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압박 전술의 유래와 발전사

기사작성 : 2018-04-13 18:03

- 축구의 압박 전술을 창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 그보다 압박이란 도대체 뭘까?

본문


[포포투=Uli Hesse]

(편집자 주: <포포투> 2016년 2월호 피처 기사입니다. 축구 전술에 관심 많은 독자께는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에서 지도자로 변신한 토마스 패트릭 고먼(47, 캐나다)은 1934년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먼 옛날부터 팀들은 상대에 볼을 내줬을 때 자연스러운 본능을 따랐다. 자기 골대를 지키기 위해 후퇴하는 것이다. 고먼은 그 반대로 행동하면 어떨지 궁금했다. 앞으로 달려나가 상대를 압박해서 아예 공격을 시작할 수 없게 한다면?

고먼은 공격수들에게 빌드업하는 상대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돌진하라고 지시했다. 공격수 한 명이 자기 골대 근처에서 볼을 잡은 상대에게 달려들고, 다른 선수들은 패스 길목을 차단했다. 수비수들은 중앙까지 전진해서 부정확한 패스를 가로채거나 어떻게든 빠져나오는 상대 선수의 경로를 막았다.

고먼의 선수들은 당황했다. 자살 행위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한 명이라도 임무에 실패하면 상대는 그들보다 전진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기술과 스피드가 좋은 수비수가 숏패스로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고먼이 선수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모른다. 그렇게 기술 좋은 선수는 수비수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며 안심시켰을지 모른다.

그의 팀이 새 전술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이후 열린 5경기에서 4패를 당했다. 그렇지만 무언가가 바뀌고 있었다. 점점 기계처럼 움직인 고먼의 팀은 사상 최초로 리그 정상에 우뚝 섰다. 이후 그는 “우리는 상대를 강압적으로 밀어붙여 진압했다”고 선언했다.

이 리그의 이름은 미국 아이스하키리그이며 팀은 시카고 블랙호크스다. 고먼 감독은 자신의 전술에 ‘포어체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포어체킹이 리그에서 우승했다. 블랙호크스는 상대 진영에서 내려오는 대신에 계속 돌진했다. 이런 시스템이 기대보다 더 큰 효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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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부터 압박은 뻔한 움직임이다?

80년 뒤 고먼 감독의 혁신적 전략은 잉글랜드 축구계의 화두가 되었다. 단어가 ‘포어체킹’에서 ‘압박(press)’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압박 전술이 갑자기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는 자명하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과 위르겐 클롭 감독이 각각 프리미어리그에서 이 전술로 큰 효과를 보고 있을 뿐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압박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두 감독이 말하는 압박의 정확한 본질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둘이 2015년 10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맞붙기 전, 포체티노 감독은 자신의 압박 스타일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클롭 감독이 보였던 것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포체티노 감독은 클롭 감독의 전술을 “중간 차단”이라 정의했다.

독일에서 클롭 감독은 ‘게겐프레싱’이라 불리는 역압박이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 보자. 독일의 전술 전문가들은 포체티노 감독이 압박이 아니라 ‘포어체킹'을 구현하고 있다고 이해할 것이다. 도대체 뭐가 다른지 당연히 헷갈린다. 해리 레드냅 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압박 관련 질문에 레드냅 감독은 “압박에 관한 온갖 말들은 모두 허튼소리다.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성공하고 싶은 팀은 모두 열심히 뛰어야 한다.”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부분 외에도 레드냅 감독의 반론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압박 전술의 형태 대부분이 선수들에게 많은 움직임을 요구한다. 하지만 압박은 단순히 위치를 이동해가며 빈곳을 메우는 움직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드냅 감독의 말 중에서 가장 옳았던 부분은 ‘압박이 새롭지 않다’라는 주장이다.

아이스하키에서 포어체킹의 효율성은 오래전에 입증되었다. 비슷한 작전을 축구에서 구현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우선 한 팀당 뛰는 선수 숫자가 두 배 많다. 압박당하는 수비수의 선택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체력도 문제다. 아이스하키에서는 선수 교체가 자유롭다. 지금도 축구는 정규시간 내에 선수를 세 명밖에 바꾸지 못한다. 한 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도 못한다.

# “토털풋볼이 아니라 압박 축구라고 불러다오”

1974년 월드컵에 되어서야 고먼 감독의 포어체킹이 축구에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이 뛰는 영상을 찾아보라. 상대에게 후방 빌드업할 틈을 전혀 주지 않는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가차 없이 상대를 압박해 불필요한 패스를 하도록 몰아세운다. 1961년 세상을 떠난 고먼 감독이 위대한 오렌지를 보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네덜란드 대표팀의 스타일은 ‘토탈풋볼’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다. 사실 미헬스 감독 본인은 다른 표현을 선호했다. 서독 월드컵으로부터 몇 년 뒤 미헬스 감독은 “사람들이 토탈풋볼이라는 말을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정한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적었다.

“내 축구를 ‘압박 축구’라고 불러야 타당한 것 같다. 내가 아약스와 1974년 네덜란드 대표팀과 구현하고 싶었던 축구가 바로 압박 축구였다. 볼을 갖지 못했을 때조차 필드플레이어 10명이 모두 전진하는 움직임이 기본이 되는 축구를 창조하고 싶었다. 우리는 늘 앞으로만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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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위너는 미헬스 감독의 압박을 “떼를 지어 사냥하면서 하프라인을 사수한다”라고 묘사했다. 유튜브 영상을 한 번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2~3명이 한꺼번에 볼을 소유한 상대 선수에게 달려든다. 한 명이 상대를 공격하는 동안에 동료들은 패스를 받을 만한 상대 선수 또는 패스 길목을 마크한다. 압박을 당하는 상대는 롱패스를 보낼 수도 없다. 네덜란드의 최종 수비 라인이 하프라인까지 올라와 있는 탓에 볼을 길게 차는 순간 오프사이드가 되어버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헬스 감독이 압박 축구의 창시자가 아니란 점에 동의한다. 그는 단지 압박 축구의 초창기 버전을 완벽하게 구현했을 뿐이다. 걸출한 선수들을 대거 보유했고, 특히 매우 호전적이고 성실했던 요한 네스켄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헬스 감독 본인도 “축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려면 세계 최고 선수가 최소한 3~4명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한 팀은 금방 고장 난다. 고장 나면 바로 재앙에 빠진다”라고 적었다.

압박 축구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1960년대였다. 축구 선수들의 체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저서 에서 조나단 윌슨은 볼을 소유한 선수에게 가차 없는 압박을 가하려면 “체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들이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다. 이전까지 압박 전술이 불가능했던 이유로 추정된다”라고 서술한다.

축구계의 토미 고먼은 과연 누굴까? 이 부분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윌슨은 1964년부터 1970년까지 디나모 키예프에서 압박 축구를 선보였던 러시아 출신 빅토르 마슬로프 감독을 지목했다. 오스트리아 지도자 에른스트 하펠 감독을 원조로 보는 이도 많다. 1970년 하펠 감독은 오프사이드 트랩과 압박 축구로 페예노르트를 유러피언컵 ‘깜짝’ 우승을 일궜다. 하펠 감독이 압박 전술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오스트리아의 한 신문은 “관의 압박은 하펠 감독이 언제나 상상했던 그대로였다”라고 적었다.

# 어디서 압박할 것인가

축구판 포어체킹 전술의 창시자 논란은 여전해도 ‘압박’이라는 표현의 유래는 분명하다. 미국의 또 다른 스포츠인 농구였다. 1950년대에 발전된 농구의 다양한 수비 전술은 전부 볼 소유자에게 집중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프코트 프레스와 풀코트 프레스로 구분된다. 전자에서는 상대가 자기 진영으로 넘어오면 압박을 가하고, 후자에서는 코트 전역에서 압박한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미헬스 감독의 압박은 소위 하프코트 프레스에 해당한다. 바이어 레버쿠젠의 U-19 팀 감독 피터 하벨은 “그라운드의 모든 영역에서 압박 축구를 구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하벨 감독은 압박 전술 분야의 전문가로 유명하다. 2015년 독일 지도자 자격증 발급기관인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의 초청으로 하벨 감독은 주변 압박을 기본으로 하는 훈련 세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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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골문 근처, 그라운드 아주 위쪽에서 압박하는 스타일을 나는 ‘포어체킹’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수비, 미드필드, 공격에서 각각 압박이 있다. 수비 압박은 뒤로 물러나 있다가 우리 골문 주위에서 상대가 공격을 시작하려 할 때만 압박하는 스타일이다. 당연히 공격도 하지만 그때는 상대를 압박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수비 전술도 있다. 패스 경로를 차단하고 상대가 후방에서만 공을 돌리는 데 만족할 수도 있다. 압박이란 볼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시도하는 능동적, 적극적 상황만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압박이란 정확히 감독이 원하는 위치에서 볼을 따내기 위한 작전이다.”

수비와 미드필드, 공격 압박을 각각 하단 차단과 중간 차단, 상단 차단이라 칭하기도 한다. 포체티노 감독이 클롭 감독의 스타일을 “중간 차단”으로 부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토트넘은 상대 진영에서부터 압박하기 시작하지만, 클롭 감독의 전술은 상대가 미드필드 지역까지 올라온 시점에서 압박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100% 정확한 주장은 아니다. 클롭 감독의 도르트문트는 탈압박 기술을 갖춘 팀을 상대하는 UEFA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만 ‘중간 차단’을 구사했다. 객관적 전력이 떨어지는 분데스리가 팀과 만나는 경기에서는 훨씬 높은 위치(상대 진영)에서부터 압박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압박 전술이 왜 2010년대 들어서 재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의 발전과 혁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미헬스 감독의 지적대로 성공적으로 압박하려면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필요했다. 1980년대 밀란의 아리고 사키 감독은 현재 축구 전술의 기본이 되는 ‘볼 중심 수비’ 전술을 퍼트렸다. 팀 전체가 볼의 위치에 집중한다. 볼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 선수들은 그냥 내버려 둔다.

압박과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소유권을 되찾으려고 시도”하지 않으면서 움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압박하기 딱 좋은 상황이 만들어진다. 사키 감독의 전술은 볼을 소유한 상대를 현저히 쪼그라든 공간에 가둔다. 수적으로도 불리하게 한다. 한 번 볼 중심 수비에 통달한 팀은 압박 축구를 구현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선수 3~4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1992년 골키퍼의 백패스 캐치를 금지한 규정 변화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가장 손쉬운 탈압박 수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 프로농구(NBA)도 1954년 공격 시간을 24초로 제한하자 압박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공격 허용 시간이 줄어드는 동안 상대의 압박을 받는 선수는 위험하더라도 시간을 써야 하는 드리블보다 패스를 시도하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 압박을 공격 전술로 승화한 전술 천재

사키 감독 이후 축구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지도자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다. 바르셀로나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압박 축구를 완전히 새로운 경지로 이끌었다. 축구에는 공격하다가 볼을 빼앗겼을 때 몇 초 안에 수비로 전환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논리적 결론은 볼을 되찾은 후에도 같은 통념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이론을 실천했다. 상대 진영에서 볼을 빼앗긴 직후 역습의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공격적 압박을 가했다. 지금껏 팀들은 이 움직임을 수비의 일환으로 여겼다. 바르셀로나의 역압박은 공격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이었다. 볼을 되찾은 지점 자체가 상대의 위험 영역일 때가 많았을 뿐 아니라 이제 막 전진하느라 상대 수비 조직이 깨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조만간 역압박을 시작하기 위해 특정 상황 또는 영역에서 의도적으로 볼 소유권을 내주는 팀이 생길 거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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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과 2012년 분데스리가 우승컵을 안았던 클롭 감독의 변형 압박 축구도 기본적으로 역압박이었다. 정상 작동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형태의 압박 축구에서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비교적 간단하게 주문할 수 있지만, 역압박은 끝없이 반복하는 연습 외에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2013년 <포포투>는 도르트문트의 동계 훈련 캠프를 밀착 취재한 적이 있었다. 당시 클롭 감독은 “본능을 단련해야 한다. 볼을 내준 후에는 바로 되찾아올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하려는 본능이다. 상황을 설정해서 지도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반응이 나올 때까지 본능을 단련한다.”

클롭 감독의 주장이었던 제바스티안 켈의 설명도 이해를 돕는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신호를 받고서야 역압박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다. 모두 감각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축구를 구사하려면 특정한 유형의 선수가 필요하다. 축구는 아주 치열해졌다. 그래서 뛰어난 수준의 전술 이해력뿐 아니라 끊임없이 달리며 볼을 노리겠다는 의지를 지닌 선수들이 필요하다.”

하벨 감독도 동의한다. “압박은 치열하다. 거칠어 보일 수 있고 단거리 스프린트도 잦다. 이렇게 뛰어야만 한다며 전통적인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를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나는 페널티박스 안에서 골을 넣으려는 사람이지 여기저기 상대를 쫓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불평을 들을 수도 있다.”

압박 전술 대세를 거스르는 팀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압박 축구는 계속될 것이며 또 진화할 것이다. 1934년 토미 고먼 감독은 ‘다른 팀들도 포어체킹을 쓰게 될 거 같은가?”라는 질문에 짧게 답했다. “해야만 할 거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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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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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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