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세계 최고 팀들이 주목하는 GK, 얀 오블락

기사작성 : 2019-05-20 15:13

- 라리가 최소 실점(20실점/37경기)
- 2015-16시즌부터 4시즌 연속 사모라상 수상!
- 포포투가 얀 오블락을 단독으로 만났다

본문


[포포투=Chirs Flanagan]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알아야 한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호신 얀 오블락 이야기다.

얀 오블락이 남긴 기록은 훌륭하다. 2014년 라리가 데뷔 이래 153경기에서 88회 무실점을 기록했다. 라리가 포함 스페인 무대로 확장하면 더 놀랍다. 통산 208경기에 출전해 작성한 클린시트만 자그마치 117개다. 2015-16시즌 이래 4시즌 연속 ‘사모라상’을 수상한 것도 당연해 보인다. 세계 최고 팀들이 그를 주목하고 있다.

‘월드No.1’ 축구매거진 <포포투>가 오블락과 인터뷰를 공개한다. 라리가 최고 골키퍼 얀 오블락의 모든 것.

Responsive image
“어릴 때 자전거로 훈련장을 오갔다. 편도 30km였다”
얀 오블락이 <포포투>와 마주 앉았다. 그조차 자신의 기록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진짜 말도 안 되는 기록이다.”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오블락은 지난해 11월 8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100번째 클린시트를 해치웠다. 178번째 경기에서였다. 그는 “세어보지 않았다”면서도 “그 말을 듣고 정말 행복했다. 현대축구에서 흔히 보지 못하는 기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몇 시즌 동안 그는 꾸준히 상을 받아왔다. 별로 놀랍지는 않다.

아틀레티코의 훈련장은 마하다온다에 위치했다. 마드리드 북서쪽으로 16km 떨어진 곳이다. 나무가 무성한 길을 따라가면 도착한다. 가는 길에는 정상이 눈으로 덮인 과다라마산맥을 볼 수 있다. 건장한 체격의 수석 코치 게르만 부르고스가 훈련장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엄격한 잔디관리인 같았다. 여기에 곧 디에고 시메오네까지 등장한다. 그는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신중하게 지켜본다.

오블락이 오전 일정을 끝내고 <포포투>와 만나기 위해 구단 미디어 센터로 향했다. 근 몇 달간 솟은 그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9000만 파운드(약 1285억 원) 정도 될 거다. 하지만 조금도 거만해지지 않았다. 그는 인사를 건넨 후 어디에 앉으면 되는지 물었다. “여기 앉으면 되나?” 그의 말투와 행동에서 존중이 느껴졌다.

오블락은 인터뷰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그는 결코 주목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기력을 자랑스레 떠드는 것도 안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분명 들을 가치가 있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거론되고 있으니까. 슬로베니아의 조용한 언덕에 지내던 그는 지금 정상에 서 있다. 그 길이 늘 순탄치만은 않았다. 오블락이 설명한다.

“나는 슈코퍄로카라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슬로베니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곳이다. 그곳에 작은 클럽이 있다. 나의 아버지가 뛰었던 아마추어 클럽이다. 아버지는 골키퍼였다. 그러니까 나의 첫 번째 우상인 셈이다. 나는 늘 그를 지켜봤다. 아버지가 훈련할 때 늘 그의 골대 뒤에 서 있었다. 그가 다이빙하면 나도 같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3, 4세 정도였을 거다. 내 앞에는 공이 없었지만 늘 아버지를 따라 했다. 그처럼 되고 싶었다.”

Responsive image
그의 재능이 처음 주목을 받은 건 아버지의 경기에서였다.

“어느 겨울날에 아버지는 류블랴나에서 실내 축구를 했다. 당시 난 8, 9세 정도 됐다. 하프타임에 난 누나와 함께 축구를 했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이 많고 축구도 꽤 잘한다. 누나가 슈팅을 때렸고 나는 골문을 지켰다. 사방으로 몸을 날리며 공을 막아냈다. 올림피야 류블랴나에서 누군가가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구단으로 불렀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큰 클럽이었다. 난 정말 행복한 꼬마가 됐다.”

오블락은 테스트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올림피야의 유소년팀에 합류했다. 몇 년 동안 훈련을 오가는 건 그에게 꽤 힘든 일이었다. “나는 훈련장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살았다. 가는 게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위해 많이 희생하셨다. 심지어 일하는 시간까지 변경해가며 나를 훈련장에 태워다 주셨다. 이따금 아버지가 일 때문에 나를 데려다주시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30km를 달려가서 또 30km를 달려왔다.”

“처음에 출발할 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러나 도착한 순간 너무 피곤한 거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하기도 했다. 나의 최고 기록이다. 곧바로 축구를 해야 하는 나에겐 별로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다음부턴 천천히 달렸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나의 목표와 꿈은 축구선수였다. 골키퍼가 되고 싶었다.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가져온 꿈이다.”

조금 복잡한 일이 생겼다. 2005년 올림피야가 강등했다. 구단의 빠른 개혁도 소용이 없었다. 오블락이 16세가 됐을 때 주전 골키퍼 로베르트 볼크는 그가 뛰어도 된다고 판단했다. “이 꼬마가 나보다 낫다”고 43세 베테랑 골키퍼가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유망주에게 기꺼이 내어줬다.

오블락이 회상했다. “출발이 빨랐다. 나는 15세 때부터 1군에 합류해 훈련했다. 클럽은 2부리그에 있을 때 나를 데뷔시켰다. 재정 문제 때문이다. 이후 우리는 1부로 승격했고 나는 계속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점점 날개를 펼쳤다. 어리지만 영리했다. 그 자질이 지금의 오블락을 만들었다. “내가 16, 17세였을 때부터 나는 또래 친구들과 생각의 범위가 달랐다. 조금 더 성숙했다.” 그는 올해 1월 26세가 됐다. “심지어 지금도 내 또래보다 어른스럽다는 걸 느낀다. 체감상 40세 정도 되는 것 같다! 골키퍼는 성숙하고 차분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

Responsive image
“모두가 틀렸다는 걸 증명할 날을 기다렸다”

그는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르고 싶어 했다. 슬로베니아를 벗어나야 그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타지로 향한 그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오블락은2010년 벤피카에 입단했다. 1년 전에는 런던에서 풀럼과 함께 훈련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 그곳에 있었다. 풀럼을 꿈꾸지는 않았다. 계약도 원치 않았다. 슬로베니아는 축구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었다. 어렸던 나는 다른 나라의 축구 환경이 궁금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보고 싶었다. 마지막까지 풀럼과 나는 계약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벤피카로 이적했을 때 그는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경기 환경에 적응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이후 SC 베이라마르 임대생이 됐다. 교체 명단에 오르는 것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과 통화를 하며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오블락이 당시를 떠올렸다. “어려운 시간이었다.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다. 슬로베니아에서 훌륭한 시즌을 보냈고 선발 출전도 했다. 떠나는 게 절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떠나기로 했다. 내가 목표를 이룰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에서 출발은 좋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과 처음 접해본 언어로 소통해야 하는 새로운 삶이었다. 삶은 그렇게 복잡하다. 그러나 돌아보면 올바른 이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발전했기 때문이다. 축구를 위해 포르투갈로 향했다. 내 삶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수개월이 흐른 후 아버지도 포르투갈에 와서 나와 함께 지내며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셨다.”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포르투갈을 떠나 슬로베니아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아니, 전혀.” 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간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하는 선수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다른 나라에 도전하기 위해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늘 의문을 가졌다. ‘왜 그러는 거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두고.’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역시 힘든 일이었다. 모두가 견뎌낼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베이라마르에서의 임대가 끝나고 SC 올랴넨스로 또 임대를 떠났다. 그곳에선 벤치 신세였다. 레이리아에선 출전 기회를 몇 차례 잡았다. 리우 아베에서 그는 누노 에스피리토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포르투갈에서 네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그는 다시 벤피카에서 도전할 역량을 갖췄다. 팀에 돌아온 지 7개월 만에 오블락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함께 트레블을 달성했다. 팀이 UEFA 유로파 리그(이하 UEL) 결승에 향하는 데 공을 세웠다. 또, 벤피카에 1600만 파운드(약 230억 원)를 안겨주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향했다. 라리가 역사상 가장 비싼 골키퍼가 됐다.

그는 아틀레티코에서 리그 첫 15경기 동안 클린 시트를 13차례 기록했다. “특별했다. 나는 여전히 어렸다. 주전에 오르기 위해 늘 노력했다. 시즌 전 반기에는 선발 출전을 하지 못했다. 12월에 데뷔했고 남은 반 시즌을 훌륭하게 보냈다.”

UEL 4강 2차전에서는 잔루이지 부폰이 있는 유벤투스를 상대했다. 오블락이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골키퍼다. “나는 자라는 동안 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최고의 골키퍼를 봤다. 특히 이케르 카시야스와 부폰을 좋아했다. 부폰이 있는 팀을 상대하는 건 정말 특별했다. 유벤투스는 훌륭한 팀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홈에서 2-1로 승리했다. 원정에선 0-0으로 비겼다.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틀레티코도 결코 만만한 팀은 아니었다. 이적 후 처음 몇 개월 동안 그는 벤피카에서처럼 꽤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그가 데뷔하기도 전에 벤피카 회장 루이스 필리페 비에이라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아틀레티코가 오블락을 다시 벤피카로 보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비에이라는 “우리는 그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틀레티코는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Responsive image
오블락은 “믿지 않았다. 지금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9월 데뷔전을 치렀다. 올림피아코스 원정에서 세 골을 허용하며 2-3으로 졌다. 2015년 3월까지 아틀레티코는 라리가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UCL)와도 거리가 멀어졌다.

그래서 티보 쿠르투아 대체자로 거론되는 상황은 놀라웠다. 쿠르투아는 쉽게 대체되기 힘든 선수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오블락이 그와 비교되고 있던 거다.

“사람들이 내게 물어봤다. ‘기분이 어때? 부담되니?’ 나는 누구의 대체자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준비도 덜 됐었다. 프리시즌에 부상을 입었다. 나의 훌륭한 동료 미구엘 앙헬 모야가 선발로 출전하며 꽤 잘했다. 나는 오랫동안 기회를 기다렸다. 벤치 신세는 힘들었다. 그러나 내게 단 5분의 시간은 반드시 올 거라 믿었다. 나를 두고 안 좋은 평가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은 나를 몰랐다. 나는 내 능력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기회는 UCL 16강에서 찾아왔다. 홈에서 바이어 레버쿠젠을 상대했다. 오블락은 “그 경기가 나의 삶을 바꿨다”고 말했다. 모야가 레버쿠젠과의 2차전에서 23분 만에 부상을 입었고 오블락이 대신 투입됐다.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졌다. 그는 하칸 찰하노글루의 슈팅을 좌절시켰다. 아틀레티코는 8강에 진출했다. 오블락은 그때부터 선발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가 회상했다. “내게 정말 엄청난 순간이었다. 동료가 부상을 입어 안타까웠다. 다른 골키퍼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좋은 방식은 분명 아니다. 나는 승부차기에서 팀을 지켰다. 우리는 8강에 진출했고 축구 인생도 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쳤다. UCL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2015-16시즌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토마스 뮐러의 결정적 슈팅을 막아내기도 했다.

“정말 미친 경기였다. 우리는 홈에서 1-0으로 이겼다. 그러나 바이에른도 홈에서 정말 강했다. 우리는 좀처럼 하프라인을 넘지 못했다. 그들은 프리킥 상황에서 공을 굴절시키며 예상 밖의 골을 터뜨렸다. 그들은 계속해서 압박했다. 그리고 페널티킥 기회를 만들었다. 나는 골대 앞에 서서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내가 이 페널티킥을 막아야 해. 내가 막지 못하면 그들은 우리를 죽이고 말 거야.’ 운이 좋게도 나는 공을 막았다. 게다가 앙투안 그리즈만이 동점 골까지 터뜨렸다. 그렇게 결승행 티켓을 따냈다. 정말 멋진 밤이었다.”

아틀레티코는 밀란에서 레알마드리드를 만났다. 벌써 결승전에서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리고 오블락이 강한 승부차기에서 패배했다.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그가 말했다. “그 결승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이다. 또 승부차기였다. 나는 4강에서 팀을 구했다. 16강에서도 승부차기로 PSV 아인트호벤을 꺾었다. 1년 전 레버쿠젠도 그랬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레알에 졌다. 모든 슈팅을 허용하고 말았다. 너무 슬펐다. 경기 전 조사를 다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경기 당일 선수의 발끝에 달려있었다. 며칠 내내 슬픔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게 내 커리어의 끝은 아니니까. 겨우 한 경기일 뿐이다. 물론 결승전이고 아주 중요한 경기였다. 하지만 언젠가 UCL에서 우승할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TV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승리를 확정 짓는 슈팅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 오블락은 채널을 돌려버릴까? “아니, 이제는 볼 수 있다. 그런 단계는 이미 지났다. 이런 궁금증이 들 수 있다. ‘왜 오른쪽으로 뛰었나? 왜 왼쪽으로 가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결과를 두고 논하는 건 쉽다. 그저 최선을 다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면 된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Responsive image
아틀레티코는 대신 지난해 UEL에서 우승했고 UEFA 슈퍼컵에서 레알을 만나 승리를 거뒀다. 무실점으로 그가 가장 갈망하는 것은 트로피다. “경기에서 승리하고 우승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상을 받은 것도 자랑스럽다. 그렇지만 개인 수상보다 팀과 함께 우승하는 게 우선이다.”

트로피 수집을 향한 열망은 꽤 효과가 좋았다. 덕분에 오블락은 수많은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이는 곧 아틀레티코의 ‘색깔’로 자리 잡았다. 수비가 조직적이고 탄탄한 팀이다. 이렇게 상대가 골을 넣기 힘든 팀도 없다.

2018-19시즌 아틀레티코는 리그 38경기에서 29골을 허용했다. 한 시즌 더 전에는 22실점이었다. 2015-16시즌에는 더하다. 겨우 18골을 허용했다. 오블락의 존재감이 확실했다. 기록지를 살펴보면 오블락의 실수 없는 플레이가 눈에 띈다.

오블락이 설명했다. “우리도 잘 안다. 우리는 수비가 탄탄하고 잘 뭉친다.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 팀이 아닌 개인으로는 힘든 일이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플레이를 펼치지 못한 경기들을 기억한다. 힘든 경기였다. 훈련장에서 실수를 보완한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게 도움이 된다. 전술적 능력이 훌륭한 감독도 있다. 선수들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상대가 우리에게 골을 넣으면 흐름을 뒤집기 힘들다.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무실점을 유지하는 게 우리에게 훨씬 편하다. 아틀레티코는 득점을 많이 하는 팀이 아니다. 우리도 200골 정도 넣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무실점이 중요하다. 승리할 가능성이 생기니까. 우리는 매 경기, 매 순간 100% 집중력을 쏟는다. 그래서 우리가 위협적이다. 확신한다. 어느 팀이든 이길 자신이 있다.”

“프리미어리그는 흥미롭다. 가능성은 열려있다”
놀랍게도 오블락은 슬로베니아 대표팀에서 겨우 20번 출전했다. 2012년에 데뷔했는데도 말이다.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사미르 한다노비치가 수년간 ‘넘버원’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2015년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오블락은 팔 부상으로 UEFA 네이션스리그에 출전하지 못했다.

슬로베니아는 2010년 이후 주요 대회 본선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다. 슬로베니아가 지난해 월드컵에 출전했다면 아마 오블락은 FIFA 올해의 골키퍼 3인 안에 노미네이트 됐을 거다. 이번에는 티보 쿠르투아, 휴고 요리스, 카스퍼 슈마이켈이 이름을 올렸다. 세 선수 모두 러시아에서 맹활약했다.

Responsive image
“유로 대회와 월드컵에서 꼭 뛰고 싶다. 나의 목표 중 하나다.” 오블락이 말했다. 그는 유로2020 최종예선에서 폴란드, 오스트리아, 이스라엘, 마케도니아, 라트비아를 상대한다. “쉽지 않은 조다. 그러나 팀 분위기가 괜찮다. 누구든지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아이슬란드가 대표적인 예다.”

그는 2018 월드컵은 놓쳤지만 2년 연속 발롱도르 30인 안에 이름을 올렸다. “대단한 성과다.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골키퍼가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건 어렵다. 오블락도 알고 있다. “놀랍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도 공을 막는 선수보단 골을 넣는 선수를 좋아한다. 골은 경기를 흥미롭게 만든다. 우리 골키퍼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싫어하는 걸 한다. 소속팀 팬들이야 좋겠지. 하지만 나머지는 다 싫어한다!”

아틀레티코의 팬들은 오블락에게 고마워한다. 복수의 구단이 새로운 골키퍼를 물색할 때 오블락이 늘 거론된다. 리버풀의 감독 위르겐 클롭도 알리송을 영입하기 전에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첼시도 오블락을 원했다고 알려졌다. 9000만 파운드(약 1292억 원)에 오블락을 데려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첼시는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7160만 파운드(약 1027억 원)에 케파 아리사발라를 영입했다. 오블락이 아틀레티코에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쿠르투아를 대체할 뻔했단 거다.

오블락은 첼시 이적설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하길 꺼렸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얘기는 하지 못한다. 확실한 건, 지난여름 나는 이곳에 남고 싶다고 했다. 다른 클럽과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에이전트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했을 뿐이다. 나는 남기로 했다. 이곳에서 밝은 미래를 꿈꾼다. 우승 타이틀을 들어 올리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미래에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축구에선 매일매일 상황이 변한다. 지금 당장 확실하게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도 내일의 상황을 모르니까. 지금은 1월이다. 6월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빠르게 변한다. 프리미어리그는 흥미롭다. 매력적이다. 가끔 내가 뛰고 싶은 경기들도 있다. 그곳에서 뛸 수도 있다. 언제일지는 모른다. 2년 안에 갈 수도 있고, 5~10년 안에 갈 수도 있다. 당장 내년이 될 수도 있다.”

Responsive image
지금 오블락은 아틀레티코에서의 삶에 만족한다. 시메오네를 향한 믿음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시메오네는 최근 오블락이 쿠르투아보다 한 수 위라고 말했다. 쿠르투아는 2013-14 라리가 우승을 경험했고, 스페인에서도 수준급의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오블락이 대답했다. “이런 얘기를 듣는 건 언제나 영광이다. 그는 나의 감독이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기쁘다. 많은 얘기를 듣는다. 누군가는 내가 최고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마다 나는 더욱 행복해진다.”

그도 자신이 최고라고 여길까? “내가 답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평가하도록 둘 것이다. 대신 나는 최고가 될 수 있게 꾸준히 노력하겠다.”

아버지의 골대 뒤에 서서 그를 흉내내던 순간부터, 자전거를 타고 훈련장까지 왕복 60km를 달리던 순간부터, 사람들이 그를 비웃던 순간부터 오블락은 계속 달려나가고 있다. 그가 정상에 설 거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때부터.


사진=포포투DB, 게티이미지코리아
writer

by 편집팀

남들보다 442배 '열일'합니다 @fourfourtwokorea
트렌드
포포투 트렌드

[영상] 잉글랜드 전율시킨 슈퍼 쏜! 슈퍼 골!

포포투 트렌드

[영상] 내한공연 전 흔한 맨시티팬 근황

Responsive image

2019년 06월호


[FEATURE] 101 GREATEST PLAYERS: 영국 본지 통권 300호 기념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 호나우두,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세르히오 아구에로, 필립 람... 우리생애 최고 스타들 총출동
[FEATURE]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 2019 U-20월드컵 풀가이드
[READ] 한국판 창간 12주년 기념 BEST SCENES: 박지성에서 손흥민까지 아이콘 연대기

[브로마이드(40x57cm)] 리버풀, 토트넘, 살라x피르미누, 손흥민x에릭센
주식회사 볕
03175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7 한글회관 302호
구독문의 : 02-302-1442    카톡 : fourfourtwokr
대표이사 임진성 사업자등록번호 : 758-88-00295 통신판매신고번호 : 제2017-서울종로-0716호
Copyright © BYUTT.COM All rights reserved.
포포투코리아 웹사이트 제작 디자인 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