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백작’ 베르바토프, “내가 게을렀다고? 오해다!”

기사작성 : 2018-11-06 13:47

- 원온원 인터뷰: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 맨유가 아니라 맨시티로 갈 뻔했다고?
- 운동선수가 담배를 피우다니 그게 말이 돼?
- 베르바토프가 자신에 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문


[포포투=Chiris Flanagan]

런던 나이트브릿지에 있는 ‘불가리 호텔’에 왔다. 소피아 로렌, 폴 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숀 코너리 등의 레전드 사진으로 장식된 벽이 근엄하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났다. 근사한 사내가 나타나 <포포투>를 반긴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소피아의 집을 떠나 일주일짜리 출장으로 런던에 체류 중이다. 오랜만에 봐도 스타일이 멋지다. 말끔하게 넘긴 머리는 정중하고 섬세한 평소 스타일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맞다. 늘 이런 스타일이다”라고 말한다.

토트넘과 풀럼에서 각각 뛴 덕분에 런던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편안한 표정으로 베르바토프는 <포포투> 독자들이 보내온 질문지를 살펴본다. “아주 오래전부터 <포포투>를 즐겨 읽었다. 믿어도 좋다.”

곧 베르바토프는 ‘썰’을 풀기 시작했다. 페널티킥, 납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거울을 함께 썼던 이야기 등이다. 그러고 보면, 그의 경력은 굉장히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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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KA 소피아 시절, 납치되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글렌 놀런, 페이스북)
“ ‘반 정도’ 납치였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상황이 무섭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밤중에 갑자기 어디론가 나를 끌고 갔다. 불가리아의 다른 팀과 계약시키려고 했다. 국내 최대 조직폭력조직이 “가서 그 자식 잡아 와”라고 명령해서 그런 사단이 벌어졌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속으로 ‘뭐지? 뭐지? 여기 어디야? 누가 좀 살려줘’라며 당황하기만 했다. 내 앞에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전화 통화를 해댔고, 시간이 지나서 나를 풀어줬다. 정말 무서웠다.”

당신과 마르틴 페트로프, 스틸리안 페트로프 등의 CSKA 유망주는 돈이 없어서 커피도 제대로 사 먹지 못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흐리스토포르 흐리스토프, 페이스북)
“돈이 없어서 우리는 머리를 굴려야 했다! 선배들이 사주던가 아니면 선배 앞으로 달아두던가. 선배들이 나중에 알고는 “뭐야 이 자식들!”이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유망주들은 각자 집에서 보내온 먹거리에 의지해야 했다. 다 먹어치우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이 없으면 피클이 든 유리병의 ‘국물’을 마셨다. 정말 짰지만 꾹 참고 마셨다. 16살 때는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 덕분에 강인해지기도 했지만.”

2002년 UEFA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지네딘 지단이 마법을 부린 레알 마드리드에 패했다. 그렇게 지면 아쉬움이 좀 덜한가?(숀 오하라, 트위터)
“뭔 소리야? 괜찮을 리가 없잖아! 지단의 골은 멋졌지만, 내 경력에 남을 만큼 아픈 순간이었다. 볼이 지단에게 떨어질 때, 내가 바로 뒤에 있었다. 볼을 보면서 ‘오 제발, 안돼’라고 기도했다. 지단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볼을 어떻게 해치울 것인지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거인을 상대하는 난쟁이 신세였다고 해도 필패한다는 법은 없었다. 우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큰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은 우울했지만 과정은 만족스러웠다. 그 시즌 우리는 리그와 DFB포칼에서 전부 2위에 머물렀다. 미하엘 발락, 울프 크리스텐, 제호베르투 등 훌륭한 선수가 많았기 때문에 실망스러웠다. 선배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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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골키퍼인 한스-요르그 부트가 이상한 골을 허용한 직후에 당신이 페널티킥을 전담했다.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가?(토마스 라이트너, 트위터)
“샬케가 하프라인에서 넣었던 골? 지금 봐도 정말 웃긴다! (웃음) 우리 골키퍼인 요르그가 페널티키커였다. 골을 넣은 뒤에 우리 골문 쪽으로 돌아가면서 동료들과 골 셀러브레이션을 펼쳤다. 마르코 판 바스턴 같았다! 샬케가 경기를 재빨리 재개했고, 그쪽 선수(마이크 한케)가 하프라인에서 그대로 슛을 때렸다.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다음에 페널티킥을 얻고는 앞으로 내가 차겠다고 했다. 원래 페널티킥은 스트라이커가 차야 하잖아? 망할 골키퍼가 아니라!”

중위권인 토트넘으로 이적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지미 번즈, 페이스북)
“에이전트가 토트넘의 제안을 전해줬다. 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같은 곳에서 뛰고 싶단 말이야’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 다들 걷기도 전에 뛰고 싶어 한다. 토트넘의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했는데, 정말 꾸준하더라. 마르틴 욜 감독이 “나 이 친구를 꼭 데려오고 싶어”라고 말했다. 주인공 대접이 기분 좋았다. 감독의 믿음만큼 좋은 것도 없다. 챔피언스리그 순위에 도전하는 토트넘의 경기들을 보면서 마음을 굳혔다.”

함께 뛰어본 스트라이커 중에서 로비 킨이 제일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하는가?(앨런 버드, 인스타그램)
“나와 호흡이 잘 맞았다. ‘오케이, 키노, 넌 계속 움직이고, 나는 머리로 움직일게. 그럼 모든 게 잘 풀릴 거야’라는 식이었다. (웃음) 케미가 좋았다. 내게 패스가 오기도 전에 키노가 어디 있을지 알고 있었다. 우리 둘의 골 장면을 보면 서로를 잘 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텔레파시 수준이었다. 훈련도 따로 필요 없었다. 그냥 클릭만 하면 되었다.”

술자리에서 로비 킨이 여자 손님을 상대로 태클 시범을 보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직접 봤다거나 비슷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프란시스 샤섬, 이메일)
“뭐라고? 전혀 모르는 일인데 만나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웃음) 내게는 하지 않았지만, 조크에 능했다. 토트넘 동료들은 나를 잘못 놀렸다가 큰일 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침 일찍 훈련장에 도착해서 누가 내게 ‘안녕? 오늘 기분 어때?’라고 묻는다고 치자. 나는 ‘꺼져’라고 말하고는 혼자 워밍업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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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욜 감독의 토트넘 마지막 경기에서 당신은 몸도 풀지 않았는데.(스티븐 러드, 페이스북)
“맨유가 내게 관심을 보이자 주위 상황이 빠르게 바뀌었다. 이적이 머릿속에 들어와 버리면 온전히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뉴캐슬 원정에서 나는 벤치로 밀렸다. 물론 뛰고 싶었다. 감독이 몸 풀면서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나는 ‘준비됐다. 몸 풀 필요 없다’라고 대답했다. 젊었을 때는 원래 건방진 것 아닌가. 그때는 지도자들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좀 하긴 했다. 나중에 사과했다. 다행히 욜 감독은 성격이 좋아서 내 행동을 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8년 리그컵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을 넣었을 때 기분은?(올리 진스, 인스타그램)
“정말 치열했다. 웸블리의 9만 관중 앞에서 차는 페널티킥이었다. 상대는 페트르 체흐. 나중에 경기 영상을 보니까 페널티킥 순간에 모든 토트넘 팬들이 정말 간절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 그날 승리가 팬들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감정을 숨기려고 애썼지만, 속으로 정말 떨렸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압박감이 큰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걸 놓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든다. ‘아, 정말 X 됐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시 ‘평소 하던 대로만 차면 돼. 모든 게 괜찮을 거야’라고 자기 주문을 걸었다. 예상을 뒤엎고 우리가 우승했다. 웸블리에서 트로피를 드는 기분은 특별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쟁취한 트로피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우승이 없다.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었고, 토트넘이 또 우승하기를 바란다. 요즘 선수단, 감독, 홈경기장을 생각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

2008년 맨유 이적에 있어서 본인의 의사가 얼마큼 반영되었는가?(조슈아 펨버턴 보이스, 페이스북)
“이적은 항상 어렵다. 선수들은 늘 팀을 옮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세상에서 제일 큰 클럽에서 최고 선수들과 함께 뛰는 모습을 꿈꿨다. 내 인생 최대 목표이기도 했다. 내 결정이 많은 사람을 화나게 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 계획을 따라야 했다.”

맨체스터 시티로 갈 확률은 얼마나 되었는가?(조지 파시토, 인스타그램)
“솔직히 매우 낮았다고 생각한다. 에이전트가 맨시티를 말했을 때, 나는 ‘다른 곳은 입 밖에 꺼내지도 말라. 나는 맨유로 갈 거니까’라고 단언했다. 역사, 선수, 전통 등 모든 면에서 맨유가 앞섰다. 맨시티가 호비뉴를 영입하기 전날 밤에 에이전트가 ‘맨시티가 돈을 더 주겠대’라고 말했다. 나는 ‘닥쳐. 나는 무조건 맨유로 갈 거야’라고 대답했다. 인생 목표 관점에서도 맨유 이적은 옳은 선택이었다. 동유럽의 아주 작은 마을 출신이 맨유에서 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평소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다. 세계 최고 클럽 중 한 곳에 입단하는 기분은 정말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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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관한 추억을 소개해달라.(스티븐 로스, 페이스북)
“엄청난 날들이었다. 질문한 세 명뿐 아니라 올드 트래퍼드에 있는 모든 식구와 함께 보냈던 모든 추억에 감사한다. 승리를 향한 열정이 대단했다. 미니게임 훈련에서 가끔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들 지기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팀으로 뭉쳤다. 호날두는 언제나 훈련장에 제일 일찍 와서 제일 늦게까지 남은 다음에 체력단련장으로 갔다. 그런 노력이 모여서 세계 최고 선수를 만든 것이다. 루니도 열심히 훈련했다. 미친 듯이 뛰어다녔고, 새로 온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빠른 적응을 도왔다. 어린 유망주들에게도 친절하게 조언했다. 주장이 되기 전부터 주장 역할을 했다.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등을 보고 있으면, ‘젠장, 경기에 나가려면 더 노력해야겠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08년 웨스트 햄전에서 호날두의 골을 도왔던 스킬이 인생 최고였다고 할 수 있을까?(스투 롱쇼, 트위터)
“최고는 아니고, 최고 중 하나였다고 하자. 많이 연습했던 스킬이다. 훈련장은 아니고 집에서 많이 했었다. 집에 있다가 심심해지면 정원에 나가서 볼을 갖고 이런저런 스킬을 시도해보곤 했다. 훈련장에 가서 또 해본다. 창피하게 실패하기도 했지만, 하면 할수록 늘었다. 수비수는 골라인에 선 공격수가 갈 곳이 없다고 믿는다. 방심했을 때를 노렸다. 그날 경기에서 제임스 콜린스가 ‘넌 갈 곳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뒤로 도는 동작이 완벽했고, 득점으로 연결되어 더 특별해질 수 있었다. 골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단순한 트릭 동작에 머물렀을 것이다. 게다가 득점자가 호날두였으니까 특별할 수밖에 없다. 골이 들어간 다음에 나는 ‘내겐 일상적인 기술이지’라는 식으로 무표정하게 하프라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속으로는 ‘젠장! 지금 기술 봤어?’라며 좋아했다.(웃음)”

맨유 시절, 에릭 칸토나와 비교되었는데?(마틴 스토클리, 페이스북)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따라 해본 적이 없었고, 팬들이 만드는 비교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다. 요즘도 그렇다. 굉장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젊은 선수들에게 큰 부담을 준다. 모든 선수는 각자 스타일이 있다. 비교는 무의미하다. 물론 칸토나는 엄청난 선수였지만.”

2010년 리버풀전 해트트릭이 맨유 시절 최고의 순간이라고 해도 될까?(애덤 리슨, 인스타그램)
“리버풀전이었고, 우리가 이겼다.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고 해도 좋다. 모든 것이 잘 풀렸던 경기였다. 오버헤드킥으로 넣었던 두 번째 골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 장면도 순간적인 판단이었다. ‘쿨’한 척했지만, 그런 경기를 치른 밤에는 좀처럼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 골 장면이 계속 생각나니까.”

제일 좋아하는 스트라이커는 누구인가?(리암 도빈슨, 인스타그램)
“두 명을 좋아한다. 먼저 앨런 시어러. 어느 곳에서나 강력한 슛을 때릴 줄 알았다. 투지도 좋았다. 골 셀러브레이션도 정말 멋있지 않나? 시어러가 있어서 처음에는 블랙번을 응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부모님께서 뉴캐슬의 9번 유니폼도 사주셨다. 어릴 때 그 옷을 입고 잤을 정도다. 옷이 없어졌는데, 나중에 집에 가보니까 어머니께서 찾아 놓으셨더라. 다시 보니 정말 기뻤다. 다른 한 명은 마르코 판 바스턴. 최고의 기술과 우아함, 섬세함을 지닌 골잡이였다. 그의 플레이를 따라 하려고 했다. 그가 부상으로 은퇴했을 때, 골 장면을 담은 VHS 비디오테이프를 샀다. 산시로에서 작별을 고하면서 판 바스턴도 울고 팬들도 울었다. 보면서 나도 울었고.”

블랙번을 상대로 프리미어리그 한 경기 최다인 5골 기록을 작성했다. 시어러의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가?(빅터, 인스타그램)
“여섯 골까지 넣을 수 있었는데 폴 로빈슨이 막아버렸다! 1경기 5골을 기록한 외국인 1호였고, 시어러, 앨런 콜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처럼 작은 나라 출신이 그렇게 특별한 기록을 세운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큰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교체 멤버, 2011년 결승전에는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정말 화가 났을 것 같은데?(앨런 벨, 페이스북)
“충분히 뛸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감독의 권한이고, 나중에 나를 기용하지 않았던 것이 본인의 실수였다고 말해줬다. 악감정은 없다. 내가 뛰었다고 해도 결승전 결과가 바뀌진 않았을 것 같다. 그날 바르셀로나는 정말 엄청났으니까. 모두 지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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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점왕 등극 직후인 2011-12시즌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당신을 2순위 스트라이커로 내린 이유가 무엇일까?(로리 스키너, 인스타그램)
“나도 모른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 새로 왔다. 젊고, 스타일이 다른 데다 득점력이 있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면 당연히 실망스럽다. 퍼거슨 감독에게 직접 따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위대한 레전드 감독이다. 선수 개인에 맞춰서 이야기할 줄 아는 리더였다. 자존심이 센 스타들이 많은 빅클럽일수록 감독은 그런 능력을 갖춰야 한다. 빅클럽을 이끌려면 정말 특별해야 한다.”

2012년 유벤투스를 거절하고 풀럼을 선택한 이유는?(아달베르토 파르카렐리, 페이스북)
“잉글랜드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풀럼의 당시 감독이 마르틴 욜이었다. 나를 선발로 쓸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아무리 의지가 강한 선수라도 스스로 의심을 하게 된다. ‘내가 부족한가 보다’라는 식이다. 욜 감독이 나를 믿은 덕분에 나도 ‘감독을 실망하게 해선 안된다’라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토트넘도 나를 재영입하려고 했지만, 벌써 욜 감독에게 가기로 한 뒤였다. 풀럼에서 첫 시즌 나는 15골을 넣었다.”

게으르다는 평가에 어떻게 반박하고 싶은가?(코비 윌크스, 인스타그램)
“게으르다는 의견은 오해다. 지금까지 거쳤던 클럽들의 뛴 거리 기록을 보더라도 나는 항상 팀 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팬이나 TV 해설자들에게만 잘 보이는 선수도 있다. 잡을 수 없을 줄 알면서 밖으로 나가는 볼을 끝까지 쫓아가는 타입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저 친구 정말 열심히 뛴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경기 중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감독도 싫다.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뛰는 선수들은 아무도 벤치의 지시를 듣지 않는다. 경기를 망치고 욕을 먹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뛰는 척하는 선수도 있다. 사람들은 ‘팀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뛴다’라고 말한다. 전부 개소리다. 그런 선수들은 아무것도 못 한 것이다. 전부 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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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에서 뛰면서, 클럽이 그렇게 부활하리라고 느꼈는가?(아서 코넬, 인스타그램)
“첫 훈련에 갔는데, 선수들이 전부 엄청나게 빨랐다. 혼자 ‘뭐야? 내가 너무 늙었나?’라며 당황했다. 그때 나는 33세였는데, 하메스, 팔카오, 마르시알 같은 선수들이 펄펄 날아다니면서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모나코에서 즐거웠다. 특히 아스널 원정에서 이겼을 때는 정말 기분 좋았다. 경기를 시작할 때부터 아스널 선수들은 모나코를 얕봤다. 사람들은 내게 ‘킬리앙 음바페를 알고 있었는가?’라고 자주 묻는다. 솔직히 몰랐다. ‘물론. 내가 해준 조언 덕분에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라는 식으로 절대 말하고 싶지 않다.”

흡연이 훈련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았는가?(@ballandthecity, 트위터)
“나에 관해서 가장 큰 오해다. 나는 평생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다. 담배를 피웠던 친구들은 있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멋있어 보이려고 담배를 손가락에 끼우고 피우는 척만 했을 뿐이다. 그 사진 한 장만 보고 나를 흡연 선수로 단정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 피우는 시가는 흡연이 아니다. 담배와 시가는 분명히 다르다.”

당신처럼 빅스타가 월드컵에서 한 번도 뛰지 못했다. 아쉽지 않은가?(핀 홀먼, 인스타그램)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면 어쩔 수 없다. 월드컵 본선에 나가기가 너무 어렵다. 월드컵에서 뛰어본 적이 없어서 아쉽지만, 불가리아 대표팀 역대 득점 기록을 경신했던 순간은 인생 최고이기도 했다. 흐리스토 보네프 같은 레전드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케랄라 블라스터즈의 데이비드 제임스 감독이 ‘스트라이커의 가슴으로 볼을 건넨 다음부터 공격하라’는 전술을 지시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대런 월시, 페이스북)
“그는 나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감독에게 직접 조언도 해봤지만, 당연히 잘 먹히지 않았다. 나는 축구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동료와는 잘 지냈다. 인도에서 전혀 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내가 살아온 환경과 완전히 달랐다.”

계속 현역으로 뛰고 싶은가?(마이크 그린, 카디프)
“이번 시즌에 내가 어디서 뛸지를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내가 25살처럼 보이긴 해도 사실 37살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곤란하다! 뛰고는 싶지만, 현실적이 될 필요도 있다. 지금도 나는 맨유,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싶다. 하지만 망신을 당하기도 싫다. 제안을 받으면 도전해보고 싶다. 축구를 그만두기는 무척 어렵다. 인생 최고의 사랑이니까. 축구가 멈추면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꼴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훈련장으로 가는 것이 내 일상이다. 은퇴하면, 일어나서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주는 일밖에 할 수가 없다. 제대로 된 계획 없이 은퇴하면 길을 잃을 게 뻔하다.”

제2의 로버트 드니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토니 왓슨, 페이스북)
“(웃음)영화를 좋아한다. <대부>의 로버트 드니로를 특히 좋아한다. 불가리아에서 한 번 해본 적이 있는데 재미있었다. 아직 우선순위는 축구에 있다. 지도자 자격증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언제가 베르바토프 감독이 될 수도 있다.”

사진=포포투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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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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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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