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판데르 파르트, “최악의 실수? 토트넘 떠난 일”

기사작성 : 2018-07-23 12:26

- 10대 시절 '요한 크루이프 재림'으로 불렸던 네덜란드 스타
- 빈민가 트레일러에서 정상의 자리에 서기까지
- 토트넘 시절 아스널전 득점이 많았던 이유?

본문


[포포투=Arthur Renard]

35세밖에 되지 않은 스타플레이어가 무슨 인생 조언을 해줄 수 있냐고? 모르시는 말씀. 거액의 몸값을 뽐내는 세계적 스타가 되기까지 판데르 파르트는 빈민가, 10대 시절 유명세, 각종 사회적 불화 등 다채로운 길을 걸었다. 지금 당장 스타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는 10대 꼬맹이들에게 소중한 조언을 해줄 최적임자일지도 모른다.

2003년 판데르 파르트는 유럽 체육기자들이 선정한 최초의 ‘골든 보이’로 선정되었다. 발롱도르보다 훨씬 경쟁이 치열한 부문이 아닐 수 없다. 판데르 파르트는 “그때 웨인 루니가 2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3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라며 자긍심 넘치는 미소를 선보인다.

노장이 된 지금도 판데르 파르트는 유쾌하다. 포토그래퍼 앞에서 오렌지로 저글링 묘기를 선보였다. 아들 다미앙을 돌보는 일만큼 축구를 향한 열정도 대단하다. “운전하다가 축구를 하는 아마추어들을 볼 때마다 차를 세우고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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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글링 묘기도 끝났고, 사진 촬영도 끝났다. 자, 이제부터 판데르 파르트는 <포포투> 독자들이 보내온 질문에 답해야 한다. 크루이프에 비견되었던 일, 레알 마드리드 이적, 해리 레드냅 감독과의 인연까지 다양하다.

빈민가 트레일러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경험을 말해달라. (존 샤프, 트위터)
“어렸을 때부터 자랐으니까 내게는 평범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매번 다른 나라로 이적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받는다. 되게 이상하게 들리나 보다. 어린 시절 정말 행복했다. 굶주렸을 것으로 생각하던데 그렇지 않았다. 이웃끼리 사이좋게 잘 지냈다. 부모님께서는 이제 그런 곳에 계시지 않는다. 아약스와 처음 계약하면서 집을 사드렸다. 다른 친척들은 아직도 공원에서 거주하고, 가끔 어른들을 뵈러 간다.”

어렸을 때 호마리우 흉내를 냈다고 들었다. 왜 하필 호마리우였는가? PSV를 좋아해서? (톰 포크, 트위터)
“호마리우는 내가 제일 좋아한 선수다. 그래서 PSV 경기도 챙겨 봤지만, 뼛속까지 나는 아약스 팬이었다. 내가 그를 정말 좋아한 이유는 이렇다. 경기 내내 전혀 보이지 않다가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서 천재적인 골을 넣는다. PSV가 이기고.”

초창기 ‘뉴 크루이프’로 불렸다. 그 시절 실력이 궁금하고, 레전드에 비견되는 기분도 알고 싶다. (셉 뉴턴, 브리스톨)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단, 스스로는 누구와 비교한 적이 없었다. ‘제2의 OO’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었다. 내가 잘한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얼마나 성공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왼발과 시야는 최고였는데 오른발과 주력은 별로여서 발전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발만 좀 더 빨랐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제치고 나가도 다시 안 잡힐 만큼만! (웃음) 발이 빠르면 정말 좋은 무기가 된다. 내가 발까지 빨랐다면 전성기 시절에 발롱도르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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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 시절 최고의 순간은? (타일러 스톡스, 페이스북)
“몇 번 있었다. 어릴 적 최고의 순간은 열 살 때였다. 아카데미에 초대받아 구단의 모든 훈련 용품을 선물 받아 그날로 내가 아약스 선수가 되었다. 이후 매년 목표는 아약스에서 살아남는 일이었고, 최종적으로 1군에서 데뷔하는 일이었다. 그 꿈을 17세에 이뤘다. 그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1군 엔트리에 들었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정확히 기억한다. 1군에서 자리를 잡자 다시 하이라이트가 찾아왔다. 페예노르트전 힐킥 골이었다. 그런 골을 넣으면 정말 믿기지 않는다.”

왼발과 시야는 최고였지만 발이 빠르지 않았다. 빨랐다면 발롱도르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정말 당신 다리를 부러뜨리려고 했는가? (모건 앨런, 페이스북)
“그가 정말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했다. 사이가 나빴던 것도 사실인데, 언쟁은 좀 있어도 그렇게 솔직한 친구와 한 팀에 있는 편이 더 낫다. 사이가 틀어진 계기가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친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약스 시절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윙어로 뛰기를 거부해서 로날드 쿠만 감독이 당신의 주장 완장을 박탈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달라. (아치 레이너, 페이스북)
“말한 그대로다. 바이에른 뮌헨전 하루 전에 감독이 내게 ‘중앙에서 뛸 실력이 안 되니까 레프트윙으로 뛰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원래 포지션에서 밀리니까 기분이 나빴다. 실력이 모자란다는 말도 불쾌했다. 차라리 벤치에 있겠다고 하자 주장 완장을 빼앗겼다. 나중에 둘 다 아약스를 떠난 다음에 나도 그렇고, 쿠만 감독도 실수를 인정했다.”

요한 크루이프가 칼럼에서 당신의 함부르크 이적을 비판했다. 당신을 원했던 구단이 그렇게 많았는데 왜 하필 함부르크였는가? (파라 판 밀리겐, 페이스북)
“누가 썼든지 칼럼 내용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함부르크에 관해서는 처음에 나도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다. 어쨌든 구단에 초청을 받았는데, 나를 정말 환영해줬다. 토마스 돌 감독과 구단 이사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감명받았다. 멋진 경기장을 보고는 내가 뛰어야 할 곳이라고 결심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기분은 정확히 어떤가? 팬들 탓에 밖에는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했을 것 같은데? (휴고 바레토, 트위터)
“전반적으로 좋았다. 외출은 확실히 불편했다. 런던에서는 덜 불편했고, 지금 덴마크는 더 조용하다. 팬들에게 둘러싸이는 상황을 좋아하진 않아도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와서 아는 척하는 자체는 기분이 좋다. 불만은 없다. 그런 게 싫다면 그냥 아마추어로 남아야 한다.”

레알에서 벤치로 밀리던 시절, 후안데 라모스 감독과 불화설이 있었다. 감독과 관계는 어땠는가? (루이스 포사다 메르카도, 페이스북)
“불화는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지도자는 아니었다. 상호 이해가 부족했고, 그의 축구도 내가 생각하는 레알 마드리드와 맞지 않았다.”

레알에서 있었던 아스널 이적설이 사실이었는가? (앨런 우드퍼드, 에식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동료인 로빈 판페르시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구체적인 제안은 없었다. 토트넘 이적이 내 생애 최고의 선택이었던 덕분에 후회는 없다. 사실 그보다 먼저 프리미어리그로 갈 뻔했다. 19세 때 리버풀의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나를 원했다. 흥분되는 소식이었지만, 그때 나는 외국으로 나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에이전트는 나더러 울리에 감독에게 전화를 드리라고 했다. 울리에 감독이 마이클 오언도 나와 함께 리버풀에서 뛰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기분 좋았지만, 아약스에 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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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두 번째 시즌에 등번호를 받지 못했다. 기분이 무척 나빴을 것 같은데? (페르난도 가르시아, 페이스북)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어떻게든 감내했다. 시즌 개막 전에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이 해당 포지션에서 내가 5순위라고 말했다. 구티, 카카, 그라네로, 라울, 그 뒤가 나라고 했다. 1군과 떨어져 혼자 훈련해야 했다. 이적시장이 닫히자 다시 1군에 합류했고, 결국 나는 주전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레알에서 실패했다고 하는데, 내 출전 기록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꽤 많이 뛰었고, 골도 많이 넣었다. 레알에서 꽤 따뜻하게 보냈다.”

네덜란드 A매치 109경기 중 가장 특별했던 순간은? (요리 루이터, 페이스북)
“유로2008의 이탈리아전과 프랑스전. 두 경기는 정말 즐거웠다. 그때 나는 6시간을 계속 뛰어도 지치지 않을 만큼 강했다. 유로2008과 2010월드컵에서 최고를 맛봤다. 2008년에는 ‘우리 정말 강하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우승까지 꿈꾸지는 못했다. 2010년은 반대였다. ‘강력하진 못하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라는 식이었다. 메이저 대회 경험을 통틀어 그 두 대회가 최고였다.”

유로2008 조별리그에서 네덜란드는 대단했다. 스페인보다 강해 보였는데, 러시아에 패했던 8강전은 어떻게 된 건가? (랄프 사일러, 페이스북)
“당시 스페인과 우리가 제일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러시아전은 운이 없었다. 내가 찼던 프리킥들도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정규시간 종료 직전에 동점으로 따라갔지만, 연장전에서 체력에 밀렸다. 40도 무더위 속에서도 러시아는 지칠 줄 몰랐다.”

2010월드컵 결승전, 하워드 웹 주심의 판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연장전에 교체로 들어와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에게 결승골을 내줬던 순간의 기분도 궁금하다. (레안 쿠레만, 트위터)
“그날 주심이 꽤 고생했다. 연장전에서 베슬러이 스네이더르가 찼던 슛이 상대 맞고 나갔는데도 골킥을 선언했다. 우리는 그 판정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스페인이 결승골을 넣었다. 어떡하든 상황을 뒤집으려고 애썼지만 시간이 없었다. 코너킥을 얻지 못했던 판정에 관해서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우리 모두 ‘이게 뭐지?’라며 어리둥절했다.”

토트넘 이적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마감 당일이었는데, 정확히 언제 알았는가? (소피아 애슈턴, 페이스북)
“(웃음) 정말 막바지에 결정되었다. 조제 모리뉴 감독이 내 자리에 메수트 외질을 샀다고 솔직하게 말해줬다. 남아도 좋지만, 선발 출전은 어려울 거라고 했다. 그래도 한 시즌 더 뛰고 싶어서 국가대표팀 훈련장에 갔다. 마감 당일 오후 4시쯤 변호사가 내게 전화를 걸어서 토트넘 건을 전달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더니 두 시간 안에 결정하라고 말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깜빡 졸았는데 전화가 울려서 깼다. 오후 5시 40분이었다. 잠깐 생각한 뒤에 변호사와 ‘까짓거 그냥 해보자!’라고 동의했다. 누구와 상담할 시간도 없이 그냥 감으로 결정한 것이다. 토트넘 훈련장에 들어선 순간, 기분이 너무 편했다.”

이적시장 마감일 오후, 토트넘에 갈지 말지를 두 시간 안에 결정하라는 말을 들었다. 잠시 고민하다 깜빡 졸았다. 그리고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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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겪었던 지도자들과 해리 레드냅 감독은 꽤 다른 타입이었을 텐데? (조시 호지슨, 트위터)
“무슨 마술사 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 같은 구석도 있다. 확실히 구식이긴 했다. 전술 지시도 선발진을 적은 메모지를 꺼내 들고는 ‘루카(모드리치)에게 패스를 해. 루카가 라파에게 연결하면 우리가 이길 거야’라고 말하는 식이다. 전반전에 잘하고 들어오면 레드냅 감독은 ‘젠장, 라파 너 정말 끝내준다!’라고 칭찬한다. 동기부여를 정말 잘했다. 내 축구에 정말 맞았고,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갖고 있던 영국 축구에 대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꿨다.”

토트넘에서 짧게 뛰면서도 아스널전에서 골을 많이 넣었다. 아직도 아스널을 싫어하는가? 그리고 다른 더비와 북런던 더비를 비교한다면? (마이클 케이, 서비턴)
“아스널에 악감정은 없었지만, 토트넘에 합류하면서 구단의 전통과 북런던 더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아스널을 상대할 때마다 토트넘 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다음날 직장에서 팬들이 기분 좋게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다른 더비에서도 특별함을 느꼈다. 레알과 아틀레티코도 그랬고, 엘클라시코에서도 뛰었다. 엄밀히 말해 엘클라시코가 더비는 아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경기라는 분위기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월드컵 결승전 같은 기분이었다.”

잭 윌셔에게 두 번이나 알까기 굴욕을 안겼는데, 그 친구가 뭐라고 하던가? (알렉스 풀러, 페이스북)
“윌셔가 했던 말은 잘 모르겠고, 내가 그 친구한테 했던 말은 기억난다. ‘다음에는 다리 좀 오므려!’라고 했다. 그 경기(2011년 4월)가 내 최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 따뜻한 봄 저녁, 해가 저무면서 축구 하기에 완벽한 날씨였다. 인생 최고 경기 중 하나였다. 0-1로 뒤지다가 내가 동점골을 넣었다. 다시 두 골을 내줬다가 내 골로 3-3 동점을 만들었다. 막판에 루카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어도 4-3으로 이길 수 있었다. 꼭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쉬웠다. 더비에서도 그런 경기는 흔하지 않다.”

2011-12시즌 우승에 실패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해리 레드냅 감독의 잉글랜드 대표팀 부임설이 정말 분위기를 해쳤다고 생각하는가? (토마스 켐프, 페이스북)
“1월 맨체스터 시티와 만났다. 우리보다 5점 앞서 있었다. 2-0으로 앞서다가 결국 2-2 동점이 되었다. 추가시간에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가레스 베일의 크로스를 저메인 디포가 마무리하지 못했고, 조금 뒤에 우리는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마리오 발로텔리가 성공시켜 승점 차이가 8점으로 벌어졌다. 우승 경쟁에 치명타였다. 그 전까지 경기력이 워낙 좋아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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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을 떠나기로 한 결심은 정확히 언제 내려졌는가?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과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은 있었는가? (엘라 스펜서, 페이스북)
“빌라스-보아스 감독은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자기가 영입한 길피 시구르드손이 주전 10번이라고 말했다. 두 시즌 동안 내가 토트넘에서 남겼던 공헌이 있었는데 당황스러웠다. 벤치에서 개막을 맞이했는데 함부르크가 접촉해 왔다. 돌아가기에 적당한 때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함부르크에서 두 시즌 내내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으니 말이다.”

미틸란 이적 이유를 알고 싶다. 에스비에르그 핸드볼팀에서 뛰는 여자친구를 위해 덴마크에 온 건가? (데이비드 힉스, 볼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에스타바나 폴만(25)이 에스비에르그 핸드볼 선수다. 앞으로 한참 뛸 수 있는 나이라서 내가 그녀와 가까운 곳에 있어 주고 싶었다. 둘째, 베티스에서 출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틸란가 관심을 보였다. 윈윈(win-win) 결정이었다. 11살짜리 아들이 사는 함부르크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다. (FFT: 핸드볼을 해본 적은?) 전혀. 여자친구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축구 경력 최악의 실수를 고르자면? (루카 모런, 런던)
“토트넘을 떠난 선택 정도다. 그것을 제외하곤 딱히 큰 후회는 없다.”

솔직히 대답해달라. 시대를 너무 늦게 태어났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예전에는 플레이메이커가 공격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수비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크리스틴 베네마, 암스텔담)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티핑포인트를 겪은 세대인 것 같다. 요즘 축구는 팀 전체의 체력과 힘을 중시한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은 기회를 잡기가 어려워졌다. 3년 전, 베티스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 시작은 좋았는데 다쳤다가 돌아오자 자리가 없었다. 페페 멜 감독이 ‘볼을 갖고 뛰는 기술은 최고인데 지금 나는 다른 종류의 미드필더가 필요해’라고 말했다. 당시 팀에는 볼을 제대로 찰 줄 아는 선수가 없었지만, 세상은 체력과 태클에만 박수를 보냈다. 나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플레이메이커가 좀 더 중시되는 시대가 다시 올 거로 믿는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다비드 실바, 이스코 같은 선수야말로 내가 보고 싶은 플레이메이커들이다.”

사진=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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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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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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