다. 다재다능하기까지 해서 그와 한 팀에서 뛰는 건 정말 환상적이었다. 6년 간 함께 뛰었는데 지금도 종종 연락한다. 2년 전 그의 기념 경기에 초대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함께 뛰었던 훌륭한 선수들에게 그가 감사를 전하는 표시였다.”

2007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 첼시를 만났다. 그때 페널티킥 찬스를 잡았다. 긴장되지 않았나? (Andre Green, 램버스)
“진짜 긴장감 그 이상이었다. 추가 시간에 동점을 만들 뻔한 골을 넣었는데 인정이 안 됐다. 승부차기에서는 결승 진출에만 집중했다. 내가 네 번째 키커로 나서면서 승부를 결정할 수 있었다. 골이 들어간 후 스타디움은 함성으로 꽉 찼다. 아직도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안필드에서 가장 특별했던 밤이다.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를 상대한 경기도 환상적인 경험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당시 첼시를 너무 많이 만났다. 정말로 지루한 경기가 없었다. 불을 지피는 쪽은 늘 조세 모리뉴 감독이었다. 2009년 거스 히딩크가 첼시를 지휘할 때, 우리는 홈에서 1-3으로 졌다. 스탬포드 브릿지에선 4-4 스코어를 만들었다. 엄청난 경기였다. 그 시절 리버풀은 기계같았다.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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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토레스와 루이스 수아레스, 안필드에서 누가 더 훌륭했나? (Rob Kennedy, 더블린)
“그들을 평가하고 선택하기는 어렵다. 나는 전성기의 토레스와 함께 뛰는 특권을 누렸다. 당시 그는 독보적인 선수였다. 자기만의 특별한 플레이 스타일이 있었다. 폭발력있는 움직임을 보였고, 상대 골문으로 향할 때는 치명적이었다. 그를 도울 때면 늘 성공 가능성이 있었다.
루이스는 다른 유형의 환상적인 공격수다. 경기장 안팎에서 좀 다른 성향이다. 경기장 밖에서 그는 정말 침착하고 차분하다. 멋진 사람이다. 경기장에서는 이기기 위해 모든 걸 던진다. 때로는 그런 태도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를 좋게 만들기도 한다. 루이스가 리버풀에 오기 전부터 팀의 관심사를 알고 있었다. 리버풀은 선수로서 루이스가 어떤지 내 의 견을 물었고, 나는 긍정적으로 답했다. 루이스 계약이 임박했을 즈음 그에게 전화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집을 구할 때 조언이라든지, 그와 가족이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경기장에서 우린 정말 끈끈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연대감은 경기장에서 끈끈하게 나타났다. 6개월 동안 전방에서 함께 뛰었는데, 정말 좋은 짝이었다. 많은 골을 합작했고, 팀이 승점을 쌓는 데 기여했다.”

201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해트트릭을 터뜨렸다. 2012 FA컵에선 88분에 결승골을 넣었다. 어떤 순간을 더 좋아하나? (Alex O’Leary, 페이스북)
“둘 다 특별하다. 하나만 고르는 건 어렵다. 해트트릭은 정말 특별한데, 맨유를 상대로 세 골을 넣는 선수는 많지 않다. 리버풀 선수로서 그걸 해냈다. 모두 문전에서 만든 골이었는데, 첫 골은 수아레스의 환상적인 움직임 덕에 넣었다. 10개월 후, FA컵에 맨유를 만나 결승골을 넣었다. 그땐 참 힘든 시기였다. 출전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케니 달글리시가 내게 기회를 줬다. 경기 종료 25분 남기고 교체로 투입됐다. 콥 앞에서 그런 골을 넣었다는 건 정말 환상적이다. “


“안필드에서 첼시를 무너트리는 골을 넣었다. 골이 들어간 후 스타디움은 함성으로 꽉 찼다. 안필드에서 가장 특별했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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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롭의 리버풀에서 뛰었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가? (Josh Hamer, 페이스북)
“한 발 떨어져서 보기엔, 그럴 거 같다. 물론 난 그를 잘 모른다. 훈련 방식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껏 지켜본 바로는, 함께 뛰어도 좋은 감독일 것 같다.”

터키의 축구 문화는 ‘미쳤다’는 명성이 자자하다. 페네르바체에서 겪었던 가장 ‘미친’ 일을 들려달라. (Will Newman, 옥스포드)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생긴 일이다. 경기가 과열됐다. 경기 후 트라브존 팬들이 4시간 동안 경기장 밖에서 버티는 바람에 우리는 라커룸에 숨어 있었다. 무장한 경찰차를 타고 공항까지 갔다. 터키 사람들은 정말 감정적이다. 대부분 긍정적이지만, 때론 부정적인 면도 있다.”

유로 2008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격파했다. 8강에서는 비교적 쉬운 상대인 러시아에 패했다. 정말 끔찍한 기억 아닌가?(Alfie Griffiths, 트위터)
“조별리그 세 경기는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를 상대로 고전했다. 평소 우리 모습이 아니었다. 결국 졌다. 아마도 선수들이 피로에 쌓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실망스러웠다. 나는 하프타임에 교체됐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참 긴 경기가 될 것 같은데, (계속 뛰었다면)내가 결정적인 골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종종 경기 종료 직전에 골을 넣곤 했다. 체력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0 월드컵 결승에서 네덜란드 필드 플레이어 한 명이 퇴장당했다. 스페인에 패한 결정적 이유인가? (Jordan, 페이스북)
“그렇지 않다. 정말 체력 소모가 큰 경기였고, 상대팀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 경기 종료 이후 네덜란드와 스페인 선수가 대화를 나눴던 걸로 기억한다. 상호 존중이었다. 월드컵 결승이었고, 압박감이 어마어마했다. 한 끗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우리가 좀 더 오래 버텼더라면, 승부차기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누가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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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예노르트, 리버풀, 페네르바체에서 살벌한 더비 경기를 치렀다. 가장 뜨거웠던 더비는 무엇인가? (Jun Kalouestian, 페이스북)
“각각 특징이 있다. 머지사이드 더비는 양 팀 팬들이 모두 경기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네덜란드(아약스-페예노르트)에선 그런 경우가 없었다.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의 경기는 더더욱 불가능했다. 더비에서 골을 넣었을 때 리버풀에서 팬들이 기뻐하고 에버턴 팬들이 실망하는 모습도 봤다. 그곳에 있던 처남은 ‘우리가 경기장 나서면 전쟁이 일어날 거야’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밖에 나가보니 붉은 팬들과 푸른 팬들은 섞여있었고, 사고도 없었다. 페네르바체가 갈라타사라이에 이겼을 때는 거의 국가적인 축제 분위기였다. 아약스와 페예노르트전도 비슷하다. 그런 경기에서 골을 넣은 후 경기장이 폭발하는 느낌은 비할 데가 없다.”

성실함의 대명사다. 당신보다 더 열심히 뛰는 선수를 만나본 적 있는가? (Martin Thompson, 올드햄)
“스티븐 제라드는 지칠 줄 모르는 선수였지만, 욘 아르네 리세도 늘 열심히 뛰는 선수였다. 문득 떠오른 선수는 루이스 수아레스나 마스체라노 같은 남미 선수들이다. 그들은 수요일에 A매치를 뛰고 돌아와 바로 훈련하고 또 경기를 치렀다. 그들이 비행기에서 도착하면 바로 합류할 수 있도록 우리 훈련을 맞춘 적도 있다. 그들은 지친데다 시차 적응 문제도 있었지만 불평한 적이 없다. 정신력이 대단했다.”

디르트 카윗의 미래는 어떨까? 감독도 할건가? (Jim Orchard, 체스터)
“감독이 되면 좋겠지만, 선수 생활이 좋았다고 해서 좋은 지도자가 될 거란 보장이 없다. 스스로 확신이 생길 때 도전하겠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기초를 더 다지고 싶다. 로빈 판 페르시가 2011-12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후 3만 파운드(약 4300만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카윗은 최근 페예노르트 U-19팀 감독에 선임됐다)

사진=포포투 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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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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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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