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story] 맨유 팬들에게 칸토나가 어떤 존재냐면

기사작성 : 2018-11-27 17:00

- '올드 트래퍼드의 왕' 칸토나
- 맨유 팬들에게 칸토나란...?

태그 맨유  칸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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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Andy Mitten]

26년 전, 알렉스 퍼거슨은 맨유의 새 시대를 열어줄 슈퍼스타를 영입했다. <포포투>가 '킹'으로 불린 사내, 다신 없을 ‘아이돌’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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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고의 순간? 많지만, 하나 꼽으라면 훌리건을 향한 킥을 꼽아야겠지.”

에릭 다니엘 피에르 칸토나의 맨유 5년을 지켜본 팬들은 아마도 칸토나의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1995년, 칸토나는 셀허스트파크에서 지적을 하는 한 관중의 가슴을 향해 '쿵푸킥'을 날렸다. 이 장면은 퍽 상징적이었다. 세계 축구는 둘로 나뉘었다. 칸토나를 지지하거나, 칸토나를 욕하거나. 맨유팬들은 칸토나가 처음으로 올드 트래퍼드의 잔디에 발을 올렸을 때부터 그를 흠모했다. 칸토나는 옷깃을 세우고, 가슴을 펴고, 대쪽같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조금씩 신의 영역에 접근했다.

칸토나는 ‘붉은 악마’ 그 자체였다. 징계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팬들은 자비를 털어 올드 트래퍼드 앞에 광고판을 설치했다. “그대가 30야드짜리 중거리포를 꽂아 넣은, 셀허스트에서의 밤을 잊지 못하오.”

칸토나는 “광고판과 그 골을 모두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정확히는 윔블던전이었다. 윔블던이 (크리스털 팰리스와 함께)셀허스트 파크를 사용했다. 포스터에 새겨진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팬들이 주중에 크로이던까지 찾아와 법정에 들어서는 날 응원해주는 게 좋았다. 그 응원에 힘을 얻었다. 구단도 나를 도왔다. 그래서 나는 올드 트래퍼드에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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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영국축구협회(FA)의 징계를 두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축구 역사상 그런 징계를 받은 선수는 칸토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칸토나가 버트 밀리칩의 강아지를 죽인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밀리칩은 당시 FA 회장이다.

맨유 팬들에게 ‘쿵푸킥’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사건이었다. 필자도 당시 현장에 있었다. 맨유 팬들이 잔뜩 모여 있는 아서 웨이트 스탠드에 있었다. 경기 중 칸토나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의 속은 마치 분노로 들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칸토나는 관중을 향해 킥을 날린 뒤, 맨유의 검정 원정 유니폼의 깃을 내리고는 경기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칸토나가 떠나고 경기장에 혼란이 찾아왔다. 팬들 다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몰랐다.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포포투>와 만난 칸토나는 뉘우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펀치를 하지 못했다.” 도리어 후회 섞인 목소리였다. “더 세게 때렸어야 했다. 그 장면을 이후 TV로 본 적이 없다. 봐서 뭣 하겠는가. 우리 작은 집 주변에 취재진이 모였다. 외부 빛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많이.”

퍼거슨 감독은 늘 칸토나를 대변했다. “전 세계에 맨유를 위해 만들어진 선수가 한 명 있다면, 그건 칸토나다. 그는 집시들처럼 많은 나라를 떠돌아다녔다. 그를 돌봐주고 마음의 안정을 줄 거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집이다. 이곳으로 왔을 때 칸토나도 깨달았을 것이다. 칸토나야, 여기가 내 집이다, 그렇게만 얘기하면 된다.”

칸토나의 영입은 맨유 라커룸에도 동요를 일으켰다. 영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선수들과 서먹서먹했다. 데이비드 메이는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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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는 “나와 우리 가족 모두 칸토나를 경외했다”라고 고백했다. “폴리(개리 팔리스터)와 브루시(스티브 브루스), 데니스(어윈)와 키니(로이 킨), 인시(폴 인스)와 긱시(라이언 긱스)가 한방을 썼다. 난 혼자 방을 썼다.”

그날 원정경기를 앞두고, 메이의 숙소에는 더블베드 두 개가 놓여있었다. 그중 한 곳에 누워있는데,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메이는 “에릭이 걸어 들어왔다. ‘맙소사,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메이는 스타의 심기를 건드리길 원치 않았다. “에릭이 먼저 나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방으로 일찍 돌아올까, 아니면 느지막이 돌아올까. 떠들썩하게 들어올까, 아니면 조용히 들어올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일찍 돌아가 침대에 앉아 TV를 틀었다.”

칸토나는 메이 맞은편 침대에 누워있었다. 칸토나는 28세의 나이에 이미 4성급 호텔에 익숙한 상태였다. 이미 8개의 클럽을 거치면서 프로 축구선수의 라이프에 대해 잘 알았다. 지저분한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들, 장난들, 그리고 비싼 전화요금에 대하여.

메이와 칸토나 사이에 거의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메이는 의식적으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메이는 “그저 인사를 하고, 경기 티켓 몇 장이 필요한지를 물었다”고 말했다. “대화 상대는 주로 아들이었다. 아들은 내가 맨유에서 뛴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날은 피터가 내게 누구와 같은 방을 쓰는지 묻더라. 그래서 칸토나라고 들릴 듯 말 듯, 세상에서 가장 무미건조한 투로 말했다. 피터가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에릭이랑 같이 있대!’ 아빠, 칸토나는 킹이라고요!.“

메이는 말했다. “침대에 누워 통화 내용을 모두 듣고 있던 칸토나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계속해서 TV를 시청했다. 순간 어깨가 으쓱해지는 걸 느꼈다.”

같은 선수가 경외감을 느낄 정도면, 팬들은 어땠을까? 칸토나가 맨유에 입성했을 당시, 팀은 26년 동안 1부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그가 (최전성기의 몸 상태일 때)떠났을 때 올드 트래퍼드는 트로피를 진열하기 위한 확장공사에 돌입해야 할 정도로 트로피가 넘쳐났다. 그를 숭배하는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필자는 지금껏 봐온 맨유 선수 중 칸토나를 가장 가슴 설레게 하고, 가장 포악하며, 가장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라고 기억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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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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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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