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스트라이커' 앙리의 시즌 20도움 전설

기사작성 : 2018-05-10 18:05

- 단일 시즌 도움 20개를 기록하는 최전방 스트라이커
- 아스널 전성시대의 슈퍼스타 티에리 앙리는 어떻게 이타적 선수가 되었는가

본문


[포포투=Thore Haugstad]

축구계에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기록들이 간혹 있다. 쥐스트 퐁텐은 1958년 월드컵에서만 혼자 13골을 넣었다. 1994년 AC밀란은 리그 34경기에서 36골만 넣고도 우승을 차지했다. 프리미어리그에도 그런 놀라운 기록이 있다. 2002-03시즌 아스널의 티에리 앙리가 작성한 단일 시즌 20도움이다.

앙리의 역대 최다 도움 기록은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영국 축구에서는 ‘도움’이란 기록 자체가 크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프리미어리그는 2017-18시즌부터 최다 도움자를 시상(프리미어리그 플레이메이커 어워드)하기로 했다.

앙리에 가장 근접했던 기록은 2015-16시즌 메수트 외질의 도움 19개다. 프랭크 램파드(2004-05), 세스크 파브레가스(2014-15), 케빈 더브라위너(2016-17)가 도움 18개로 역대 공동 3위에 해당한다. 앙리보다 겨우 1, 2개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잘 보라. 이 선수들은 모두 플레이메이커들이다. 도움을 주 임무로 삼는다.

앙리는 한 번도 플레이메이커로 뛴 적이 없었다. 아스널과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운 스트라이커다. 프리킥도 직접 노리는 상황이 아니면 거의 찬 적이 없다. 앙리의 도움 20개는 전부 오픈플레이에서 나왔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역사상 어떤 골잡이도 앙리의 도움 기록과 비교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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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잡이만 주목받는 불편함

앙리의 축구 철학은 모나코 시절 길러졌다. 유소년팀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였던 앙리는 벵거 감독 아래서 레프트윙으로 1군 경기에 데뷔했다. 왼쪽 측면을 따라 달리면서 브라질 골잡이 소니 안데르송에게 패스를 제공하는 역할이었다. 영국 축구 전문지 <블리자드> 인터뷰에서 앙리는 “원래 나는 골잡이 재능을 타고 나지 않았다. 프로 생활도 윙어로 시작하면서 크로스에 열중했다. 덕분에 패스하는 동료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앙리는 크로스 능력을 키우는 동시에 명성의 작동 원리도 배울 수 있었다. 앙리가 아무리 활약해도 결국 주연배우는 안데르송이었다. 과거 <포포투> 인터뷰에서 앙리는 “골을 넣는 선수에게만 집중하는 축구의 특징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세 명을 제친 뒤에 완벽한 크로스를 넣는다. 골잡이는 발만 갖다 대 골을 넣고는 헤드라인을 독차지한다.”

1999년 8월, 앙리는 유벤투스 악몽을 접고 아스널로 이적했다. 데이비드 딘 당시 부회장은 앙리에게 역대 최다 득점자인 이안 라이트의 득점 영상을 보여주며 “이게 네가 해야 할 일이야”라고 말했다. 앙리가 첫 8경기에서 골을 넣지 못하자 딘 부회장은 앙리가 라이트의 기록을 깰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앙리는 첫 시즌과 두 번째 시즌에 리그에서 각각 17골을 넣었다. 세 번째 시즌이 되자 앙리는 24골을 터트리며 팀의 우승과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르고 시작된 2002-03시즌 아스널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앙리는 뤼트 판 니스텔로이와 정면대결을 펼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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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골잡이, 그 이상

1년 전 맨유에 합류한 판 니스텔로이는 한 골 차이로 득점왕을 놓쳤다. 문전에서 쉽게 골을 넣는 골잡이의 전형이었다.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은 자서전에서 “내가 본 골잡이 중에서 가장 이기적이다”라고 정의했다. “빌드업 플레이 관여, 경기당 뛴 거리, 스프린트 횟수 등에 전혀 관심이 없다. 판 니스텔로이의 유일한 관심사는 본인의 득점 수였다.”

2002-03시즌 초반 6경기에서 앙리가 4골을 넣는 동안 판 니스텔로이는 1골에 그치면서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앙리는 30m 초장거리 슛과 강력한 프리킥 득점을 연출했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컬링슛으로 상대 수비를 무력하게 했다. 리버풀 레전드 제이미 캐러거는 “앙리가 전력질주를 하면 오토바이를 탄 선수를 쫓아가는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11월 중순 아스널이 리그 선두에 올랐고, 앙리는 득점왕 라이벌들을 가볍게 제치는 것처럼 보였다. 판 니스텔로이, 앨런 시어러, 마이클 오언, 올레 군나르 솔샤르 등의 경쟁자들은 모두 동료의 패스가 필요한 골잡이들이었다. <가디언> 인터뷰에서 앙리는 “나는 단순한 골잡이가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오언이나 판 니스텔로이와 같은 부류로 생각하는데, 나는 타입이 전혀 다른 선수다”라고 말했다.

# 조지 웨아 스타일

앙리가 언급하는 닮은꼴은 호마리우, 호나우두, 조지 웨아였다. <블리자드> 인터뷰를 보자. “이런 선수들은 자기 진영 페널티박스 근처까지 내려가서 흘러나온 볼을 잡는다. 측면으로 이동해 빠르게 드리블로 치고 들어감으로써 상대의 중앙 수비를 흩어트린다. 그렇게 뛴 선수가 누가 있었는가? 게르트 뮐러? 파올로 로시? 전부 아니다.”

앙리는 정확히 그렇게 뛰려고 했다. 상대 센터백들과 거친 몸싸움을 벌이기보다 중원 혹은 왼쪽 측면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볼을 주웠다. 4-4-2 전술에서 데니스 베르캄프가 2선에 처져 뛴 탓에 아스널에는 마치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앙리는 정해진 위치 없이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문전에 없으면 좌우 측면에서 양발로 크로스를 올렸다. 레프트윙 로베르트 피레와 스트라이커 실뱅 윌토르가 전담하는 영역에서 자유롭게 뛰었다. 두 선수도 원래 앙리가 있어야 할 문전에 진입해 공격을 마무리했다. 2002-03시즌 피레와 윌토르는 나란히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먹튀’의 대명사 프란시스 제퍼스까지 앙리의 도움으로 두 골을 기록했을 정도다.

앙리는 “가끔 득점보다 어시스트를 기록할 때가 더 짜릿했다. 경기 전 마음가짐도 ‘오늘 골을 넣겠어’가 아니라 ‘오늘 골을 도와야지’ 쪽이었다. 내가 두 골을 넣고도 2-4로 패한다면 정말 화가 치밀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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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라이커가 갖춰야 할 미덕: 이기심

크리스마스 징글벨과 함께 맨유가 눈을 떴다. 박싱데이(12월 26일) 미들즈브러전 승리로 맨유는 리그 6연승을 달렸고, 판 니스텔로이는 5경기 4골로 폭발했다. 폴 스콜스는 “경기에서 이긴 날도 본인(판 니스텔로이)이 골을 넣지 못하면 팀 버스 맨 뒤에 앉아 혼자 쓴웃음을 보였다. 판 니스텔로이는 앙리를 최대 라이벌로 여겼다”라고 회상한다.

아스널은 서서히 내려갔다. 3월 초까지 유지되던 승점 8점 차이를 맨유가 갈아먹었다. 이후 맨유는 리그에서 무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판 니스텔로이는 리그 8경기 연속 득점 행진을 벌였고, 앙리는 4경기 무득점 침묵에 빠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판 니스텔로이의 ‘킬러 본능’을 칭찬하는 반면 앙리는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자신보다 더 좋은 위치를 점한 동료를 찾느라 바쁘다고 꼬집었다. 앙리 본인은 동료들도 자기처럼 뛰길 바라는 실수도 저질렀다.

“특별한 골잡이로 만들어줄 이기심이 내게는 없을지도 모른다. 측면에서 주로 뛰면서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패스를 하지 않는 동료를 보면 화가 난다. 좋은 축구는 깨지기 쉽다. 한 명만 리듬을 깨트려도 팀플레이 전체가 무너진다. 집에 가서도 경기 중 패스를 하지 않았던 녀석 생각에 화가 식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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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일 놈의 이타적 플레이

리그 마지막 2경기를 남기고 맨유는 아스널을 추월해 우승을 확정했다. 이제 득점왕 타이틀만 남았다. 판 니스텔로이는 홈에서 열린 찰턴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해 리그 24골을 기록했다. 아스널과 앙리(23골)는 하이버리에서 사우샘프턴을 상대했다. 앙리는 “사우샘프턴전을 앞두고 스스로 ‘판 니스텔로이를 따라잡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마음먹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내 본인의 습성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이날 아스널은 6-1 대승을 거뒀지만, 앙리는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그 대신에 나란히 해트트릭을 달성한 피레와 저메인 페넌트의 골을 도왔다. 앙리는 “그 경기에서는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 전체를 존중하는 편이 내게는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리그 최종전에서 앙리는 선덜랜드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어 판 니스텔로이와 득점 동률을 이뤘다. 프레디 융베리의 추가골을 도왔다. 경기 종료 12분 전, 앙리가 역습을 시도했다. 직접 욕심을 부려도 되는 상황에서 앙리는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융베리에게 패스를 보냈고, 도움을 기록했다. 같은 시각, 에버턴전에서 판 니스텔로이는 한 골을 보태 앙리에 한 골 앞서기 시작했다.

경기 종료 2분 전, 앙리는 또 다른 득점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또’ 융베리에게 패스를 보냈다. 판 니스텔로이는 25골로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융베리는 리그 최종전에서 아스널 첫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기쁨을 누렸다. 앙리는 도움 20개를 작성한 비공식 도움왕으로 남았다.

“나는 그렇다. 내가 골을 넣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동료에게 패스를 보내는 것이 축구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골을 넣을 만한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패스를 보내는 일. 동료와 함께 나누는 것이다. 같이 뛰는 친구들의 눈에서 기쁨을 보는 것이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 모두 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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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ore Haugst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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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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