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n&now] ‘박지성 동료’ 안데르송, 그 시절 맨유를 말하다

기사작성 : 2020-08-22 18:23

- 은퇴 후 이야기: <안데르송>편
- 모스크바에서 승부차기 키커가 된 심경을 고백한다
- 그에게 호날두와 퍼거슨 감독이란…!

본문


[포포투=Caio Carrieri]

축구화를 벗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그때 그 스타’를 만납니다. <편집자 주>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유럽 정상의 영광을 만드는 데 힘 쏟은 미드필더였다. 그전엔 만 21세 이하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골든보이상’ 수상자이기도 했다. 안데르송(32)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이미 1년여 전이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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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U-17월드컵에서 대회 최우수선수가 됐다. 부담감을 느꼈나?

열세 살에 축구를 하기 위해 쓰레기 봉투에 옷을 담아 집을 떠나온 이후로 항상 압박감을 느꼈다. 축구선수가 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학교 공부에는 딱히 흥미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2005년 골든볼 수상으로 꿈은 현실이 됐다.

2007년 즈음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이적했는데?

포르투에서 활약상이 정말 좋았다. 친구 집에 있던 어느 날 조르제 멘데스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지금 우리 집으로 와. 데이비드 길(당시 맨유 단장)과 카를로스 케이로스(당시 맨유 수석코치) 모두 이 자리에 있는데, 너와 얘길 하고 싶어 해”라고 말했다. 믿을 수가 없어서 “장난 치지 말아요”라고 답했다. 그는 진지했다. 그의 집으로 가 맨유행에 동의했다.

올드트래퍼드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동료는?

선수들은 기발한 방식으로 나를 환영해줬다. 모두와 잘 지냈다. 지금도 왓츠앱 단체방에서 연락을 주고받는다. 파트리스 에브라, 웨스 브라운, 존 오셔, 대런 플레처, 마이클 캐릭, 리오 퍼디낸드, 대니 웰벡, 박지성, 치차리토 등이 있다. 적응에 도움을 준 인물을 굳이 꼽자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인데, 1년 정도 그와 같이 살았다. 나니와 나는 평생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케이로스 역시 큰 도움을 주신 분이다.

호날두와 제일 좋았던 기억은?

그는 내 인생에서 많은 의미를 갖는다. 물론 그가 현재 세계 최고 선수이지만, 그런 선수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말이다. 친구들이 종종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데,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천재야”라고 말한다. 그는 기계였다. 그의 훈련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내가 지치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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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슨 퍼거슨은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나?

영원히 그를 사랑한다. 나의 우상이자 내가 만난 사람 중 최고와 함께 일하는 특권을 누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분이다. 내게는 ‘지상의 신’ 같은 존재다. 듣기의 중요성과 경기에서 뛰기에 가장 적절한 때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식이다. “오늘은 네가 뛰지 못할 거야. 다음 경기에서 우리가 이기려면 네가 뛰어야 해.” 우리 팀엔 위대한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로테이션 운영법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알았다.

마음에 담아둔 말이라도 있는지?

그의 맨유 임기 마지막 시절, 내가 평생 마음에 품고 다닐 만한 말씀을 주셨다. 캐링턴에 도착했는데 나를 감독실로 불렀다. 그리고는 “이 팀에서 우리가 함께해 온 모든 것에 고마워. 하지만 내 시대가 끝나가”라고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분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다니? 와! 얼마 전 건강 문제(뇌출혈)가 있었을 때 문자를 드렸는데, 더 강해져서 돌아오신 걸 보고 기뻤다. 몇달 전에 선수들을 만나기도 했다. 멤버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 정말 기뻤다. 그렇게 멋진 팀의 일원이었다는 것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2008년 첼시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직전에 교체 출전했는데?

연장전에 라이언 긱스가 퍼거슨 감독에게 달려오더니 “안데르송을 넣어요. 페널티킥을 정말 잘 차요”라고 말했다. 나는 스무 살밖에 안된 아이였어서 ‘헐, 젠장!’이라고 생각했다. 압박감이 상당했다. 지상 최대 클럽 대항전인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승부차기를 놓치는 사람이 나로 기억된다면 어떨 것 같은가? 워밍업 후 출전했을 때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볼 한 번 건드리지도 못했다. 승부차기를 위해 걸어가는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순간이었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고군분투했던 모든 것,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도 생각했다. 그리고 페널티 지점에 도착했는데, 젠장, 페트르 체흐가 너무 거대해 보였다. 눈을 감고 힘껏 볼을 찼다. 볼은 체흐의 손을 스쳐 들어갔다.

200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선 하프타임에 교체 아웃됐는데, 싫지 않았나?

퍼거슨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바르셀로나에 0-1로 끌려가는 중이었고, 공격적으로 나서야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대신 공격수 카를로스 테베스를 투입하는 게 최선이었다. 팀이 승리하는 게 중요했기에 교체를 받아들이는 데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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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아스널전 8-2 승리에 관한 기억은?

로테이션 체제에서도 나는 아스널전에 대부분 출전했고, 거의 승리했다!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축하는 우리 라커룸에서만 하고 상대의 화를 돋우지는 않았다. 어느날 우리가 그들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두 달 뒤 맨체스터시티와 홈경기에서는 1-6으로 패했는데?

우리 선수들이 훌륭하다는 걸 알았기에 적절히 반응했다. 그 증거가 최종 순위다. 그 시즌 리그에서 맨시티와 승점이 같았다. 골득실차에서 타이틀을 놓쳤을 뿐이다.

2010년 심각한 자동차 사고를 겪었다. 불에 타 폭발하기 전 차에서 빠져나왔는데, 이후로 당신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나?

포르투갈 여행 중 일어난 사고였다. 친구가 운전을 했는데 바위를 들이받았다. 정확하게 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거지. 첫 아이가 태어날 즈음이었기 때문에, 이후 내 인생관이 바뀌었다. 그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누구도 그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법이다.

지난해 은퇴했다. 31세의 나이에 축구화를 벗은 이유는?

그에 관해 말하는 건 불편하다. 터키 팀 아다나 데미르스포르와 계약이 2년 남은 상태였지만, 축구를 할만큼 했다고 생각해 결정한 일이다. 내 인생은 훌륭했다. 그냥 내가 생각한 ‘적절한 시기’가 왔을 뿐이다. 돈을 벌기 위해 계속 뛰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내 농장과 다른 사업들에 만족하고 있고, 아직은 축구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나의 다음 계획은 아마도 아프리카로 가서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을 돕는 일이 될 것이다.

FACT FILE

그레미우
포르투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피오렌티나(임대)
인터나시오날
코리치바(임대)
아다나 데미르스포르
브라질 대표팀

* 본 인터뷰는 <포포투> 8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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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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