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모드리치 “한때 난 레알 최악의 이적생으로 불렸다”

기사작성 : 2020-10-30 14:47

- 팬들이 묻고 선수가 답한다
- 루카 모드리치 편
- 난민 꼬마가 발롱도르 수상하기까지, 거의 모든 이야기!

본문


[포포투=Chris Flanagan, 에디터=조형애]

2년 전, 루카 모드리치는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레알마드리드와 함께 챔피언스리그에서 4번 우승했다. 크로아티아 주장 완장을 차고는 대표팀을 사상 최초 월드컵 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참혹한 어린 시절을 극복해야 했다.


모드리치는 크로아티아 산악 주변에서 염소를 치는 순진한 소년이었다. 할아버지 루카와 친밀한 관계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 루카는 할아버지에게서 따온 것이다. 모드리치는 할아버지 루카를 여섯 살 무렵 여의었다. 크로아티아에 전쟁이 발발하고, 그 인근을 배회하던 세르비아인들에게 살해된 것이다. 이후 어린 루카와 그의 가족은 난민 수용소로 도망쳤고, 그의 아버지는 군대에 갔다.

암울한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모드리치는 그의 세대에서 가장 훌륭한 축구 선수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이제 서른 다섯이다. 그는 가족들에게 자부심을 준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볼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아직 그의 축구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은퇴하기 전, 가레스 베일을 따라 스퍼스로 돌아가 뛸 수 있을까?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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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축구 영웅은 누구였나?

내 영웅은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주장이자 AC밀란의 전설이었던 즈보니미르 보반, 그리고 프란체스코 토티였다. 난 토티의 플레이 스타일, 캐릭터, 위상, 그리고 그가 축구에서 보여주는 대표성을 좋아했다. 보반을 좋아한 것 역시 플레이 스타일 때문이었다. 크로아티아와 함께 성취를 일궈나간 것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는 우리가 독립 국가가 된 직후였다. (어릴 적) 크로아티아 대표팀을 응원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를 응원했다. 보반은 나의 우상이었다.

크로아티아 위기의 시기(*1991년부터 1995년까지 독립 전쟁이 있었다)라는 엄한 유년 시절을 견뎌낸 것이 현실 감각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나?

우리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때 일어난 모든 일은 도움이 되었다. 무언가를 성취할 때마다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있게 했다. 너무 넋을 잃게 하거나, 너무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도록 도왔다. 난 성격과 가치관을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았다. 부모님은 내게 겸손을 가르쳤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들은 존중하라고 배웠다. 그게 나를 만들었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난 똑같이 지내려고 노력했다.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에서 살았다. 얼마나 무서웠나?

우리 가족은 물론, 모두에게 겁나는 일이었다. 난 항상 ‘전쟁은 그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불행하게도 전쟁은 크로아티아에서 일어났고 무서운 시기였다. 폭격이 시작되자 많은 사이렌이 울렸다. 우린 대피소로 달려가야 했다. 당시 아버지는 군대에 계셨는데, 항상 ‘무사히 집에 돌아오시라’는 기도를 올렸다. 이겨내기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땐 그랬다. 그런 일이 있었고, 감내하고 계속 살아가야 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디나모자그레브 시절, 크로아티아 대표팀 일원으로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3-2로 꺾었다. 잉글랜드의 유로2008 본선 진출을 막아세웠는데,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이기다니,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우린 직전 경기에서 마케도니아를 상대로 유로 본선 진출 자격을 이미 얻은 상태였어서, 잉글랜드와 마지막 경기에서 걸린 건 명예뿐이었다. 우린 이미 자그레브에서 잉글랜드를 2-0으로 이긴 적이 있었고, 또 한 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우린 정말이지 잘했고, 또 이겼다. 그들이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데이비드 베컴 등 대단한 선수들이 아주 많은 잉글랜드를 꺾었기 때문이다. 특히 웸블리에서, 또다시 이겼다는 건 특별했다. 그 승리는 우리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좋은 팀이라는 것을 인지시켜 주었다. 안타깝게도 유로 대회에서 우린 운이 좀 나빴다. 조별 리그 3경기는 모두 이겼고, 확실히 더 나아갈 수 있었다. 8강에서 터키에 승부차기로 패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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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키건이 뉴캐슬 감독 시절 거의 계약할 뻔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영입 담당자가 ‘모드리치는 너무 작다’고 했다고… 그 일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게 있나?

당시 뉴캐슬이 날 영입하려 한다는 루머는 몇 번 들었다. 하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다. 그저 사람들이 이적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케빈 키건 감독이 그 주제로 인터뷰를 한 거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이야기는 들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뉴캐슬이 나와 계약하기를 원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8년 디나모자그레브를 떠나 토트넘에 합류했다. 맨체스터시티나 바르셀로나 이적과는 얼마나 가까웠나?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들을 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어떤 팀에 얼마나 가까웠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난 토트넘과 계약했고, 그곳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난 큰 클럽에 갔다. 내게 매우 좋은 팀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아르센 벵거도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기에 모드리치는 너무 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곤 하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지나?

그렇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커리어 내내, 심지어 어린 나이였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내 체격과 강단을 두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 의심은 내 커리어를 따라다녔다. 잉글랜드로 이적했을 때도, 레알마드리드와 계약했을 때도 그랬다. 사람들은 항상 내가 그 나라 축구에 대처할 수 있을지, 또 톱클래스 선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두고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나를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는 일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난 항상 나 자신을 믿었다.

토트넘 시절 가장 좋았던 기억은 무엇인가?

[열심히 생각하는 모드리치] 정말, 스퍼스에서 즐거웠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놀라웠다. 그러니 특정한 한순간을 택하는 게 정말 어렵다. 하지만 거의 50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을 얻었을 때가 아닐까. 그게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억이다. 스퍼스에서는 모든 게 환상적이었다. 선수들, 지도자들, 사람들, 팬들까지, 모두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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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퍼스 시절, 해리 레드냅 감독은 얼마나 중요했나?

아주 중요했다. 정말 특별했다. 그는 내게 많은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선수들에게 말하곤 했다. “볼을 루카에게 줘, 루카에게 공을 주라고!” [웃음] 감독이 계속 그런 말을 하면 엄청난 자신감을 얻게 된다. 난 그가 토트넘에서 내게 해준 모든 일에 매우 고맙고, 또 감사하다. 레드냅 감독은 나를 전진해서 플레이하게 했다. 윙이나 스트라이커 뒤쪽에서 뛰게 한 것이다. 그 후 1년, 혹은 그보다 덜 되는 시간 동안은 나를 홀딩 미드필더로 뛰게 했다. 그건 훌륭한 결정이었다. 내 스스로 최적의 포지션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난 팀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고, 윙이나 스트라이커 뒤쪽에서 뒬 때보다도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팀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본 것이다.

스퍼스는 후안데 라모스가 경질되기 전 끔찍한 시즌 출발을 보였는데?

힘든 시간이었다. 레드냅 감독이 왔을 때 우린 8경기에서 승점 2점밖에 못 따낸 채로 최하위에 처져있었다. 그가 부임한 뒤 치른 첫 경기는 볼턴과의 홈경기였다. 우리는 2-0으로 이겼고, 그 후 아스널을 상대로 4-4 무승부를 거뒀으며, 리버풀은 2-1로 꺾었다. 우린 좋은 축구를 했다. 시즌 끝날 무렵에는 거의 유로파리그에 진출할 뻔했다. 레드냅 감독은 우리가 원 팀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레스 베일과 스퍼스에서 함께 했다. 그때부터 월드클래스 선수가 될 것이라 생각했나?

그렇다. 가레스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었다. 강했고, 빨랐다. 좋은 왼발도 가지고 있었다. 초반에는 레프트백으로 뛰었는데, 레프트윙으로 옮기자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훌륭했다.

당시 스퍼스는 당신과 베일, 라파얼 판데르 파르트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을 보유했다. 그 기간 동안 클럽이 더 많은 성취를 하고, 트로피도 들어 올렸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우린 많은 재능과 잠재력을 가진 정말 좋은 팀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뭔가 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취와 멀진 않았다. 우린 리그컵 결승전에 올랐고 FA컵 준결승에도 2번 진출했다. 트로피와 매우 가까웠다. 하지만 잉글랜드에서는 우승하는 게 어렵다. 쉬운 일이 아니다. 훌륭한 선수들을 보유한 빅클럽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난 우리가 훌륭한 축구를 했고, 팬들도 우리 축구를 보는 것을 즐거워했다고 생각한다.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건 아쉽다. 우리가 타이틀을 따내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성취도 분명 있었다. 우린 2009-10시즌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고, 2011-12시즌 또다시 그 일을 해냈다. 애석하게도 (2011-12시즌) 첼시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했다. 우린 그렇지 못했다. 당시 스퍼스는 한 팀으로, 또 한 클럽으로 성정하기 시작했다. 그 또한 중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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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이적에는 얼마나 가까웠었나? 왜 이적이 성사되지 않았을까?

왜 이적이 성사되지 않았을까? [웃음] 토트넘이 나를 첼시에 팔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난 이적이 될 거라는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 도시를 연고로 하는 라이벌 팀이기 때문이다. 토트넘이 나를 첼시에 팔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이 나와의 계약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건 좋았다. 그건 내가 잘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적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토트넘이 날 팔길 원치 않았던 거다.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만나러 가는 기분은 어땠나? 대화를 위해 그의 요트를 타고, 프랑스 남부로 가지 않았나?

그건 엄청난 요트였다! 좋았고, 우린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다. 난 그곳에서 그를 처음 만나 약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게 다다. 그 요트는 정말 멋졌다…

다니엘 레비는 첼시로 당신을 보내는 것을 거절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마침내 레알마드리드와 계약하게 놔줬다. 그와의 협상은 얼마나 힘들었나?

다니엘이 아주 강경한 협상가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 관점으로 봐서는, 클럽에 정말 좋은 거다. 난 그가 구단을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그 아래서 스퍼스는 아주 잘 발전했고, 그는 항상 그들의 이해관계를 신경 썼다. 선수로서는 때때로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 선수는 무언가 마음에 있고, 떠나고 싶기도 하고 뭔가를 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토트넘의 최고의 이익을 좇았다. 그게 다니엘의 강점이다. 그리고 그는 계속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클럽이기 때문이다.

레알마드리드에 입단했을 땐 어땠나?

꿈이 이뤄진 것 같았다. 그들이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난 놀랐다. 레알마드리드와 계약을 맺은 순간이 내가 겪은 가장 좋았던 순간들 중 하나다. 레알 마드리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날 영입하는 데 관심 있어 한다는 게 자랑스럽고 또 영광스럽게 느껴졌다. 그 일은 다시 한번 내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 능력을 알아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내가 그라운드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준 것이다. 레알마드리드와 계약한 날은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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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마드리드에서 데뷔했던 해애 ‘시즌 최악의 영입생’으로 꼽히기도 했다. 평가를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나?

[웃음] 그 여론 조사가 기억 나기는 하는데, 솔직히 내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난 항상 나 자신을 믿었다. 난 내가 레알마드리드에서 뛸만한 선수라는 것, 또 성공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레알마드리드에 속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사람들이 하는 많은 말들과 마찬가지로 그건 내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는 내 목표가 있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든, 어떤 장애물이든 내가 목표에 도달하는 걸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난 스스로를 계속 믿었고 결국엔 다행히도 나 자신을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레알마드리드에서 첫 시즌을 마무리할 무렵이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동점골을 터트렸다. 알렉스 퍼거슨의 마지막 챔피언스리그 경기이기도 했다. 당신에게도 중요한 순간이었나?

그렇다. 마드리드의 커리어에 있어선 확실히 전환점이 된 것 같다. 난 후반전 30분을 남겨두고 투입돼서 잘했다. 득점을 올렸고, 우린 유나이티드를 2-1로 이겼다. 그 후로 난 더 자주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잘 뛰게 되었다. 그 순간 전에도 레알마드리드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긴 했었다. 약간이 아니라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리그 순위표에서 바르셀로나에 승점 7, 8점이 뒤져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일 수도 있고. 그 챔피언스리그 경기는 가장 큰 무대였다. 경기장은 올드트래퍼드였고 상대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였다. 퍼거슨 경도 있었다. 그는 내 자선 서문을 써주기도 한 인물이다. 아주 성공적인 순간이었다. 난 그 이후 스페인에서 계속 성장했다.

2014년, 2016년, 2017년 그리고 2018년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했다. 그중 가장 의미가 깊은 우승은 무엇인가?

모든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특별하다. 하지만 2014년에 한 ‘라 데시마’가 가장 특별했다. 레알마드리드가 12년을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10번째 우승이었고, 10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웃음] 최고의 경기력을 보인 경기는 카디프에서 유벤투스를 상대로 한 결승전(*2017년)이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라 데시마다. [FFT: 2014년 리스본에서 아틀레티코마드리드를 상대로 치른 결승전도 있다. 당신이 세르히오 라모스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라모스는 추가시간에 동점골을 터트렸는데…] 아, 맞다. 그랬다. 그 골은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나와 세르히오가 합작한 것이라 정말 기뻤다. 우린 아주 좋은 친구다. 훌륭한 골이었다. 클럽에도 아주 좋은 순간이었다.

커리어 동안 몇몇 최고 수준의 감독들 아래서 뛰었다. 누구를 최고라고 평가하나?

와우… 그렇다. 난 수년간 훌륭한 감독들 아래서 뛰었다. 모든 감독들은 내가 선수로서 성장하는 걸 도왔다. 하지만 그중 1명을 택해야 한다면, 지네딘 지단을 꼽겠다. 그 아래서 내 최고의 축구를 선보였다. 그와의 관계는 단연 특별하다. 우린 이미 레알마드리드에서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난 지주를 위해 내 커리어 사상 최고의 플레이를 펼쳐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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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이 레알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 당신에게 한 말은 무엇이었나?

지주는 때때로 자기 사무실로 호출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더 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 지금 무엇을 잘 하고 있는지, 또 잘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고쳐나가기 위해서다. 우린 대화를 나누었고, 그는 나와 함께 하는 게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 내가 발롱도르 수상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지주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난 생각했다. ‘와우, 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새롭게 부임한 감독이 그런 말을 하면, 많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를 위해 무슨 일이건 기꺼이 할 수 있다. 그가 라커룸에 들어섰을 땐 뭔가 특별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대표성과 지도자로서의 모습 때문이다. 그는 개성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즈드라브코 마미치의 재판 당시 크로아티아에서 받은 비판 때문에, 2018월드컵에 불참하거나 대표팀에서 은퇴하는 걸 고려하기도 했나?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당시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지만, 크로아티아를 위해 뛰지 않겠다는 건 고려해본 적도 없다. 내게 있어, 크로아티아를 위해 뛰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아, 그냥 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난 정말 매 순간을 즐긴다. 사람들의 말 때문에 대표팀에서 뛰지 않겠다는 생각은 결단코 들지 않았다.

월드컵 결승전에 오른 기분은 어땠나? 준결승전을 앞두고 잉글랜드 선수나 서포터, 또는 언론들이 오만하다고 생각했나?

우리가 결승전에 오른 건 놀라운 일이었다. 축구에 있어 가장 큰 경기니까 말이다. 우리처럼 작은 나라에서는 정말 신기한 사건이었다. 잉글랜드와 연장 접전 끝에 결승에 오른 걸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오만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우리가 선수들, 지도자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미디어가 우릴 과소평가했다고는 느꼈지만 말이다. 기사 일부를 읽어 봤는데, 그 내용이 우리가 러시아에서 성공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더 많이 주었다. 선수단 모두가 그 순간 그렇게 느꼈다. 어쩌면 그게 우리에게 조금 더 많은 동기를 찾는 데 도움을 줬을지도 모른다! [웃음]

프랑스와 치른 월드컵 결승에서 패했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나?

힘든 일이었다. 정말 힘들었다. 결승전에 진출했다는 자체가 우리나라에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도, 진다는 것은 그랬다. 내가 유독 더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레알마드리드에서 뛰면서 우승하는 게 익숙해져 있는데, 대표팀에선 가장 큰 결승전을 졌으니 힘들긴 힘들었다. 경기가 끝난 뒤 난 울지 않으려고 했다.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막상 참으니까 또 울고 싶어지더라. 결승전에서의 패배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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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10년여 동안 양분해 온 구도를 깨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얼마나 자랑스러웠나?

놀라운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론 최고의 순간이기도 했다. 발롱도르는 개인의 성취에 주는 현존 최고의 상이다. 난 사람들이 나를 최고의 선수로 인정해 준 것이 매우 기뻤다. UEFA 어워즈나 FIFA 더 베스트 어워즈에 투표하는 주장들, 선수들, 지도자들, 그리고 발롱도르에 투표하는 기자들까지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 점이 매우 자랑스럽다.

발롱도르 수상 사실을 알게 된 그 순간을 기억하나?

<프랑스 풋볼>이 내게 “만약 수상하게 된다면, 발표 일주일 전쯤에 전화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난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네이션스리그를 치르고 나서 아내와 함께 런던에서 하루 동안 쉬기로 했다. 그날 아침이었다. 일어나 보니 <프랑스 풋볼>의 디렉터가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게 보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웃음] 그리고 눈앞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의 울 뻔했다. 아내에게 말했다. “봐봐, 누가 전화했는지!” 그랬더니 아내가 말했다. “어서 받아!” 난 “아니, 아니야. 내가 나중에 다시 걸 거야. 좀 진정을 해야겠어”라고 했다. 이후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고 그는 내가 발롱도르 수상자라고 말해주었다. 정말이지 행복했다. 그날은 수상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나와 아내는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엄청나게 행복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비밀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은 모두에게 바로 말해버리고 싶었다! [웃음]

당신이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막 레알마드리드를 떠나 유벤투스로 간 상황이었다. 그해에 그를 제치고 수상했는데 축하해 주던가?

그렇다. 내가 수상했을 때 우린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린 여전히 이따금 연락하고 지낸다. 크리스티아누 같은 사람이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는 건 의미가 있다. 그는 수상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주 많이 수상한 이가 아닌가. 누군가 사상 처음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하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 보라. 그 상상 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래서 크리스티아누에게 메시지를 받은 게 더 좋았다. 레알마드리드에서 그와 함께 뛴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고, 또 특별한 일이었다. 그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선수다. 경기하는 동안 그는 모두가 최선을 다하길 바랐다. 그는 우리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인물이었고, 또 리더였다.

크로아티아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만 있다면, 발롱도르를 포기할 수 있나?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우승을 위해서라면 난 발롱도르를 포기할 것이다. 물론 개인 상도 대단하다. 하지만 내겐 집단적인 것, 특히 월드컵이 더 중요하다. 그보다 더 큰 트로피는 없다.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바꿀 것이다.

레알마드리드와 계약이 내년 여름 만료될 예정이다. 언젠가 다시 스퍼스에 합류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까? 가레스 베일처럼 말이다.

스퍼스에 돌아가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웃음] 아직 레알마드리드와 계약이 1년 더 남았다. 확실한 건 내가 1년 동안 여기 더 머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두고 봐야 한다. 계약을 연장하고 더 있을지, 아니며 다른 곳으로 갈지 말이다. 내 몸 상태는 좋고, 몇 년 더 축구를 하고 싶다. 어디서 뛸지는 2021년 이후를 봐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난 올 시즌 레알마드리드가 이룰 수 있는 것, 그리고 유로 대회에서 크로아티아가 이룰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게 내 주요 관심사다. 그다음 일은 누가 알겠나? 난 이사진과 함께 자리에 앉아서, 모두에게 가장 쉬운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그게 레알마드리드에 남는 것이 되었든 아니든 말이다. 8시즌 동안 레알에 있었다. 클럽의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니 어떤 결정이 나든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진=포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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