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n&now] 묵묵했던 오장은, ‘화려한 지도자’를 꿈꾸다

기사작성 : 2020-03-26 14:10

- 은퇴 후 이야기: <오장은>편
- 그는 FC도쿄 초등부 코치가 됐다
- 선수 때와는 달리 ‘화려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데…

본문


축구화를 벗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그때 그 스타’를 만납니다. <편집자 주>

[포포투=조형애]

화려하고 싶지 않은 선수는 없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궂을 일을 모른척할 수 없는 선수가 있을 뿐이다. 오장은이 그랬다. 그는 선수 생활 내내 묵묵히 지시를 수행해왔다.

J1 FC도쿄에선 성실성을 인정받았고, K리그 대구FC, 울산현대, 수원삼성, 성남FC, 대전 시티즌(대전하나시티즌 전신)에서 291경기(24골 21도움)를 뛰는 동안엔 늘 ‘화려하진 않지만 지도자가 신뢰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 ’지도자’ 오장은은 화려하고 싶다 말한다. FC도쿄 초등부 코치가 출발점. 그는 “신선한 충격을 주는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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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7개월 여가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은퇴 직후엔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일본에 2번 다녀왔다. 한 번은 인사하러 갔고, 또 한 번은 연수차였다. 지도자를 하려면 현장의 감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며칠 동안 FC도쿄 코칭스태프들과 같이 지냈다. 초등부(사커스쿨) 코치로는 3월부터 일하고 있다. 사실 어제(25일) 첫 출근을 했는데… 긴급회의 후에 다시 재택근무 결정이 났다. 코로나19 때문에 여기도 거의 다 중단돼 있다.

FC도쿄에서 맡은 보직을 설명해 달라.

이곳에선 초등부를 ‘사커스쿨’이라고 부른다. 30개 정도 장소를 일주일에 5일 동안 돌면서 가르친다. 감독이 따로 있지는 않고 20여 명이 넘는 코치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식이다. 일본은 학기가 4월에 시작하기 때문에 아직까진 일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앞으로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은퇴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발표를 34번째 생일(7월 24일)에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생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일말의 희망이란 게 있었다. 그런데 생일날 “어떻게 지내?”,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묻는 질문에 대답을 “그만하려고”라고 말하다 보니, 정말로 ‘그만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해봤기 때문에 든 생각인 것 같다.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해봤다?

무릎만 안 꿇었지 찾아가서 사정도 해보고, 테스트도 받았다. 그 이상 뭘 더 할 수 있겠나. 로비는 안되는 건데(웃음)! 부상으로 인해서 최근 출전 기록이 없다 보니 쉽지 않았다. (FFT: 동남아 리그는 염두에 두지 않았나?) 동남아도 찾아봤다. 정말 많이 내려놨었다. 하지만 현실은 과거의 나를 평가하는 게 아니더라. 그래도 해볼 노력 다해서 마음이 정말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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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나이에 벨기에 유학과 일본 프로 데뷔를 했다. 도전적 기질이 다분하다고 느껴서인지 은퇴 소식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선수 생활을 빨리 관둔 것도 정말 도전이다!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사실 은퇴 결정이 쉽지는 않다. 6개월 쉬다가 팀 찾아보고, 못 찾으면 6개월 더 몸 만들다가 또 찾아보고… 몸이 괜찮으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축구 밖에 안 해왔으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난 빨리 내려놓기로 했다. 지도자를 계속 꿈 꿔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도자 할 때를 위해서 조금 더 선수 생활을 하려고 한 것도 있다. 선수들을 이해하고, 더 느껴 볼 필요가 있겠구나 싶어서다.

은퇴하면 사회생활에 ‘신생아’가 되는 경험을 한다던데?

어려서부터 해외 나가 혼자 생활해서 그런지 특별히 그런 경험을 하고 있진 않다. 어린 나이에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수로서도 화려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난 그 점을 자부심으로 가지고 있다.

어떻게 중학교 3학년 당시 벨기에 유학과 J리그 진출을 할 수 있었나?

어린 마음에 단순했다. 축구를 잘하고 싶었고, 더 배우고 싶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뛰어보기 위해서 고향 제주도를 떠나 ‘육지로 가자’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벨기에 유학이라는 기회가 생겼다. 비자 문제 때문에 6개월 만에 돌아와 수원삼성 연습생 계약을 맺으려 했는데 그 타이밍에 J리그 제안이 왔다. 내 생애 첫 테스트를 받은 구단이 FC도쿄다.

3년 몸담았던 FC도쿄와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J리그 최연소 출전 기록을 깼고, 도쿄에 입단한 첫 한국인이기도 했다. 그 이후 도쿄는 꾸준하게 한국인 선수들을 뽑고 있다. 화려한 활약을 한 건 아니다. 그런데 이미지가 좋았다고 말하더라. 항상 성실하게 운동했고, 최선을 다했다고, 도쿄에서 성장해서 한국 국가대표까지 올랐다고 아직까지도 기억해 주신다.

늘 선수 오장은을 이야기할 때 ‘화려하진 않지만 지도자들이 매우 신뢰하는 선수’라고들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날 보여 주기 위해선 경기에 나가야 한다. 나가려면 그 팀과 감독이 원하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원하는 걸 못하면 경기에 못 나간다.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보여주질 못하는 거다. 난 항상 지도자가 원하는 부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찾았다. 그래서 지도자분들이 좋게 봐주신 것 같다.


나도 골 많이 넣고,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싶었다.
감독님들이 수비 시키면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씨, 공격하고 싶은데!’



솔직히 선수가 하고 싶은 축구와 지도자가 그리는 축구가 다를 수 있지 않나?

일단 지도자가 원하는 걸 해야 한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FFT: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요즘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의견을 표출하는 시대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선 지도자들이 더 공부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유튜브로 영상도 쉽게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선수들이 더 많이 안다. 그런 선수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안 보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하는 거다.

그렇다면 지도자가 원한 것 말고, 진짜 하고 싶었던 플레이는 무엇인가?

난 원래 골도 많이 넣고 싶고, 스포트라이트도 많이 받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너무 책임감이 강하다 보니까… 감독님이 아시고 수비 가담을 많이 주문하셨다. 사실 지도자 입장에선 골 넣는 것보다 안 주는 게 중요하다. “믿는다”시면서 수비적으로 플레이하라고 하면 속으로는 “아이씨, 공격하고 싶은데” 하다가도 시키는 대로 했다. (FFT: 그럼 한 번 반항하지 못한 게 이미지로 굳어진 건가?) 그렇다! 하다 보니까 라이트백, 레프트백, 수비, 공격… 다 하게 돼버렸다. 1경기에 포지션을 3번 바꿔서 뛴 적도 있었다! 

FC대구 시절 전북현대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제일 화려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해트트릭! 핌 베어백 당시 A대표 감독님이 보러 온 경기였다. 사실 (염)기훈이 형을 보러 온 거였는데, 내가 해트트릭을 하는 바람에 다음 경기까지 보러 오더니 대표팀에 발탁해 주셨다. 그를 의식하진 않았다. 그저 난 박종환 감독님이 엄청난 자신감을 주셔서, 당시 한 경기 한 경기 신나게 뛰었을 뿐이다. 수비 부담이 없었거든(웃음)! 

그런데 문제는 늘 부상 아니었나?

부상이 많았던 것 같긴 하다. 늘 어떻게든 뛰고 싶어서 빨리 복귀하고 그랬다. 2014년 진단받은 갑상선 항진증은 컸다. 그때부터 선수 생활 내리막길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처음 진단 받았을 땐 정말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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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하고자 하는 일이 명확한 것 같다. 지도자 외에 다른 길은 전혀 고려하지 않나?

쉬는 기간엔 유튜브도 할 수 있고 다른 일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선수 때 받았던 지도나, 알던 지식으로 밖에 지도를 할 수밖에 없다. 시대가 변하고, 선수들 지식도 풍부해지고, 축구도 변하고 있는데, 나도 변화에 맞춰 공부를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걸 하면서 하면 지도자로서 중간은 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최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는 천재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체계적으로 방향을 잘 잡고, 이왕하는 거 큰 목표를 세워서 나아가고 싶다.

지도자 길에 접어들었는데,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혹시 있나?

사실 지난 2월에 B급 라이선스를 준비했는데, 1주일 만에 코로나로 과정이 보류됐다. 그 외엔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것뿐이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게 무엇일지 아내와 이야기 나누고 있긴 한데, 현실적으론 지금은 가족들이 일본에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다. 비자 면제 중단 조치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 조치가 내려질 시기와 일본 입국 시기가 맞물려 있었다. 혹시 몰라 예매해둔 비행기 표를 앞당겨 들어왔다. 쉰 기간이 오래돼서, 빨리 일하고 싶다. 첫 출근해 서류만 정리해도 설레더라!

끝으로,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나? “큰 목표”라면 A대표팀 감독이라고 이해해도 될까?

가슴 안에는 그렇게까지도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도 이런 지도자가 나오는구나’하는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다.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한다. (FFT: 다음엔 감독님으로 뵙겠다!) 좋다! 먼 이야기겠지만…!

FACT FILE

FC도쿄
대구FC
울산현대
수원삼성
성남FC
대전시티즌
대한민국 대표팀
FC도쿄(사커스쿨, 초등부 코치)

* 본 인터뷰는 <포포투> 2019년 12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2020년 3월, 추가 인터뷰로 내용을 더하였습니다.

사진=정재훈, FAphotos
writer

by 조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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