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iki] 맨유-유벤투스는 어떻게 라이벌이 되었나?

기사작성 : 2018-11-08 17:11

- 맨유와 유벤투스로 보는 라이벌전의 역사
-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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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Emmet Gates]

맨유와 유벤투스는 2018-19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각각 원정 경기장에서 승리를 따냈다. 올드팬은 필시 20년 전을 떠올렸을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의 팀이 유벤투스로부터 동력을 얻어 역사적인 트레블을 장식한 그때를 말이다.

“유벤투스가 통과했나요?” 땀에 흠뻑 젖은 게리 네빌이 물었다. 1998년 12월 올드트라포드에서 열린 바이에른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최종전을 1-1 무승부로 마치고 한 ‘ITV’와 인터뷰였다. 맨유가 가까스로 8강전에 진출한 상황에서 네빌은 마음 한 켠에 유벤투스를 품고 있다는 듯 물었다. 그것이 좋은 감정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통과했다’는 기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난감해하는 표정을 짓긴 했다. 유벤투스는 같은 날 로젠보리를 꺾고 극적으로 8강에 올랐다.

네빌의 이런 반응은 당시 다른 클럽들이 갖고 있던 유벤투스에 대한 보편적인 두려움을 보여준다. 유벤투스는 자타공인 챔피언스리그 우승후보 1순위였다. 비록 준우승에 머무르긴 했지만, 1998-99시즌 이전 두 시즌 연속 결승에 올랐다.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이끌던 팀은 1990년대 말 유럽 축구를 상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벤투스를 꺾는 것이 곧 우승으로 간주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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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때에 맨유와 유벤투스 사이에 국경선을 뛰어넘는 라이벌 의식이 피어올랐다. 전투 경험으로 다져진 토리노의 전사들과 퍼거슨의 조숙한 신출내기들은, 1999년 4월 역사적인 준결승전 맞대결을 펼치기 전까지 3시즌 연속 운명처럼 만났다.

퍼거슨 감독은 “유벤투스는 나의 맨유의 모델이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장인이 돼갔고, 리피 감독과 지략대결을 통해 퍼거슨 감독은 팀을 한 단계 발전했다. 일련의 경기들은 맨유에 유럽 챔피언 타이틀을, 퍼거슨 감독에게 기사 작위를 안기게 된다.

유럽: 초창기
헤이젤 참사로 인한 유럽대항전 출전정지 징계가 풀린 뒤에도 잉글랜드 클럽들은 한동안 유럽 무대에서 절망적으로 표류했다.

맨유도 초창기 쉽게 백기를 드는 그런 팀이었다. 챔피언스리그 데뷔 시즌인 1993-94, 2라운드에서 갈라타사라이에 원정다득점 원칙에 의해 탈락했다. ‘가디언’ 소속의 다비드 라체이가 “리그 챔피언의 나쁜 예를 보여줬다”고 쓸 정도로 퍼포먼스는 최악에 가까웠다.

1년 뒤, 조별리그에서 IFK 예테보리, 바르셀로나와 한 조에 속했다. 실력은 아주 조금 나아졌다. 홈경기에선 패하지 않았지만, 원정에선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캄누에서 열린 경기에서 - 심판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에릭 칸토나는 4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아 뛰지 못했다 - 호마리우와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콤비에 맥을 못 추고 당했다. 스티브 브루스와 개리 팔리스터는 4번이나 문을 열어주었다. 3주 뒤, 스웨덴 원정에선 깜짝 조 선두를 차지한 예테보리에 1-3으로 패했고, 그걸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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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유벤투스와 맨유는 1996-97시즌 그룹 C에 나란히 속했다. 맨유는 1996년 9월, 차디찬 동굴을 연상케 하는 스타디오 델레 알피 원정길에 올랐다. 당시 유벤투스는 유럽 디펜딩 챔피언이었고, 거의 모든 경기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퍼거슨 감독은 “킥오프 전 터널에 서 있었다. 유벤투스 선수들 옆에 있으니 우리 선수들이 작아 보였다”고 했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려나. 네빌은 자서전 ‘레드’에서 “터널 안에서 그들 옆에 서 있기가 솔직히 겁났다”고 털어놨다. “그들은 모두의 존경을 받는 빅 네임, 빅 플레이어이지 않은가.”

한 골차 패배는 눈부신 성과로 여겨졌다. 네빌은 “0-10으로 질 수도 있었다. 경기장에서 그 정도로 두들겨 맞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맨유는 90분 동안 단 한 개의 유효슛도 만들지 못했다. 네빌에 의하면, 그의 602경기 중 그런 적은 그때가 유일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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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리턴매치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유벤투스는 토리노에서만큼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올드트라포드의 낯선 분위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데이비드 메이와 칸토나가 골대를 강타하긴 했으나, 탄탄하게 조직된 이탈리아 팀의 수비를 뚫어내진 못했다. 니키 버트의 파울로 페널티를 얻어낸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직접 골로 연결하면서 경기는 또 한 번 1-0 스코어로 끝났다.

맨유의 초기 챔피언스리그는 외국인을 3명 투입하는 프리미어리그의 엄격한 규정에 발목이 잡혔다. 아일랜드 출신도 외국인에 포함됐다. 그래서 베스트 전력을 투입할 수 없었다. 1995년 말, 보스만 제도가 생기고, 외국인 출전 제한 규정이 폐지된 뒤에야 힘을 받게 됐다.

칸토나는 하지만 당시 축구선수로서 한계에 직면한 상태였다. 유벤투스와의 두 경기에서 속도가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었고, 두 번째 경기에선 결정적인 두 번의 찬스를 놓쳤다. 프리미어리그 초창기 최고의 활약을 펼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유럽 무대에선 특별할 게 없었다. 까마득한 프랑스 후배 지네딘 지단에 압도를 당했다. 디디에 데샹이 세워놓은 벽 앞에서 쩔쩔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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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로 가는 길
남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퍼거슨 감독이지만, 두 팀의 맞대결을 통해 리피 감독에게 매료됐다. 큰 경기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이탈리아 감독의 아우라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2009년 인터뷰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토리노 경기로 기억하는데, 시뇨리 리피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가죽코트를 입고, 시가를 피워댔다. 평온해 보였다. 반면 나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그날 비에 흠뻑 젖었다.”

두 감독은 서로를 존중했다. 리피 감독이 영어를 하지 못하고, 퍼거슨 감독이 이탈리아어를 아주 조금 구사할 수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은 불어와 와인으로 가까워졌다. 퍼거슨 감독은 리피의 유벤투스 경기 영상을 보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략, 기술 이딴 건 눈여겨보지 마. 우리도 갖고 있는 거니까. 그 팀의 승리를 향한 열망을 배우도록.”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승리가 찾아왔다. 두 팀은 1997-98시즌 또 한 번 같은 조에 배정됐다. 1997년 10월 올드트라포드에서 열린 맞대결에서 라이언 긱스의 환상적인 원더골에 힘입어 3-2 승리를 거뒀다. 퍼거슨 감독은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나타내는 증표”라고 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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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맨유는 이듬해 우승에 도전할 준비를 마쳤다고 스스로 느꼈다. 1998-99시즌, 8강에서 호나우두, 로베르토 바지오, 디에고 시메오네가 뛰던 인테르를 8강에서 떨어뜨렸다. 맨유가 토너먼트에서 이탈리아 팀을 탈락시킨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드트라포드에서 열린 유벤투스와의 준결승 1차전은 1-1 무승부로 끝났다. 두 팀은 이제 챔피언스리그 역사에서 손꼽는 명경기를 앞뒀다.

맨유는 초반 11분 만에 필리포 인자기에게 내리 2골을 허용하며 끌려갔다. 한 골은 넋놓고 당했고, 다른 한 골은 상대의 운이 좋았다.

맨유 레프트백 데니스 어윈은 “다들 우리를 평가절하했다. 시작도 전에 유벤투스가 승리한 것처럼 여겼다”고 말했다. 유벤투스는 당시 근 5년 동안 챔피언스리그 홈경기에서 패하지 않았었다. 잉글랜드 팀의 경우 1980년 이후 이곳에서 승리한 적이 없다. 역사도 맨유에 웃어주지 않았다. 승리할 확률은 말할 것도 없었다.

킨의 투입
“로이 킨! 캡틴의 골입니다!” 클라이브 틸데슬리가 방송 도중 소리쳤다. 이 아일랜드 출신 미드필더는 24분 헤더로 만회골을 터뜨렸다. 그는 곧바로 지단의 다리를 걷어차는 파울로 경고 한 장을 받았다. 이 경고를 통해 결승전에 진출한다고 하더라도 출전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때부터 로이 킨의 ‘인생경기’가 시작됐다. 이날 킨이 축구선수로서 정점을 찍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폴 스콜스는 “킨의 활약은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고, 앤디 콜은 “그의 골이 우리를 일깨웠다”고 덧붙였다. 미드필더 파트너 로니 욘센, 니키 버트와 힘을 합쳐 지단, 에드가 다비즈, 안토니오 콩테가 버티는 유벤투스의 중원을 무력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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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의 만회골이 터지고 10분 뒤, 드와이트 요크가 이마로 동점골을 넣었다. 콩테의 헤더를 야프 스탐이 라인을 넘기 전 걷어냈다. 그리고 요크가 골대를 강타했다. 경기장 분위기가 점차 달아올랐다. 킨은 멈추지 않았다.

후반. 어윈이 또 한 차례 골대를 강타했다. 인자기가 골망을 갈랐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지단의 슈팅을 피터 슈마이켈이 멋지게 쳐냈다. 킨과 다비즈가 신경전을 벌였고, 콜은 데이비드 베컴의 전매특허 크로스를 득점으로 연결할 뻔했다.

경기 종료 7분을 남기고,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로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던 콜과 요크가 치로 페라라-마크 율리아노 센터백 듀오를 무너뜨렸다. 요크가 번뜩이는 개인기로 페라라와 파올로 몬테로를 벗겨냈다. 그다음 골키퍼 안젤로 페루찌까지 제치려 했지만, 그의 팔에 걸려 넘어졌다. 하지만 콜이 어디선가 재빠르게 달려와 공을 골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맨유는 그렇게 유벤투스 원정에서 역사적인 첫 승을 따냈다. 아이는 3년 만에 어른을 뛰어넘을 만한 성장해 있었다. 유벤투스 팬들은 맨유를 향해 야유 대신 기립박수를 보냈다. 누가 더 나은 팀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1991년부터 이어진 이탈리아 팀들의 결승 진출 행진이 종지부를 찍었다. 이탈리아 왕조의 종말이 다가온다는 신호였다.

네빌은 2011년 5월 그의 기념경기 상대팀으로 유벤투스를 골랐다. 그는 역시 유벤투스를 사랑했던 걸까?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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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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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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