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n&now] 미하엘 발락 “첼시를 떠나는 게 아니었는데…”

기사작성 : 2020-10-07 17:29

- 은퇴 후 이야기: <발락>편
- 4번의 준우승, 그리고 ‘유일한 후회’를 이야기한다

본문


[포포투=Pete Hall, 에디터=조형애]

미하엘 발락은 조세 모리뉴에게 마음을 사로잡혀 스탬포드브리지로 향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지독한 불운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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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카이저슬라우테른 소속으로 우승을 함께했다.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확실히 충격은 충격이었다. 긍정적인 쪽으로 말이다. 분데스리가 승격 첫 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는 건, 그 어느 팀도 해내지 못한 엄청난 성과였다. 이 기록은 오래오래 깨지지 않을 것이다. 우린 시즌 첫 경기에서 바이에른뮌헨을 꺾고서, “우리에게 뭔가 있나 보다”하고 말했다. 당시 오토 레하겔 감독은 최근 위르겐 클롭이 리버풀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을 했다. 그는 우리가 뭔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고 구단과 시민들이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오토 감독은 “집에 가서 텔레텍스(*텔레비전을 통해 자막 뉴스와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켜놓고 잠이 들면 행복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작인 것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었다.

레버쿠젠에서는 2001-02시즌 트레블에 근접했다. 하지만 리그와 DFB-포칼,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지네딘 지단의 발리슛 때문에 아직도 밤잠을 설치나?

그렇진 않다. 지금은 꿈에 나오지 않는다. 락다운 기간에 TV에서 예전 경기들을 방송해 주어서 나도 그 경기들을 다시 봤는데, 다 좋은 기억들뿐이었다. 우리는 훌륭한 팀이었다. 하지¬만 우승을 하지는 못했다. 충분히 잘해도 뭔가 안될 때도 있는 거다. 그렇게 레버쿠젠에서의 3년여가 지난 후에, 난 떠나야만 했다.

2001년 독일은 잉글랜드에 1-5로 패했다. 그런데 2002월드컵 결승전에 올랐다. 어떻게 된 일인가?

우리는 월드컵 예선을 망쳤다. 1-5 패배뿐만이 아니다. 본선 직행 티켓을 잉글랜드에 내주기까지 했다. 잉글랜드는 그리스를 상대로 막판에 득점을 뽑아내며 조 1위를 했다. 우리가 마지막 경기에서 핀란드를 이기기만 했으면 됐는데 0-0으로 비겼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독일에 월드컵 예선 탈락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린 나이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그런데 내가 그런 부담을 꽤 잘 다뤄내는 것 같더라. 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2골을 넣었다. 그것도 양다리를 사용해서 말이다.

당신이 출장 정지 징계를 받지 않았다면, 독일이 결승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난 월드컵에서 득점을 이어갔다. 그 점이 날 유명하게 만든 것 같다. 8강전에서도 준결승전에서도 결승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결승전에 나서지 못한 건 물론 힘든 일이었다. 내가 경기에 나섰더라면 우리가 이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꼭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잘 해냈다. 결승전에서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독일을 기준으로 두고 보면, 우리가 최고의 팀은 아니었어서 결승에 오른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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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뮌헨에서 4년을 보낸 뒤, 왜 맨체스터유나이티드가 아닌 첼시를 선택했나? 조제 모리뉴가 한몫을 했나?

모리뉴가 아주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가 정말로 선수를 원할 때, 그가 하는 말이 주는 영향력이라는 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모리뉴는 거절하기 참 어렵게 했다. 첼시는 리그에서 막 두 번 우승한 참이었고, 6-7명의 국가대표팀 주장들이 선수단에 있었다. 29세에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향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간 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서였다. 첼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할 수 있는 잉글랜드 최고의 팀으로 보였다.

바르셀로나, 레알마드리드와도 이적설이 있었다. 스페인에서 뛰지 않을 것을 후회하기도 하나?

난 지난 일을 후회하는 사람은 아니다. 결정을 내릴 땐, 100% 집중한다. 설령 다른 선택이 더 좋을 수 있었더라도 말이다. 바르셀로나나 레알마드리드에서 성공했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난 프리미어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레알이 아닌 바이에른에 가기로 결정했고, 그 후에 첼시로 향했다. 같은 상황이 와도 난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사람들은 바이에른이라는 클럽이 얼마나 큰 지 잊어버린다. 난 내가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모리뉴와 관계는 어땠나? 그가 정말로 독일에서 한 수술을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계약을 취소하자고 했나?

축구에서 감독과 관계는 팀 동료들과의 관계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관계다. 모리뉴와 첫 미팅을 한 뒤에 집에 돌아가 깨달았다. 그를 위해서 뛰고 싶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 그는 열광케할 수 있는 타입의 지도자였다. 때론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일들도 했었지만, 내 능력은 존중해 주었다. 우리 사이에 그 어떤 오래가는 문제는 없었다. 서로가 믿었기 때문이다.

엘튼 존이 결혼식 축가를 불렀다는 게 사실인가? 그가 왓포드와 계약하라고는 하지 않았고?

그가 노래를 불러줬다. 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뭐지?’ 생각하면서 축가를 요청했다. 엘튼 존이 엄청난 축구 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는 ‘하겠다’고 답했다.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뭐 그렇게 자주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내겐 감당할 만한 일이었다. 왓포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내가 얼마나 첼시를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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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테리가 모스크바에서 승부차기를 놓치는 걸 봤을 때 심경은 어땠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또 한 번 좌절하게 되었는데...

2002년 이후 깨달았다. 결승전이라는 게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난 첼시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대한 나의 기다림을 끝내 줄 클럽이라고 생각했다. 2008년에 우린 승부차기까지 갔고, 난 마침내 우승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커리어에선 처음으로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유로2008까지 포함해서 4개의 대회에서 준우승만 했는데…

결승전들 보다 우승하지 못한 사실을 더 후회하진 않는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더 결승전을 치렀다면 좋았을 거다. 첼시를 포함해서, 내가 뛰었던 팀들은 더 많이 우승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2009년 바르셀로나와 치른 준결승전에서 심판 판정이 불리하게 돌아갔을 때, 챔피언스리그과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나?

2009년 패배는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었다. 우린 2008년보다 훨씬 더 강했고, 바르셀로나보다도 더 나았다. 우린 결승전에 오를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심판 판정으로 손해를 봤다. 지금처럼 VAR이 있었더라면, 우리가 챔피언스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을지도 모른다.

2010년 첼시를 떠났다.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하고 바라나?

난 4년 계약에 서명했다. (계약 종료 휴) 난 33세가 되었고, 나이가 많은 선수에게 1년 이상의 계약을 맺지 않기로 한 구단의 결정을 존중했다. 난 행복했고, 또 다른 이적을 바라지는 않았으나 레버쿠젠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첼시를 떠난 건 실수다. 1년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첼시에서 마지막 시즌이 끝났을 때 부상도 당한 상태였다. 그러니 구단에서도 내 부상 경력을 볼 때, 1년이라도 더 함께 하는 것을 확신하진 못했다.

FACT FILE

켐니츠
카이저슬라우테른
바이어레버쿠젠
바이에른뮌헨
첼시
독일 대표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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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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