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데 용, “언더독 맨시티를 좋아했던 이유는...”

기사작성 : 2018-08-22 13:43

- 맨시티 시절 '잔디깎이'로 불린 이유는?
- 로이 킨에게서 배운 건 무엇?
- 알론소와의 '그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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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Alec Finn]

라인 강변에 자리 잡은 인구 20만 소도시 마인츠에 도착했다. 몹시 더운 날씨 속에서 <포포투>는 데 용(33)에게 준비한 초대형 잔디깎이 기계를 잡고 멋진 포즈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데 용은 억센 근육을 자랑하며 잔디깎이를 작동하기 시작하는데…

알다시피 ‘잔디깎이’는 맨체스터 시티 팬들이 선물한 별명이다. 중원에서 가차 없는 태클로 상대를 괴롭힌다고 해서 생긴 훈장이기도 하다. 데 용은 7개국 일곱 번째 구단인 마인츠05에서도 허슬플레이를 멈추지 않는다. 지난 시즌 마인츠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잡으며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마인츠 동료와 함께 떠났던 이비자 여행에서 막 올라온 터였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지 몇 시간 만에 나타난 주인공치고는 생기가 넘쳤다. 이제부터 데 용은 로이 킨,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펩 과르디올라, 로빈 판페르시에 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려고 한다. 사비 알론소의 가슴에 남긴 발자국도 물론 포함이다.

축구선수 중에 ‘니헬(나이절)’이란 이름은 드물다. 누가 지었는가?(나이절 로빈슨, 페이스북)
“어머니. 그때 나이절 케네디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유명했다. 나이절 만셀이란 레이서도 유명해서 어머니가 영어 이름을 선택하셨다. 나중에 잉글랜드에서 뛰기도 했으니까 묘하다.”

아버지 제리도 네덜란드 A매치 3경기에 출전했다. 아버지의 경기를 기억하는가?(토니 반즈, 런던)
“어릴 때부터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도 축구선수였기 때문에 경기 보기를 좋아했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했지만, 이후로도 TV 중계로 자주 봤다. 언젠가 아버지처럼 5만 관중 앞에서 뛰고 싶다는 포부가 생겼다. 아버지의 날카로운 비평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어머니 쪽 조언이 더 따끔하긴 했다!”

암스테르담 서쪽은 아이들이 자라기엔 좀 거친 환경 아닌가?(앤디 판 루인, 위트레흐트)
“그렇다. 하지만 어머니가 항상 옳은 길로 인도했다. 나는 항상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았다. 그때는 소셜미디어가 없었으니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볼을 차면서 실력을 익힐 뿐이었다. 보통 아이들처럼 친구 집을 돌아다니면서 놀았다.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했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나는 그렇게 빠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정말 엄격하신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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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절 보고 자란 스타는 누구였는가?(세바스티안 프라이스, 서리)
“페르난도 레돈도. 최고의 선수였다. PSV에서 아버지와 함께 뛰었던 호마리우도 좋아했다. 훈련장에서 자주 봤고, 라커룸 안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실력도 좋았지만, 내게 정말 잘해줬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파트리크 비에이라도 롤모델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은 친구로서 잘 지낸다. 로이 킨도 정말 좋아했다. 열정적이고 두려움이 없었다. 덩컨 퍼거슨처럼 덩치가 크지 않으면서도 진짜 사나이였다. 어린 시절,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볼 때마다 로이 킨의 눈빛에서 진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상대에게 ‘여기는 내 구역이야. 네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라고 으르렁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로이 킨이 얼마나 훌륭한 선수였는지를 간과한다. 득점력, 지구력, 패스 모두 좋았다. 직접 상대했으면 나도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실인가?(더그 쿠퍼, 던디)
“맞다. 2001년 암스테르담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회계 공부는 내게 매우 중요했다. 자기가 번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다. 실제로 망하는 선수도 많다. 재정적으로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어서 경제학과에 다녔다. 덕분에 합리적 투자와 은퇴 후에도 돈을 버는 요령을 배웠다. 재정에 밝은 주위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지식을 갖춰야 한다. 통장에 1천만 파운드가 있어도 돈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금방 빈털터리가 될 수 있다.”

마크 판 보멀과 당신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네덜란드 대표팀의 경기를 정말 좋아했다. 호전적 스타일의 미드필더가 요즘은 없어지는 것 같은데?(에드워드 마신, 페이스북)
“옳은 지적이다. 제어력을 강조하는 축구 트렌드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매 경기 카메라 300여 대, 주심, 비디오레프리가 동원된다. 터프한 미드필더가 되려면 가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플레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제 그런 플레이가 불가능하다. 기술 축구와 공격수가 중심이 되다 보니까 ‘하드코어 미드필더’가 드물어지고 있다. 어릴 적, 아스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격투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그런 경향이 아쉽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혈전도 없어졌다. 디에고 시메오네와 레돈도, 킨과 비에이라의 전투를 이제 볼 수 없다. 그들과 함께 뛰지 못해 아쉽다. 드와이트 요크와 앤디 콜의 득점보다 내게는 그런 싸움이 훨씬 재미있었다.”

‘잔디깎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드는가? 그리고, 집에서 실제로 직접 잔디를 깎는가?(라이언 월시, 워링턴)
“맨체스터 시티 시절 생긴 별명이다. 그라운드 구석구석을 쫓아다니면서 태클을 해대는 모습을 팬들이 그렇게 묘사했다. 마음에 든다. 맨시티 팬들은 정말 최고였다. 예전에는 직접 뒷마당 잔디를 깎기도 했다. 보통 사람을 고용해서 관리하지만, 잔디 상태가 정말 엉망진창이면 내가 직접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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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에서 라파엘 판 데르 파르트, 베슬레이 스네이더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함께 뛰었다. 정말 특별한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아놀드 위스첨, 암스테르담)
“놀라운 시간이었다. 재능과 경험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그때 아약스는 UEFA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경쟁력이 있었다. 매 시즌 출전했던 것은 물론 16강에도 자주 올랐다.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어린 재능이 몰려왔고, 그런 팀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함께 뛰었던 동료의 80%가 유럽 톱클럽으로 이적했다.”

즐라탄과 함께했던 훈련은 어땠는가? 정말 자신감으로 가득한 캐릭터인가?(대니 쿡, 트위터)
“멋진 사나이다. 항상 농담을 즐겼다. 건방진 스타일이 아니다. 자신감이 크고 자신을 아낀다고 해야 한다. 아약스에서 즐라탄과 정말 잘 지냈다. 즐라탄의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기도 했다. 좋은 성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만나지 못한 지가 꽤 되었지만, 즐라탄이 성공적인 경력을 쌓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다.”

자국 언론으로부터 ‘오른발잡이 에드가 다비즈’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신도 닮았다고 생각하는가?(요한 데르 비, 페이스북)
“좋아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나보다는 박스투박스 스타일에 가까웠다. 전반적인 마음가짐과 포지션에서는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아약스에서 축구를 배웠다는 공통점도 있다. 나보다 더 공격적이며 기술이 좋았다. 단순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었다. 전진해서 직접 골을 넣거나 득점 기회를 만들 줄도 알았다.”

2009년 맨시티로 이적했을 당시에 다른 제안도 받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마크 휴즈 감독은 어땠는가?(라이언 로드, 페이스북)
“마크 휴즈 감독이 기회를 줘서 감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휴즈 감독과 친하게 지낸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였다. 승리자의 멘털리티를 지니고 있어서 훈련 내용도 정말 치열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맨시티는 리그 11, 12위 정도였다. 빅클럽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맨시티가 큰 그림을 보여줬다. 나 이후로도 거물급 영입이 있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구단에서 오래 뛰면 분명히 결과를 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어릴 때부터 봤던 리그에서 뛸 기회라는 점도 컸다. 사람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만 인정하는 분위기를 우리가 바꾸고 싶었다.”

맨체스터는 살기에 어떤 곳인가?(마크 워, 디즈베리)
“1년에 11개월 동안 비가 내린다. 최소한 휴가지로서는 실격이다. 날씨만 빼고는 다 좋았다. 축구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런던만큼 대도시가 아니라고 해도 맨체스터에는 즐길 거리가 많았다. 여름이 되면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 펍에서 한잔 하는 것도 좋아했다. 높은 점수를 매길 수도 있지만, 날씨 탓에 은퇴 후에 그곳에서 살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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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즈 감독이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으로 바뀌었다. 컬쳐쇼크는 없었는가?(랄프 윌리엄스, 트위터)
“이탈리아 출신 감독이라서 전술 능력에 관해서는 놀랍지 않았다. 마음가짐은 휴즈 감독과 크게 달랐다. 만치니 감독은 수비 위치 선정을 강조했다. 우선 수비적으로 안정적으로 갖춘 다음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 했다. 팀과 개인 관점에서 모두 큰 변화를 겪었다. 두 감독 모두 팀을 크게 바꿨다고 생각한다. 만치니 감독 아래서는 거의 모든 타이틀을 차지했기 때문에 리더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QPR과 리그 최종전에서 대역전을 믿었는가?(지미 트루먼, 페이스북)
“강등 위기의 상대에게 우리가 1-0으로 앞섰다. 갑자기 스코어가 1-2로 뒤집혔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면서 ‘이건 말이 안 돼, 그렇지?’라는 눈빛을 교환했다. 불안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만치니 감독이 에딘 제코와 마리오 발로텔리를 투입해 스트라이커만 세 명이 되었다. 천만 다행히 공격 전환이 먹혔다. 그런 결말은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골을 넣었던 그 순간이야말로 내 축구 인생 최고였다. 축구 그 자체였다. 열정, 감정, 승리. 세르히오를 향해서 미친 듯이 달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중석에서는 다 큰 어른들이 엉엉 울고 있었다. 그런 장면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무척 만족스럽다.”

사람들은 당신의 ‘터프 플레이’만 기억하는 통에 기술적으로 과소평가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가?(로저 브루흐트, 페이스북)
“동감한다. 하지만 수비형 미드필더의 일상에 가까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팀플레이에 끼치는 영향력이 큰 포지션에서 뛰고 싶어 했다. 사람들은 로이 킨의 테크닉을 논하지 않고 단순히 거친 선수라고만 기억한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려면 팀 전체를 이끌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최종 수비진 바로 앞에 있고, 어태킹서드로 패스를 넣어야 한다. 핵심 역할이다. 지금까지 거쳤던 팀들에서 나는 높은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그런 축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약스에서 축구를 제대로 배운 선수였다.”

스튜어트 홀든과 하템 벤 아르파가 당신의 태클에 크게 다쳤다. 고의성이 있었는가?(조니 포얼, 드본)
“없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다른 이를 해한 적이 없었다. 50-50 상황에서는 최대한 세게 부딪히지만, 상대를 다치게 하진 않는다. 상대가 운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오랜 시간 재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긴 한다. 하지만 축구는 콘택트 스포츠다. 상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중에 두 선수에게 모두 연락했다. 시간 여유를 좀 두고 두 선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했고, 둘 다 ‘쿨’하게 받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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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에서 상대했던 스페인은 얼마나 강했는가?(하워드 라이트, 페이스북)
“정말 어려웠다. 패스 빌드업을 눈으로 보면서도 워낙 빨라서 막을 수가 없었다. 평소대로 일대일로 맞붙어 빼앗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우리는 스페인이 자기 진영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최대한 촘촘하게 섰다. 상대의 라인이 높게 형성되기 때문에 우리는 역습으로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반전에 아리언 로번이 잡았던 기회가 정확히 우리의 계획이었지만, 득점에 실패하고 말았다. 스페인은 차비, 사비 알론소,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보유한 톱클래스 팀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최전성기에 있었고.”

그렇게 잘하고도 결승전 막판에 실점을 내주고 말았다.(제임스 파커, 트위터)
“절망적이었다. 100분을 넘겨 팀이 승부차기에 대비하면서 내가 교체로 물러났다. 하지만 116분에 이니에스타가 골을 넣은 탓에 우리에겐 반격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트로피를 그냥 지나쳐 라커룸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들 얼굴에서 절망감이 역력했다. 최고의 영광을 놓친 축구선수라면 누구든지 그럴 수밖에 없다. 평생 한 번, 정말 운이 좋으면 두 번 정도 있을 만한 기회 아닌가. 하지만 2010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이룬 성과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결승전에서 보였던 경기력보다 사비 알론소를 가격한 일이 더 유명하다. 좀 억울하지 않은가?(톰 딕스, 리버풀)
“딱히 실망스럽지 않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축구가 원래 그런 것이다. 퇴장당하지 않은 점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다가오는 알론소를 보지 못했다. 그때는 단순히 불운한 태클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레드카드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워드 웹이 영국 주심이라는 점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영국 축구에서는 거친 충돌이 아주 많으니까. 부딪히자마자 내가 곧바로 양손을 든 것도 판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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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그 태클에 관해서 사비 알론소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가?(라켈 바레트, 리버풀)
“만난 적은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단순히 축구에서 벌어진 한 장면이다. 결정적으로 알론소가 월드컵을 차지했으므로 딱히 마음에 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축구는 콘택트 스포츠이며 그보다 덜한 상황에서 레드카드가 나올 때도 있다. 단지 빅매치에서 벌어진 장면이었기 때문에 더 큰 주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맥주 한잔하면서 그 태클에 관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르겠다. 알론소가 승리했고, 나는 패했다. 결국 그가 승리자다.”

요즘 네덜란드 축구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는가?(브라이언 루디, 페이스북)
“베테랑이 너무 일찍 대표팀에서 외면당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월드컵 이후 내 나이의 선수들이 거의 뽑히지 못했다. 우리의 경험이 젊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교체가 너무 빨랐다. 경험자 없이 젊은 선수들만으로 팀을 구성해선 안 된다. 모든 국가대표팀은 과도기를 거친다. 벨기에와 프랑스도 그랬다. 메이저 대회에서 부진했다가 이내 강해졌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5년 바이에른 뮌헨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조슈아 키미히를 쓰러트린 당신에게 격분했다. 무슨 말을 들었는가?(조시 젠킨스, 페이스북)
“자기 선수를 보호하려는 지도자의 전형적 반응이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감성이 풍부한 타입이다. 자기감정을 표현할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인이다. 각자 자아를 보호하고 싶어 한다. 내게 불만이 있으면 그냥 말하면 된다.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LA 팬들이 많다! 갤럭시에서 보냈던 시간이 어땠는가? 그리고 MLS의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LA갤럭시 팬, 트위터)
“승강제가 없어서 부담감이 덜하다. 그 탓에 승패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늘 져도 다음 주에 기회가 있고, 심지어 다음 시즌에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경기 수준이 나아지지 않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축구는 인기 종목이 아니며 유럽처럼 유소년 육성 시스템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외국인 선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가적 차원에서 어린 선수를 키워야 한다. 물론 갤럭시에서 보낸 시간은 만족스럽다. 브루스 아레나 감독은 정말 훌륭한 지도자였다. 스티븐 제라드와 로비 킨, 지오바니 도스 산토스, 애슐리 콜과 함께 뛸 수 있었던 환경도 좋았다. 유럽 축구의 치열함이 그리워져서 9개월 만에 생활을 접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 경험을 후회하지 않는다.”

함부르크에 자동차 대리점을 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유명인에게 차를 판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크레익 그레이, 트위터)
“나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할아버지가 포드의 네덜란드 지사에서 근무하셨던 덕분에 6개월마다 새 차를 탈 수 있었다. 자동차 판매 사업 자금이 모이는 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던 차에 독일로 이적했고,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느껴져서 곧바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때 만났던 동업자와 11년째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해오고 있다. 동료들에게 차도 많이 팔았다. 베슬레이 스네이더르, 로빈 판페르시, 케빈-프린스 보아텡은 몇 년째 내게서 자동차를 구입하는 고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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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은가? 아약스로 돌아올 생각은 없는가?(윌리엄 에드스트롬, 트위터)
“지금 마인츠에서 만족하지만, 이제 34세다. 아마 1, 2년 정도 더 뛰면 은퇴하게 될 것 같다. 현역에서 은퇴하면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볼을 차고 싶다. 맥주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지내고 싶다.”
(*편집자 주: 2018년 7월 카타르 알 아흘리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1년이다.)


사진=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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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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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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