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다 좋은데 우승 한 번도 못 해본 선수 12인

기사작성 : 2019-04-12 15:53

- 다 좋은데 하나가 아쉽네
- 그것은 바로... 우승, 트로피, 우승컵 (다 동의어임)
- 손흥민은 후보에서 끝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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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편집팀]

축구선수는 승리와 우승을 좇는다. 시즌이 끝난 후 선반 위에 놓인 빛나는 트로피를 보는 게 모두의 꿈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선수여도 운과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꿈을 이루기 쉽지 않다.

<포포투>가 클럽에서 혹은 대표팀에서 우승컵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선수 12인을 정리했다. 생각해보면 모두 최고라고 불렸던 선수들이다. 리스트에 추가될지도 모르는 한 명도 후보에 올렸다.

1. 안토니오 디 나탈레

디 나탈레는 수년간 세리에A를 이끄는 존재였다. 두 차례 득점왕을 기록했고, 2010년에는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우디네세 선수였다. 그의 선수 인생에서 결승전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선 다행히 이야기가 살짝 다르다. 유로2012 결승전에 올랐다. 비록 스페인에 0-4로 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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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디라이 바스투르크

독일에서 태어난 터키의 미드필더다. 그는 항상 메달 근처까지 가다가 고꾸라졌다. 2001-02시즌 그는 레버쿠젠에서 뛰었다. 당시 레버쿠젠은 1점 차로 우승을 놓쳤다. 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UCL)에서도 준우승을 기록했고, 포칼에서도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 그해 여름 바스투르크는 터키 대표팀과 월드컵에 출전했다. 브라질을 4강에서 만나 떨어졌다. 3, 4위전에서 가까스로 승리했다. 다행이다. 바스투르크는 메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었으니까.

3. 매트 르 티시에

전성기 시절 그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고 장거리 슈팅도 늘 위협적이었다. 세 차례나 '이달의 골'을 수상했다. 그가 사우샘프턴을 벗어났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을까? 그는 사우샘프턴에서 항상 리그 중간순위에 머물렀다. 메달에 가장 가까이 갔던 건 1992년 풀 멤버스컵이었다. 결승전에서 져 2위에 머물렀다.

4.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성공적인 선수였다. 브라질의 복잡한 리그와 컵 시스템에서 우승도 꽤 많이 했다. 국가대표에서 뛴 기간도 길고 보타포고와 코린티안스의 오랜 러브콜도 받았다. 하지만 국제 대회 우승컵이 없다. 1983년 코파아메리카 결승전에 가긴 했지만 우루과이에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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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메인 데포

다음 시즌 레인저스가 컵대회에서 운이 좋거나, 디포가 중국으로 이적을 하지 않는 이상 그는 트로피를 단 한 번도 들어 올리지 못한 선수가 될 거다.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제일가는 공격수다. 그러나 커뮤니티 실드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다. 2008년 그는 토트넘과 첼시의 리그컵 결승전을 일주일 앞두고 팀을 떠났다. 그리고 토트넘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심지어 새 클럽 포츠머스는 이미 FA컵에서 우승한 후였다. 정말 안됐다.

6. 레이턴 베인스

베인스가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레프트백이었던 시절이 있다. 그의 크로스 능력과 세트피스 프리킥 정확도는 어마어마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그를 원했지만, 베인스는 에버턴에 남았다. 입지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2009년 그는 FA컵 결승에서 패배하는 좌절을 맛봤다. 위건에선 리그컵과 챔피언십에서 '2위' 타이틀만 챙겼다.

7. 렌 섀클턴

'축구의 어릿광대 왕자' 섀클턴은 뉴캐슬과 선덜랜드에서 선수 시절을 보냈다. 현란한 기술을 뽐내던 공격수다. 그는 뉴캐슬 데뷔전에서 6골을 터뜨렸다. 1949-50시즌, 선덜랜드에서 딱 1점 차로 1부 리그 우승을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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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스탠 콜리모어

콜리모어는 노팅엄 포레스트와 리버풀에서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사생활 문제에 논란이 불거지며 잉글랜드 대표팀에선 딱 세 번 출전에 그쳤다. 1996년 FA컵 결승전, 리버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졌다. 2000년 레스터시티가 리그컵에서 우승할 당시 그도 팀의 일원이었으나 이적 규정에 걸려 함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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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크라이브 앨런

1980년 대부터 1990년 대까지 그는 QPR, 토트넘, 웨스트햄에서 활약했다. 런던에 있는 모든 팀에서 뛴 것 같다. 그는 두 차례 FA컵 우승 문턱에서 넘어졌다. 1982년 QPR과 결승전에 올라 토트넘을 만났다. 무승부로 재경기를 치렀으나 결국 지고 말았다.

5년 후 앨런은 토트넘에서 49골을 넣었다. 하지만 리그컵 4강에서 아스널에 지고 말았고, 리그 3위에 머물렀다. FA컵 결승전에서 코벤트리를 만났지만 추가시간 실점으로 패했다. 다 잡은 기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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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베른트 슈나이더

'하얀 브라질인'이라 불렸던 슈나이더는 레버쿠젠이 1점차로 우승을 놓쳤던 그 시즌, 그곳에 있었다. 레버쿠젠 10년차였다. 당시 레버쿠젠이 UCL 결승으로 향하는 데 슈나이더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UCL 전 경기에서 그보다 더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는 없다. 그해 여름 월드컵에선 브라질에 패해 2위에 머물렀다. 2006년 월드컵에선 3위였다. 그가 진짜 브라질인이었다면 우승을 많이 했을 거다.

11. 조 베이커

베이커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하이버니언에서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였던 그는 잉글랜드 대표팀에 소집됐다. 잉글랜드 리그에서 뛰지 않는 최초의 잉글랜드 국가대표였다. 이후 이탈리아 토리노로 이적했으나 잦은 논란으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아스널에 합류했다. 터널에서 심각한 차사고가 난 후 포토그래퍼를 마구 팼다는 소문이 있었다.

1966 월드컵에선 출전 기회를 받지 못했고, 다음 시즌 1부 리그에선 노팅엄 포레스트와 2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12. 조니 헤인즈

풀럼에서 18년 동안 뛰었다. 헤인즈는 658경기서 158골을 넣었다. 잉글랜드에서 최초로 주급 100파운드를 받는 선수가 됐다. 그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주장이기도 했다. 그는 남아프리카로 가 더반 시티의 우승을 도왔으나 프로 은퇴를 선언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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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손흥민

프리미어리그에서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윙어다.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트로피다. 토트넘에서 네 시즌째 125경기 42골을 기록 중이다. 새로운 홈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개장 후 2경기서 연속 득점을 터뜨렸다. UCL 8강 1차전에서 무려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그의 주가는 쭉 상승했다. 2018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며 병역의무도 해결했다. 이제 클럽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그는 신중한 선택을 해야한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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