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하노이] 하노이에서 국적만으로 은인이 되던 날

기사작성 : 2018-12-07 07:02

- 2018 AFF챔피언십(스즈키컵) 준결승 2차전: 베트남 2-1 필리핀
- 10년 만에 우승 도전하는 '박항서-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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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하노이/베트남]

베트남의 2018년은 ‘박항서 매직’으로 가득하다. 올 초 준우승, 가을 4강에 이어 연말에 또 결승이다. 마법은 대단하다. 패배에 익숙했던 베트남 팬들에게 승리의 맛을 알려줬다. 시내를 관통하는 길을 베트남 국기와 부부젤라로 뒤덮이게 한다. 경기 후 한국인 기자가 감사 인사를 받게 하는 효능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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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성실하게 살겠노라 다짐하며 킥오프 4시간 전에 미딩국립경기장(하노이)에 도착했다. 기자보다 부지런한 사람이 참 많았다. 각종 응원 도구를 파는 노점상인들, 빨리 입장하고 싶어 철문 앞에 줄 선 팬들, 일찌감치 ‘응원 워밍업’에 한창인 팬들, 이곳저곳에서 계속 터지는 홍염들, 그때마다 호루라기를 불며 쫓아다니는 공안(경찰)들… 베트남의 축구 현장은 성실하고, 이렇게 극성이다.

박항서 감독의 얼굴을 프린트한 티셔츠가 보였다. 그 옆에서 상체에 박항서 감독을 그린 열성 팬이 열심히 기념 촬영 요청에 응하고 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 홍염이 터졌다. 붉은 섬광이 희뿌연 연기를 내뱉었다. 커다란 트럭에 베트남 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베트남 국부 호찌민, 베트남독립전쟁 영웅 보응우옌잡 장군 그리고 박항서 감독의 사진도 함께였다.

대한민국에서 ‘퀸’의 명곡들이 ‘싱어롱’되는 동안, 베트남에서는 국가가 뜨겁게 제창되고 있었다. 2018 AFF챔피언십(스즈키컵) 준결승 2차전에 앞서 베트남 4만 관중은 국가를 목청껏 따라 불렀다. 대형 국기가 관중석을 따라 천천히 넘실거렸다. 킥오프 휘슬이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 전일 기자회견에서 필리핀의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은 “4만 관중 앞에서 경기를 하게 되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미딩의 데시벨이 최대치까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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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내내 필리핀은 집요하게 공중볼 다툼을 유도했다. 베트남 수비진은 성실한 위치 선정으로 막고 끈질긴 집중력으로 버텼다. 무득점 상태가 이어졌다. 경기 막판이 되자 필리핀의 체력이 방전되고 말았다. 하노이까지 오는 데에만 20시간을 이동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필리핀은 바콜로드, 마닐라, 홍콩을 거쳐 겨우 하노이에 도착했다. 바콜로드에서 하노이로 특별기를 이용해 쾌속 복귀한 베트남의 체력이 앞설 수밖에 없다.

따분한 경기 끝에 정규시간이 7분밖에 남지 않았다. 0-0으로 끝나도 베트남은 결승에 오른다. 하지만 4만 관중을 그냥 돌려보내기에 미안했는지 베트남의 최고 스타 응우옌 쾅하이가 선제골을 터트렸다. 함성이 대폭발했다. 선제골 직후 박항서 감독은 테크니션인 응우옌 콩푸엉을 넣었다. 3분 뒤, 콩푸엉은 집념의 추가골을 뽑아냈다. 1, 2차전 합산 스코어를 4-1로 만드는 KO펀치였다. 후반 43분 필리핀의 만회골은 자존심만 ‘만회’하는 데 그쳤다. 베트남이 10년 만에 스즈키컵 결승전에 올랐다.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실로 내려가는 길에 베트남 현지 기자와 눈이 맞았다. 그는 활짝 웃으며 “미스터 박, 베리 굿”이라고 말했다. 조금 뒤에 “땡큐, 땡큐”라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실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있는데 다른 기자가 “콩그레츄레이션”이라고 말했다. “노. 콩그레츄레이션 투 유”라고 대답해줬다. 생각해보니 경기장에 오는 택시 안에서도 기사가 “바캉쓰어!”라며 아는 체했다. “깜언(고맙다)”라고 대답하며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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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스즈키컵에서 베트남은 두 번 결승전에 올랐다. 1998년 홈에서 싱가포르에 패했다. 2008년에는 바로 이곳 미딩에서 태국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10년이 흘러 2018년 다시 결승전에 올랐다. 상대는 조별리그에서 이미 꺾었던 말레이시아다. 박항서 감독은 “말레이시아는 이번 대회 최고 공격수들이 포진했다”라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베트남의 정상 등극이 시나리오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에게 감사해한다. 현지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박항서 감독이 정말 고맙다”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타지에서 일군 성과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존경과 사랑이다. 하노이 이곳저곳에서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마운 사람’이 되는 기자는 괜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 2018 스즈키컵 결승전 일정
-1차전: 12.11. 말레이시아 vs 베트남
-2차전: 12.15. 베트남 vs 말레이시아

글/사진: 홍재민
writer

by 홍재민

축구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하든 보든 쓰든 읽든 뭐든 @jaemin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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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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