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라르손, ‘즐라탄과 메시가 어렸을 땐...’

기사작성 : 2018-05-10 17:23

- 임대 전설로만 기억하면 섭섭하다
- 스웨덴에서 태어나고 셀틱에서 성장해 유럽을 정복한 사나이
- 즐라탄 이전에 라르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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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Chris Flanagan]

축구팬들은 대개 축구 스타를 통해 그의 조국을 소개받는다. 이를테면 요즘 팬들에게 스웨덴의 ‘연관 검색어’ 1순위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다. 좀 더 옛날로 돌아가면 주인공이 달라진다. 즐라탄 이전에 헨리크 라르손의 나라였다. 라르손과 즐라탄이 함께한 2002월드컵에서 스웨덴은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나이지리아가 속한 ‘죽음의 조’를 통과하고 16강에 진출했다.

라르손에게 듣는 ‘즐라탄 어린 시절’ 이야기가 흥미롭다. 바르셀로나 시절 1군에 막 합류한 메시에 관한 썰은 덤이다. 현역 시절 트라우마가 된 ‘다리 골절’에 관한 기억도 풀어놓았다. 현역에서 은퇴한지 5년이 넘었지만, 그에 관한 팬들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이어지는 질문 보따리가 그 증거다.

자라는 동안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선수가 있다면? (사무엘 로렌스-조슈아, 런던)
“펠레의 비디오를 갖고 있었다. 그 영상을 정말 자주 봤다. 하교 후 운동하러 가기 전에는 꼭 봤다. 나는 그를 두어 번 만났다. 1998년과 그 몇 년 전쯤이었다. 사진도 같이 찍었다. 당시 내 나이가 41, 42세였는데도 말이다!”

회가보리 유소년 팀 입단에 문제가 있었다. 축구를 그만둘 뻔했다던데? (안데스 카를손, 란스크로나)
“절대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단지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늘 작았다. 또래 친구들보다 성장이 느렸다. 그러나 그만두기엔 축구를 너무 사랑했다. 대다수 사람은 장애물 앞에서 그냥 되돌아간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계속 도전하면, 전진할 기회가 생긴다. 내가 18세 때 벤피카 입단 테스트를 봤다. 스벤-고란 에릭손이 감독이었다. 스물한 살에 그곳에서 채소를 트럭에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내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 그때, 헬싱보리에서 나를 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나머지는 다 지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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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기자를 수영장으로 밀쳐버렸다던데, 사실인가?(스티브 맥킨타이어, 해밀턴)
“맞다!(웃음) 지역지 기자였는데, 농담을 주고받던 중이었다. 그렇다고 내 의지는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이 나더러 기자를 밀어버리라 했다. 장난으로 말이다. 그는 옷을 입고 있었다.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기자는 내가 유망주였을 적 나를 비판한 적이 있는데, 수영장에 밀었기 때문은 아니다. 요즘 그와 그 시절 얘기를 하며 웃곤 한다.”

1994 월드컵에서 스웨덴이 3위에 올랐다. 당신이 대표팀에 처음 승선한 대회였다. 스웨덴 사상 최고의 팀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카를 존스, 브리스톨)
“현 시점으로 보면 그렇다. 월드컵이 다가올 때마다 사람들은 그때 얘기를 꺼낸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어릴 때부터 꿈꿨던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3위로 대회를 마무리한 건 정말 환상적이었다. 3/4위전에선 득점한 것도 엄청난 기분이었다. 8강에서는 루마니아와 승부차기를 겨뤄 골도 넣었다. 정말 짜릿했다. 긴장도 됐다. 선수는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 더 좋은 선수로 만들기도, 더 무너뜨리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다. 말년에 나는 ‘음, 페널티킥을 차는 것보다 압박감은 느끼는 상황은 없어’라고 과거를 돌아볼 수 있었다.”

셀틱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미카엘 키어니, 트위터)
“너무 많다! 레인저스의 리그 10연패를 저지한 순간, 트레블을 달성한 날, UEFA컵 결승전에 진출한 순간 등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셀틱에 처음 입단했을 때 팀에 관해 잘 몰랐다. 나 포함 7명이 같이 입단했는데, 우리는 어떤 부담감도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레인저스의 10연패 도전을 막아야 하는 상황과 마주했다. 10연패는 리그 역사상 최초였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잘 몰랐다. 왜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우리가 그곳에 더 오래 있었더라면, 레인저스의 10연패를 저지해야 할 이유를 알았더라면 경기는 더 쉽게 풀렸을 것이다.”

현역 시절 만났던 감독 중 최고는 누구인가?(린제이 해밀턴, 스털링)
“훌륭한 감독을 많이 만났다. 빔 얀센, 마틴 오닐, 프랑크 레이카르드, 알렉스 퍼거슨 등이다. 마틴은 모두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능력이 있었다. UEFA컵 결승에서 리버풀을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경기장으로 나가기 직전이었다. 우리는 1차전에서 1-1로 비겼다. 그래서 안필드에서 반드시 골을 넣어야 했다. 그가 경기 전 우리에게 해준 말은 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나는 속으로 ‘젠장, 후회 없이 뛰어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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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리옹전에서 부상당했던 순간 사진은 끔찍했다. 다리가 두 동강 나 덜렁거리는 사진이었다. 실제 느낌도 그랬나? (데몬 마인, 페이스북)
“그 사진이 다리 모델로서 내 가능성을 망가뜨렸다. 늘 말하지만 내 다리는 건재하다!(웃음) 지금도 내 다리에 티타늄이 박혀있다. 다리가 부러졌을 당시 나는 곧바로 두 가지를 행했다. 먼저, 주심이 네덜란드인이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어로 그에게 말했다. ‘내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아요.’ 일어섰을 때 다리가 이상하게 매달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라운드에 드러누웠다. 유럽 챔피언십에 나갈 때까지 몇 개월이 남았나 계산했다. 그땐 10월이었고, 유로 2000은 다가오는 여름이었다. 나의 목표였다. 다행히 나는 토너먼트부터 합류해 뛸 수 있었다. 그러나 알아둬야 할 게 있다. 1999년에 다리 부러진 게 1987년이나 1979년보다 차라리 낫다. 그때 부러졌다면 선수 생활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다리 부상에서 회복한 후 기량이 더 좋아졌다. 비결이 뭔가?(케빈 체리, 에든버러)
“내가 더 나은 선수로 복귀할 수 있도록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다. 수술해준 빌 리지, 피지오 브라이언 스콧과 케니 맥밀란, 마사지사 그래이엄 퀸, 피트니스 강사 짐 핸드리까지. 가끔 일상 속에서 고통을 받을 때가 있다. 화장실에 가는 지극히 평범한 행위에서조차 말이다. 그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어떤 기분인지 모를 거다. 내가 더 오기를 갖게 한다. 축구할 때 모든 걸 쏟아부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부상 직후 첫 시즌, 유럽 골든부츠상을 수상했다. 얼마나 뿌듯했나?(벤 시민, 맨체스터)
“스칸디나비아 출신으로는 처음이었다. 나는 리그 35경기서 53골을 넣었다. 정말 자랑스러웠다.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크리스 서튼, 톰 보이드, 애런 톰슨, 디디에 아가테, 레지 블링커, 재키 맥나마라, 루보 모라브칙까지. 그들이 내 영광의 일부였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파트너로 크리스 서튼을 꼽은 적이 있다. 특히 영리한 상대를 만날 때면 더더욱 그렇다고. 사실인가? (션 암스트롱, 노스실드)
“맞다. 크리스와 나는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그가 나를 보호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의 움직임을 잘 이해했다. 관계도 좋았다. 마치 가족같았다. 우린 지금도 사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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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 머리를 했을 때, 머리에 꼬였던 것들 중 가장 이상했던 게 무엇인가? (제임스 무어, 런던)
“수비수들! 그들은 내 머리를 잡으려고 했다! 레게 머리는 유지가 쉽다.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를 살짝 건드려주면 끝이다.

혓바닥 내미는 셀러브레이션은 왜 한 건가? (아민 라바니, 글래스고)
“우연히 그랬다. 경기 후에 사진을 봤다. ‘이러면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모들로부터 편지를 받기 시작했다. 그들의 자녀가 혀를 내밀고 뛰어다닌다고 말이다. 내게 화를 냈다. 난 그 편지들을 견딜 수 없어서 다음부턴 그 셀러브레이션을 하지 않았다.”

2002월드컵때 스무 살 즐라탄과 함께 뛰었다. 그의 첫 메이저 대회였다. 그때도 즐라탄은 으스댔나?(지미 페어베어른, 억스브리지)
“그때는 더 순진했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성격이다. 그는 기술이 좋았지만 모든 걸 발휘하진 못했다. 당시 그가 어떻게 하면 훌륭해질 수 있는지 질문 받은 적 있다. 나는 그가 모든 걸 가진 만큼 그가 해내기에 달렸다고 답했다. 지금 그는 세계적인 공격수가 됐다. 아니, 수년간 우뚝 섰던 스트라이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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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UEFA컵 결승에서 포르투에 패했다. 그날이 최악의 순간이었나?(안드레 프레이타스, 기마라이스)
“맞다. 내가 두 골을 넣었지만 우린 우승하지 못했다. 우승하기 정말 힘들었다. 셀틱에서 우승했다면 우리와 팬들에게 정말 특별한 의미가 됐을 것이다. 당시 티켓도 없이 원정 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세비야에서 우리가 우승하는 순간 그저 그곳에 함께하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감정이 북받쳤는지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꿈을 이뤄주지 못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그 포르투 팀이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했다. 우리가 그때 정말 좋은 팀을 만났다는 방증이다.”

셀틱을 떠나 바르셀로나에 합류했다. 결정이 어렵진 않았나?(존 보이드, 덤프리스)
“정말 어려웠다. 그렇지만 내가 몇 경기 득점을 못하면 언론들은 ‘더는 예전의 라르손이 아니다’라고 쓸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정점에 있을 때 이적하고 싶었다. 계약 기간이 1년 남았지만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 전에 셀틱과 계약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오해를 사긴 싫었다. 30개 이상 클럽에서 관심을 보였다. 나는 스페인이 끌렸다. 따뜻한 곳에서 뛰는 게 꿈이었다. 강등권에서 싸우긴 싫었다. 그래서 딱 중간 정도 되는 팀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에서 오퍼가 왔다. 그래서 응답했다. ‘좋았어!’라고.”

2006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아스널에 졌다. 티에리 앙리가 말했다. “사람들은 (사무엘)에투와 호나우지뉴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헨리크 라르손처럼 차이를 만들어내는 선수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도움을 두 개 올렸다.” 이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조니 리치, 프레이져버그)
“앙리 같은 선수에게 그런 말을 들어 영광이었다. 경기를 뒤집는 데 기여하는 건 굉장한 기분이다. 에투와 줄리아노 벨레티가 득점했을 때 난 ‘됐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챔피언스리그를 꿈꾸는 어린 아이처럼 말이다.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호나우지뉴는 당신을 자신의 우상이라고 표현했다. 그와의 관계는 어땠나? (앤디 에반스, 해리퍼드)
“그는 매일 아침 ‘헤이, 아이돌! 아이돌!’이라고 부르며 농담을 던졌다. 정말 좋았다. 그라운드 위와 다를 바 없었다. 그가 바르셀로나 같은 팀에서 느꼈을 부담감을 이해해야 한다. 매일 아침 만면에 큰 미소를 지으며 출근할 수 있었던 그를 존경한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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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메시가 바르셀로나 1군에 합류했을 때, 그가 특별한 선수가 될 거라고 예상을 했나? (짐 새비지, 트위터)
“프리시즌에 아시아 투어를 떠난 적이 있다. 그때 지오반니 판 브롱크호르스트에게 “쟤 누구야?”라고 물었던 게 기억난다. 훈련장에서 그를 보고는 ‘와우’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침착한 컨트롤, 밸런스 등 이미 모든 걸 갖춘 선수였다. 그때는 좋은 선수였다면 지금은 위대한 선수가 됐다. 당시 그가 지금 하는 모든 기술을 선보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훈련장에서 그를 볼 때면 ‘헐, 미쳤어’라고 생각하곤 했다.”

바르셀로나를 떠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자비에 토트, 타라고나)
“더이상 벤치를 지키긴 싫었다. 몇 년 더 잘 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기장에 나가고 싶었다. 스웨덴으로 돌아온 이유다. 당시 내 아들이 열 살이었는데, 그에게도 고향에서 즐길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내 판단이 옳았다. 나는 헬싱보리에서 스웨덴컵을 안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아들이다. 여기가 그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그는 친구들을 사귀었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아들 요르단도 축구선수다. 레인저스가 그를 원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가 레인저스로 간다면, 존중할 것인가? (스티븐 오케인, 두블린)
“그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442: 셀틱은 어떤가?)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그가 훌륭한 선수라면 기회를 얻을 거다. 그는 유망하다. 확실한 건, 그는 스웨덴보다 셀틱에서 훨씬 더 큰 압박감을 느끼게 될 거다. 그가 헬싱보리에서 보낸 첫 시즌은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내 아들로서 큰 부담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겨낼 만큼 강인함도 갖추고 있다.”

2007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개월을 보냈다. 후회는 없나? (폴 케이, 프로드샴)
“내 축구인생에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부분이다. 남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도 얻었을 테고, 한 시즌 더 뛰었을 거다. 그러나 헬싱보리와 계약 중이었다. 계약할 땐 그런 점을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모든 부분에서 프로다웠다. 내 조카들의 세례식에 참석해야 했을 때, 팀에서 경기 후 전용기를 내줬다. 맨유는 소속 선수들을 정말 잘 관리하는 팀이었다.”

당신이 넣었던 최고의 골은 무엇인가? (안소니 무어, 런던)
“홈에서 레인저스를 상대로 넣은 골이다. 내게 정말 특별했다. 베르트 콘터만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냈다. 스테판 클로스가 나타나 공을 빼앗았지만, 다시 내가 오른발로 그 공을 뺏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때의 골장면을 많이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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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에서 성과를 많이 냈다. 그런데, 그곳에 지나치게 오래 있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톰, 페이스북)
“그렇지 않다. 셀틱 시절 나는 최고의 대회에 참가했다. 챔피언스리그, UEFA컵, 유로, 월드컵 등을 경험했다. 대회마다 골을 넣었다. 그리고 35세가 되었을 때, 내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맨유에서 뛰는 걸 보여줄 수 있었다. (442: 바르셀로나와 맨유에서 뭔가 증명하고 싶은 게 있었나?) 아니다. 2002년에 월드컵에서 3골을 넣고 인정받은 것처럼, 유로2004에서 더 나은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 됐다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와 계약했더니 사람들이 갑자기 ‘어쨌든 나쁜 공격수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를 봤다면 내가 꽤 괜찮은 공격수라는 걸 알았을 텐데 말이다.”

아약스-페예노르트, 셀틱-레인저스, 바르셀로나-레알마드리드 등 세계에서 치열하기로 유명한 더비전을 모두 경험했다. 가장 열정적이었던 라이벌전을 꼽는다면? (윤 칼루스티안, 페이스북)
“당연히 올드 펌 더비. 소음이 진동한다. 그라운드에서 2, 3미터 떨어지면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442: 엘 클라시코보다 더하다고?) 그렇다. 올드 펌은 빡빡하지만, 승리하면 정말 기쁘다. 나는 질 때보다 이길 때가 더 많았다. 30경기에서 15골을 넣었는데, 꽤 좋은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셀틱 감독이 될 기회가 온다면? 그곳에서 당신이 쌓은 명성이 무너질 수도 있을 텐데.(안소니, 트위터)
“내가 축구계에 계속 있는 한, 셀틱과 연결되어 있을 거다. 3년 전에 셀틱이 내게 감독직을 제안했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헬싱보리가 기복을 겪을 때였다. 그것도 감독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상황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지도자로서의 목표는 선수로서 가졌던 열망과 같다. 가능한 좋은 감독이 되고 싶고, 빅리그의 좋은 클럽에 합류하고 싶다.”

사진=포포투 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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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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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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