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부폰이 말하는 ‘이탈리아-유벤투스’ 영욕사

기사작성 : 2018-05-18 13:05

- 유벤투스 떠나는 잔루이지 부폰
- 위대한 골키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들이 묻고 부폰이 답한다

본문


[포포투=Matt Barker]

‘레전드’ 잔루이지 부폰이 17년 간 함께했던 유벤투스를 떠난다. 긴 기간 동안 유벤투스와 이탈리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뛴 경기만 1000경기가 넘는다. 유벤투스 소속으로 9개의 리그 타이틀과 5개의 각종 우승컵, UEFA컵을 들어올렸고 아주리 일원으로는 월드컵 우승을 견인했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부폰의 시간은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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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가 살아있는 전설을 만났다. 사실 그와 단독으로 인터뷰를 가졌던 시점은 무려 4년 전, 2014년 여름이다. 유벤투스에서만 500경기 이상 출전한 때였다. 선수로서 이미 경지를 넘어선 그가 이후로도 몇 시즌을 더 ‘슈퍼맨’으로 활약해왔는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보는 인터뷰가 낯설지 않은 건 베테랑이 갖고 있는 품격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최악의 스캔들인 칼치오폴리부터 2006월드컵 우승의 영광까지 한 호흡에 풀어낼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은퇴를 번복한 그가 앞으로 풀어갈 이야기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골키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팬들이 묻고 부폰이 답한다.

미드필더로 축구를 시작했다는 게 사실인가? 그럼 어쩌다 키퍼가 된 것인가? (Ryan Stone, 이메일)
“사실이다. 아마도 모든 꼬마들이 골문을 지키는 것보다는 득점을 동경하며 축구를 시작하지 않나 싶다. 스트라이커도 해 봤다. 잠깐이었지만, 그것도 잘했고 재밌었다. 골키퍼가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아버지가 날 약간 밀어붙이긴 했지만, 나도 카메룬의 토마스 은코노 같은 골키퍼가 되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은코노는 1990월드컵을 빛낸 위대한 팀 카메룬에서도 아주 중요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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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부친은 유럽주니어육상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했고, 모친은 투포환 선수였다. 축구공 던지는 법을 모친에게서 배웠나? (Ben Driver, 이메일)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모두 운동선수였다. 투포환이 아니라 원반이었다. 어머니는 이탈리아 기록 보유자였다. 아버지도 정말 뛰어난 육상선수였다. 정말이지 우리 가족의 핏속에는 스포츠가 흐른다. 그게 성장기에 도움이 됐느냐고? 그런 것 같다. 아마도 그런 환경 덕분에 스포츠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건 중요하다.”

어린 시절의 영웅은 누구였나?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역대 최고의 골키퍼는?(Fiona Makepeace, 이메일)
“난 카메룬의 경기를 지켜보는 게 참 좋았다. 이탈리아 다음으로 좋아하는 팀이 바로 카메룬이었다. 그중에서도 아까 말한 은코노와 로저 밀라에 대한 관심이 컸다. 축구 말고는 테니스를 좋아했다. 선수 중에선 이반 렌들, 스테판 에드베리, 페트릭 라프터 등을 좋아했다.”

당신의 프로 데뷔전 상대가 웨아, 바조, 사비체비치가 있던 AC밀란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때도 지금처럼 자신만만하고 우렁차게 호령했나?(Massimo Robinson, 이메일)
“맞다. 근사한 날에 멋진 경험을 했다. 그건 수년간 내가 힘써 왔던 꿈의 실현이었다. 그리고 난 좋은 경기를 펼쳤다.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다(*경기 결과는 0-0). 자신 있었다. 원하던 곳에 섰으니까. 수비수들에게 호령했느냐고? 그랬던 것 같다. 그랬길 바란다. 그게 골키퍼의 임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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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당신은 유벤투스에 입단하면서 4500만유로라는 엄청난 이적료를 받았다. 그 액수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은? (Leon Adams, 이메일)
“호들갑을 떨 만큼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내심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유벤투스는 내 경기를 보러 와서 ‘젠장, 부폰 이 녀석은 정말 물건이구나’라고 판단해 거금을 쓴 것이다. 만약 내 이적료가 500만유로 정도였다면 그렇게 집중 조명을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가격은 시장이 결정한다. 좋은 골키퍼는 강팀의 필수 요소다. 뛰어난 스트라이커만큼이나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렇게 비쌀 때도 있다. 유벤투스가 그때 500만유로를 불렀더라도 사인했겠느냐고? 음,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됐다면, 파르마는 나처럼 행복해하지 않았겠지.”


“좋은 골키퍼는 강팀의 필수 요소다. 뛰어난 스트라이커만큼이나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과거 심각하게 우울증을 앓아서 경기장에 설 수 있을지 걱정하는 정도였다고 알려졌다. 그런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였나? 당신은 왜 쉬지 않았나? (Graham Dowling, 이메일)
“한동안은 내 가슴속에만 담아 둬야 했다. 일단 그런 상태에 대해 밝힐 기회가 정말 없었다. 그걸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주 서서히’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아주 친한 사람들에게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내게 문제가 있고, 해결 또는 치료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쉬지 않았던 건, 팀 동료들과 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막중한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당시 유럽선수권을 앞두고 있었다. (FFT: 우울증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나?)그렇게 생각한다. 심리학자를 만나기도 했다. 돌아보면 가까운 사람들의 격려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됐다.”

2006년 칼치오폴리 사건으로 유벤투스의 챔피언 타이틀이 박탈됐다. 어느 정도 충격이었나? 그 일이 계기였는지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어느 때보다 굳게 단합했던 것 같다. 승부 조작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당시 이탈리아가 월드컵에서 우승했을까? (John Kerridge, 켄트)
“선수로서 말하자면, 그 모든 영예를 빼앗긴 것은 엄청 충격적이었다. 힘들게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만나게 될 시간 가운데 큰 덩어리가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유죄판결이 내려지면서 세상의 관심이 우리에게 집중됐다. 그 상황에서 월드컵을 치르러 독일에 갔다. 이래저래 민감했다. 독일에서 뭔가 큰 걸 성취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팀 내 사뭇 결연한 분위기가 형성된 건 맞다. 하지만 우리가 대회 정상에 오르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렇다면 칼치오폴리가 이탈리아의 우승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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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는 최고의 선방은? 2006월드컵 결승 연장전에서 한 손으로 막은 지단의 헤딩슛 아닌가?(Dominic Howe, 트위터)
“최고라… 음… 지단의 슛? 그게 아마 내 선수 생활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세이브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최고였는지는 모르겠다. (얼굴을 찡그리면서)아… 진짜 모르겠다. 지단의 슛을 막아 낸 그 세이브가 가장 중요했던 것은 확실하다.”

유벤투스가 세리에B로 강등됐을 때 팀을 떠나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파트리크 비에라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비롯한 동료들이 우르르 이적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 2부리그 생활은 어떻던가, 즐거운 구석이 있었나? (Ollie, 트위터)
“(웃으며)아니, 쉬운 결정이었다. 클럽이 내게 거금을 부었으니까! 농담이다. 당연히 그 반대였다. 세리에B로 가는 게 사리에 맞는 결정은 아니었다. 머리로 내린 판단도 아니었다. 가슴이 시킨 일이었다. 많은 동료가 다른 길을 갔다. 그건 그들의 권리였다. 살면서 내리는 결정으로 인해 힘들어질 수 있다. 그 결정이 내 삶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나답게 살고 싶다. 유벤투스 잔류는 나다운 선택이었다. 세리에B는… 경험해 볼 만했다. 즐겼다는 건, 바른 표현이 아니다. …‘경험할 만했다’로 마무리 짓겠다.”


“세리에B로 가는 게 사리에 맞는 결정은 아니었다. 가슴이 시킨 일이었다… 유벤투스 잔류는 나다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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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 누구도 두려워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일대일로 맞붙기 싫은, 혹은 싫었던 선수가 혹시 있나?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Evanesce Insomniac, 트위터)
“브라질의 호나우두. 절대적인 최고의 선수이자 필적할 대상이 없는 일인자였다. 그는 정말이지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웠다. 이탈리아 선수 중에서 뽑아 달라고? 아, 그러면 로베르토 바조.”

안토니오 콩테처럼 긴 세월 함께 뛴 동료를 감독으로 모시는 건 이상하지 않던가? (David Robinson, 브롬리)
“전혀. 왜냐하면 그는 감독이 되기 전에도 늘 감독 같았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에도 카리스마가 대단했고 늘 모범적이었다.”

콩테와 파비오 카펠로 중 누가 더 자주 화를 내는가? 안드레아 피를로의 말에 따르면 콩테도 호통치는 횟수가 잦은 것 같지만, 카펠로가 한 수 위 아닐까 싶은데. (Liam Towney, 이메일)
“콩테는 그 무엇도 마음속에 저장해 두지 않는다. 화가 났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 자리에서 풀어 버려야 안정을 찾는 유형이다. 카펠로가 더 심할 것 같다고 했나? 아니다. 콩테가 한 수 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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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발로텔리가 유로2012 결승전 패배를 유벤투스 선수들 탓으로 돌렸다는 게 사실인가? 격노한 당신은 스페인과의 그 경기에서 패한 뒤 발로텔리와 라커룸에서 한판 붙었다던데? (Trevor Jenkins, 이메일)
“그가 뭐랬다고? 몸싸움? 그런 일, 전혀 없었다. (웃으며)속으로야 무슨 생각이든 할 수 있지만, 저런 말을 실제 입 밖에 낼 순 없을 것이다, 안 그런가?”

당신처럼 열정적으로 국가를 부르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눈을 감고서 무슨 생각을 하나? (Luca Antonoli, 이메일)
“국가대표로 뛰게 돼서 행복하고 영광이라는 생각, 그리고 난 정말 행운아라는 생각.”

동료들 중 가장 장난꾸러기는 누구였나? 난 가투소에 올인한다.(Bryan Henderson, 이메일)
“맞다, 그를 따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린 여전히 아주 친하게 지내는데, 그는 항상 날 웃게 만든다. (살짝 생각에 잠겨)아, 리노…”

당신은 왜 항상 짧은 소매의 셔츠만 입나?( Steve Mason, 페이스북)
“이유는 없다. 골키퍼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래 왔다. 그게 편하다. 요즘에는 많은 골키퍼들이 나처럼 짧은 소매를 입는다. 이만하면 내가 패션의 선두 주자다.”

만약 축구로 성공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무슨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 것 같은가? (H Silva, 트위터)
“으…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줄곧 축구 선수만 꿈꿔 왔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축구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될 거라곤 단 일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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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팀들은 최근 챔피언스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현재 세리에A가 라리가, EPL, 분데스리가에 비해 얼마나 뒤처졌다고 생각하나? (Jan Fairless, 이메일)
“맞다. 이탈리아는 경제적으로 매우 위축됐고, 이탈리아 축구도 마찬가지다. 10~20년 전과 같은 자금 투자가 요샌 이뤄지지도 않는다. 뒤처져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세리에A는 다시 부활할 것이다. 역사는 순환한다.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키퍼들의 현역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다. 키퍼들의 전성기는 대략 몇 살 때쯤인가? 당신은 언제까지 국가대표로 뛸 생각인가, A매치 150회를 채우는 게 목표인가? (Lenny Goodhall, 이메일)
“신체적 특성으로 보면 아마 28~30살이 절정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경험도 중요시되고 있으니 육체적 연령으로만 따질 건 아니다. 내 생각에 좋은 키퍼란 계속 발전하는 이들이다. A매치 150회라… 듣고 보니 욕심이 난다. 두고 보도록 하자.”
(*편집자 주: 2018년 5월 현재 부폰은 A매치 176경기에 출전한 상태다)

당신과 같은 길을 걷는 어린 선수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한다면?(Jerry JD Redwine, 트위터)
“포지션을 바꿔라… 아니, 진짜로. 이건 농담 아니다. 진지하다! 이걸 직업으로 삼으려면 자신을 계속 학대해야만 한다. 게다가 약간 삐딱해진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다른 선수들은 발을 쓰는데, 혼자서만 손을 사용하는 일을 정말 하고 싶은지…”

(번외) 지지, 다른 곳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떠날 생각을 했던 적은 없어? 유벤투스를 떠날 뻔했던 때는 언제야? (마시모 마카로네, 브리즈번 로어-이탈리아 공격수)
“2006년에 몇몇 제안을 받았어. 당시 AC밀란이 내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서 심각하게 고민했지. 하지만 그 모든 유혹에도 유벤투스에 남기로 했었어. 후회는 없어. 이후에 줄곧 만족스러웠으니까.”

사진= 포포투 DB
writer

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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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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