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top100] 위대한 프리미어리거 6위, '킹' 에릭 칸토나

기사작성 : 2021-01-21 23:29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무관을 끊은 칸토나
-7번의 계보의 '보석'
-쿵푸킥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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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UK 편집팀, 에디터=류청]

<포포투>가 순위 매기기로 돌아왔다. 이번엔 베스트 프리미어리거 톱100이다.

프리미어리그가 1992년 시작되진 않았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를 바꾸는 시기였던 바. 기준을 1992년부터 2021년까지로 하고 베스트 플레이어를 꼽았다. 6위는 기품 있는 기술과 깔끔한 마무리 그리고 영원히 회자될 ‘킥’을 선보였던 에릭 칸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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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에릭 칸토나
ㅣFWㅣ리즈, 맨체스터유나이티드ㅣ프랑스
‘킹’ 에릭 칸토나는 1992-93시즌에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우승컵을 안기면서 26년 무관의 고리를 끊었다. 서른에 은퇴하기 전까지 4시즌 동안 우승컵을 3개 차지했다. 2008년, 그는 <포포투>에 맨체스터와 셀허스트 파크의 ‘그 밤’을 이야기했다.

왜 리즈를 떠났나?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하워드 윌킨슨 리즈 감독의 유명한 전화통화(퍼거슨은 전화로 윌킨슨을 설득해 이적료 120만 파운드에 칸토나를 얻었다<편집자주>) 전에도 팀을 떠나길 바랐나?
윌킨슨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축구를 보는 관점이 달랐다. 가는 맨체스터 축구에 더 가까웠다. 리즈 축구는 킥 앤드 러시를 구사하는 구식이었다. 리즈에서 처음으로 잉글랜드 무대를 경험한 건 좋았다. 많은 걸 배웠다. 하지만, 주위 환경이 좋지 않다고 느끼면 더 머무르고 싶지 않은 법이다. 이성 관계와 마찬가지다.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고, 그렇지 않으면 헤어져야 한다.

옷깃을 세우는 셀러브레이션은 언제 시작했나? 누군가를 따라한 건가?
추운 날이어서 옷깃을 세워서 입었고, 계속 서 있길래 그대로 유지하려고 했다. 그날 우리는 이겼고, 깃을 세우는 버릇이 생겼다.

맨체스터 문화는 얼마나 받아들였나? 코로네이션 스트리트(Coronation Street
, 드라마)를 보고 더 스미스(The Smiths), 스톤 로지스(Stone Roses) 혹은 오아시스(Oasis) 노래를 들었나?

그 드라마를 보진 않았다. 하지만 오아시스와 스톤 로지스는 좋아했다. 더 스미스는 맨체스터 이적 전부터 좋아했다. 맨체스터가 많이 그립다. 맨체스터 축구, 음악, 문화는 힘이 넘친다. 아마도 비 때문인 것 같다. 몇몇 도시는 아름다운 볼거리가 많다. 맨체스터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시 역사에서 오는 힘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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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팰리스 팬에 날아차기를 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나? 등이 아니라 발로 착지 했다면 다음엔 어떻게 했겠나?
(긴 침묵) 난 등이 아니라 발로 착지했다. 그래서 그를 한 번 더 치려고 했다. 다만, 충분히 강한 펀치를 날리지 못했다. 더 세게 쳐야 했는데 말이다.

셀허스트 파크에서 쿵푸킥을 날린 걸 TV로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어떤 느낌인 줄 알기에 다시 보지 않았다. 내 집 주위에 기자들이 득실거렸던 것만 기억난다. 내가 본 전부다. 집이 상당히 작았다. 기자들에 막혀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셀허스트 파크에서는 순간에 충실했다. 그건 드라마였고, 난 배우였다. 심사숙고하지 않고 진지하게 행동했다. 심지어 그에게 날아차기를 했을 때도 나 자신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칸토나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삼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난 그저 축구 선수였고 남자였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하고 싶었다. 팬에 쿵푸킥을 날리고 싶다면 그렇게 했다. 나는 롤모델이 아니다. 어떤 행동이 옳은지 말하는 선생님도 아니다. 보면 볼수록 인생은 서커스라는 걸 깨닫는다.

징계를 끝낸 후 올드 트래퍼드에서 한 복귀전에 걸린 ‘셀허스트의 그 밤을 잊지 못할 거야’라는 걸개를 봤나? 그날 엄청난 중거리슛을 넣었다.
물론이다. 윔블던을 상대로 넣은 골이 기억난다. 포스터에 적힌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팬들은 법정에 섰을 때도 나를 지지했다. 팬들은 주중에 맨체스터에서 재판이 열린 크로이든까지 왔다. 나는 팬과 구단의 성원을 느낄 수 있었기에 팀에 잔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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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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