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인터뷰] 루카스 모우라와 함께 파리를 걷다

기사작성 : 2013-06-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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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 플러스] 상류층이 모여 사는 파리 교외 뇌이쉬르센의 조용한 거리에서, 루카스 모우라는 우리의 질문을 곰곰이 곱씹었다. 만약 그때 다른 길을 갔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고 있는 듯했다.
 
"2012올림픽 기간에만 해도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의 계약이 정말 거의 성사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결국 내가 파리생제르맹(PSG)를 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연말까지 브라질 체류를 허락해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PSG가 제시한 조건이 사실 더 좋았다." 루카스 모우라의 PSG 이적 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퇴짜를 맞은 데 대해 공개적 불만을 드러내며 어린 선수에게 4300만유로의 거액을 제시하는 건 "축구판이 미쳐 가는 증거"라고 열을 올렸다.
 
그의 파리행에 결정적 영향을 준 이가 있다. 바로 브라질 출신의 PSG 스포팅디렉터인 레오나르도. "그가 모든 걸 지휘하면서 내게 이적을 권유했다. 또 시즌 말까지 브라질에 체류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덕분에 난 프랑스에서의 삶을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특히 PSG에 속한 티아고 실바, 알렉스, 막스웰, 그리고 당시 막 사인했던 네네 등의 다른 브라질 선수들이 적응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브라질 선수들이 내게 잘해 줄 거라는 게 그가 내민 여러 미끼 중 하나였다. 그건 사실로 입증됐다. 우린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난 이곳 언어를 익히기 위해 프랑스 선수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려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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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생활은 브라질에 비해 덜 산만하다고 한다. "상파울루에서는 좀처럼 집에 붙어 있을 여유가 없었는데, 이곳에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매일 인터뷰에 응해야 했고 TV쇼에도 나가야 했다. 스폰서와 관련된 행사 또한 많았다. 거기에 친구와 친척 들까지…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그는 /'/빛의 도시/'/ 파리를 무척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지난 1월 이곳에 오기 전까진 한 번도 파리를 방문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파리를 동경하는 이유를 이제야 느끼어 알게 됐다. 클럽엔 12년간 프랑스에 살면서 가이드로도 일하는 브라질 운전수가 있다. 외출할 때마다 그가 동행해 곳곳을 소개해 준다."
 
루카스가 망설임 없이 유럽행을 택한 건 선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성장하고픈 욕망 때문이었다. 루카스는 당분간 브라질에 남기로 결정한 네이마르와 달리 유럽 이적을 통해 발전하고 싶은 욕심이 강하다. "이 클럽은 포부가 크다 못해 거대하다. 그들은 향후 몇 년 안에 세계 최고 클럽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난 클럽의 성장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그들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루카스는 상파울루에서 가장 난폭한 지역 중 하나인 자르징 미리암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보르헤스는 금속노동자였고, 어머니 파티마는 미용사였다. 둘은 7년 전 이혼했지만, 아직까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빠듯한 살림에도 불구, 루카스와 짧았던 축구의 꿈을 접고 지금은 루카스의 재정 관리를 맡고 있는 그의 형 티아고가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다. 루카스는 대부분의 브라질 아이들처럼 제대로 된 축구 시설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축구를 하려면 어떻게든 주변의 사물과 사람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난 늘 길거리에서 축구를 했다. 축구장은 돌로 쌓은 골대가 전부였다." 5살에 루카스는 마르셀링요 카리오카가 운영하는 축구학교에 들어갔다. 다수의 브라질 청소년처럼 루카스도 풋살을 했다. 10살 때는 상파울루의 라이벌인 코린티안스에 들어갔다. 3년 후 그는 집을 떠나 상파울루의 유명한 유소년아카데미에 들어갔다. "내 어린 시절은 13살에 상파울루 훈련장으로 들어서면서 끝났다."
 
바로 그곳에서 그의 천재적 재능이 처음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2010년 8월 그는 마르셀링요라는 별명으로 프로에 데뷔했다. 그의 스타일이 前유소년 감독이었던 마르셀링요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1개월 후 상파울루는 /'/앞으로 그는 루카스로 불리게 될 것/'/이라고 공표했다. 득점률 상승과 함께 명성이 치솟으면서 옛 별명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일은 그렇게 순조로이 풀려 나갔다. PSG와의 계약 성사 이후로는 꿈같은 나날이 계속됐다. 브라질에서 그의 마지막 클럽 경기는 12월에 열린 코파수다메리카나 결승전이었다. 상파울루는 아르헨티나 클럽인 티그레를 상대로 루카스의 선취골에 힘입어 전반전을 2-0으로 앞서 가고 있었다. 그러나 하프타임에 티그레가 보안관계자들이 그들을 공격했다며 난리를 치는 통에 후반전이 취소돼 버렸다. 그래도 결국 상파울루의 우승 판정이 났고, 캡틴 호제리우 세니는 루카스에게 영광의 주장 완장을 넘겨주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 리더십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내가 주장 완장을 차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호제리우는 지금까지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난 주장 완장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7만 관중이 지켜보는 경기장에서 20살짜리 핏덩이에게 넘겨주다니…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루카스는 그 순간을 떠올리던 중 그의 양팔에 돋은 소름을 우리에게 보여 줬다. 그 순간이 루카스에게 더 특별했던 건, 그에게 완장을 건넨 이가 다름 아닌 전설적인 골키퍼이자 루카스의 우상 중 1명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의 또 다른 우상은 지네딘 지단이었다. "그는 정말 내 눈으로 본 최고 가운데 1명이자, 월드컵 때마다 우리 브라질을 괴롭혀 온 천재적인 선수다." 한편 그는 메시를 닮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늘 골대를 향해 번개같이 달려든다. 난 그의 광팬이다. 그의 스타일은 나와 비슷하다." 이렇게 말한 루카스는 재빨리 수정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경기 스타일이 그와 약간 비슷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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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는 2011년 3월 아스널의 에미리트스타디움에서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A팀 데뷔전을 치렀다. 네이마르가 2골을 터트려 브라질이 2-0으로 이긴 경기다. 마노 메네제스 체제에서 루카스는 A팀에 여러 차례 호출됐지만, 선발 라인업에는 거의 들지 못했다. 그의 좌절감은 2012런던올림픽에서 극에 달했다. 루카스는 또다시 대부분의 경기를 벤치에 앉아 지켜봐야 했다. 후반 막판 짧게 투입되는 정도에 그쳤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팀이 결승전에서 패하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물론 당장에라도 달려 나가고 싶었고, 그러지 못해 화가 났다. 하지만 감독의 결정과 경기를 뛰는 선수들, 그리고 다른 스태프 모두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다."
 
웸블리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결승전에서 뛰지 못하는 고통에 한참을 시달리다 정규시간 종료 5분 전에야 필드를 밟은 루카스는 팀이 패하자 치솟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미친 듯이 화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난 많은 것을 배웠고,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루카스는 이전 보다 많은 경기에 뛸 수 있게 됐다. 비록 발목 부상으로 이탈리아, 러시아와의 친선전엔 불참했지만 말이다. 그는 브라질이 다가오는 월드컵 우승을 위해 무진장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선도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스페인이 아직까진 우리를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콜라리 감독은 자신 있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의 고유 장점인 테크닉에 유럽 팀을 상대할 수 있는 전술을 조합하면 브라질은 다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몽마르트에서 마지막 인터뷰 촬영을 마친 후 루카스는 자신을 알아본 팬들의 사인 요청에 응해 줬다. 기념 촬영도 몇 차례 있었다. "브라질이라면 절대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 유럽인들은 약간 수줍음을 타고, 예의 바른 것 같다. 날 알아보면서도 항상 뭔가를 요구하진 않는다." 거리 화가가 마침내 루카스의 캐리커처를 완성했다. 루카스는 그에게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그림을 썩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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