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star] ‘마에스트로’ 안드레아 피를로: 무심하고도 우아한 ‘스프레차투라’

기사작성 : 2021-11-2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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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James Horncastle]

안드레아 피를로는 인터밀란, AC 밀란, 유벤투스의 미드필더를 지배했다. 그는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옷을 늘 멀끔하게 차려입는다. 선수 시절 파넨카 킥을 좋아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를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무척이나 쉬운 것처럼 해내는 것)'로 요약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특집 기사는 ‘포포투’ 2019년 8월호에 처음 실렸다.

아마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는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16세기 백작이었던 그는 초상화로 판단하건대 딱히 미남은 아니었다. 그는 마침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라파엘로의 절친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라파엘로가 그린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초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라파엘로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요즘으로 따지면 랜킨(영국의 사진작가)이나 다비데 소렌티(이탈리아 사진작가)의 카메라 앞에 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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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 속 카스틸리오네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파란 눈으로 날카로운 눈빛을 보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눈썹은 금발이고 턱수염은 짙은 갈색이다. 복장으로 보건대 배경은 겨울이 분명하다. 터번 위에 포갠 베레모와 몸에 딱 붙는 다람쥐털 상의는 당대 궁정의 패셔니스타의 ‘머스트 해브’ 액세서리로 보인다.

카스틸리오네는 교양 지침서인 『궁정론』을 집필했다. 그는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트렌드를 선도하는 최고의 트렌드세터이자 인플루언서였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궁정론』은 ‘스프레차투라’의 개념을 낳았다. 스프레차투라는 르네상스 시대에 ‘어려운 일을 편안하면서도 우아하게 해내는 천재의 방식’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였다.

현대에는 스프레차투라를 대화 중에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스프레차투라가 될 수 있다. 몇몇은 이 단어를 '무심함'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계획된 무심함’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려운 일을 우아하게 수행하여 오히려 수월해 보이게 하는 기술인 셈이다.

‘현대판 스프레차투라’라고 하면 카스틸리오네와 같은 국적의 이탈리아인 한 명이 떠오른다. 카스틸리오네가 태어난 카사티크 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한 시간 정도 이동하면 롬바르디아주의 브레시아가 나온다. 1990년대 초반 아들이 또다시 늦을까 봐 시계를 보며 아들을 꾸짖는 한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난다. 어린 안드레아 피를로는 방에서 옷장을 뒤지고 있다.

피를로는 "나는 거울 앞에서 앞머리 볼륨, 셔츠 깃, 폴로 셔츠 주름, 바지 자락을 고치며 몇 시간씩 보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안드레아, 거울 그만 보렴! 충분해!’라고 소리치셨다”고 회상했다.

이쯤 되면 나르시스 콤플렉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피를로는 단지 스프레차투라가 되기 위해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따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는 주니뉴 페르남부카누의 ‘무회전 프리킥’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각고의 노력은 피를로 특유의 ‘라말레데타(la Maledetta)’로 완성됐다.

피를로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길게 물결치는 헤어 스타일을 예로 들어 보자. 그 머리는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비에르 사네티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긴 세월이 흘러도 파니니 스티커의 사네티는 완벽한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잘 빗어진 머리카락은 한 가닥도 흐트러져 있지 않다. 경기 내내 측면을 쉼 없이 달려도 그대로다. 그러나 피를로는 다르다. 마치 침대에서 방금 막 일어난 것처럼 부스스하다. 머리카락 한 가닥은 눈썹에 매달려 있다. 끝이 갈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불완전함 속에서 완벽함을 실현한다.

피를로는 데이비드 베컴처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선수 시절 베컴은 제로 페이드부터 모히칸 스타일, 금발 탈색 등 다양한 헤어 스타일을 시도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피를로는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다리를 저으며 호수 위를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백조라고 할 수 있다. 최상의 스프레차투라.

피를로의 축구 세대를 돌이켜보면, 그는 고전적인 미남이 아니다. 비틀마니아의 환호성을 자아냈던 비틀즈와는 다르다. 패션 디자이너들의 런웨이 모델로도 어울리지 않는다. 2006년 국제축구연맹(FIFA) 독일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 대표팀과 함께 ‘돌체앤가바나’ 광고에 출연하긴 했지만, 피를로는 섹시한 자태를 뽐내던 프레디 융베리와 거리가 멀었다.

피를로가 그토록 맹활약했던 AC 밀란 시절을 봐라.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메인 모델은 안드리 셰브첸코와 카카였다. 그러나 아르마니는 “우아함이란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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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로는 유행을 거부한다. 그가 양말처럼 생긴 발렌시아가 스피드러너를 신은 것을 본 적 있는가? 그는 펜디와 휠라의 콜라보 컬렉션에도 관심이 없다. 그가 신상 아디다스 이지나 오프화이트X컨버스를 신는 일 또한 없다. 오버사이즈 티셔츠와 후드티의 유행은 본인의 신체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이들의 심기를 건드릴 뿐이다. 칼 라거펠트의 말을 인용하자면 유행은 싸구려로 넘어가기 직전의 마지막 단계다.

피를로는 절제와 영구불변의 감성을 선호한다. 그의 상승세는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슬로우 무브먼트’와 궤를 같이한다. 이는 음식뿐만 아니라 공예에서도 지역색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문화적 반발이다. 획일화된 대량 생산의 시대에 ‘슬로 무브먼트’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다시 품질에 중점을 두도록 장려했다.

현대 사회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새로운 것이 우월하다는 편견을 심었다. 할머니의 오랜 요리 레시피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예전 것이 틀렸다는 단정은 설득력이 없다. 피자도 마찬가지다. 맛있는 피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과정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불변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가치를 일깨운다.

이는 그라운드 위에서 피를로의 역할과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은 ‘레지스타’를 과거 축구의 유물로 취급했다. 의자에 앉아 현장을 지휘하는 영화감독처럼 축구 경기를 관장하는 선수는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경기 속도는 너무 빨라졌고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를로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창출했다.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에도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주변 움직임은 피를로의 템포를 방해하거나 시야를 좁히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피를로의 플레이 스타일은 고스란히 패션 스타일로 이어진다. 클래스, 스마트 그리고 캐주얼한 패션. ‘일 마에스트로(il Maestro)’, ‘라르키테토(l’Architetto)’라는 별명은 완벽에 가까운 피를로의 플레이 스타일에서 비롯됐다. 새로운 건축물 앞에 선 렌조 피아노(건축가), 영화감독 파올로 소렌티노의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 토니 세르빌로처럼 피를로는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러운 우아함을 고수한다.

피를로의 진정한 가치는 대충 입은 듯한 블레이저와 단추를 푼 셔츠, 평범해 보이는 터틀넥과 스웨터에서도 빛난다. 피를로만의 분위기가 흐르는 덕분이다. 무표정한 포커페이스는 경기장에서 뿌려지는 그의 패스만큼이나 속마음을 읽기 어렵다. 브레시아 지방의 말투는 마치 심장 박동이 평균 이하로 느리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냉담한 느낌, 흔들림 없는 주파수를 발산한다. 이 시대의 살아있는 스핑크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까지의 서술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한다』라는 그의 자서전의 제목을 연상시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를로는 대단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다. 단순한 문장 안에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할 줄 아는 문장가이기도 하다. 피를로가 툭 던지는 단문은 한 박자 뒤에 폭소를 자아낸다.

미국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는 취미 삼아 손을 댔던 데킬라 사업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피를로 역시 자신과 어울리는 와인 사업에 과감히 투자했다. 포도 덩굴 사이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피를로의 사진은 그의 세련된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덥수룩한 수염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수염도 세월의 흔적으로 받아들이는 올드팬도 있을지 모른다. 마치 브레시아 시절 피를로가 스트라이커의 바로 뒤에서 최종 수비진의 바로 앞으로 이동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유행이 일기 훨씬 전부터 피를로가 수염을 길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06년 독일월드컵 준결승전에서 피를로의 완벽한 패스는 파비오 그로소의 결승골로 연결됐다. 피를로를 레전드로 선언했던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그의 헤어 스타일과 턱수염은 플레이 스타일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진지함을 선사했다. 피를로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12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는 담대한 파넨카 킥으로 잉글랜드의 조 하트 골키퍼에게 수모를 안기기도 했다. 피를로는 ‘쿨가이’다운 방법으로 상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웬만한 액션 영화에서도 그만큼 ‘쿨’한 장면을 찾기는 어렵다.

피를로의 발자취는 축구 문화에서 강요된 정체성 또는 고정관념을 재고하게 한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이탈리아 축구가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재미 요소를 부정하는 승리 지상주의일 뿐이다. ‘카테나치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던 칼럼니스트 지아니 브레는 “이탈리아가 개발한 수비 전술은 뛰어난 기술로 무장한 외국의 축구에 대항하기 위한 생존책이었다”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질문을 던지길 바란다. ‘이탈리아’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가? 발명 감각, 우아함과 우월함의 연결고리, 풍부한 창의력 혹은 퇴폐미 등이다. 페라리 250GT의 곡선, 올리베티 레테라(수동 타자기)의 타건감, 세계적 명품 와인 슈퍼투스칸의 바디감.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가 탄생시킨 스페르차투라 중 하나로 안드레아 피를로의 풍모를 포함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번역=유다현 에디터
사진=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 안드레아 피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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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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