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told] 잊어서는 안 될 외국인 K리거 15인

기사작성 : 2020-07-24 16:34

- K리그 37년 사 외인 총정리
- 당신이 기억해야 할 선수들
- 라데부터 데얀까지

본문


[포포투=조형애, 이종현]

과거엔 K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를 ‘용병’이라 칭했다. 시대는 변했다. 단순히 돈을 받고 뛴다는 의미의 ‘용병’으로 그들을 취급하거나 대하는 일은 이제 없다. 하지만 여전히 리그에 미치는 영향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K리그 37년사, 오랜 시간 주목받지 못했던 외국인 선수들의 발자취를 따라 밟았다. 그리고 <포포투>가 그중 열다섯을 엄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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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드림 그 시작, 라데

1992~1996 포항제철아톰즈/포항아톰즈
K리그 통산ㅣ147경기 55골 35도움

아틀레티코마드리드, 베르더브레멘 등에서 활약했다. 라데는 그 발판을 K리그에서 닦았다. K리그 ‘코리안 드림’ 최초의 성공판이 바로 라데 보그다노비치다.

보스니아에서 그가 건너왔을 때, K리그는 스리백이 주를 이뤘다. 수비는 맨투맨으로 공격수를 마크했다. 한 공격수가 개인 기량으로 수비벽을 뚫고 득점하기 어려운 시기였다는 뜻이다. “대단한 선수였어요.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기 상당히 어려운 때에, 라데는 수비를 흔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였죠.” 황선홍 현 대전 감독은 “라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라데를 1대1로 막을 수 없어 상대는 협력 수비를 하게 되고, 그렇게 수비수가 벗어난 공간이 선수 황선홍에게는 활용할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료는 물론 상대 공격수와 수비수에게도 영향력을 미쳤다. 1995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라데를 성공적으로 막아 일화천마에 우승을 안긴 ‘터미네이터’ 안익수 현 선문대 감독마저도 “조직적으로 커버하는 것 외에 답이 없다”고 웃는다. “특징 있는 선수를 커버하려면 연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라데로 인해 더불어 발전하게 되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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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청부사, 샤샤

1995~1998 부산대우로얄즈
1998~2000 수원삼성블루윙즈
2001~2003 성남일화 천마
K리그 통산ㅣ271경기 104골 37도움

1997시즌 부산대우, 1999시즌 수원삼성, 2003시즌 성남일화. K리그 역사상 최고의 팀이 어디였는지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중심에 있었던 스트라이커를 꼽는 데는 이견이 존재할리 없다. 세 팀 모두에 샤샤 드라쿨리치가 있었다.

K리그 ‘우승 청부사’ 계보의 스타트를 끊는 그는 외국인 선수 최초 K리그 통산 100득점을 돌파했다. 샤샤를 기억하는 이들은 모두 그 비결을 위치 선정 능력이라고 입을 모으다. “샤샤는 문전 움직임이 좋았습니다. 좋은 위치를 선점한 게 하나의 이유였죠.” 안익수 선문대 감독의 말이다. 최순호 포항 기술이사는 그에 더해 파괴력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섬세한 건 데얀이 더 낫고, 결정력은 비슷한데, 샤샤가 더 파괴력 있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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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의 신기원, 신의손

1992~1998 일화천마/천안일화천마
2000~2004 안양LG치타스/FC서울
K리그 통산ㅣ320경기 357실점

한국 축구 내 골키퍼에 대한 인식은 신의손 전후로 나뉜다. K리그가 외국인 골키퍼 불허 규정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골키퍼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시기, 신의손은 K리그에 충격과도 같은 존재였다. “골키퍼가 아무리 잘해도, 스트라이커가 타이밍을 뺏거나 정확한 슈팅을 하면 골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만 해도 ‘들어갔다’ 싶으면 사실 거의 골이었죠. 신의손은 달랐어요. 한 번씩 쳐낼 때가 있었어요. 공격수에게는 벽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요.” 황선홍 대전 감독은 신의손을 회상하며 감탄, 그리고 짧은 탄식을 한다. “신의손 때문에 포항이 우승을 못한 적도 있었어요…”

신의손 합류 후 일화천마는 1993년부터 3년 연속 K리그 정상에 올랐다. 그동안 팀 실점은 0점대(0.87)를 보였다. 신의손 김해시청 코치는 당시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말한다. “난 내 역할을 열심히 했고, 잘하는 수비수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익수 선문대 감독은 지난날을 돌아 보며 신의손에 의한 연쇄효과가 있었다고 전했다. “자신감 있는 수비를 할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됐었죠. 혹시 실수를 하더라도, 믿음이 가는 골키퍼가 뒤에 있으니 앞에서 과감한 수비를 하는 거죠. 너무 잘하다 보니, 국내 골키퍼들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제도까지 바뀌지 않았습니까?”

1996년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외국인 골키퍼 출전 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출전이 완전히 막히게 된 건 1999년이다. “스트레스가 많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었다”던 신의손 코치는 2000년 3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이후로도 4년여 더 K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지도자가 된 지금, 그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본기에 가장 중점을 두고, 가장 많이 훈련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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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수원, 데니스

1996~2002 수원삼성블루윙즈
2003~2005 성남일화천마
2005 부산아이파크
2006~2007 수원삼성블루윙즈
2012~2013 강원FC
K리그 통산ㅣ272경기 57골 59도움

수원삼성 창단 멤버이자 수원삼성이 키운 선수. 19세로 K리그에 데뷔해 고종수, 산드로와 전설의 ‘고데로’ 라인을 구축, 수원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병근 대구 감독 대행은 데니스의 첫인상부터 짠 내 났던 입단 초기, 드리블 실력, 불같았던 성격, 따뜻한 정까지 기억하고 있다

“거제에서 전지훈련하고 있는데 에이전트가 데리고 와서 처음 본 기억이 나네요. 옷을 진짜 촌스럽게 입고 와서 아직도 눈에 선해요. 참 순진한 친구였습니다. 유독 친했던 선수는 고선생(고종수)이었어요. 어찌나 ‘내가 형이야!’ 하고 싸우던지(웃음). 운동장에서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발기술을 보여주곤 했어요. 공격할 때는 정말 막기 어려운 선수였죠. 볼을 슥슥 긁는 듯하달까요? 넘어지는 것까지 특유의 뭔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페널티 킥, 프리 킥을 많이 얻었어요. 그럼 고선생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땐 전반전만 잘 넘기면 이긴다는 생각이 다들 있었습니다. 데니스 하면 승부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 다혈질이었죠! 유명한 사건이 있잖아요. 구덕운동장에서 김주성 선배 목을 밟은 일 말입니다. 전광판에 그대로 송출이 되고 팬들은 난리가 났어요. 그라운드를 향해 뭘 엄청나게 던졌지요. 겁을 먹을 만도 한데 데니스는 피하지도 않았어요. 진짜 강심장이었어요. 이후에 성남, 부산 등에서 활약했지만 수원에 가장 애정이 컸다고 짐작합니다. 내가 수원 코치로 있을 때 일입니다. 스페인으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한 유스팀에 입단한 아들을 보러 포르투갈에 온 데니스가 몇 백 킬로를 달려서 우릴 보러 왔어요. 가족들과 다 같이요. 데니스는 정도 있는 선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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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 중재자, 싸빅

1998~2002 포항스틸러스
2003~2005 성남일화천마
2005~2007 수원삼성블루윙즈
2008 전남드래곤즈
K리그 통산ㅣ271경기 9골 7도움

싸빅은 8년 전 <포포투>와 만남에서 이미 ‘한국 사람 다 됐구나’하고 느낀다고 했다. 그 말마따나 싸빅은 동료들과 한국어로 많은 소통을 하며 한국 선수보다도 더 한국 선수처럼 K리그에 녹아들었다. 그는 대화를 통한 섬세한 수비에 큰 키를 활용한 공중볼 경합에 능했다. 동시에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공격수 못지않은 헤더를 보여주기도 했다. 2004년 고 차경복 감독이 싸빅을 스트라이커로 보직 변경했을 정도다.

수원 시절엔 ‘플레잉 통역’이라 불리기도 했다. 외국인 선수들에게 한국 문화와 팀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전하는 일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2006, 2007, 2008시즌 연속 K리그 베스트일레븐에 들었던 ‘통곡의 벽’ 마토도 그가 책임지고 관리한 선수. 마토가 선수들을 소집시키고 한 소리까지 한 건 수원에 전설 아니라 레전드로 남아 있다.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져. 이렇게 하면 안 돼. 끝까지 뛰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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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샷원킬, 나드손

2003~2007 수원삼성블루윙즈
K리그 통산ㅣ86경기 43득점 11도움

2003년, 수원삼성 선수단은 나드손과 첫 훈련을 한 뒤 깜짝 놀랐다. 너무 못 해서다. 나드손은 스피드가 빠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개인기가 엄청나게 뛰어나지도 않았다. 공중볼 경합을 기대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작아 보였다. 선수단과 프런트는 생각했다. ‘아, 우리 영입 실패한 건가…’

첫 자체 연습 경기를 한 뒤엔 좌절했다. 나드손은 신인 선수와 이제 막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선수를 못 뚫어 절절맸다. 선수단과 프런트는 수군댔다. “아… 망했다.”

리그가 시작된 뒤 나드손은 첫 골을 신고했다. 골대 앞에서 날름 골을 훔친 그를 두고 팀은 ‘운은 좋네’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골이 연거푸 터지자 의심이 쏙 들어갔다. 예측과 판단에서 나드손은 탁월했다. 적응이 끝나자 170cm도 안되는 키로 헤딩골도 넣었다. 도저히 날아갈 수 없는 곳까지 쭉쭉 뻗어나가는 헤더. 선수들이 “목에 쇠가 있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나드손은 ‘골 냄새를 잘 맞는 선수’의 전형이었다. ‘원샷원킬’, ‘나드골’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도 이때다. 시즌 중반 합류한 그는 K리그 데뷔 첫해 18경기 출전, 14골 1도움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외국인 선수 최초 K리그 MVP에 올랐다. 나드손을 애먹였던 곽희주-박건하는 수비 주전으로 거듭났고, 나드손은 공격 선봉에 서 수원의 리그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5년 전기리그 초반 입은 부상전까지, 경기장에선  눈빛이 달라지는데 나드손은 수원에 없어선 안될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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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파워, 따바레즈

2004~2007 포항스틸러스
K리그 통산ㅣ113경기 20골 29도움

“포항 하면 따바레즈였어요.” 2007시즌 포항의 우승을 함께한 최효진은 말한다. 따바레즈와 그라운드 밖에서 따로 만난 적도, 특별한 에피소드도 없지만 “기본적으로 축구를 잘했던 선수”였다는 점 하나는 확실하다고 말이다.

브라질 명문 플라멩구 유스 출신으로 브라질 연령별 대표팀에도 설발 됐었던 따바레즈는 2004년 K리그에 입성했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최순호 포항 기술이사는 “젊고, 잠재력이 있고, 기술이 우수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꽃을 피우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신주현 홍보 팀장은 말한다. 그는 2007년 주무로 팀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베스트 라인업에 못 들었어요. 전반적인 흐름을 주도하지는 못했죠. 그런데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면서 왜소했던 몸이 좋아지고, 리그에도 서서히 적응했어요. 4년 차였던 2007년, 비로소 하고 싶었던 플레이를 다 하게 된 것 같아요. 따바레즈가 팀의 중심이었죠.”

그의 활약으로 자리를 내줬던 황진성은 “따바레즈 이야긴 하기 싫다”면서 웃었다. 하지만 이내 “훌륭한 선수”라고 했다. “뭔가 폼이 엉성해요. 뒤뚱뒤뚱 거리죠. 유연해 보이는데 실제로 스트레칭하면 되게 뻣뻣했어요. 대단했던 건 엉덩이를 이용해 볼을 지키는 능력이었어요. 자기가 수비를 다 몰고 한 번씩 동료에게 킬 패스를 툭툭 찔러주는 게 아주 좋았어요.”

따바레즈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정확도에 힘까지 실은 인사이드 킥이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그는 인스텝 슛으로 중요할 때마다 골 망을 흔들었다. 따바레즈는 MVP가 된 뒤 K리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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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국 사람, 스테보

2007~2008 전북현대
2008~2009 포항스틸러스
2011~2013 수원삼성
2014~2016 전남드래곤즈
K리그 통산ㅣ226경기 84골 28도움

스테보를 2007년 K리그로 데려온 김도준 HBR 스포츠코리아 대표는 그를 “천상 한국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밝힌 일화는 이렇다.

“당시 최강희 전북 감독님이 터키에서 스테보와 계약을 앞두고 점심을 먹자고 했어요. 그리곤 감독님이 의도적으로 한국 음식을 계속 줬죠! 스테보는 그걸 잘 먹었어요. 전북은 스테보를 테스트하기 원했어요. 우리는 ‘A대표 선수를 테스트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는데 스테보가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실력으로 보여줬죠. 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마케도니아 태생으로 한일 정서를 이해하고 있던 스테보가 2008년 ‘독도는 한국 땅’ 세리머니를 위해 매직으로 직접 쓴 티셔츠를 준비하기도 한 일 말입니다.”

포항에서 스테보와 수많은 우승을 경험하고 형동생으로 지낸 최효진은 스테보를 전형적인 한국스타일로 묘사했다. “선생님들이 말하면 한국말로 대답했어요. 한국 음식, 특히 김치찌개를 좋아했어요. 외국인 선수가 그러기 쉽지 않은데… 그냥 한국을 좋아했던 거 같아요.” 전남에서 스테보와 3년 동안 룸메이트였던 이종호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테보형이 한국 말을 워낙 잘했어요. 식당 가면 자기가 주문하고 고기를 구워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죠. 식당 이모에게 ‘된장찌개 주세요~ 고기 더 주세요~’이런 말을 되게 잘했어요. 그리고 스테보형이 항상 계산했어요. 진짜 한국 형이었어요!”

친화력은 그가 한국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부수적인 요소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과거 스테보를 자주 상대했던 곽희주의 회상이다. “스테보는 자세나 기술이 투박했어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골 냄새 맡고 득점하는 게 장점이었죠. 자세가 투박하다고 방심하다가 스테보의 의지와 성실함에 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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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자부심, 아디

2006~2013 FC서울
K리그 통산ㅣ264경기 18골 12도움

아디와 함께 뛰기도, 상대팀 풀백으로 경쟁하기도 했던 최효진은 아디를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수비수라고 평가했다. “기본적으로 수비를 잘했어요. 영리하고 힘 좋고, 빠르고 제공권과 활동 반경 그리고 기술까지도 좋았어요. 아…유연하기도 했어요! 수비가 가져야 할 덕목을 모두 갖췄죠. 사생활 관리도 잘했어요. 아디는 슬럼프라고 볼 만한 시즌이 없고 항상 꾸준했어요. 매 경기 준비하는 자세가 좋았어요. 그래서 매 시즌 높은 퀄리티를 유지했죠. 부상도 없었어요!”

하대성은 아디에 대한 평가를 확장했다. “K리그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 연습 때 1 대 1로 그를 뚫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디의 아우라는 라이벌팀 수원의 곽희주에게도 영감을 줬다. “아디는 침착하고 왼쪽 측면에서 선진 축구를 했어요. 공수 능력이 안정적이었고, 수비 스타일도 덤비지 않고 기다리면서 빼앗았죠. 어릴 때 아디를 보면서 축구 공부를 많이 했어요. 수원 공격수들이 아디에게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상당히 성실한 외국인 선수인 데다가 서울에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어요.”

아디가 늘 진지하고 운동만 했던 건 아니다. “경기장 안에선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끝나고 나면 어린이처럼 해맑았어요. 브라질리언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 걸 좋아했죠. 귀여운 친구였어요.” 하대성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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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을 진짜 사랑한, 에닝요

2003 수원삼성
2007~2008 대구FC
2009~2013, 2015 전북현대
K리그 통산ㅣ231경기 81골 66도움

에닝요는 에니요였다. 그러니까 2003년에는 그랬다. 에닝요는 2003년 수원삼성에 입단했을 때 에니요라는 등록명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수원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곽희주는 “어린 선수였는데 스피드와 슈팅이 좋았어요. 당시 유일하게 '이런 슈팅도 있네'라고 생각했던 무회전 슈팅을 했어요”라며 어린 에니요를 기억했다.

2009년 대구를 거쳐 전북에 입단한 에닝요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전북에서 에닝요와 오른쪽 라인을 함께 지배한 최철순은 “상대가 껄끄러웠을 거예요. 공을 달라는 욕심이 많았던 거로 기억해요. 볼을 많이 받으려는 움직임도 생각나요. 세트피스에서 강점이 많아 전북 승리에 큰 도움이 됐어요. 에닝요가 조금 더 공격에 집중하게끔 만들어주는 게 내 역할이었죠”라고 회상했다.

에닝요가 여느 외국인 선수처럼 개인 활약만 하고 K리그를 떠났다면 그를 각별하게 떠올리는 사람들은 적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전북에서 두 번째 입단했었던 시기(2015년), 스스로 기량이 성에 차지 않아 먼저 계약 해지를 요청한 그의 마지막 뒷모습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전북에서 두 번째 입단했었던 시기(2015년) 스스로 기량이 성에 차지 않아 먼저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 그가 떠나는 날 전북 팬도 에닝요도 울었다. “전북에 대한 애정도 많았어요. 전북에 두 번째 왔을 때도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했죠. 하지만 그게 잘 안돼서…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이 좋았어요.” 최철순이 전한 고마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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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 클래스, 에두

2007~2009 수원삼성
2015~2017 전북현대
K리그 통산ㅣ157경기 55골 21도움

에두는 K리그를 거친 역대 외국인 공격수 중 커리어가 가장 좋았던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에서 활약하다가 K리그 수원으로 건너온 이후 리그 우승을 이끄는 등 K리그를 대표하는 외국인 공격수가 됐다. 그리고 수원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샬케04로 이적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도 기록했다.

에두와 전북에서 함께 뛴 이종호는 “등을 정말 잘 지는 선수였어요. 축구 지능, 퀄리티는 내가 함께했던 어떤 공격수보다 뛰어났어요. 왼발잡이로 부드럽고 우아하면서 묵직했어요”라고 기억했다. 최철순은 “풀백 보던 선수가 포워드로 포메이션을 변경했는데도 정말 잘해서 놀랐어요. 크로스 상황에서 포인트 찾거나 기술적인 면이 좋았어요. 내가 많이 좋아하던 공격수에요”라고 말했다. 곽희주는 “우리나라 선수가 가지지 못한 힘과 밸런스가 있었어요. 그 장점으로 1대 1 돌파에 활용했어요. 에두와 부딪치면서 상체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하게 됐어요. 좋은 파트너였어요”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와 함께 뛴 이들 모두 분데스리가 클래스 에두에게 박수를 보냈다. K리그 팬에게는 전성기 에두를 K리그에서 보지 못한 게 아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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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동 ‘로자룡’, 로페즈

2015 제주유나이티드
2016~2020 전북현대
K리그 통산ㅣ157경기 52골 33도움

개구쟁이 같은 미소는 단점을 찾기 힘든 그의 능력을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훈련 중 발목을 다쳐 울먹이는 그를 보고 전북 김상식 코치가 “베이비, 앞으로 우유만 마셔!”라 놀렸는데도 해맑게 웃었다는 에피소드를 알고 나면 더욱 그렇다. 브라질 흙밭을 떠나 K리그에서 활약한 5년여 동안 로페즈가 일군 성과는 눈부시다. 리그 우승 3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를 전북과 함께했다. 중국에서의 새로운 도전에 나선 현재, 남은 이들이 로페즈 이야기에 빙긋 웃으며 입을 연다는 건 그만큼 그가 좋은 선수, 좋은 사람이라는 뜻일 게다.

★ 흙밭에서 찾은 보석

“당시는 검증된 선수를 영입할 만큼 재정이 넉넉지 않았기에 숨은 보석을 찾아 나섰어요. 진짜 흙밭을 뒤지면서 찾은 선수가 로페즈죠. 구단에서는 약간의 의구심도 있었어요. 사실 4부 리그를 찾아가서 로페즈를 본 건 아니었고... 등록하려고 보니 팀이 4부였고, FIFA 등록도 안 돼 있던 거예요. 당황스럽긴 했어요. 하지만 제 눈을 믿었습니다. 로페즈는 달리는 폼부터 슈팅까지 모든 게 남달랐거든요.” - 박동우 제주유나이티드 스카우트 부장

★ 남모를 노력

“지금까지 본 브라질 선수 중에서 가장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던 선수에요. 로페즈는 주력이 좋고 돌파 능력도 좋았지만 스스로가 테크닉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장점을 더욱 살리기 위해 웨이트를 정말 열심히 했죠. 몸싸움이나 돌파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 겁니다. 이 부분이 거칠고 빠른 K리그에서 로페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 김상식 전북현대 코치

★ 이타적 로페즈

“개인 기록 욕심을 내는 깍쟁이 같은 선수도 있다. 프리킥이나 페널티킥은 무조건 자기가 차려고 하는 선수들 말이다. 로페즈는 그렇지 않았다. 까불거리는 이미지로 보였겠지만, 개인 훈련도 열심히 했던 선수다. 수비도 열심이었다. 레오나르도가 ‘여기서는 공격만 해서는 안 된다. 공격수도 볼 뺏기면 가서 뺏어와야 한다’고 일러줬는데, 로페즈가 잘 수용했다. 현장은 깜짝 놀랐다. 외국인 선수가 수비까지 하니까!” - 김상수 전북현대 축구단운영실 과장

★ 동료가 좋아하는 선수

“로페즈는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고 또 요구하는 움직임대로 뛰어 주었어요. 1대 1 상황을 쉽게 돌파해서 함께 플레이하기도 편했죠. 근래 기억이 생생해서 그런지 전북에서 함께한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해요.” - 최철순

“로페즈는 운동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장난기가 넘치는 선수였어요. 늘 골 세리머니를 함께 준비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워낙 성격이 좋고, 먼저 다가와 주는 선수라서 K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김민혁

★ 낙천주의자

“로페즈는 불만이 없어요. K리그에 오면서 좋아진 환경에 감사할 줄 안다고 해야 할까? 직접 겪어본 바로는 그랬어요. 언제 봐도 ‘웃는 상’이었죠. 동료들이 잘 받쳐주기도 했는데 로페즈가 배려하고, 어우러지려는 행동을 하니까 가능한 일이었어요. 다들 로페즈를 좋아했습니다.” - 원일권 제주유나이티드 마케팅실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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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브라질 1부 리거, 아드리아노

2014~2015 대전시티즌
2015~2016 FC서울
2018~2019 전북현대
2020~ FC서울
K리그 통산ㅣ121경기 67골 14도움 *2020시즌 5R 기준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우리 팀에서는 사고뭉치가 아니었어요. 경기 당일 아드레날린이 좀 더 분비되라고 선수들이 에너지음료를 마셔요. 우리는 한 캔 마시는데 아드리아노는 두 캔, 세 캔 마시는 게 신기했어요.” 아드리아노에 대한 기억을 묻는 질문에 전북 최철순이 한 말이다. 어쩌면 아드리아노가 얼마나 악동 캐릭터로 알려져 있는지를 오롯이 보여주는 대답인지도 모르겠다.

대전에 합류하기 전, 아드리아노는 이미 아시아 무대 도전에 나선 적 있다. 한화로 10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으며 중국슈퍼리그 다렌스더에 입단한 그였다. 하지만 돌출 행동과 불성실한 훈련 태도 탓에 실패로 끝이 났다. 대전에서도 ‘미운 오리’, ‘꾀짜’로 불렸지만 고 조진호 감독의 신뢰 아래 눈부신 기록을 썼다. 2014시즌 K리그2(챌린지) 득점왕에 올랐고, 대전은 우승과 승격이라는 기쁨을 맛봤다. 이어진 서울에서의 활약은 현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그는 2부 리거에 대한 색안경을 없앤 결정적 인물이었다.

수원 코치 시절을 돌아보며 이병근 대구 감독대행이 한 말이다. “아드리아노가 ‘얼마나 잘할까’하고 워밍업을 봤는데 다르더라고요. ‘조심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경기를 시작하고서 당했죠. 그때 편견이 깨진 것 같습니다. 2부 선수도 1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더라고요. 후에 조나탄을 (서정원) 감독께 추천하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드리아노로 인해 확신을 얻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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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레전드, 오스마르

2014~2017 FC서울
2019~  FC서울
K리그 통산ㅣ180경기 18골 11도움 *2020시즌 12R 기준

2018년 2월 12일, FC서울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오스마르의 세레소오사카 임대 이적 소식이 전해진 뒤였다. 그로부터 10개월 후, 서울은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FC서울 역대 최악의 시즌과 오스마르 부재는 그렇게 맞닿아 있었다.

인연의 시작은 “호기심 이상의 끌림”이었고 말한다. 그렇게 오스마르는 부리람유나이티드를 떠나 2014년 서울에 합류했다. ‘모범 외국인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5시즌, 오스마르는 전 경기 출장한 최초의 외국인 필드 플레이어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외국인 선수 최초 FC서울 주장에 선임됐다. 그동안 팀은 리그 우승 1회, FA컵 우승 1회를 차지했다.

갑작스러운 이적 후 1년여 만에 다시 K리그에 돌아온 오스마르는 리그 발전상까지 꿰뚫고 있는 산증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가장 많이 변화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점은 코칭입니다. 현대 축구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요. 그저 뛰는 것만이 다가 아니죠. K리그는 기술적으로 더 진화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선수들에게 예전보다는 더 전술을 많이 코칭하고, 선수들이 더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위치 선정과 장악력, 전술적 이해도를 가르쳐요. 이 부분이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스마르의 진가는 그가 부재할 때 더 또렷이 보인다. 화려한 득점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공격수에 가려 있던 오스마르의 커팅, 볼 키핑, 그리고 공격 전개 능력이 공격포인트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20시즌 FC서울의 초반 위기 속, 오스마르의 부상 공백이 오버랩 된 점이 결코 우연은 아닐 터다.

★ 오스마르가 기억되고 싶은 이미지


Q. 공격포인트라는 기록이 뚜렷이 남는 공격수와 달리, 수비수/수비형 미드필더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흐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스마르는 K리그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저는 골이나 공격포인트를 제일 큰 목표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다. 가끔씩은 골을 넣고 싶기도 하지만 제 커리어는 골만으로는 표현될 수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골을 많이 넣는 것보다는 팀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 더욱 더 많은 노력을 합니다. ... 먼 훗날 지금의 동료들과 코치들을 만나서 그들이 ‘오스마르가 있었을 때 팀에 큰 도움이 됐었고, 많이 도와줬다’는 것으로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 많은 득점과 화려한 플레이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항상 팀에 도움이 되고 그림자처럼 팀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선수 말입니다. 데이터 센터에 좋은 기록이 남는 것도 좋지만, 전 FC서울과 한국 축구 종사자들과 팬들의 마음속에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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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외인, 데얀

2007 인천유나이티드
2008~20013, 2016~2017 FC서울
2018~2019 수원삼성
2020 대구FC
K리그 통산ㅣ336경기 193골 46도움 *2020시즌 12R 기준

2007년 데얀의 등장은 K리그 역사를 흔드는 사건이었다. 인천유나이티드 입단 첫해 19골 3도움을 기록했다. 2008년 최전성기를 보낸 서울에 합류한 이후 터뜨린 득점만 154골. 2011년, 2012년, 2013까지 3시즌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 2010년, 2012년, 2016년 K리그 챔피언을 경험하며 범접하기 어려운 커리어를 쌓았기도 했다.

데얀은 2014년 중국 슈퍼리그로 이적해 뛰고 2016년 K리그로 돌아왔다. 전성기에서 내려온 느낌은 있었으나 그는 여전히 득점을 ‘쉽게’ 했다. 클래스는 여전했다. 개인 기록으로 이미 K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2018년, 라이벌 수원삼성 유니폼을 입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의 이적에 대한 의견과 평가는 분분했다. 하지만 K리그에 하나의 스토리를 더했다는 측면에서 반가워하는 시선을 보내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수원에서 보낸 2시즌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특히 팀과 이별 과정이 아쉬웠다.

데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2020시즌 대구의 유니폼을 입고 9경기 출전해 4골 1도움을 기록 중이다. 수원 때보다 상쾌한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다.

데얀을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기준 삼는 건 오히려 그의 업적을 제한한다. K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경기장에서 함께 뛰어본 곽희주, 최효진, 정인환, 하대성 모두 데얀을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 데얀에 대한 말말말


“데얀 분석을 많이 했고, 상대할 때는 더 많이 뛰었다. 데얀을 막아야 팀이 이길 수 있었다. 서울을 상대로 일주일 1경기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2~3경기를 연속으로 한다? 잘 막을 자신이 없다. 불가능하다. 데얀은 내게 심적으로 가장 고통을 줬다. 은퇴 후에도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선수가 데얀이다.” - 곽희주

“최고의 선수다. 데얀은 절대로 공을 강하게 차지 않았다. 연습 때 항상 감각적인 컨트롤과 한 박자 빠른 타이밍으로 슈팅했다. 몰리나는 거의 8~90% 데얀을 주시하며 패스했고 정확성 또한 뛰어났다. 둘이 많은 득점을 만들어냈다. 데얀이 K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는 점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 하대성

“데얀은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페널티박스 밖에서는 '막기 쉽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박스 안에서는 위협적이다. 89분을 잘해도 1분 못 막으면 득점하는 게 데얀이다.” - 정인환

“거의 골 넣는 기계였다. 굳이 단점을 찾으라면 발이 빠르지 않다는 것인데, 기술이나 공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해 문제 되지 않았다. 데얀은 투덜투덜하면서 말도 많지만, 좋은 친구였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뛰어나서 그렇다. 데얀은 외국인 선수 중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 최효진

*본 기사는 <포포투> 7월호 중 주요 내용을 발췌했습니다

그래픽=황지영, 사진=FAphotos
writer

by 조형애

디지털이 편하지만 아날로그가 좋은 @hy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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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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