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아킨펜와 “리버풀전 득점하고 생각했다. 이거 어떡하지?”

기사작성 : 2020-11-11 16:57

- 리버풀 팬 그 이상, 아킨펜와 이야기를 듣는다
- 챔피언십에서 뛰기까지… 오랜 사연 대방출
- 그런데, 리버풀 상대로 골 넣었을 땐 어땠어?

본문


[포포투=Ed McCambridge, 에디터=조형애]

‘괴물’ 아데바요 아킨펜와가 위컴원더러스와 오랜 동행을 이야기한다. 이젠 축구 인생 이후의 삶도 구상하고 있다. WWE일까, 할리우드일까. 하지만 리버풀 팬의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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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 초기에 리투아니아에서 뛰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왓퍼드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었는데, 에이전트가 FK아틀란타스 회장이 내 플레이를 지켜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에이전트는 리투아니아인과 결혼해서, 리투아니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왓퍼드 테스트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그 대신 리투아니아에서는 입단 요청을 받았다. 솔직히 리투아니아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들은 UEFA컵에도 나가고, 강력한 선수단도 보유하고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첫 경기에서 원숭이 응원가(인종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관중들은 “껌둥이를 쏴라!”라고 노래했다. 난 겨우 18세였다. 집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한 시즌 동안 머물렀다. 팀은 컵 대회 결승전에 진출했고, 난 결승골을 넣었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몸무게 때문에도 계속 조롱을 당해오지 않았나…

작은 것까지 그렇다. 사람들이 “덩치가 큰 것치곤 볼 터치가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 신체 사이즈는 연관이 없는데 말이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훨씬 편안해지더라. 20년 넘게 뛰고, 200골 이상 득점하면 ‘뚱뚱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다루는 게 훨씬 쉽다.

지금까지 당신의 커리어 중 두드러진 순간은 무엇이었나?

지난 시즌이다. 위컴원더러스와 함께 (챔피언십으로) 승격하는 순간에 견줄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나의 가장 바닥을 찍은 건 2006년이다. 스완지에서 뛸 때였는데 리그원 플레이오프 파이널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했다. 그렇게 우린 반슬리에 졌다. 챔피언십에서 뛰는 데 거의 15년이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각기 다른 13개 클럽에서 15시즌을 뛴 뒤었는데 2016년부터는 위컴에 머물렀다. 위컴을 왜 그토록 편하게 느끼는가?

타이밍이 중요했다. 34세에 팀에 합류했고, 축구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있을 때, 즐기고 싶었다. 그곳에서 특별한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가레스 아인스워스와 함께했다. 우리는 아주 잘 섞였다. 위컴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위컴에서 커리어를 끝내지 않았다면, 난 충격을 받았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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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로 이적은, 그럼…

(웃음) 난 내가 무엇을 잘하지는 지를 알고 있다. 골을 넣는 방법도 알고 있다. 하지만 리그투 수비수들도 나보다 빠르다. 프리미어리그 수비수들은 훨씬 더 빠르지 않겠나. 리그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간다고 해도 내 경기력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날 증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불가능은 없다. 하지만 증명할 것 같지는 않다.

38세에 선수 인생 정점을 찍었다. 어떻게 나이가 들어서 최고의 폼을 보여주게 된 건가?

어렸을 때 아버지 운동복을 놀렸던 게 기억난다. 그럼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내가 편안하기만 하면, 누가 그렇게 생각하든 상관없는 거란다.” 난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 말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해 가능한 한 발전시켜야 한다. 내가 가장 빠른 선수도 아니고, 난 발재간을 부리지도 않는다. 난 그저 동료들과 함께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한 말을 이해했더라면 좋았을 거다. 그때부터 이런 마음가짐을 가졌더라면, 더 일찍 정점에 도달할 수 있었을 테니까.

나이지리아 혈통이다. 대표팀 소집 이야기가 나온 적 있나?

20세 때 나이지리아 21세 이하 감독과 함께 앉아있은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훈련 캠프 합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는 운 좋게도 항상 높은 수준에서 경기를 펼치는 스트라이커들을 배출해 왔다. 물론 나에게는 불행한 이야기다.

리버풀 팬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FA컵 맞대결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골을 넣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내 인생에서 가장 가 슴 아픈 순간 중 하나다! 골을 넣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리버풀 팬 앞에서 세리머니를 하고서 생각했다. ‘왜 우리 팬들이 나한테 욕을 하는 거지?’ 정말 당황했다.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리버풀 팬들이 우리 위컴 팬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킥오프 하러 나가서는 ‘와우, 헨더슨이야. 제라드도 있어. 쿠티뉴까지…’라고 생각했다. 초반 10분 동안엔 프리킥을 12개 정도 내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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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AFC윔블던을 떠나면서 왓츠앱으로 감독들에게 영입을 호소했다. 위르겐 클롭이 연락해 오던가?

(웃음) 그가 날 부르진 않았지만, 결국 다 잘 됐다! 효과가 있었다. 난 브라질, 이라크, 멕시코, 카타르, 터키 그리고 그리스의 관심을 받았다.

FIFA 여러 에디션에서 가장 힘센 선수이기도 했다. 팔씨름으로 당신과 견줄만한 선수가 있을까?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체육관에서 내가 뭘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난 바벨 들어 올리기 전문가들과 운동하는 걸 좋아한다. 난 196kg을 들어 올릴 수 있다. 축구 선수들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난 좋아한다. 이렇게 무거운 걸 들어 올릴 수 있는 선수가 또 있을까? 없을 거다. 자신한다.

럭비나 미식축구 팀이 영입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유혹을 느꼈나?

NFL 앰버서더로 몇몇 세션에 참가했었다. 하지만 난 축구 그라운드 위에서 가장 강한 선수가 되고 싶지, 미식축구나 럭비 그라운드 위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금은 축구에 충실할 거다.

은퇴 후 WWE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말 한 적 있었는데…

1년 전에 WWE 회장들과 앉아서, 내가 언제 축구화를 벗을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과 관련해 프로듀서도 만났고, 넷플릭스의 전화도 받았다. 축구 인생을 마감하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싶다. 지도자 길을 걸을 거라고 보이진 않는다. 그러니 할리우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두고 보자.

사진=포포투,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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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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