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로스토프] 기묘한 수…‘해볼 만한 상대’가 된 독일

기사작성 : 2018-06-24 17:23

-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현장취재
- 짧은 순간에 좌절과 위로와 희망이 밀려온다

본문


[포포투=배진경(로스토프나도누/러시아)]

#장면1
한국이 멕시코에 0-2로 끌려가던 후반 48분, 손흥민이 벼락같은 중거리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무득점으로 대회를 마무리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하던 때에 터진 귀중한 골이었다. 추가골을 넣기엔 시간도, 체력도 모자랐다. 멕시코 선수들마저 다리에 힘이 풀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원더골’ 주인공인 손흥민은 물론 페널티킥 실점의 빌미를 허용한 장현수도 눈물을 터뜨렸다. 최고참 수비수 이용도 상대 진영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아 눈물을 훔쳤다. 후반 29분 골키퍼까지 제치고도 슈팅 대신 패스를 택한 황희찬 역시 울음을 참지 못했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다.

Responsive image

#장면2
믹스트존 인터뷰 현장. 멕시코 골키퍼 오초아가 등장했다.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믹스트존을 통과하던 그는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 중이던 조현우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어깨를 한번 치고는 조현우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최선을 다한 상대에 대한 존중, 그리고 승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장면3
밤 10시 55분(현지시간) 로스토프 아레나 미디어센터. 분주하게 현장 기사를 마감하던 한국 취재진 사이에서 “와!”하는 함성과 함께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테이블마다 비치된 커다란 모니터에는 토니 크로스(독일)의 프리킥이 스웨덴 골망을 가른 장면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독일이 극적인 결승골로 2-1 승리를 거뒀다. 직전까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일정을 확인하던 기자들 사이에 ‘설마?!’하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생겼다. 요약하면 ‘경우의 수’를 따지는 상황이 됐다. 일말의 희망이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좌절이었고, 그다음엔 위로였다가, 마지막에는 희망이었다. 24일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벌어진 한국-멕시코 경기 후 풍경이다. 일련의 상황을 전후해 ‘팩트’는 바뀌지 않았다. 애초에 멕시코는 우리보다 강한 상대였고, 독일은 스웨덴에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FIFA랭킹으로 대표되는 객관적 지표 때문이었다. 한국이 마지막 경기에서 만나는 독일은 2014년 대회 우승국이자 FIFA랭킹 1위의 팀이다. 싸우기도 전에 한국은 집으로 돌아가는 짐을 싸는 분위기였다. 객관적 근거가 탈락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런데 독일-멕시코전이 끝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희망의 셈법이 등장했다. 조별 3차전에서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는다는 가정하에, 한국이 독일에 한 골 차 이상으로 승리하면 드라마틱한 반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독일이 우리보다 전력 우위에 있다는 ‘팩트’는 달라지지 않았다. 2패를 안은 한국이 여전히 탈락 1순위라는 사실도 팩트다. 그러나 팩트와 팩트 사이에 변수가 생겼다. 절대적인 강팀이라고 여겼던 독일이 뜻밖의 기복을 겪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보여주는 행보는 수상하다. 멕시코에 패했고 스웨덴에 겨우 승리했다. 축구에는 상대성이 존재한다. 절대적인 강팀이 모든 팀에게 강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재미있다.

Responsive image

팩트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희망이 생겼다. 왜일까. 2차전에서 보여준 양 팀 사이클 때문이다. 한국은 경기를 치르면서 나아지고 있다. 2차전에서 모든 걸 쏟아부은 선수들의 경기력은 감동적이었다. 반면 독일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진으로 의문부호를 늘리고 있다. 스웨덴전 막판에 보여준 집중력과 결정력은 여전히 그들의 클래스를 증명해주지만, 애초 독일에 기대했던 경기력은 아니었다. 기대만큼 압도적인 위용을 보이는 팀이 아니다.

사실 조편성이 확정됐을 때부터 독일은 분석 제외 대상이었다. 분석이 무의미할 정도로 최강의 팀이었다. 본선에서 치르는 1, 2차전을 보고 대응하겠다던 신태용 감독의 계획조차도 이런 그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독일이 앞서 두 팀을 압도적으로 이겨 16강행을 확정해놓고, 한국을 상대할 때 조금은 힘을 빼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조별리그 최강의 적으로 꼽혔던 ‘절대강자’가 이제는 경우의 수를 따져볼 정도로 ‘해볼 만한 상대’로 바뀌었다.

이런 분위기는 독일전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애초 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산이 야트막한 동산이 된 느낌이다. 걷기엔 숨이 가빠져도, 오를 만하다고 여겨지는 산책 코스가 된 셈이다. 한편으로 한국은 희망을 발견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플레이에 모든 걸 쏟아부었을 때, 기대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황희찬은 “우리에게 간절함이 없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면서 “오늘 경기로 간절함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90분 내내 스프린트로 공격과 수비를 오간 황희찬, ‘깜짝 선발’로 출전해 기대 이상의 몫을 해낸 문선민, 추가 시간에 골을 터뜨린 손흥민 등 공격수들에 대한 믿음이 유효한 것도 3차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물론 걱정거리도 있다. 1차전에서 박주호를 잃은 한국은 2차전에서 ‘키맨’ 기성용 부상이라는 손실이 생겼다. 신태용 감독은 “3, 4일 쉬고 다시 100% 몸상태가 되긴 어려울 것”이라며 독일전 결장을 시사했다. 여기에 멕시코전 실점 빌미를 내준 장현수는 정신적으로 회복이 어려운 상태가 됐다. 1차전에서 집중적인 표적이 된 그는 2차전에서 누구보다 만회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2차전 실책으로 회복이나 변호가 어려운 불운한 상황까지 가고 말았다. 페널티킥 허용 후 장현수의 급격한 동요는 보는 이들까지 느낄 정도였다. 대량 실점이 우려될 정도의 ‘멘털 붕괴’가 느껴졌다. 축구협회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믹스트존이 아닌 다른 통로로 장현수를 이동시켰다. 내상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기성용과 장현수 모두 미드필드와 수비 라인에서 핵심 역할을 해주던 자원이기에 3차전 공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틀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Responsive image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생겼다. 이런 희망은 전적으로 선수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물이 반쯤 찬 컵을 두고 전에는 ‘반밖에 안남았네’였다가 지금은 ‘반이나 남았네!’가 된 상황이다. 전에는 ‘사실상 탈락’이다가 지금은 ‘16강 불씨 살렸다’가 됐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죽을 힘을 다해 뛴 결과, 그들의 땀을 좀 더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헛될지라도, 또 한 번 희망을 품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신태용 감독은 권창훈, 이근호 등을 언급하며 “부상 선수들이 있었다면 손흥민을 외롭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선수들의 외로운 싸움이 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믿어보고 싶어졌다. 원래 월드컵은 마음이 뜨거워지라고 만들어진 무대가 아니었느냐고 스스로의 변심(?)을 합리화하면서, 로스토프에서의 밤을 마무리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FAphotos
writer

by 배진경

녹색 온도, 녹색 아닌 풍경 @joy2bae
Responsive image

2018년 07월호


[2018.WORLD.CUP] 리오넬 메시는 월드컵을 손에 넣을까?
[2018.WORLD.CUP] 제시 린가드, "결승전에서 내가 골 넣으면..."
[2018.WORLD.CUP] 벨기에가 정말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을까?
[2018.WORLD.CUP] 대충 알고 정확히 모르는 축구 상식 27가지
[INTERVIEW] 제시 린가드, 피르미누, 마츠 후멜스, 치치 감독, 니헬 데용, 가브리엘 제수스

[브로마이드(40X57cm)] 기성용, 이승우, 손흥민, 대표팀 23인
주식회사 볕
03175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7 한글회관 302호
구독문의 : 02-302-1442    카톡 : fourfourtwokr
대표이사 홍재민,임진성 사업자등록번호 : 758-88-00295 통신판매신고번호 : 제2017-서울종로-0716호
Copyright © BYUTT.COM All rights reserved.
포포투코리아 웹사이트 제작 디자인 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