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축구 역사에 남을 싸움 6선

기사작성 : 2019-11-01 18:32

- '뷔페 전투'가 15년이 흘렀다
- 여기 그에 못지 않은 싸움이 있다!

본문


[포포투=Greg Lea]

15년 전 이맘때 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경기를 펼쳤다. 2004년 10월 24일 아스널은 올드트래퍼드에서 알렉스 퍼거슨이 이끄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패했다. 그들의 49경기 무패가 깨진 경기이자 2002년 5월 이후 프리미어리그 첫 패배였다. 좋은 반응이 따라올 리 없었다. 이는 올드 트래퍼드 통로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번졌다. 아스널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퍼거슨 감독 얼굴에 피자를 던졌고 선수들은 또 다른 음식을 던지며 싸웠다.

‘뷔페 전투’의 기념하며 또 다른 심각한 불화를 소개한다.

Responsive image
1. 알렉스 퍼거슨 vs 아르센 벵거

큰 사건으로 시작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피자 사건이 가장 유명하지만 벵거와 퍼거슨의 불화는 그 훨씬 전부터 일어났다. 1996년 8월 벵거가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아스널로 옮겼을 때 퍼거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초짜배기여서 일본 축구를 유지해야 한다.” 둘의 관계는 이후 8시즌을 거치면서 더욱 악화되었고 2004년 10월 ‘피자-게이트’ 충돌로 절정에 다다랐다.

애슐리 콜은 자서전에서 “우리가 터널을 지나갈 때 모두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너는 사기꾼이야’라는 소리가 들렸고 선수들은 서로 밀치고 있었다. 나는 중간에 낀 상태였다. 벵거와 퍼거슨이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 열정적인 프랑스인과 건장한 스코틀랜드인의 말싸움이었다.” 시간이 흐를 수로 둘 사이의 관계는 풀려갔다.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진 것도 있겠지만 벵거의 팀이 퍼거슨 말년에 크게 위협적이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오늘날 두 사람은 서로 존중하지만, 한때는 정말 치열한 싸움이었다.

2.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vs 카를로스 빌라르도

디에고 마라도나와 리오넬 메시는 틀림없이 역대 최고의 선수들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축구를 보는 관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메노티와 빌라르도다. 경기 방식에 대한 이 인물의 상반된 관점은 수십 년 동안 아르헨티나 축구에 이분법적인 사고를 불어 넣었다. 경기는 재밌어야 한다는 메노티와 승리만을 중요시한 빌라르도의 대립이었다.

이 불화는 개인적인 감정보다 원칙에 관한 충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월드컵(1978년 메노티, 1986년 빌라르도)을 들어 올렸다는 사실은 이 충돌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려줬다. 같은 국적인 두 사람이 보인 다른 사상은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이념적 충돌을 만들어냈다. 마치 냉전 시대처럼. 핵만 없을 뿐이다.
Responsive image
3. 브라이언클러프 vs 돈 레비

클러프가 리즈에서 경질된 후 레비와 함께 한 TV토론이 방영한 지 41년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밤에 방영할 만큼 매력적인 방송으로 남아있다. 사회자 오스틴 미첼의 질문을 받은 클러프는 상대를 싫어하는 이유가 그 팀의 경쟁력이라고 답했다. 후에 레비의 리즈는 1부리그에서 추락했다. 두 사람의 충돌은 완벽한 의견 대립에서 비롯됐다. 클러프는 좋은 축구와 심판에 대한 존경을 추구했지만 레비의 리즈는 악명 높은 축구를 선보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거칠고 거만한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은 클러프였다. 레비는 공손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둘 다 뛰어난 감독이었지만 필드 안팎에서 그들은 더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클러프는 레비와 라이벌 사이를 이렇게 말했다. “레비의 축구와 다른 방식의 축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토피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 하지만 이게 내 방식이다. 나는 이상주의자다. 나는 이상을 믿으며 그게 내 관점이다.”

4. 발레리 로바노프스키 vs 콘스탄틴 베스코프

클러프와 레비, 메노티와 빌라르도처럼 소련의 감독이었던 두 사람은 계속해서 대립했다. 소련 대표팀 감독을 3번 맡는 동안 로바노프스키는 열공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경기 운영과 계획에서 과학자다웠다.

반면 베스코프는 축구를 예술로 보았다. 그는 경기장에서 선수들에게 창의적인 자유를 주는 것에 행복해했다. 두 사람의 충돌은 1970년대 후반 아주 격렬했다. 로바노프스키가 디나모 키예프를 맡고, 베스코프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를 담당했던 1980년 때까지 이어졌다. 트로피 면에서는 로바노프스키가 우위였다. 디나모는 1980년부터 1986년 사이 4번 우승했고 스파르타크는 1979년과 1987년 두 번 우승했다. 하지만 베스코프는 재미있는 경기 스타일로 찬사를 받았다.

5. 아리고 사키vs파비오 카펠로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사키의 밀란은 언제나 최고의 팀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가 부임 당시에는 여론이 좋지 않았다. 당시 많은 밀란 팬들은 1986-87시즌 감독 대행을 맡았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신발 판매원이었던 사키보다 더 선호했다. “기수가 되기 위해 경주마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경험 부족에 대한 지적에 대한 사키의 말이다. 1991년 카펠로는 사키가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옮긴 뒤 밀란 감독직을 맡았다.

사키는 밀란에서 유럽피언컵 2회 스쿠데토 1회를 들어 올렸다. 카펠로 지도 아래 밀라는 스쿠데토 4번과 유럽피언컵 1회 우승했다. 하지만 공격 축구 추종자 사키는 카펠로의 축구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아리고 사키는 이렇게 말했다. “카펠로에게 축구는 이기는 것이 전부다. 그는 축구에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Responsive image
6. 조제 모리뉴 vs 펩 과르디올라

“이 방(레알마드리드 기자실)에서 그가 대장이다. 여기서 그는 X 같은 놈이고 나는 그와 경쟁할 수 없다. 만약 바르셀로나가 그런 경쟁자를 원하면 다른 감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냉철하기로 유명한 사람의 폭발보다 왜 서로 맞받아치지 않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갔다. 여기서 다룬 많은 충돌처럼 모리뉴와 과르디올라의 대립은 감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신념과도 관련이 있다.

모리뉴는 성공한다면 수동적이고 역습 축구를 하는 데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반대로 과르디올라는 승리는 스타일에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리그 우승 13번과 유럽 대항전 4번 우승이라는 업적에 걸맞게 과르디올라와 모리뉴는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그들이 서로 참지 않을 때마다 오락거리를 더해주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writer

by 편집팀

남들보다 442배 '열일'합니다 @fourfourtwokorea
트렌드
포포투 트렌드

[영상] 잉글랜드 전율시킨 슈퍼 쏜! 슈퍼 골!

포포투 트렌드

[영상] 내한공연 전 흔한 맨시티팬 근황

Responsive image

2019년 11월호


[COVER STORY] 위르겐 클롭이 말하는 클롭의 모든 것
[EXCLUSIVE] 팬들이 묻고 스타가 답한다: 킹영권, 이보다 솔직할 수는 없다!
[FEATURE] 자금 세탁: 축구 시장에서 검은 돈이 하얗게 세탁되고 있다
[PICTURE SPECIAL] 화성에서 평양까지, 벤투호 10일
[READ] 리버 vs 보카: 지구상 최고 혈전, 수페르클라시코 가다

[브로마이드(40x57cm)] 이강인, 황희찬, 정승원, 킬리앙 음바페
주식회사 볕
03175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7 한글회관 302호
구독문의 : 02-302-1442    카톡 : fourfourtwokr
대표이사 신혜경 사업자등록번호 : 758-88-00295 통신판매신고번호 : 제2017-서울종로-0716호
Copyright © BYUTT.COM All rights reserved.
포포투코리아 웹사이트 제작 디자인 lo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