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카잔] 신태용호에는 내일이 없었다

기사작성 : 2018-06-28 15:42

- 전세계에 '쇼크' 안긴 독일전 완승
- 내일이 없는 것처럼 죽어라 뛴 선수들
- 그래서 만들어낸 내일, 실패 반복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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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배진경(카잔/러시아)]

“기자님들, 독일이 못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죠?”

27일 밤(현지시간) 러시아 카잔아레나. 독일전이 끝난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손흥민은 이렇게 되물었다. 독일을 평가해 달라는 요청에 대한 첫 반응이었다. 조금 전 한국은 독일은 상대로 2-0 승리를 거뒀다. 흠 잡을 데가 없는 완승이었다. 손흥민의 반응이 다분히 방어적이었던 것을 이해한다. 독일의 경기력을 깎아내리면서 자칫 자신들의 성과가 평가절하되지 않을까 염려했을 것이다. 대회 내내 손흥민을 비롯한 선수들은 대표팀을 향한 불신과 싸웠다.

손흥민은 “독일이 볼 점유율이 높았고, 좋은 경기를 했다”고 했다. 또 “독일이라는 팀을 상대로 우리는 무조건 수비해야 했다. 정말 몸을 던져서 수비를 했다. 찬스를 내줬을 땐 (조)현우 형이 선방하면서 분위기다 다시 올라왔다”고 평가했다. 마지막 말이 핵심이다. “독일 선수들이 정말 잘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정말 정말 더 잘했다. 더 열심히 했고, 더 이기려는 의지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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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의 말이 맞다. 한국은 몸을 사리지 않았다. 경기 초반부터 의지가 엿보였다. 상대를 쉽게 놓아두지 않았다. 전반 8분 정우영이 옐로카드를 받았다. 멕시코전에서 경고 한 장을 안고 있던 그는 독일전 초반 또 한장을 추가했다. 만약 16강에 진출한다면 뛰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다음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었다. 

독일전에 처음으로 선발 출전 기회를 얻은 수비수 윤영선도 수 차례 골문 앞에서 몸을 날렸다. 상대의 강슛을 얼굴로 또 다리로 막아냈다. 적절한 태클과 경합으로 위기를 차단했다. 문선민도 측면을 쉼없이 오르내렸다. 모기처럼 고레츠카와 킴미히를 따라다니며 공간을 최소화했다. 이재성, 구자철, 손흥민 등 공격수들이 전방에서부터 압박을 가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었다. 이재성과 손흥민, 문선민이 연달아 경고를 받았다. 구자철은 결국 부상으로 교체 아웃됐다. 모든 선수들이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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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전까지 선수들은 ‘1%의 희망’을 얘기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다. 그러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뛴 결과, 100%의 완성본을 내놓는 기적을 만들었다. 이 승리는 많은 걸 돌려놓았다. 앞서 2패 전적으로 최악의 부진을 보였던 대표팀에 대한 비난 여론을 단번에 돌려놓았다. ‘세계1위’를 꺾으면서 세상에 안긴 충격파도 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SNS를 통해 한국 대표팀의 사진을 올려놓고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을 꺾은 최초의 아시아 팀”이라는 촌평을 달았다. 한때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았던 김영권도 '인생극장'을 찍었다. 몸을 던지는 수비에 이어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결승골을 넣으면서 면죄부를 받았다. 손흥민은 말 그대로 ‘월드클래스’를 입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경기는 ‘내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을 갖는다. 만약 좌절감 속에 막을 내렸다면 한국의 다음 월드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싸늘해진 팬심은 완전히 등을 돌렸을 것이고, 다음 4년을 통과하는 내내 이 신뢰를 회복하기 싸워야 했을 것이다. 축구협회는 또 과거의 실패를 답습했을지도 모른다. 2010년과 2014년, 두 번 연속 가까스로 본선에 진출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2022 월드컵 참가 역시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험난했을 것이다. 단기 처방으로 감독으로 교체하고 모든 책임을 감독과 선수들이 지게 만드는 구조의 반복이다.

단순한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독일전의 실패는 곧 한국축구 성공 경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과 2012런던올림픽 메달 신화를 만들어낸 기성용은 월드컵 후 대표팀 은퇴를 시사한 적 있다. 2012 메달리스트인 구자철도 독일전이 끝난 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이미 마음 속에 결정을 내렸다”는 말로 은퇴를 암시했다. 이들 다음 세대는 20년도 더 전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공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중압감 속에 큰 대회를 준비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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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세계 최강’을 꺾었다는 자신감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 덕에 떠나는 이가 있어도 성공 경험을 전수할 수 있게 됐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뛴 결과, 내일로 향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손흥민이 인터뷰에서 강조한 것도 이 부분이다. 대회 내내 “월드컵은 무서운 무대”라고 말했던 그는 “이 경기로 안주해선 안된다. 이번 월드컵이 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4년 후, 8년 후를 봐야 한다. 4년 후에는 우리가 더 멋있는 팀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앞으로를 보고 더 발전하는 팀, 발전하는 선수들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권도 미래를 얘기했다. “성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이번에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고 본질을 꼬집으며 “계속 도전해야 할 텐데, 다음에는 (조별리그) 통과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선수들의 목소리에는 지난 시간의 고충이 담겨있다. 월드컵 성적에만 목을 매는 구조가 아니라, 일관된 방향성과 정책을 갖고 근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달라는 호소다. 독일전 전날 기자회견에서 신태용 감독은 “마지막 절규”라는 말로 대표팀의 간절함을 표했다. 스웨덴전을 앞두고는 “몸부림 치고 있다”는 극적 표현까지 동원했다. 한국 축구의 명운이 월드컵 대표팀에 과하게 쏠렸던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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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뒤에도 팀의 철학보다 투지와 투혼이 더 강조되는 팀이 되어선 곤란하다. 독일을 꺾은 투지는 충분히 박수 받을 만했지만,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이변을 늘 허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무대에서는 투혼이나 절규만으로 이룰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이미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을 통해 확인했다. 한국 선수들은 “어려운 때일수록 강해진다”고 입을 모으곤 했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강한 팀이 진짜 강팀이다. 여기에는 일관성을 갖고 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정책과 철학, 유소년 육성 구조, 건강한 축구 문화가 다 포함된다. 한국 축구는 갈 길이 멀다.

오늘까지는 충분히 여흥을 즐겨도 좋다. 내일부터는 한국 축구가 근본적으로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한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뛰어 내일을 만들어낸 선수들에 대한 보상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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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진경

녹색 온도, 녹색 아닌 풍경 @joy2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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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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