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홀란드 “9골 넣고 생각했다. 좀 실망스러운데?!”

기사작성 : 2020-09-08 11:45

- 홀란드가 A매치 연속 득점을 올리고 있다
- 놀랄 것 없다
- 그에게 골은 식은 죽 먹기니까!

본문




[포포투=Chris Flanagan, 에디터=조형애]

지금 엘링 홀란드를 막을 자는 없다. 참, 그에게 아버지보다 낫다는 말은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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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여 동안 홀란드의 득점력은 경이로웠다. 해트트릭이 일상이었다. 아홉 차례나 해트트릭을 터뜨렸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골을 더 넣고 싶다. 홀란드는 “아무래도 중독이 된 것 같아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은 중독이잖아요!”

골 중독에 걸린 그는 세계에서 가장 짜릿한 스무살 공격수가 됐다. 그 나이대에 이런 득점력을 보이는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이다. 홀란드가 레드불잘츠부르크에서 독일 축구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이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찐득한’ 관심도 받았다. 보루시아도르트문트 첫 4경기에선 8골을 넣었다. 2019-20시즌 개인통산 기록 40경기 44득점 10도움. 그가 8골을 넣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총 181분. 겨우 두 경기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라면 누구나 이런 종류의 숫자를 좋아한다.

대화를 위해 마주 앉자 곧 홀란드의 화법을 알 수 있었다. 일부러 속을 내비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눈빛에 장난기가 어렸다. 경기장 안과 경기장 밖의 그는 다르다. 미디어를 상대할 때도 말을 만들어내기 위한 말, 즉 뻔한 화법을 쓰지 않는다. 홀란드는 말이 길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재미를 추구한다. 여기서도 성격이 드러난다. 자신을 궁금하게 만드는 청년이다. 잘츠부르크에서 뛰던 지난해 9월, 헹크를 상대로 UEFA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치른 뒤 한 짧고 굵은 인터뷰처럼 말이다.

“기분이 어떤가요?”
“아주 좋습니다.”
“비결이 뭔가요? 9경기서 17골을 넣었는데…”
“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아버지가 1997년에 안필드에서 골을 넣었는데, 같은 길을 걷고 싶나요?”
“그러면 좋겠죠.”

각각의 답엔 특유의 쓴웃음도 함께였다. 홀란드의 단답은 수줍음이 아닌 자신감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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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란드는 그가 우상으로 여기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명성을 이을 차세대 북유럽 빅스타로 손꼽히고 있지만, 사실 잉글랜드 리즈 태생이다. 2000년 7월 아버지 알피와 어머니 그리 메리타 브럿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달 후 알피는 리즈유나이티드에서 맨체스터시티로 이적했다. 홀란드가 생후 9개월 됐을 때 아버지 홀란드는 올드트래퍼드에서 로이 킨의 공격을 받았다. 심각한 부상을 입어 더는 커리어를 잇지 못했다. 2003년 은퇴할 당시 그의 나이 겨우 30세였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노르웨이 남서쪽에 위치한 고향 브뤼네로 이사했다.

“네 살 때까지 리즈에 살았어요. 그래도 잉글랜드에 대한 기억은 얼마 없죠. 아버지가 잉글랜드에서 뛰던 당시 전 아버지가 축구선수라는 것도 몰랐을 정도로 어렸으니까요. 대여섯 살 즈음 아버지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었다는 것과 노르웨이 국가대표였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아버지가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어서, 득점 장면은 영상으로나 봤어요. 멋지던데요!”

그는 아버지의 맨체스터시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리즈에서 뛸 때 홀란드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 두 팀은 모두 홀란드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의 형은 심지어 홀란드 아기 시절에 맨시티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기도 했다.

홀란드는 과거 자신의 꿈이 “리즈와 함께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도르트문트와 함께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다. “아버지가 프리미어리그의 다양한 팀에서 뛰었잖아요. 내가 그 팀이 팬이 되는 건 당연하죠.”

노르웨이 대표 선수의 아들이 축구를 시작하자 세상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들이라는 이유로 늘 압박감이 있었지만 그걸 즐겼어요. ‘아버지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돼요.” 아버지는 늘 그를 도왔다. 아버지 같은 미드필더가 되지 않았을 때도 그랬다. “늘 공격수였어요. 솔직히 수비형 미드필더보다 공격수가 되는 게 훨씬 재밌잖아요! 축구를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늘 축구로 이야기 꽃을 피웠죠. 지금도 그래요. 평생 최고의 롤모델이 되어주시는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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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란드는 곧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청소년 대표로 발탁됐고, 킥오프 직후 하프라인에서 멋진 중거리골을 터뜨리며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다. 프로 데뷔는 15세에 했다. 노르웨이 2부리그 브뤼네에서였다. 16경기 동안 한 골도 넣지 못했고 대부분 교체 출전이었지만 2017년 1부 클럽 몰데 이적으로 보상이 이뤄졌다. 그곳에서 올레 군나르 솔샤르와 사제의 연을 맺었다. 솔샤르는 노르웨이 축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골게터로 손꼽힌다.

동안의 암살자라는 명성대로 솔샤르는 홀란드의 득점력을 성인 레벨로 올려놨다. 홀란드도 인정하는 바다. “많이 도와줬어요. 슈팅 기술과 다양한 마무리 방식을 가르쳐줬어요. 내 커리어에 핵심 역할을 한 분이죠.” 결정적 순간은 2018시즌 중반 브란전에서 나왔다. 이전에 홀란드는 리그 42경기에서 겨우 4골을 넣었다. 브란은 노르웨이리그 최고였다. 14경기서 겨우 5실점이었다. 그런 팀에 홀란드는 킥오프 21분 만에 4골을 터뜨렸다. “그 경기를 통해 더 많은 골을 넣는 방식을 터득했어요.”

이후 세 경기에서 세 골을 추가했다. 8월 중순에 그는 잘츠부르크와 450만 파운드(약 68억 원)에 계약했고 2019년 1월 합류했다. 리즈, 레버쿠젠, 이탈리아 거함 유벤투스도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가족들은 홀란드 성장에 가장 이상적인 팀이 잘츠부르크라고 생각했다. 사디오 마네와 나비 케이타도 그곳에서 한 단계 발전했다.

18세 홀란드는 잘츠부르크에서 첫 반 시즌 동안 딱 두 번 뛰었다. 그리고 폴란드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으로 향했다. 그들은 조별리그에서 우루과이와 뉴질랜드에 졌다. 노르웨이는 토너먼트로 가지 못했다. 홀란드도 득점하지 못했다.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상태에서 치른 최종전은 홀란드를 위한 무대였다. 노르웨이가 온두라스에서 12-0으로 압승했고, 홀란드는 9골을 폭발했다. 한 경기에서 넣은 골로 대회 골든부츠(최다득점상)를 수상했다.

홀란드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좋은 경기였어요. 더 어렸을 때는 그만큼 많은 골을 넣은 적이 있죠. 몇 골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때 많은 골을 넣었어요. 9골을 넣은 날 ‘아직 어리네’라고 생각했죠. 환상적인 밤이었어요. VAR이 내 편이었다면 아마 11골 정도 넣었을 걸요. 좀 실망스러운 기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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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로 복귀한 홀란드는 2019-20시즌 오스트리아컵 첫 경기서 세 골을 터뜨렸다. 리그에서 두 차례 해트트릭을 터뜨리고 9월 중순 UCL 데뷔전을 치렀다. 수년 동안 꿈꿔온 무대였다. 그의 동료는 헹크와 홈경기를 치르기 전날 홀란드가 운전하는 내내 챔피언스리그 테마곡을 틀어놨다고 밝혔다. “아니 근데, 그 노래 안 좋아하세요? 저는 엄청 좋아해요. 오랫동안 그 무대를 꿈꿔왔고요!”

홀란드와 잘츠부르크의 유럽 데뷔전은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헹크에 6-2 대승을 거둔 그날 홀란드는 킥오프 2분 만에 골을 넣고 하프타임이 되기 전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한 세 번째 최연소 선수다. 그에 앞서 웨인 루니와 라울이 있었다. 몇 주 뒤엔 아버지처럼 안필드에서 골을 넣었다. 교체 출전 4분 만의 득점이었다. 그의 골로 잘츠부르크는 3-3 균형을 맞췄지만 결국 리버풀이 한 골 더 넣어 4-3으로 이겼다. 득점은 멈추지 않았다. 나폴리와 홈경기에서 두 골, 어웨이에서 한 골을 넣었다. 헹크 원정에서도 골맛을 봤다. 정리하자면 챔피언스리그 5경기에서 8골을 터뜨렸다. 리그에선 또 해트트릭을 해 시즌 다섯 번째 매치볼을 수상했다.

그때부터 홀란드에게 빅클럽들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잘츠부르크에서 홀란드의 가치는 1,800만 파운드(약 277억 원)였다. 도르트문트 이적이 완료된 후 에이전트 라이올라는 12개 팀과 협상했다고 밝혔다. 홀란드는 아버지와 라이올라와 함께 신중하게 옵션을 고려했다. 도르트문트행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결론이 났다. 어린 선수가 성장하기에 좋은 팀이어서다. 홀란드는 말했다. “구단의 역사와 클럽 구성원, 운영 방식 모두 마음에 들어요. 도르트문트가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래요.”

그는 아우크스부르크전에서 분데스리가 데뷔를 신고했다. 도르트문트가 1-3으로 지고 있을 때 홀란드가 교체로 투입됐다. 23분 만에 그는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5-3 역전승을 이끌었다. 그때의 기분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예상할 수 없었죠. 감독님이 나가서 뭔가를 보여주라고 하셨고… 한 거예요.”

일주일 후 쾰른과 홈경기에서는 두 골을 터뜨렸다. ‘노란 벽’ 앞에서 터뜨린 첫 득점이었다. 일주일 후 우니온 베를린에 두 골을 또 넣었다. 분데스리가 첫 3경기에서만 7골. 포칼에서 베르더브레멘에 한 골, 리그로 돌아와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또 골… 2경기 정도 무득점이면 괜히 서운할 정도의 기세랄까. 뒤에 있던 도르트문트 언론 담당관이 불쑥 끼어든다. “서운하지!” 홀란드도 ‘빵’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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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란드는 자신의 꾸준한 득점 페이스를 새삼스러워하지 않았다. “계속 꾸준히 득점해왔는 걸요. 어릴 때부터 내가 바라던 모습의 어른이 됐어요. 늘 내가 훌륭한 선수가 될 거라고 믿었어요.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지만요. 이 속도가 마음에 들어요!”

홀란드는 지난 1월에 리그에서 59분만 뛰고 분데스리가 이달의 선수상을 탔다. 매 시즌이 늘 좋을 수는 없다 건 알고 있다. 이미 언젠가 직면할 고난을 맞이할 준비도 됐다. 그래도 언젠가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멋질 것 같지 않아요?”

도르트문트가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유로2021에서 노르웨이 대표팀과 뛰고 싶다. 그는 지난해 9월 두 차례 A매치에 출전했다. 다음 소집 때는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이제 그는 노르웨이와 함께 유로2021 진출권 티켓을 따기 위해 달린다. 노르웨이는 최근 20년 동안 메이저 대회에 나간 적이 없다. 그는 유로2021 출전이 간절하다. “너무 뛰고 싶어요.”

그의 아버지는 노르웨이 대표로 34경기에 출전했다. 홀란드는 그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아버지를 뛰어넘고 싶다는 어린 시절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실상 이루지 않았나? 홀란드는 손사래를 쳤다. “어우, 아니에요. 언젠가 꼭 그러고 싶어요.”

일단 방향 설정은 잘 됐다. 그도 동의하며 웃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악수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마쳤다. 엘링 홀란드는 멋지다. 그도 알고 있다. 갓 스무살에 이런 꿈을 꾸다니. 다가올 그의 미래는 더욱 특별할 것 같다.

사진=포포투, Stefan Grey,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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